년산의 의미
매일경제
[필동정담] 위스키 전쟁
영화 '킹스맨' 첫 장면. 킹스맨 랜슬롯이 죽기 직전에 한 모금 마시는 위스키가 있다. 싱글몰트 위스키 '달모어 1962'.
실제 달모어 1962는 존재하지 않는다. '달모어 62년'에서 모티브를 따왔을 뿐. '달모어 62년'은 1868, 1876, 1926, 1939년산 4통의 원액으로 딱 12병만 생산한 진귀한 위스키다. 4가지 원액 중에 가장 어린 숙성 연수가 1939년 원액이었기 때문에 '62년'이라고 표기됐다. 2002년 출시 당시 가격은 3만9000달러, 마지막으로 거래된 가격은 2011년 20만달러였다.
'달모어 62년산' 사례에서 보듯이 고급 위스키는 숙성 기간이 길수록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술과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다'는 말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는 주종 중 하나가 위스키인 셈이다.
위스키는 통상 숙성 기간에 따라 12년 미만은 일반(스탠더드), 12년 이상은 고급(프리미엄), 17년 이상은 슈퍼 프리미엄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오랜 기간 숙성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데다 세계적으로 위스키 원액이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위스키 시장에서도 숙성 기간을 별도로 표기하지 않는 무연산(無年産) 위스키가 늘어나는 추세다. 발렌타인 17년, 21년, 30년 대신 '발렌타인 마스터스'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포장되거나 조니워커 레드, 더블블랙, 골드리저브 등으로 변신하는 식이다.
국내에서도 주요 위스키 업체들이 숙성 연도를 지운 무연산 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과거 골든블루 12년산과 17년산으로 출고됐던 제품들을 12년산은 '사피루스', 17년산은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식이다. 하이트진로도 '킹덤 마일드', 페르노리카는 '임페리얼 네온' 등의 무연산 위스키를 출시했다. 디아지오는 위스키 향을 첨가한 '윈저 아이스' 등 유사 위스키를 내놓기도 했다. 문제는 일부 업체가 연산·무연산 간에 가격 조정을 하지 않은 점. 무연산 위스키의 경우 3년 이상 숙성한 원액이면 자유롭게 섞어 만들 수 있어 원가 절감 요인이 있는데도 가격은 그대로여서 소비자들을 기만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거꾸로 전략을 쓰는 회사도 나왔다. '글렌피딕'과 '발베니'로 유명한 윌리엄그랜트앤선즈는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그린자켓 12년'과 '그린자켓 17년'으로 오히려 연산을 더 두드러지게 표기했다.
세계적인 주류 소비 감소세, 주종의 다양화, 저도주 열풍으로 위스키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 술집에서 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가짜 양주인지 진짜 양주인지 구분하는 법이 유행했던 게 엊그제다. 이제는 연산이 낮은 일반 위스키를 고급 위스키로 속아 마시는 것은 아닌지 위스키 나이도 꼼꼼하게 살피어 음주하시면 고객의 권익을 찾길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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