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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 국가위정자, 2026.1.4, 박홍섭 목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3장은 국가위정자에 관한 내용으로 총 4항에 걸쳐 그리스도인이 국가 권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어떠한지를 알려줍니다. 고백서를 작성할 당시 총대로 참여한 대부분의 청교도들은 의회 편에 가담하여 왕과 대항하고 있었기에 전쟁의 승패에 따라 직위가 박탈될 수 있었고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각자 처지에 따라 정치적인 견해가 달랐으며 극심하게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직 성경과 양심에 따라 고백서 제23장의 국가위정자에 관한 내용을 작성했습니다.
1항. 왕이시며 온 세상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공적 선을 위하여 자기 아래에, 그리고 백성들 위에 국가위정자들을 세우셨다. 이 목적을 위해 하나님은 그들에게 칼의 권세를 맡기셔서 선한 자들을 보호하고 격려하게 하고 행악자들을 징벌하게 하셨다(롬 13:1-4, 벧전 2:13-14).
2항. 그리스도인들이 위정자로 부름을 받을 경우, 그 직무를 받아들여 수행하는 것은 정당하다(잠 8:15-16, 롬 13:1-2, 4). 직무를 수행할 때 그들은 각 나라의 건전한 법에 따라 특별히 경건과 정의와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시 2:10-12, 딤전 2:2, 시 82:3-4, 삼하 23:3, 벧전 2:13). 이 목적을 위해 신약 시대인 오늘날에도 정당하고 필수적인 경우에 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정당하다(눅 3:14, 롬 13:4, 마 8:9-10, 행 10:1-2, 계 17:14, 16).
3항. 국가위정자는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시행하는 권한과 천국 열쇠의 권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대하 26:18, 마 18:17, 16:19, 고전 12:28-29, 엡 4:11-12, 고전 4:1-2, 롬 10:15, 히 5:4). 그렇지만 위정자는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유지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순수하고 온전하게 보전하고, 모든 신성모독과 이단을 진압하고, 예배와 권징에 있어서 모든 부패와 남용을 방지하거나 개혁하고,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올바르게 정착시키고 시행하고 준수해야 할 권한과 의무를 가진다(사 49:23, 시 122:9, 스 7:23, 25-28, 레 24:16, 신 13:5-6, 12, 왕하 18:4, 대상 13:1-9, 왕하 23:1-26, 대하 34:33, 15:12-13). 이런 일들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위정자는 교회 회의를 소집하고, 그곳에 참석하고, 총회에서 결의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하게 할 권세를 가진다(대하 19:8-11, 29-30장, 마 2:4-5).
4항.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고(딤전 2:1-2), 그들을 존경하고(벧전 2:17), 그들에게 세금과 기타 부담금을 납부하고(롬 13:6-7), 그들의 합법적인 명령에 순종하고, 양심을 따라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국민의 의무다(롬 13:5, 딛 3:1). 신앙이 없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위정자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세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며 백성들이 그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순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벧전 2:13-14, 16). 교회 직원들도 이러한 의무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롬 13:1, 왕상 2:35, 행 25:9-11, 벧후 2:1, 10-11, 유 1:8-11). 더욱이 교황은 각 나라의 위정자들이나 그들의 백성 중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권세나 사법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특히 위정자들을 이단으로 판결하거나 그 밖의 다른 구실을 내세워서 그들의 통치권이나 생명을 박탈할 수 없다(살후 2:4, 계 13:15-17).
해설
1. 신앙고백서 제23장 국가위정자에 관한 내용은 한때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정치 혐오증의 태도를 보였고, 지금은 정반대로 정치에 중독되어서 정치를 진리처럼 취급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새겨들어야 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1항은 국가 권력의 기원과 목적을 설명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합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국민들의 투표로 위정자들이 선출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서는 국가의 권력은 백성이나 사회 계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대주제이시며 왕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고 분명하게 밝힙니다.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위정자를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에서만 최고의 주와 왕이 아닙니다. 온 세상에서도 최고의 주요 왕이십니다. 말씀의 사역자들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는 하나님은 국가에는 위정자들을 통해 다스리십니다. 위정자들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만든 정치제도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2. 왕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공적 선을 위하여 자기 아래에, 그리고 백성들 위에 국가위정자들을 당신의 대리자로 세우셨습니다. 이들을 세우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선한 자를 보호하고 격려하며 행악자들을 징벌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위정자들에게 칼의 권세를 맡기어 그 권력을 선하게 사용하게 하셨습니다(롬 13:1-4, 벧전 2:13-14). 땅 위의 위정자들 중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런 목적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아는 자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공공선’이라는 하나님의 목적을 외면하고 자신의 영광과 이익을 위해 통치 권력을 사용하는 악한 위정자들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시편 2편).
3. 2항은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참여하거나 공직을 맡는 것에 대하여 말합니다. 재세례파나 퀘이커 교도들은 신약 교회는 국가가 아니므로 신자가 위정자나 공직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인이 위정자의 직무를 맡는 것은 합당하며 정당하다고 가르칩니다(잠 8:15-16, 롬 13:1-2, 4). 만약 그리스도인이 위정자나 공직의 직무를 맡았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각 나라의 건전한 법을 따라 최선을 다해 정의와 평화를 위해 힘써서 경건이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시 2:10-12, 딤전 2:2, 시 82:3-4, 삼하 23:3, 벧전 2:13). 그러나 그리스도인 위정자들이 교회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법을 무시하면서 교회에 특혜를 주거나 교회의 불법과 부조리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됩니다.
4. 이어서 2항은 국가위정자들에게 전쟁을 수행할 권세도 있다고 말합니다. 전쟁은 통치자들에 의해 대부분 악한 의도로 사용되었을 때가 많습니다. 하여 신앙고백서는 전쟁에 대해 신중하면서도 아주 원리적인 선언을 합니다 “필수적인 경우에 위정자들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은 정당하다”(눅 3:14, 롬 13:4, 마 8:9-10, 행 10:1-2, 계 17:14, 16). 왜 신앙고백서가 위정자를 다루면서 전쟁을 언급할까요? 고백서가 작성될 당시가 잉글랜드 내전이 한참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편에서 고백서는 공의의 수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 정당하고 불가피한 전쟁이 가능하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5. 그러나 정당한 전쟁이 무엇인지 고백서는 더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전쟁이 정당한 전쟁인지 성경적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일이 쉽지 않고,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도 많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참상은 너무나 끔찍하므로 한 나라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침략전쟁이나 보복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국가의 생존과 국민들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전쟁만이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로 부름을 받은 성도들이 전쟁이란 단어를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고백서의 가르침에 따라 “이 전쟁이 과연 정의로운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6. 3항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다룹니다. 이 부분은 역사적으로 수정이 있었던 항목이니만큼 오늘 대한민국에 무조건 적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위정자들은 말씀과 성례의 봉사를 수행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의 열쇠인 교회의 치리권에 대해서는 당시 아주 심각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모든 개신교회는 교황이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천주교의 교리를 거부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열쇠가 누구에게 주어졌습니까? 국가위정자들에게 주어졌다는 주장과 교회에 맡겨졌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에라스투스주의자들은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힌 자들도 세속법에 따라 국가위정자가 처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칼뱅과 같은 개혁주의자들은 치리권은 영적인 권세이므로 국가위정자가 아니라 오직 교회의 직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칼뱅은 결국 제네바 교회에서 추방되어야 했습니다.
7. 웨스트민스터 총회 당시에도 세속정치가들의 지지를 받았던 에라스투스주의자들이 국가에 치리권을 주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총대의 숫자로는 적었지만 하원 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총회가 철저한 의회의 통제 아래에 있었던 형편에서 장로교 총대들이 에라스투스주의자들에 맞서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에라스투스주의를 거부하면서 “국가위정자는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를 시행하는 권한과 천국 열쇠의 권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대하 26:18, 마 18:17, 16:19, 고전 12:28-29, 엡 4:11-12, 고전 4:1-2, 롬 10:15, 히 5:4).”라고 치리권을 교회에 돌리도록 고백서를 작성했고, 의회는 고백서의 결정을 받아들였습니다.
8. 교회의 직원들에게 치리권을 주었던 고백서는 그 보완으로 국가위정자가 교회의 일치와 평화를 유지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순수하고 온전하게 보전하고, 모든 신성모독과 이단을 진압하고, 예배와 권징에 있어서 모든 부패와 남용을 방지하거나 개혁하고,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올바르게 정착시키고 시행하고 준수해야 할 권한과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했습니다(사 49:23, 시 122:9, 스 7:23, 25-28, 레 24:16, 신 13:5-6, 12, 왕하 18:4, 대상 13:1-9, 왕하 23:1-26, 대하 34:33, 15:12-13). 그리고 이런 일들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위정자가 교회 회의를 소집하고, 그곳에 참석하고, 총회에서 결의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마음에 부합하게 할 권세를 가진다고 말합니다(대하 19:8-11, 29-30장, 마 2:4-5).
9. 신앙고백서는 에라스투스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했으나 국가위정자가 교회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정교분리 사상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고백서를 작성한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총대들은 국가가 당연히 참된 종교를 보호하고 지원하며 이단과 거짓 종교는 법으로 강력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교회개혁도 국가위정자들이 해야 할 의무로 규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공직자들이 교회 회의도 소집할 수 있고, 참석할 수 있고, 필요한 것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이는 위정자가 교회를 통치하거나 간섭하는 차원이 아니라 교회가 본래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차원의 권한과 의무입니다.
10. 미국 장로교회는 신앙고백서 제23장 3항의 내용을 국가위정자가 교회의 동의와 허락 없이 교회 회의를 언제든지 마음대로 소집할 수 있고, 참여할 수 있고, 교회 회의가 결의한 내용까지도 규정할 권세를 가진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고 보아서 1788년에 3항을 크게 수정합니다. 국가위정자가 교회의 총회를 소집하거나 교회의 신앙 문제에 간섭할 수 있다는 내용을 아예 삭제하고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국가위정자는 말씀과 성례의 집행이나 천국 열쇠의 권세가 자신에게 있는 것으로 삼아서는 안 되고, 조금이라도 신앙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보살피는 아버지로서, 국가위정자가 어느 교파를 다른 교파들보다 우대하지 않으며 우리 공동의 주님의 교회를 보호하는 것은 그의 의무이다. 이때 어떤 교직자이든 모두가 폭력이나 위험에 처함 없이 자신의 신성한 사역을 빠짐없이 할 수 있는 자유를 온전히, 자유롭게, 의심할 바 없이 누리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에 표준적인 정치와 권징을 정하셨으므로, 기독교의 각 교파가 자신의 고백과 신념에 따라 자발적인 회원에게 그 정치와 권징을 적절하게 시행할 때에 어떤 국가도 법으로 간섭하거나 강요하거나 방해해서는 안 된다. 국가위정자가 어떤 사람도 종교나 불 신앙을 구실로 하여 모욕, 폭력, 학대, 상해를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가하지 않는 효과적인 방식으로 국민 모두의 인격과 명예를 보호하는 것은 그의 의무이다. 또한, 모든 신앙적인 교회 모임들이 간섭과 방해 없이 열리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도 그의 의무이다”
11. 4항은 국민이 국가위정자에게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롬 13:5-7 말씀에 근거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고(딤전 2:1-2), 그들을 존경하고(벧전 2:17), 그들에게 세금과 기타 부담금을 납부하고(롬 13:6-7), 그들의 합법적인 명령에 순종하고, 양심을 따라 그들의 권위에 복종하는 것은 국민의 의무다(롬 13:5, 딛 3:1). 신앙이 없거나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위정자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권세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며 백성들이 그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순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벧전 2:13-14, 16). 교회 직원들도 이러한 의무에서 면제되지 않는다(롬 13:1, 왕상 2:35, 행 25:9-11, 벧후 2:1, 10-11, 유 1:8-11).” 성도들은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그들을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로 존경해야 합니다. 국민의 의무인 세금을 납세해야 하며 양심에 따라 합법적인 그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위정자를 온 세상의 대주재시며 왕이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이런 태도가 가능합니다.
12. 국민의 의무에 교황도 예외가 아닙니다. 천주교는 교황을 교회의 우두머리인 동시에 지상의 권세에 있어서도 왕으로 믿기에 국민에 대해서도 권세나 사법권을 가진다고 여깁니다. 실제로 교황이 국가위정자들을 이단으로 판정해서 이들의 통치권과 목숨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신앙고백서는 이를 반대하고 교황도 국민의 의무를 지켜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더욱이 교황은 각 나라의 위정자들이나 그들의 백성 중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권세나 사법권을 주장할 수 없으며, 특히 위정자들을 이단으로 판결하거나 그 밖의 다른 구실을 내세워서 그들의 통치권이나 생명을 박탈할 수 없다(살후 2:4, 계 13:15-17).”
13. 구약 이스라엘이 국가와 교회가 하나였던 신정체제였다면, 중세 천주교는 교회가 국가 권력을 지배했으며, 재세례파는 국가와 교회를 철저히 분리했습니다. 현대에 ‘교회의 국가화’나 ‘국가의 교회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국가라는 두 왕국의 왕이시므로 그리스도인은 정치와 정부를 악하고 더러워 멀리해야 할 세속 영역이라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름을 건 정당의 부패와 그로 인한 역기능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가져오기에 피해야 합니다. 대신 그리스도인 각자가 건강한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것은 신앙고백서의 원칙에 부합합니다. 하나님은 국가에는 위정자를, 교회에는 사역자를 주셨기에 국가와 교회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여 권세를 행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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