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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105쪽
"세상 모든 것들은 자기 나름의 신비한 본성을 갖고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각자의 고유한 행동 양식은 바로 그 본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라고 누가 내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것이 세상에 관한 설명이 전혀 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온갖 현상들에서 두세 가지의 일반 원리를 먼저 찾아내고 모든 물체들의 성질과 그들의 상호작용이 앞에서 찾아낸 원리들에셔 어떻게 비롯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이해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 아이턴 뉴턴., 광학
108쪽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두 극단의 중간 어디쯤에선가 있다. 사물의 변화가 있되 그 변화는 어떤 패턴이나 규칙을 따른다.
현대인들도 그들의 조상과 마찬가지로 별들 사이에 인류의 희망과 근심을 그리면서 바람직한 내일을 소망한다.
별들이 뜨는 데에도 순서가 있으며 그들의 행동거지에도 예측성과 영원성이 있다.
109쪽
인류의 조상은 계절의 흐름을 알아낼 수 있는 기구나 장치들을 만들어 세웠다. 뉴멕시코주의 차코 협곡에는 11세기에 만들어진 지붕없는 거대한 의식용 키바, 즉 사원이 있다.6월 21일경 (북반구에서 낮이 가장 긴 하지)표시된 구역에 빛이 들어온다. 태양과 달과 별이 천체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갖고 주의 깊에 관찰했다. 이와 비슷한 개념의 기구들을 우리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 영국의 스톤헷지 유적, 이집트의 아부 심벨, 멕시코의 차천 이차, 북아메리카의 대평원 같은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110쪽
농업기술의 발명이후 작물을 때에 맞춰 심고 거둬들여야 할 필요가 생겼으며 자연의 충직한 순환현상을 통해서 우리 조상들은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삶을 짐작했으며
111쪽
세대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왔다. 해와 달과 별의 위치와 그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알면 알수로 사냥을 언제 나가야 하는지, 씨앗은 어느 날쯤 뿌리고 익은 곡식은 언제쯤 거워야 할지, 그리고 부족 구성원은 언제 모두 불러 모아야 할지를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천문학은 관측과 수학과 문자의 발달에 크게 입이바지했다.
112쪽
사람들은 이러한 하늘의 여러 천체들이 모두 인간의 삶에 심오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여겼다. 해와 달은 별 또한 계절의 오고감을 알려주지 않는가? 그렇다면 행성들도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점성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13쪽
점성술은 관찰과 수학, 철저한 기록과 엉성한 생각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거짓말이 묘하게 뒤섞이는 가운데 발달했다. 개인 점성사상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싹트기 시작하여 약 2000년전에 그리스와 로마권으로 퍼져 나갔다.
114쪽
재해를 뜻하는 disaster는 그리스어로 '나쁜 별'이란 뜻 유행성 감기를 뜻하는 'influence'에서 나온말이고, 건배를 뜻하는 'shlamazel'이라는 이디시어는 악운이 끊이지 않고 겹치는 사람들 가르키는데 이 역시 바빌론의 천문학 용어에서 나왔다. 고려하다란 'consider' 행성과 함께라는 뜻이다.
117쪽
모든 국기 중 거의 절반 정도에 천문학적 상징문이 들어 있는 셈이다. 저마다 하늘의 힘과 영원무변함을 현 국가체제에 빗대어 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간과 코스모스의 관계는 물질의 기원을 통한 관계이다. 그것은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지구, 인류의 진화, 그리고 우리의 운명이 걸린 지극히 심오한 연줄인 것이다.
118쪽
프톨레마이오스는 바빌로니아 시대부터 내려온 점성술 전통을 체계화했다.
119쪽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태양와 달과 별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121쪽
프톨레마이오스의 투명한 천구투명설은 중세의 암흑시대에 교회의 지지를 받았고, 그로부터 1000년동안 천문학의 진보를 가로막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마침내 1543년 폴란드의 가톨릭 성직자였던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지구의 중심이란 가설을 세우며 지구를 하나의 행성으로 강등시키고 태양으로부터 세번째 자리에서 완전한 궤도를 도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123쪽
1616년 가톨릭교회는 코페르니쿠스의 저술을 금서목록에 포함시켰다. 이 금서령은 1835년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마르틴 루터 " 이바보가 천문학이라는 과학을 통째로 뒤엎어 놓으려 한다. 그러나 성서에 분명히 쓰여 있듯이 여호수아가 멈취라 하고 명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다." 라고 코페르니쿠스를 비판이 절정에 이른 것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사이에 살았던 한 과학자를 통해서였다. 그는 점성술이자 천문학자였으며 인간정신이 족쇄에 묶여 있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위대한 영혼이었다. 그가 살었던 시대는 과학 기술덕분에 고대인들이 몰랐던 새로운 지식들이 많이 발견됐어도 교회가 발표한 1000~2000년 전의 과학결과를 더 신뢰해야 했던 그러한 시대였다. 그 시대를 풍미했던 교회 교리의 틀을 벗어나는 사람은 그가 구교도이든 신교도이든 구별없이 굴욕, 세금, 추방, 고문, 죽음으로 처벌받아야 했던 시대였다.
모든 자연현상의 바탕에 물리법칙이 있다는 생각은 그 시대 과학계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용감하고 고독한 분투 덕분에 현대 과학에 혁명의 불이 일기 시작했다.
요하네스 켸플러는 1571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의 호기심은 두려움보다 강하여 세상의 종말에 대해 배우고 싶어했다.
125쪽
고대에 한창 꽃피웠던 과학문명은 교회의 억압아래 1000년 동안의 깊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중세 후기가 되자 아랍 학자들을 통해 보존되었던 고대 과학의 목소리가 희미한 메아리가 되어 유럽의 교과 과정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128쪽
켸플러는 행성들이 왜 하필 여섯 개 뿐이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다. 행성들은 왜 코페르니쿠그가 알아낸 바로 그 간격을 유지하며 궤도를 도는가? 케플러는 태양계 구조의 근본을 묻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행성 사이의 간격이 정다면체의 수학적 특성과 연관돼 있으리라 추측
131쪽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계산해본들 정다면체와 행성의 궤도는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1598년 케플러는 30년 전쟁의 전조가 된 사건에 휘말려 개신교도를 탄압하는 그라츠를 지배하는 대공을 벗어나 프라하로 추방을 선택해 튀코 브라헤가 있는 곳으로 피난처로 떠났다.
133쪽
튀코 브라헤는 망원경이 발명되기 35년 전부터 우주의 정확하고 질서 정연한 움직임을 측정하는데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었다.
134쪽
튀코 브라헤는 당대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관측의 귀재였고, 케플러는 최고의 이론가였다.
135쪽
튀코 브라헤는 숨을 거두기 전에 자신의 관측 자료를 케플러에게 준다고 유언을 했고, 코페르니쿠스는 황실 수학자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137쪽
기원전 6세기의 피타고라스로부터 플라톤, 프톨레마이오스 그리고 케플러 이전까지 살던 기독교 세계의 천문학자들은 원이 '완벽한'기하학적 도형이므로 행성은 마땅히 원 궤도를 따라 돌아야 한다고 믿었다. 행성들은 하늘 높이 자리잡고 있어 이 땅의 '부패'로부터 거리가 먼 역시 또 다른 의미의 신비와 '완벽'을 겸비한 존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원형이 아닌 궤도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라고 단언했는데 왜냐하면 '최상의 모습으로 창조된 신의 피조물을 감히 불완전하다고 여길 수가 없기'때문이었다.
138쪽
튀코 브라헤가 남긴 나머지 두 개의 관측 결과가 케플러의 예측값에서 8분이나 되는 오차가 보였다. 바로 이 8분이 천문학의 완전 개혁으로 이르는 새로운 길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케플러는 원 궤도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결국 케플러는 원에 대한 동경이 환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구도 코페르쿠스가 말한대로 하나의 행성이었다. 켸플러가 보기에 지구는 전쟁, 질병, 굶주림과 온갖 불행으로 망가진 확실한 완벽과는 아주 먼 존재였다.
139쪽
이런 지구를 완벽하게 믿었다면 나머지 행성들도 완벽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다른 행성들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케플러는 고대이래 화성이 지구처럼 불완전한 것들로 구성된 물체라고 이야기한 몇 안되는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태양은 타원 궤도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중심을 조금 비껴나간 초점에 자리한다. 행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행성은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태양에서 가장 먼 곳에 이르렀을 때 궤도 속도가 가장 느려진다. 이러한 운동 때문에 행성이 태양을 행해 떨어지는 중이지만 절대로 태양으로 곤두박질 하지는 않는다.
140쪽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
제1법칙 행성은 타원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그 타원의 촛점에 있다.
제2법칙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동경은 같은 시간 동안에 같은 넓이는 휩쓴다.
제3법칙 행성의 주기(행성이 궤도를 한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를 제곱한 것은 행성과 태양사이의 평균 거리를 세제곱한 것에 비례한다. 즉 멀리 떨어져 있는 행성일수록 더 천천히 움직이되 그 관계가 수학공식 p의 제곱=a제곱을 정확하게 따른다.
p-> 행성의 공전 주기를 1년 단위로 표시
a-> 태양에서 행성까지의 평균거리를 천문단위로 잰값
천문단위->지구와 태양 사이의 평균거리르 1로 지정한 측정 단위 약 1억 4960만km
케플러의 제3법칙을 나타내는 공식은 다른 행성뿐 아니라 소행성과 혜성들의 궤도 운동에 대해서도 모두 성립한다. 켸플러는 행성운동의 근본 원인을 자기력의 작용과 유사한 성격의 것이라고 제안했다. 중력 또는 만유인력의 개념을 예견했던 것이다.
145쪽
물론 자기력은 중력과 다르다. 그러나 케플러의 이 깊은 사유속에는 세상이 근본을 건드리는 숨막힐 정도로 혁신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케플러는 지구에 적용되는 측정 가능한 물리법칛이 천체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146쪽
켸플러는 "천문학은 물리학의 일부다." 라고 단언했다. 케플러가 '소리들의 화음'이라 한 것은 행성마다 그 움직이는 속도에 따라 대응되는 음이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그는 행성들에 당시 유행했던 라틴 음계인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대응시켰다. 행성구들이 이루는 조화속에서 지구의 음정은 파와 미였다.
147쪽
지구는 끊임없이 파와 미를 웅얼거리니 라틴어로 '파민 famin' 즉 굶주림;연상케 한다면서 이 서글픈 단어 하나를 지구를 제대로 묘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기는 하다.
켸플러가 세번째 법칙을 발견한지 8일째 되던 날, 30년 전쟁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프라하에서 일어났다. 전쟁의 격동속에서 케플러는 다시 난민의 신세로 떨어졌다. 구교도와 신교도 양편 모두 성스러운 전쟁이라고 떠들어 댔지만, 실은 영토와 권력에 주렸던 이들이 종교적 광신적 측면을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했을 뿐이다.
148쪽
케플러의 고향, 바일데어슈타트라는 작은 도시에서도 1615년부터 1629년까지 매년 서너명의 여인들이 마녀의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한뒤 처형됐다. 그의 엄마 카타리나 케플러는 심술궃은 노파로 마녀로 물리기도.....
149쪽
튀코 브라헤도 케플러와 마찬가지로 점성술을 적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점성술과 당시 성행하던 점성술 사이에 조심스레 선을 그어 둘을 구분했는데, 후자가 미신을 조장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튀코 브라헤와 달리 케플러는 학교에서 천문학을 강의했고, 자신의 돈을 들여 책을 출판하여 과학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렸으며 공상과학소설까지 썼다.
151쪽
케플러의 책은 그의 어머니가 마녀라는 증거물로 채택되었다.
152쪽
마녀누명을 쓰게된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그의 모친이 주문을 외워 뷔르템베르크 주민들을 크고 작은병에 걸리게 했다는 것이다. 전쟁의 북새통에서 케플러는 재정지원처를 모두 상실했고, 바덴슈타인 대공을 위해 별점을 쳐 주었고, 그가 지배하는 슐레지엔 지방의 한 마을인 사간(sagan)에서 생의 마지막 나날을 보냈다.
스스로 지은 비문 '어제는 하늘을 재더니 오늘 나는 어둠을 재고 있다. 나는 뜻을 하늘로 뻗쳤지만, 육신은 땅에 남는구나'
요하네스 케플러는 미래의 하늘에는 '천상의 바람을 잘 탈 수 있는 돛단배들이 날아다니고, 우주공간은 '우주의 광막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탐험가들로 그득할 것이라고 했다.
153쪽
그가 일생을 바쳐 추구한 목표는 행성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천상 세계의 조화를 밝히는 것이었다. 이 목표는 케플러가 죽고 36년이 지난 후에 아이작 뉴턴의 연구를 통해 결실을 맺는다.
뉴턴은 젊은 시절부터 비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지 않고는 못참아했다. "빛이 물질인가 아니면 현상인가?" " 인력이 어떻게 진공을 가로질러 작용할 수 있는가?" 뉴턴은 삼위일체라는 기독교의 통상적 가르침이 성경의 오독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단정했다.
155쪽
1666년 스물 세살의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 학생이 되었을 때 흑사병이 돌았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외딴 고향 마을 울즈소프로 내려가 1년의 세월을 보내며 미분과 적분을 발명했고, 빛의 기본 성질을 알아냈으며 만유인력 법칙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었다.
157쪽
지구가 사과를 잡아당겨 떨어뜨리는 바로 그 힘이 달이 원궤도를 따라 운동하도록 지구가 달을 잡아당기는 힘이었다.
뉴턴의 중력법칙을 '만유인력의 법칙'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뉴턴의 중력법칙은 우주 어디에서나 성립하는 범우주적 성격의 보편법칙이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은 거리 역제곱의 법칙이다. 인력의 세기는 두 물체간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두 물체 사이의 거리를 2배로 늘리면 둘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세기는 1/4로 약해진다. 10배-> 1/100으로 약해진다.
160쪽
케플러와 뉴턴은 인류역사의 중대한 전환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은 단순한 수학법칙이 자연 전체에 두루 영향을 미치고 지상에서 적용되는 법칙이 천상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며 인간의 사고방식과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 서로 공명함을 밝혔다. 그들은 행성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인간이 코스모스를 대단이 깊은 수준까지 이해할 수 있다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했다. 오늘 날 세계화된 우리의 문명, 우리의 세계관 그리고 현대의 우주 탐험은 그들이 예지에 힘입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