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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48. 스와트 평원으로 간다라 최고의 마애불상 ‘자하나바드’
현장스님이 “지리가 기름지지 않다”고 판단한 이유가 무엇일까. 직접 본 스와트 지방은 대단히 기름진 땅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지리(地利)가 좋지 않다’고 적었던 현장스님도 “포도가 많이 나고 사탕수수는 적게 수확된다. 금과 쇠가 토산품이며 울금향이 자라기에 좋은 토양이다. 나무와 숲이 울창하고 꽃과 과일이 무성하다. 추위와 더위가 적당하고, 비와 바람이 시절에 잘 맞춘다”며 스와트 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 근방에서 본 마니꺌라 스투파, 카이버고개에서 만난 스폴라 스투파, 탁실라에 있는 발라 스투파와 외형은 비슷했다. 싱게르다르 스투파가 보다 호리호리하게 보인다는 점이 달랐다. 탑 부근에 ‘비하라’(僧院) 유적이 있었다. 지금은 밭으로 변한 곳인데, 여기서 토기파편과 기와조각들이 다수 출토된다고 안내인이 말했다. 실제 밭에 들어가 보니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밭둑엔 기와조각들이 쌓여져 있다.
‘원통형 발우’ 엎은 모양의 싱게르다르탑 싱게르다르 스투파를 일견하고 우리들은 스와트 강을 끼고 사이두 사리프 시내 쪽으로 10분 정도 달렸다. 길가 암벽에 새겨진 카르카이 마애불을 보기 위해서였다. 바위 면을 감실처럼 파고 들어가 새긴 마애불인데, 머리는 깨어지고,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상태였다. “오로지 대승불교만 행해진다”(왕오천축국전)는 스와트엔 간다라 등 다른 지역에선 보기 드문 마애불상이 다수 남아있다. 카르카이 마애불도 그 중 하나인데, 길가에 위치한 관계로 얼굴부분이 무참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세레나 호텔에 짐을 풀고 중국 동진의 고승 법현스님(317∼419)의〈불국기〉에 나오는 스와트 부분을 읽었다. “오장국은 바로 북천축(북인도)에 속한다. 여기서는 모두 중천축(중인도)의 언어를 사용한다. 속인들의 의복이나 음식도 또한 중천축국과 같다. 불법(佛法)은 대단히 성하다. 스님들이 거처하는 곳을 승가람이라고 하는데 이 나라에는 약 500여 개의 승가람이 있으며, 모두 소승을 배우고 있다. 만약 객(客)비구가 오면 사흘 동안은 극진히 공양하지만 사흘이 지나면 스스로 안주할 곳을 구하도록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부처님께서 북천축에 오셨을 때 이 나라에 이르러 족적을 남겼다고 한다.” 다음날(지난해 4월30일). 스와트 박물관을 관람하고 ‘붓카라 제1사원지’로 출발했다. 거대한 스투파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작은 스투파들이 주변에 도열한 ‘니모그람 산악사원지’와 모습이 유사했다.〈대당서역기〉에도 붓카라 대탑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몽게리성의 동쪽으로 4∼5리 가다보면 스투파가 있는데 상서로운 징조가 매우 많이 일어나고 있다. 옛날 부처님께서 인욕보살이셨을 때 이곳에서 갈리왕 - 당나라 말로는 투쟁(鬪諍)이라고 하며 구역에서는 가리(哥利)라고 하는데 잘못된 것이다. - 을 위하여 자신의 신체를 잘랐던 곳이다.”
상서로운 징조가 많이 나타났다는 점 뿐 아니라 붓카라 대탑은 미술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동국대 문명대 교수에 의하면 간다라 불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3중으로 청석을 쌓고 그 안을 자갈돌로 채운 것, 심주(心柱)는 둥글게 자갈돌을 쌓고 중심에 청석 함으로 사리함을 만든 것, 기단 외벽을 벽돌로 마감한 후 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린 것, 사방에 사방불과 16방에 부조상을 안치하고 외벽을 따라 그리스식 원형 석주를 세우는 등 그리스풍이 짙게 남아있다는 점 등에서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붓카라 제1사원지를 참배한 다음 붓카라 제2사원지, 붓카라 제3사원지 등도 둘러보았다. 붓카라 제3사원지는 산허리를 잘라내고, 조성한 사원지인데, 방형의 굴실(窟室)에 스투파들이 안치돼 있었다. 인도 석굴사원의 차이탸처럼 스투파가 중앙에 자리 잡고, 주변을 돌아가면 예배할 수 있는 구조였다. 붓카라 제2사원지는 제1사원지와 대동소이했다. 중앙에 거대한 스투파가 있고, 주변에 작은 스투파들이 배열된 그런 구조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변했다. 불교는 그나마 유적 속에만 남아있고, 밥 먹고 똥 누는 사람들 사이에선 사라진지 오래다. 무엇 때문에 불교가 쇠퇴하게 됐을까. 자하나바드 마애불 밑에 앉아 스와트평원을 바라보며, 항상 들고 다닌 화두를 꺼내들고 참구(參究)했다. 의단(疑團, 의심덩어리)은 독로(獨露, 스스로 드러남)한다고 했는데, 결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쓸쓸한 마음만 안고, 마애불에 인사한 뒤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파키스탄 = 조병활 기자. 사진 김형주 기자 [출처 : 불교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