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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신의 장엄함으로 가득 차 있다 |
God's Grandeur
Gerard Manley Hopkins
The world is charged with the grandeur of God.
And for all this, nature is never spent; |
신의 장엄함
저라르드 맨리 홉킨즈
세계는 신의 장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자연은 결코 소진되지 않는다. |
(출처) <Poems of Gerard Manley Hopkins> (2007)
이 시를 지은 홉킨즈(1844-1889)는 성직자이다. 그는 영국 에섹스(Essex) 출신으로, 옥스퍼드(Oxford) 대학에서 고전을 공부하였다. 20세에 존 헨리 뉴먼(John Henry Newman)의 글을 읽고 로만 카톨릭에 들어가게 되며 곧 이어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1867년 예수회(Jesuit)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그때까지 쓴 모든 시를 태워 버리고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기로 맹세하였지만 1875년에 템즈(Thames) 강에서 독일 선박 도이칠란트(Deutschland)호가 침몰한 사건을 계기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침몰한 그 배에는 5명의 수녀가 타고 있었다고 한다. 33세가 되던 1877년에 그는 신부가 되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설교와 교육을 하다가 1884년에는 더블린의 로열(Royal) 유니버시티에서 고전 교수가 되었다. 그의 시는 생전에 한 편도 발표되지 않았고 사후인 1918년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발표되자마자 그의 시는 독특한 리듬과 다양한 언어적 실험 등으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에 살았지만 그의 시적 기교와 실험 정신으로 인하여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20세기 시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시는 신과 자연에 대한 찬사와 함께 인간의 무모한 개발과 환경파괴를 꾸짖고 있다. 시인은 천지창조의 극적인 순간을 화염이 타오르고 기름이 소용돌이치는 광경으로 묘사하는데, 이것은 천체과학에서 별이 탄생하는 모습과 거의 흡사하다. 성서에서도 태초의 상태를 혼돈(Chaos)으로 묘사하고 있으니, 시인의 혜안(慧眼)이 놀랍기만 하다.
그런데 그 원초의 자연은 인류 출현 이후에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여러 피조물 중 유일하게 인간이 지구를 더럽혀 왔는데, 그 인간의 행태(行態)를 시인은 생업과 노역의 더러운 손발로 표현하고 있다. 시인의 눈에 자연의 영혼들은 순수한 향기를 내뱉으나, 몹쓸 인간들은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인류의 족속들은 신발을 신고 다니며 대지(大地)의 표면을 짓밟는다. 자연의 만물들, 그리고 시인에게 신발로 대표되는 과학문명의 이기(利器)들은 위협적이고 반(反)환경적이다.
하지만 시인은 세상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유기체의 거대한 생명공간인 지구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며,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자연만물 또한 그 영속성을 유지할 것이다. 그 시각의 원천에는 창조주의 항구적 사랑과 섭리를 믿는 카톨릭 신앙인의 소망과 의지가 스며 있다. 그것을 시인은 성령의 따뜻한 가슴과 빛나는 날개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의 여러 해악(害惡)과 탐욕에도 불구하고, 창조주가 스스로 자신의 걸작품들을 망가뜨리려 하지 않는 한 우리의 보금자리인 지구는 영원히 그 생명의 공동체를 떠 안고 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알렉스 그레이(Alex Grey)작, <Gaia>
오늘날 가장 각광받고 있는 생태 이론 중에 가이아 이론(Gaia Theory)이 있는데, 이 이론은 1978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Ephraim Lovelock)이 발표한 것으로,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저서에서 밝힌 이론이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지구를 뜻한다. 그가 쓴 책은 1990년대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는데, 그의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하나의 유기체이며 통합된 생명체인데, 인간이라는 몹쓸 행동을 일삼는 존재로 인해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대형 자연재해가 비롯된다는 것으로, 이를 '가이아의 복수'라고 한다는 것이다.
근래에 상영되었던 영화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s>에서는 나무 정령(精靈) '엔트(Ent)족'이 등장한다.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이들은 수천 수만 년을 살면서 숲과 자연을 보호하는 종족이었는데, 항상 평화와 조화를 존중하며 동료들과 묵언(默言)의 교류를 나누고 살았다. 그런데 모르도르(Mordor)의 샤우론(Shauron) 군대들이 전투를 위해 수많은 나무를 도끼로 찍어내자 마침내 분노하여 샤우론의 본거지를 공격하여 그들을 몰살시키고 만다. 이 신화 이야기는 여러모로 가이아 이론의 구성과 닮아 있다.
지금 지구촌에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가이아의 평형질서가 왜곡되고 망가져 온갖 자연재해와 이상기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구온난화는 인간들이 화석연료를 과도하게 사용해 일어난 현상으로, 화석연료의 연소로 인해 생긴 온실가스가 지구를 뒤덮어 남극의 빙하를 녹게 하고 태평양의 작은 섬들을 침수시킨다. 세계 정상들이 기후회담을 수 차례 벌이고 있지만 강대국과 개발도상국 끼리의 의견다툼으로 인해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연의 준엄한 심판이 머지 않아 세계를 강타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긍정적 입장의 과학자들은 오늘날의 현상을 절망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지구의 평형체계가 작동하는 한 적어도 인류를 멸망시킬 만한 극단적인 재해는 없을 것이며, 45억 년 동안 지금껏 그래왔듯 이번에도 지구는 그 엄청난 잠재력과 포용력으로 환경을 예전 그대로 돌려놓는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지구가 천천한 발걸음으로 그 일을 수행해 갈 때, 우리 인간들 역시 단합하여 이 인간의 보금자리, 지구를 돌보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종교인들은 환경문제, 생명문제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가끔씩 머리에 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선다. 종교인이 어찌 정치판에 뛰어드느냐 하겠지만, 원래 정치는 모든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벼리이기 때문에 아무도 정치의 결정과 선택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느 사회참여 세력과 달리 종교인들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그 사안의 정당성과 윤리성을 깊이 고찰한다. 그리고 인간의 반성과 속죄를 촉구하며 절대자에게 기구하며 초월적인 배려와 은총이 인간세계와 지구를 살릴 것임을 믿는다.
지구를 살리는 길의 첫 번째 일은 이와 같이 자연의 존엄과 가치를 마음 속에 새기는 것이다. 자연의 숭고한 질서를 깨닫지 않을 때 인간은 그 교만과 방종으로 자연을 망치기 마련이다. 도회지에 살면서 심성이 박약해지고 영혼이 메말라진 인간은 자연에 대해 모질고 악한 행동을 일삼을 수 있다. 항상 너그럽고 온유한 자세로 삶을 영위해야 숲과 산, 강과 바다가 온전히 아름답고 귀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시에서 말했듯이 세계는 신의 장엄함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느끼는 자만이 이 빛나고 귀한 별, 지구에 살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110219 세계는 신의 장엄함으로 가득차 있다.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