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시) - 교정본
- 김현태(형국)
동구밖 당산 낭구에
새끼줄 꼬아 금줄 둘러쳐
도야지 입에다 돈 물리고
신령님에게 정성 올려
손바닥 싹싹 비비는디
당산제 지낼 적에는
내 소원만 비는 게 아니고
동네 사람 싹 다 잘 되게
해 달라 빌어 분당께
해질녘 온 동네 기뚝에
시커만 냉갈 꾸역꾸역 나와
여그에 공장 하나 없는디
방 따스라 물만 부서 놓고
헛불 땐께 그런당께
동치미 맹글어 묵고
깍두기 담가 묵음시로
무 채지 넣은 희컨 쌀밥에
참기름 부어 비벼 묵으믄
그 어디에도 이런 맛 없당께
짐장헐 때 큼직큼직 허게
무시 넣어뒀다가 젖가락으로
쿡 찔러 보리밥 밥 한 그릇
뚝딱 묵어 치워 분당께
이라고 나 혼자 고생하믄
여러 입 즐겁고 재밋어 항께
고된 것도 잊어 불고 일하다 보믄
온몸이 쑤셔 밤잠 설치고
뒹굴어도 참을만 허제
우리 아그들은 즈그 어매
짐치만 묵제 딴 짐치는 안 묵어
그런 새끼들 생각하믄 재미진께
힘들어도 힘든지 모름시로
궂은일 마다않고 한당께
시방은 일도 아니랑께
예전에 배추 간 허는 것도
머리 위에 이고 또랑에 나가
살얼음 깨 감서 깨깟이 씻어
엉댕만 한 부삭에 앙거
김장을 했었당께
맨지근하게 물 디어다
지 어매 손 녹여 줄라고
대아에 담어 온 딸내미 보믄
그라고 이뻐 죽것드랑께
그럴 쩍 생각하믄 지금도
베갯잇 눈물 적신당께
비싼 고춧가루 많이 넣고
너무 삘게도 안 되닌께
잎잎에 꼼꼼허게 볼라 감서
비벼야 쓰는디 대충 해불먼
희커니 보기도 안 좋고
맛탱이 하나도 없당께
오메 그놈 오지게 묵구만
김장김치에 삶은 도야지 고기
한 점 올리고 얼큰한 홍어 올려
묵으먼 혓바닥이 넘어가도
모를 일 아니것능가
와따 가지 가지 허네
맵디매운 맨 김치만 묵으믄
속도 아픔시로 쓰릴 것인께
밥하고 같이 싸 먹으란디도
지랄허고 자빠졌네
인자 니 어매도 다 늙어
허리 다리 온몸뚱이 아프고
사방 디가 쑤시고 애려온께
내년부터 김장 못하것다
이리 살다 봉께 니 어매도
얼굴에 주름살 짜글짜글 허고
머리도 시글시글 되어 부럿당께
소싯쩍 이쁘단 소리 들었는디
인자 소양 없는 일 아니것능가
가는 세월 잡을 수도 없고
기가 턱 허니 맥혀 분당께.
카페 게시글
형국 김현태
[향수](시)
뻥새뻥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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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28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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