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원갑자
1999년 1월 1일 금융을 살리기 위해
대한민국, 하나은행, 보람은행 합병. 유러화 통일
60년전 제2차 세계대전이 결국 발발하였다. 그러나 1939년 전쟁이 터질 당시만 해도 대다수의 유럽인들은 이 전쟁이 세계대전이 될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적당히 싸우다 멈출 거라고 생각
제2차 세계 대전: 겨울전쟁 발발.
1938년 12월 무렵김백일, 강재호, 신현준, 송석하, 마동악과 간도특설대 창설요원으로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독립군을 괴롭혔다.
1939년 7월 1일 간도특설부대는 천보산 광산이 항일연군의 습격을 받았다는 급보를 받고, 도문 일본군 수비대와 협동 작전을 하여 천보산을 토벌했다
12월 - 이관술, 김삼룡 등이 경성 콤그룹을 결성하고 박헌영 가담
50년전 기축년 유럽에서도 철의 장막이 형성되면서 서구권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감이 크게 강화되었다. 지금까지 가시화되던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것이다.
한국에서는 6월 백범 김구가 장교 안두희가 발사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던 해였으며 주한미군이 일부 병력을 남기고 남한에서 철수하였던 해이기도 하다.
미국전략가 에치슨에 의한 롤백전략.
중국대륙이 국민당이 대만으로 패퇴하면서 공산당이 최종승리한다.
에치슨은1945년 국무 차관을 거치면서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의 중요한 외교를 수행. 1949년, 국무 장관이 되어 대소 강경 정책을 취함. 1949년 3월 24일, 대한민국의 조병옥 특사를 만남.
1949년 8월 소련핵실험
40년전 1959년 해외유학시작
반공청년단 결성.총재 이승만
제일교포 북송반대 시위
최초 충주비료공장 가동.1/4해소
4월 쌀.돼지 대미수출.원양어업단개시
티베트 독립운동개시.
대정부 비판으로 경향신문 폐간.
차량증가로 6월1일 운전수의날
인천항 원자로 도입.20년뒤 고리발전
8월 21일 - 하와이, 미국의 50번째주로 편입.
9월 12일 - 소련이 우주탐사선 루나 2호를 발사하다. 루나 2호는 달에 도달한 첫 번째 우주선이 된다.
9월 15일 -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국 방문.
폭우끝에 한강홍수
9월 15일 - 태풍 사라 발생. 18일까지 지속.
국산 라디오 출시. 처음으로 동전출시
10월 4일 - 소비에트 연방이 우주선 루나 3호를 발사하다. 루나 3호는 처음으로 달의 뒷면을 촬영하는 데 성공한다.
30년전 기유년1969년
4월 28일 - 드 골이 프랑스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다.
7월 20일 -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여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이 달 표면을 걸은 최초의 인간이 되다.
9월 7일 - 브라질, 정식 국호를 브라질에서 브라질연방공화국으로 개칭.
9월 12일 - 베트남 전쟁: 미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명령으로 북베트남 폭격 재개.
4월 7일 - 인터넷의 상징적인 생일: RFC 1 발표
.6월 10일 - 경부선 동대구역 부산역 동시역사 준공 영업개시.
8월 8일 - MBC TV 개국.
1639년 도쿠가와 막부의 쇄국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3월 13일 - 하버드 대학교의 이름이 성직자 존 하버드의 이름을 따 붙여지다.
60년전 네덜란드의 북부 7주가 위트레흐트 동맹을 맺었다.
악바르 대제가 지즈야를 폐지하였다
- 모문룡 : 명나라 말기의 무장 출생.
50년전
1589년 기축옥사,선조 선비 1000명을 모함죽이다
앙리 4세는 발루아 왕조의 마지막 왕 앙리 3세가 1589년에 사망하자 루이 9세의 후손인 부르봉 가문의 적장자로서 프랑스 왕위에 올랐다.
30년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갈릴레이가 최초로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였다
케플러 태양에 접근할 때 더 빨라지고 멀리 있을 때에는 느려진다는 케플러의 제2 법칙(면적속도 일정의 법칙)을 발견했다
20년전 사르후 결전 - 누르하치의 후금군이 명나라의 대군을 궤멸시킨다. 강홍립의 조선군은 후금에 투항한다.
효종탄생
10년전 뉴 잉글랜드에 매사추세츠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30년후 - 에트나 화산이 폭발하여 근처 도시 시민 2만명이 사망하였다.
벵골 지방에서 기근이 발생하여 300만명이 사망하였다.
40년후 영국에서 인신보호법을 공포하였다.
무굴제국 제 6대 황제 아우랑제브가 지즈야를 부활시켰다.
50년후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가 영국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 유럽에서 9년 전쟁이 발발하였다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대거 실각하였다.
영국이 권리장전을 발표하였다.
청나라와 러시아 제국 사이에 네르친스크 조약이 체결되었다
60년후 1월 26일 - 워싱턴주 태평양 연안의 캐스케디아 섭입대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1279년 3월 19일 - 애산 전투에서 원나라가 송나라를 이겨, 송나라 멸망. 원,명대의 문화가 시작,
60년전 다미에타가 5차십자군에게 함락당했다.
강동성 전투에서 고려, 몽골, 동진의 연합군이 거란족을 항복시켰다. (대요수국의 멸망)
몽골 제국의 호라즘 왕조 침공이 시작되었다.
50년전1229년 오고타이, 몽골 제국의 2대 대칸으로 선출
30년전 루이 9세의 7차 십자군이 이집트의 다미에타에 입성하였다.
- 알렉산더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오굴 카이미쉬 섭정 원년
20년전 1259년 무신정권을 끝낸 고려와 몽고간 전쟁이 화의로 끝난다.
10년전 마린 왕조의 군대가 마라케시를 함락하고 이드리스 2세를 처형하여 무와히드 왕조가 멸망하였다.
고려에 전민변정도감이 설치되었다
20년후
30년후 아비뇽 유수 : 교황권의 추락과 중세의 쇠퇴
40년후 스웨덴이 마그누스 에릭손을 왕으로 모시며 양국간의 동군연합이 이루어졌다. 그의 모친 잉게보르그가 양국의 섭정이 되었다
50년후 스웨덴이 마그누스 에릭손을 왕으로 모시며 양국간의 동군연합이 이루어졌다. 그의 모친 잉게보르그가 양국의 섭정이 되었다
60년후 라우펜 전투에서 베른 칸톤으로 쳐들어온 합스부르크 가문 (오스트리아) 군대, 부르고뉴 공국, 프라이부르크 군대를 스위스 연맹군이 격파하였다
모스크바의 크렘린이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중세 유럽 도시로는 최초로 피렌체의 모든 도로가 포장되었다
충숙왕이 죽고 충혜왕즉위
919년 고려가 도읍을 송악으로 옮김
만월대 창건
60년전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오르도뇨 1세가 피레네 산맥 중서부에서 무사 이븐 무사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를 무찔렀다. (알벨다 전투)
선종이 죽고 당의종이 당나라 17대 황제가 되었다.
제일 유능한 4남인 기왕(夔王) 이자(李滋)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가 황태자 책봉을 못하게 된다.[결국 단약 중독으로 선종이 사망하자, 선종은 당연히도 이자가 대통을 잇는다고 선언했고, 환관들도 대부분 동의하였지만, 좌군중의 왕종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이자와, 왕귀장, 마공유, 왕거방 등을 모조리 죽이고 이최를 옹립해버린다.....
이렇게 붉은 태양은 서서히 내려앉았고, 당나라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걸었다.
50년전로타르 2세 : 로타링기아의 국왕사망.궁예탄생
40년전 루이 2세 : 서 프랑크 왕국의 왕
사망하고 3세즉위하나 두임금재위 5년.
- 류리크 : 러시아 최초의 군주사망
30년전 도널드 2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
사벌주(지금의 상주시)에서 정부의 과도한 세금 독촉으로 농민들의 불만이 폭발하여 일어난 반란인 원종과 애노의 난이 발발하였다.
야소바르만 1세가 크메르 제국의 왕이 되었다
20년전 - 대 에드워드가 웨식스의 왕이 되었다
알프레드 대왕 : 웨식스의 왕사망
- 아르눌프 폰 케른텐 :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동 프랑크 왕국의 왕사망
10년전
10년후 갈리시아 왕국, 레온 왕국에 합병되며 그의 속국이던 포르투, 코임브라 영토도 딸려옴. 레온 - 갈리시아 왕국 해체 4년만에 레온 왕국이 레콘키스타 세력 통일 (나바라, 바르셀로나 제외)
20년후 응오꾸옌이 왕위에 오르면서 최초의 베트남 왕조인 응오 왕조가 성립되었다
독일왕 오토 1세가 자신의 지배 체제에 들고일어난 반란군들을 진압하였다.
- 에드먼드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
30년후 정종 : 고려 제 3대 국왕사망.
광종이 즉위하여 공신제거의 기치세움
- 요제이 천황 : 일본 제 57대 천황 사망
40년후 광종 과거제 시행2년차
에드거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되었다.로마노스1세 동로마 제국의 황제. 제국의 해군 사령관이었다가 919년 3월 콘스탄티노플로 진군해 제국의 실권자로 부상하고 4월에 딸 헬레네를 콘스탄티노스 7세와 결혼시켜 바실레오파토르가 되었다. 그해 12월에 다시 부황제로 승격했고 정적들을 제거한 뒤 920년 공동 황제로 등극했다.
50년후 니키포로스, 크레타 탈환의 영웅과 외교적 실책으로 무능했던 이중적인 면의 황제 사망.
목종죽고 요성종즉위
6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 레온 왕국 침공하여 수도 레온 포위
559년 6가야 중의 하나인 아라가야 신라에 항복,
대가야가 겨우 명맥유지.
고구려 평원왕 즉위
돌궐이 제국의 모습을 갖춘 559년을 터키의 건국 역사로 가르친다.
24년후 돌궐분리
60년전 선무제가 북위 8대 황제가 되었다
아버지를 이어 재위 기간동안 한화정책을 이어갔으며 남으로 양을 공략하고 북으로는 유연을 괴롭혔다
60년후 자칭 허나라황제 우문화급의 군사는 두건덕에게 격파되어 우문화급은 붙잡혔다가 양국에서 아들 우문승기, 우문승지와 함께 참수되었으며, 두건덕은 우문화급의 목을 돌궐의 계민가한에게 시집 가 있던 양제의 동생이자 수문제의 딸인 의성공주에게 보냈다.
199년 금관 가야 2대 거등왕즉위. 비는 천부경(泉部卿) 신보(申輔)의 딸 모정(慕貞)이며 태자 마품왕(麻品)을 낳았다고 한다.
가야(伽倻 )1대왕 수로왕(首露王)사망
후한의 군벌 원술 사망, 조조의 시대열림
60년전 말갈이 신라를 공격하였다.
산탄젤로 성이 완공되었다
50년전 .
40년전 전한 양기사망
30년전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의 변경을 공격하였다.
당고의 옥 : 후한에서 환관들이 자신들을 비판하는 관료 100여 명을 죽이고 600여명을 금고 등의 처벌로 다스렸다.
루키우스 베루스 사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의 단독 황제가 되었다.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공격하였다.
20년전 사마의탄생. 신대왕죽고 고국천왕이 고구려 9대 국왕이 되었다
20년후 거등왕이 가락국 제2대 국왕이 되었다.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였다.
원소가 공손찬을 상대로 승리하고 역경루를 함락시켰다. 원소에게 패한 공손찬은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함께 자살하였다.
유비가 서주 자사 차주를 죽이고 하비성을 점령하였다. 이후 관우로 하여금 하비태수의 일을 대행하게 했다.
30년후 유비가 형주 남부에 위치한 영릉, 계양, 무릉, 장사를 점령하였다.
주유, 유비의 연합군이 남군을 지키던 조인군과 1년간 대치한 결과 조인이 남군을 버리고 달아나면서 주유가 남군을 점령하게 되었다
40년후 한중 공방전에서 유비군이 조조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한중을 차지하였다. 여세를 몰아 유비는 한중왕을 자칭하였다.
한중왕 유비의 명령에 따라 관우가 조조의 영토인 번성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유비군과 동맹 관계였던 손권의 군대가 관우를 배신하였고, 조조의 휘하 장수였던 서황과 조인의 협공으로 관우는 맥성으로 퇴각하였다. 이후 관우는 맥성에서 손권군을 상대로 응전하다가 붙잡혀 아들 관평과 함께 처형당하였다
이듬해 조조도 죽고 한나라도 멸망
50년후 손권이 스스로를 오나라의 황제로 칭하고 건업에 도읍을 정하였다.
말갈인들이 백제의 우곡 지역에 침입하여 사람과 재물을 약탈하였고, 이에 백제 구수왕이 300명의 군대를 보내었으나 패하였다.
촉나라의 제갈량이 위나라에 대한 3차 북벌을 전개하였다
60년후 갈리아에서 포스투무스가 로마 제국을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다.
밀라노에서 갈리에누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게르만족 침략군을 격퇴하였다
bc162년 드미트리우스 1세, 셀레우코스 제국의 10대 왕으로 즉위.
60년전 진 초나라정벌
50년전 분서갱유 : 진시황이 승상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 의학, 점술, 농업 이외의 모든 서적을 불태우게 하였다. 또한 협서율과 같은 법령을 발표하여 민간에서 서적을 소장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40년전 로마 장군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가 카르타고를 기습공격하여 성공적으로 카르타고군을 격퇴하였다. 그리고 카르타고군 뿐만 아니라 카르타고의 동맹인 누미디아인들 또한 쓸어버리고 로마군을 대평원에 집결시켜 카르타고인들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진평의 이간 계략에 걸려든 항우는 범증을 내치지는 않았으되 그를 믿지않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며,분을 참지 못한 범증은 항우의 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안 그래도 노년의 나이로 홧병에 등창까지 도져 사망한다.
한신은 연나라정벌
30년전 위만의 귀화.
20년전
10년전
10년후 그리스의 고대 도시 시키온의 상당 부분이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20년후 주발(周勃)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더 공이 큰지 아들이 더 공이 큰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미묘. 한문제 때 흉노의 공격을 막고 총애를 받아 한경제 시절에도 오초칠국의 난을 제압하는 등 공을 세웠던 주아부 : 전한의 무장사망
30년후 로마 장군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누만티아를 함락시켰다.
페르가몬 왕국의 마지막 왕 아탈로스 3세의 유언에 의해서 왕국이 로마에 귀속되었다. 이는 로마가 소아시아에 확보한 첫 영역이다
40년후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로마의 호민관에 선출되었다
50년후 기원전 113년 전한의 황제 무제가 수형도위(水衡都尉)라는 관서를 설치해 각 군국에서 화폐를 주조, 유통하는 것을 금지하고 중앙정부가 독점적으로 화폐를 주조하도록 했다.
킴브리, 테우토네스, 암브로네스 등 유틀란트 반도에 살던 게르만족이 대규모 이주를 시작하여 갈리아, 이베리아를
bc522년 중국 춘추 시대(春秋時代) 정국(鄭國)의 재상 자산 사망
페르시아 제국 황제 캄비세스 2세사망다리우스 대제는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의 세 번째 샤한샤로 즉위
199년 원술, 북행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다!
원술이 북으로 가기 위해 서주 인근을 지나고 있을 때 유비군이 공격대오를 갖추고 가까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원술의 장수 기령이 선봉대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장비가 병아리를 본 솔개처럼 기령을 취하려고 내달렸다. 장비와 기령이 엉클어져 싸운 지 10합 만에 장비의 벽력 같은 고함소리가 들리더니 기령은 피투성이가 되어 말에서 떨어져 나뒹굴었다. 이것을 본 기령의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좀다른 하원갑자(거점 확보가 많음)
1819년
싱가포르에 무역 거점을 세우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함.
2월 22일 - 에스파냐, 미국에 플로리다를 할양.
8월 16일 - 영국, 런던의 피털루 광장에서 피털루 광장 학살 사건발생
9월 20일 - 오스트리아 제국의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칼스바트 결의 발표.
12월 14일 - 앨라배마 주가 22번째 미국의 주가 됨.1819년 경제 공황 - 미국에서 첫 번째 경제 공황
110년후 경제공황
60년전 7년 전쟁: 영불 양국이 캐나다 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아브라함 평원 전투를 벌였고, 영국이 승리하여 퀘벡이 함락된다.
덴마크 령 인도 식민지가 영국에게 매각되었다
대영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50년전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에 대한 특허를 획득하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다.
- 미국의 개척자 대니얼 분이 켄터키를 답사하였다.
- 프랑스 왕국이 코르시카를 점령하다
제임스 쿡이 뉴질랜드에 상륙하였다.
7년 전쟁의 후폭풍으로 프랑스가 인도에서 완전히 철수하였고, 동인도 회사가 파산하였다.
벵갈에서 대가뭄이 들어 1770년의 대기근으로 이어진다.
40년전 제임스 쿡 선장이 샌드위치 제도에서 원주민에게 살해당함.
- 바이에른 왕위 계승 전쟁: 프랑스와 러시아의 중재로, 바이에른 왕국 / 오스트리아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 사이의 강화조약이 체결되다.
미국 독립 전쟁: 전해 프랑스에 이어 스페인이 영국을 상대로 선전포고하다.
이듬해 총검으로 무장한 독립군은 요크타운에서 영국에게 결정적 승리함.
유럽의 서자출신,중간층출신이 자립함으로서 백인들은 전체적으로 부유해졌다.
30년전 미국 초대 대통령으로 조지 워싱턴이 취임한다.
: 프랑스 재정난등의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175년만에 삼부회가 소집된다.프랑스대혁명으로 이어짐
20년전 뉴욕 주에서 노예제를 폐지하기로 결정.
- 러시아 제국이 알래스카를 러시아령 아메리카 식민지로 선언, 러시아-아메리카 회사에 경영 위임.
- 이집트 원정 도중 프랑스군이 로제타 석을 발견.
10년전
10년후 미국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 취임하다.민주당 최초의 대통령으로 출신으로나 걸어간 행보나 미국사에서 꽤 특이하고, 또 큰 영향을 끼친 대통령이다.
- 그리스 독립전쟁: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에게 자치권을 부여하다
20년후 런던 조약을 통하여 벨기에의 독립과 중립이 유럽 강대국에게 보장받다.
- 임칙서가 영국 상인이 밀반입한 아편을 전량 폐기처분하다. 이는 아편전쟁의 도화선이 된다.
- 아미스타드 호 사건: 흑인 노예들이 선상반란을 일으켜서 아미스타드 호를 장악하다.
- 오스만 제국이 개혁정책의 일환으로 탄지마트를 선포하다. (귈하네 칙령)
30년후 곡물법이 최종적으로 완전히 폐지되다.
- 1848년 혁명으로 독일에서 수립된 프랑크푸르트 의회가 프로이센 왕국의 군주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독일의 황제로 추대하다.
- 미네소타가 미국에 가입
40년후 수에즈 운하가 착공되다.
- 제2차 이탈리아 독립 전쟁 발발.
나폴레옹 3세의 지원을 받은 사르데냐 왕국이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물리치고, 이탈리아 내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향력을 일소시키다
60년후 조슈, 사쓰마 지역의 다이묘들이 주도하여 다이묘들이 자신의 영지를 덴노에게 반납하는 판적봉환이 이루어지다. 비로소 일본 제국에서 봉건 정치 체제가 폐지되고 근대적 중앙집권체제가 도입되다
수에즈운하 개통
조선은 기근으로 연해주 4천명 이민.
60년후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이의 동맹 체결. 1882년 이탈리아 왕국이 여기에 가담하면서 삼국동맹으로 발전하게 된다.
10월 22일 - 토마스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
류큐 왕국이 일본 제국에게 합병
김창숙. 한용운. 안중근 탄생
1459년 9월 23일: 영국 장미전쟁 - 리처드 네빌이 지도한 요크 군이 스탭포드셔의 블로어 히스의 전투에서 랭커스터 부대를 격파하다.《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의 합본격인 《월인석보》가 완성되었다.
60년전 - 정종이 조선의 수도를 개성으로 천도하였다.
- 건문제가 즉위한 그해 연왕 주체가 반란을 일으켜, 정난의 변이 일어났다.
50년전 공의회에서 알렉산데르 4세가 단일 교황으로 선출되나 기존 교황들이 퇴위를 거부하여 세 교황의 시대가 열린다.
- 아라곤 왕국의 마르틴 1세가 시칠리아의 왕 마르티노 2세로 즉위하며 한세기 만에 두 왕국이 합침
40년전 조선의 대마도 원정군, 거제도로 철수- 후스 전쟁 발발.세종즉위
30년전 - 잔 다르크가 오를레앙을 포위하던 잉글랜드군을 물리쳤다.
류큐 왕국이 건국되었다.
농사직설간행
정사 박서생의 사절단이 일본 교토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다.
10년후 예종 즉위한해 마지막날 사망.성종대기
20년후 동로마 제국의 후계 국가들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에페이로스 전제군주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였다
느무르 공작 줄리아노 데 메디치 : 로렌초 데 메디치의 아들탄생
- 후아나 : 카스티야 연합 왕국과 아라곤 연합왕국의 여왕 탄생
후안2세사망
30년후
40년후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아메리카 항해가 시작되었다
50년후 헨리 8세가 영국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포르투갈 함대가 믈라카에 도달하였다
60년후 페르디난드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위해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출항하였다.
- 에르난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의 수도인 테노치티틀란에 진격하였다
-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1099년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점령
하인리히 5세 독일의 왕으로 등극
60년전 독일왕 하인리히 3세가 이탈리아와 부르군디의 왕이 되었다.
보헤미아 왕국의 브레티슬라브 1세가 폴란드를 공격하여 슐레지엔을 점령하고 그니에즈노에 있던 성 보이테흐의 유골을 프라하로 옮겼다
50년전 비잔틴 제국과 셀주크 제국이 휴전에 합의하였다.
파티마 왕조가 힐랄 부족을 마그레브로 파견, 이집트에 대한 종주권을 저버린 지리 왕조를 응징케 하였다
40년전 로베르 기스카르와 교황 니콜라오 2세간의 멜피 조약이 맺어져, 노르만의 남부 이탈리아 정복이 인정되고 시칠리아의 정복을 권장되었다.
- 이사키오스 1세가 퇴위. - 콘스탄티누스 10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30년전 송 신종이 왕안석을 부재상으로 임명하였다.
송나라에서 개혁 추진 기구인 제치삼사조례사가 설치되고 균수법, 청묘법, 농전수리법이 실시되었다.
셀주크 제국이 이코니움을 점령하는 데 실패하였다. 시리아의 비잔틴 군이 반격하였다.
세비야 토후국이 안달루시아 일대를 통일하였다.
무라비트 왕조가 마그라와 세력을 멸망시키고 모로코를 통일하였다.
정복왕 윌리엄이 반란을 일으킨 노섬브리아의 앵글로색슨 귀족들에 대한 보복으로 요크부터 더럼까지의 도시/농작물/가축에 대한 초토화 작전을 감행, 10만여명이 살해되거나 아사하였다. (북부의 약탈)
일본 고산조 덴노가 장원정리령을 내렸다.
20년전 폴란드 왕국의 볼레스와프 2세가 크라코프의 주교를 죽인 후 동생 블라디스와프 1세에게 양위한 후 헝가리로 피신하였다.
할스텐이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10년전
10년후 십자군이 트리폴리를 함락하여 트리폴리 백국이 성립되었다.
- 볼레스와프 3세가 이끄는 폴란드 왕국군이 포메라니아군을 상대로 승리하고 포메라니아 지역을 점령하였다.
고려가 여진족에게 동북 9성을 반환하였다
20년후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2세의 십자군 부대가 안티오크로 쳐들어온 알레포의 일가지 부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 노르망디의 베르뮬레 전투에서 헨리 1세의 잉글랜드군이 루이 6세의 프랑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잉글랜드에서 큰 지진이 일어났다.
30년후 안티오크의 게오르그가 60척의 함대를 이끌고 시칠리아의 노르만 군주 로제르 2세의 계승에 반대하는 아풀리아의 바리를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내었다.
금릉 함락 이후 북송의 신하 장방창이 금나라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어 괴뢰 국가인 초나라가 세워졌으나 그가 곧 남송으로 도망쳐 폐지되었다. 여담으로 그는 강제로나마 칭제한 죄로 처형되었다..
일본에서 도바 상황의 인세이가 시작되었다
40년후 인노첸시오 2세가 미그나노 조약으로 루지에로 2세의 시칠리아 왕위를 인정하였다. 한편, 오우리케 전투에서 포르투갈 군대가 무라비트 왕조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무크타피가 네스토리우스 파 기독교에 대한 보호를 보장해 주었다.
아폰수 1세가 즉위하며 포르투갈 왕국이 건국되었다
50년후 2차십자군 이나브 전투 : 시리아에서 누르 앗 딘 휘하의 장기 왕조군이 안티오키아의 레몽 휘하의 십자군과 그들과 동맹을 맺은 아사신의 알리 이븐 와파의 군대를 격파하고 레몽과 알리를 전사시켰다.
요 해릉왕 쿠데타
60년후 무와히드 왕조가 시칠리아 왕국의 노르만 군대를 격파하고 튀니스를 탈환하였다.
헤이지의 난 : 일본의 부시 가문인 타이라 가문과 겐지 가문 간의 전쟁에서 타이라노 기요모리가 승리하고 미나모토 요시토모를 처형한 후 실권을 장악하였다
739년 정월에 이찬 의충(義忠)이 죽자 이찬 신충(信忠)으로 중시를 삼았다. 2월에 동모제(同母弟) 헌영(後 경덕왕)을 파진찬으로 삼고, 3월엔 김순원의 딸 혜명을 왕비로 들였다. 5월에 헌영을 태자로 삼았다.
60년전 679년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인 무아위야 1세가 비잔티움 제국에 항복하고 매년 3천 파운드에 달하는 금과 여러마리의 말, 여러명의 노예를 비잔티움 제국에 공물로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하는 평화 조약을 조인하였다
50년전 프리시아의 왕 라드보드의 프리시아군이 프랑크 왕국군에게 패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지방이 다시 프랑스의 땅이 되었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불가르족을 격퇴하고 테살로니카를 되찾았다.
측천무후가 측천문자를 창제, 반포하였다
40년전 가르친링 : 토번의 장수사망
30년전
20년전 무왕(발해)이 발해의 2대 국왕이 되었다.
우마이야 왕조 군대, 피레네 산맥 넘어 남프랑스 진출
10년전
10년후 고켄 천황이 일본 46대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미황사가 창건되었다.
20년후사사명의 반란군이 이광필, 왕사례, 허숙기, 노경이 지휘하는 당나라의 군대를 대파하였다.
사사명이 안경서를 죽이고 연나라의 황제가 된 뒤 자신을 대연황제라 일컫고 순천 연호를 세웠다.
피핀 3세의 프랑크 왕국이약 7년 간의 공격 끝에 무슬림들에게서 나르본을 탈환하였다.
30년후 교황 스테파노 3세가 교황 선거를 위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하였다. 이 규정에 따르면 오로지 성직자만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고, 주교 추기경과 사제 추기경만이 교황으로 선출될 수 있다고 하였다.
화암사가 창건되었다
40년후 경주에서 규모 7.0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났다.
당대종죽고- 당덕종이 당나라 제 9대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베르무도 1세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60년후 바스크 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후우마이야 왕조의 팜플로나 총독을 살해하였다.
바이킹이 프랑스 서부의 루아르 강 하류에 당도, 누아르뮤티에와 낭트 시를 습격하였다.
전진의 부견은 378년, 동진의 양양(襄陽)을 공격하여 1년 동안의 포위전 끝에 점령하였으며, 회수(淮水) 일대도 침입하였다.
한편 부견은 복속된 세력에 대해서 대단히 관대한 정책을 펼쳤는데 이에 따라 장안(長安) 인근에는 선비족(鮮卑族)과 강족(羌族)을 이주시켜 살도록 했으며 복속된 세력의 지도자에게 이들을 이끌게 하였다. 또한 관중의 저족을 화북의 여러 곳으로 이주시켜 지배권을 강화하고자 하였다
60년전 요동을 노리는 세력중 모용선비가 가장 강해 보였기에 319년 진나라 평주 자사 최비의 아이디어로 우문선비, 단선비와 짜고 모용선비를 분할 점령하는 작전에 고구려군도 참가하게 하나 실패하고 전연이 수립됨.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노예를 불법적으로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50년전 후조의 공격으로 전조가 멸망하고, 황제 유희와 고관들이 모두 처형당하였다.
40년전 전연이 중원까지 세력을 드리우는 강국이 되면서 고구려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339년, 고국원왕은 전연과 직접 붙기보다는 일단은 동맹을 맺다.
30년전석호가 후조 제 3대 황제가 되었다.
- 석호가 병으로 사망하고 석세가 후조 제 4대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곧 석준이 일으킨 군대가 업을 접수하였고, 석준이 석세를 폐위시킨 뒤 5대 황제가 되었다.
- 후조의 무장 석민이 반란을 일으켜 석준을 살해하고 석감을 제 6대 황제로 옹립하였다
20년전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푸르 2세가 남부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였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첫 특별시장이 임명되었다
페르시아군이 로마 제국의 아미다를 함락시키고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10년전
10년후 백제의 진사왕이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공격하게 하였다.
20년후 남량의 군주 독발오고가 남량의 수도를 낙도로 옮겼다.
독발오고 : 남량 초대 군주사망
여광 : 오호십육국시대 후량의 초대 군주 사망
야즈데게르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인 바흐람 4세를 암살하고 사산조 페르시아의 새 샤가 되었다.
일본서기에 닌토큐천황 사망해로 되어있으나 최소23년후 사망한 것으로 보이고 이전부분은 90년~120년정도 틀린것으로 보인다.
30년후 북위의 초대 황제 탁발규가 그의 아들 탁발소의 손에 살해당했다. 이후 장남 탁발사가 북위 제 2대 황제가 되었다.북연초대황제 고운 사망
40년후 사마덕문이 동진 15대 황제가 되었다.다음해 동진의 황제 사마덕문이 유유에게 선양하고 영릉왕으로 봉해졌다. 이렇게 동진이 멸망하고 유유가 유송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가이세리크가 이끄는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공격하였다.
429년 일본서기엔 개로왕등극이나 백제는 455년이다.여기까지 일본서기는 믿을수없다
인교천황이 411년이라하나 437년으로 볼수있다.456년부터 웅략기가 시작되면 비슷해질듯.
60년후 반달족이 카르타고를 점령한 뒤 이곳을 수도로 삼고 반달 왕국을 건국하였다.
전년 모용선비 풍홍이 죽자 시호를 소성황제(昭成皇帝)라 했다.
탁발선비 북위가 화북 지방을 통일하였다
서기 19년에 일어난 게르마니쿠스의 죽음은 -로마2대 황제 티베리우스가 게르마니쿠스의 죽음을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면- 티베리우스의 치세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베르길리우스도 이해에 죽는다
60년전 10월 3일 ~ 10월 23일 - 필리피 전투 : 필리피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의 군대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패배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둘 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티베리우스탄생
50년전기원전 33년성제(전한)가 전한 13대 황제가 되었다.
「흉노전」에 따르면 이 해에 흉노의 호한야 선우가 전한에 입조하여 전한의 사위가 되어 친분을 쌓는 것을 원해 황제 원제가 왕소군을 호한야에게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40년전기원전 23년
30년전기원전 13년트라키아인 들이 반란을 일으켜 마케도니아를 침공하고 다키아인들이 도나우 강을 건너 대대적인 약탈을 저지르다.
10년전
10년후로마 제국이 세르디카(현재의 소피아)를 함락시켰다.
아그리피나가 벤토테네 섬으로 추방당하고 그녀의 아들인 네로 카이사르, 드루수스 카이사르도 세야누스에 의해 투옥당하였다
20년후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스스로가 신임을 자처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조각상을 놓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조각상을 놓는 임무를 맡은 시리아 총독 푸블리우스 페트로니우스는 유대인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30년후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하였다
40년후 네로가 자신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를 살해하도록 하였다. 그는 우선 아그리피나를 선상 잔치에 초대하였고, 이 때 배가 침몰하도록 하여 아그리피나를 물에 빠져 죽게 하려 했다. 그러나 아그리피나는 살아남았으며, 이에 네로는 직접 자신의 군인을 시켜 아그리피나를 살해한 뒤, 그녀 혼자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였다.
50년후 마인츠에 주둔하고 있던 라인강 군단이 현 로마 황제 갈바에 대한 충성을 거부하고 게르마니아군 사령관인 비텔리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라고 주장하였다
비텔리우스가 로마를 점령한 도나우 군단에게 사로잡혀 처형되었다. 이후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새 황제가 되면서 로마의 내전이 마무리되고 플라비우스 왕조 시대가 개막하였다.
60년후 -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여 폼페이, 헤르쿨라네움, 스타비아에, 오플론티스가 완전히 파괴되고 화산재에 묻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