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기쁜 소식, 해방이다.
그렇다면 기독청년들에게 기쁜 소식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나?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에서부터 우리의 정체성을 부여받기를 갈구한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세상이 인정하는 기준, 세상이 긍정하는 가치를 좇아간다. 학교, 직장, 외모, 경제력, 결혼, 출산, 육아.. 이 많은 과정에서 우리는 숱하게 실패를 경험하고 때로 성공한다. 그리고 그것을 '나'로 동일시한다. 내 정체성의 근거가 된다. 좋은 대학을 나오면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정말 그러한가?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과 내가 추구하는 삶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저마다 자본을 향한 강력한 믿음, 신앙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를, 서로를 종 노릇하게 만든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장 2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니, 하나님의 의는 우리를 만족하고 흡족하다 여기신다.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인정을 구걸할 필요가 없다. 예수께서 잡히실 때에 그를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위하여 그러하셨듯이, 무엇하나 괜찮아보이지 않는 우리 위해 예수께서 기꺼이 죽으셨다. 이미 복음은 우리를 긍정한다. 그리고 우리를 필요로 하셔서 당신의 명을 주신다. 역할을 주시고 일을 맡기신다. 이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그 어떤 것도 배설물과 같이 여길 수 있는 것, 예수 복음 외에는 이 세상에 중요한(대단한) 것이 적어지는 것이 바로 기독청년학생의 마음공부이다.
우리의 마음공부는 홀로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의 질서는 강력한 자본의 힘으로 유지된다. 부단히 나를 통제하고 다스리려 하는 힘을 분별해야 한다. 그러나 홀로 내 마음 지키기 너무 버겁다. 세상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나를 종 삼는다. 그래서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 함께 듣고 배운 말씀대로 일관되게 살아가는지 지켜봐주는 관계가 있어야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
특강 첫 시간 함께 모인 청년들과 뜨겁게 배우고 이야기 나누었다. 내 안에 무엇에 저항해야하는지 점점 구체화되고 선명해지는 듯했다. 남은 특강 잘 배우고 만나가면서 더 많은 친구들과 더욱 힘있는 걸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