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학비를 벌기위해 알바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배움 없이 시간 소모적인 일을 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공주민속극박물관이었고, 저는 그 곳에서 민속학의 대가이신 심우성 선생님을 만나 축제와 공연을 기획하는 일과 인형을 만들고 공연하는 일을 하며 학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인형극은 그 때 배웠던 필살기 입니다. 원래 한국의 전통 그림자극은 만석중놀이라는 고전극인데 이를 변형하여, 물 들인 창호지 대신 색한지로, 횃불 대신 조명기를 이용해 교육프로그램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이 프로그램으로 충청남도 교육청에서 최우수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맛보기도 했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정말 많은 특강 의뢰도 받았었지만 그림자인형극만을 주제로 캠프를 연 건 저도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초등은 몰라도 중등 아이들이 그림자인형극이 주제인 캠프에 모여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림자인형극이란 제목만 들으면 자칫 중등에겐 시시한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히려 사춘기 청소년들의 고민을 풀어내는 프로그램으로 중등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그림자인형극의 여러 장치들은 학교폭력이나 부모와의 갈등, 청소년기의 성문제 등 민감한 주제를 드러내고, 고민할 수 있게 합니다. 이번 중등캠프에서는 이런 아이들의 고민을 녹여 스스로 스토리텔링하게끔 하고자 했고, 이를 위해 애초 기획했던 연극이나 미술이 아닌 그림자인형극을 택했습니다.
연극은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을 담아내어 표현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교육적 도구지만 그것에 전혀 경험이 없는 학생들의 경우에는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가해자 혹은 피해자였을 수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사례를 남들 앞에 발표해 낸다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들의 사례와 생각들을 담아낼 수 있을까요? 그림자연극은 이러한 문제들의 접근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림자인형극은 익명성을 보장합니다. 내성적 성격, 혹은 누군가에 대한 눈치 때문에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인형극 막 안에서의 활동은 탈이나 분장보다 더 좋은 가면을 제공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신체의 어떠한 부분도 관람객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며, 목소리 또한 막을 거쳐 여과됩니다. 더욱이 그림자인형극은 어두운 실내공간을 조성해야 함으로 좀 더 안정적인 표현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감정까지도 한 번쯤 걸려주는 역할을 하는 장치입니다. 설사 수강자 안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있더라도 상대방의 공연을 고발이 아닌 객관적 사례로 받아 들일 수 있게 합니다.
둘째, 직접 만드는 인형을 통해 공연에 충실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상황극이나 싸이코드라마의 경우 소극적 태도의 수강자로 인해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진행 속에 효과가 떨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만든 이야기의 필요한 등장인물들을 직접 만들어 냄으로서 극의 충실도를 높힐 수 있고, 그만큼 아이들이 열정적으로 자신의 공연에 임할 수 있게 합니다.
셋째,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는 공연을 통해 표현함으로 흥미를 통해 집중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단지 청소년의 고민의 심각성과 원인과 결과 등을 강의하고 학생들의 사례발표나 대처상황 등을 토론한다면 학생들은 다소 무거운 주제에 흥미나 관심을 잃고 형식적인 시간 때우기로 끝낼 수 있습니다. 인형극은 재미있습니다. 이에 사례나 주제를 인형을 통해 해학적으로 담아냄으로서 흥미와 재미를 통해 프로그램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게 합니다.
프로그램엔 충분히 자신이 있었고, 예상대로 아이들은 제 속에 있는 꺼내기 힘들 이야기들을 하나 둘 털어내어 그럴싸한 공연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기획자는 아이들의 공연을 보며 벅찬 감동을 느끼는 한 편, 이렇게 제 속 이야기를 꺼낸 아이들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법을 배우길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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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는 4박 5일이지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홍보하고 아이들을 모집하여 실행하는데까지는 몇 달이 걸립니다. 그 과정을 행정실과 교사회, 운영팀, 자원교사들이 함께 하지만 모든 과정에 참여하며 아이들은 만나는 것은 저 뿐이기에 막중한 책임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혹 캠프가 재미 없더라도, 그리하여 다시 찾고 싶지 않은 캠프가 된다 하더라도, 학부모님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안전한 캠프가 되는 것을 우선합니다.
그러나 이번 중등캠프에서는 많은 부분을 놓쳤습니다. 초등 때 이미 반실신한 상태로 넘어온데다 설상가상으로 강의를 맡아주기로 한 중근샘도 병이 나 올곧이 캠프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참여하기로 한 자원교사의 갑작스런 부재로 초등 캠프에 참여했던 유진샘이 참여해주셨는데 역시 병이 나서 좋은 컨디션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고, 이에 초등 때 돌봄교사를 훌륭히 수행해준 지우샘을 다시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가지로 대응이 부족하였습니다. 이 점 사과드리며 다음 캠프 때는 보다 철저히 준비하여 더 만족스러운 캠프를 꾸릴 것을 약속 드립니다.
이번 캠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돌봄교사였던 지우샘의 선택수업 모자이크였습니다. 나쁜 말이 담긴 종이를 잘라 붙여 좋은 말로 바꾸는 것인데 이 아이디어를 다음 캠프에 적용해볼까 합니다. 인신공격이라는 부정적인 말을 모체로 인권 [人權], 신의(信義), 공경(恭敬), 품격(品格)이란 주제의 프로그램을 끄집어내려 합니다. 이를 위해 간디캠프에서 하던 기존의 모든 프로그램은 내려놓고, 새로운 밥상을 차려내려 합니다. 심지어 모둠까지도 구성하지 않아볼까 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가슴 속에 뭔가 하나 담아갈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겠습니다. 믿고 와주시길, 그리고 보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다음 캠프는 5월(4,5,6,7)에 있을 소나기 시즌3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어찌 보면 짧은 4박5일 프로그램을 위해서 긴 시간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셨네요.
아이들의 웃음속에 노력의 결실이 잘 담겨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해동안 다양한 캠프로 아이들을 성장시킨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캠프가 끝난지 보름이 지나고 카페에 발길들도 뜸해질 무렵 올린 후기라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짧은 시간 너무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깜짝 놀랐네요~! 더 즐겁고, 더 행복하며, 더 성장할 수 있는 우리의 캠프를 만들기 위해 정진하겠습니다. 응원해주시는 학부모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초등 중등 모두 만족하고 이야기거리가 한가득인 캠프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에 1명, 중등에 1명이 사진을 두고 갔는데 공교롭게도 지영이와 성환이네요~! 잘 챙겨두겠습니다.^^
하아.... 역시..... ㅠㅠ 감사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시더래도 항상 미흡한면은 발생하지요..그래도우리도담인 많은추억이 되었나봅니다~~즐거웠다고~또참여하고싶다합니다~~5월캠프에서뵐게요~~^^
처음엔 낯을 좀 가리지만 금방 친해져서 장난 치던 도담이. 5월 소나기 때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