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땅 팔러 안면도에 가다

[원푸리]

친구 땅 팔러 안면도에 가다

집사람 초록손이의 친구 둘이 홍천 우리집에 놀러와 3일간 함께 잘 놀았다. 그 중 한 사람은 집사람과 함께 졸업한 후 20년 만에 한번 만났고 또 10년 지나 이번에 두 번째 만난 인연이다. 월요일 오전에 서울로 올라간다 하여, 일요일 저녁에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죽기 전에(+_+!) 또 한 번은 볼 수 있을까 하며 미리 석별의 정을 나눴다. (오~ 동창의 끈끈함이여)

술자리가 약간은 지루해진다 싶을 때 그 친구가, "요즘 형편이 좀 그래서, 유산으로 받은 안면도 임야를 공시지가라도 받고 팔았으면 좋겠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 지 엄두가 안나. 이걸 고민하다보면 내 호르몬체계가 엉망이 되는게 느껴져" 한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임야는 실수요자를 제외하고는 도시의 눈먼 투기자의 호주머니 털어먹기 위한 소재인데 팔릴 리가 있겠나? 설혹 팔린다 해도 어디 경차 한대 살 돈 되겠나?' 그러면서 컴퓨터를 켜고 임야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요즘은 부동산 주소만 알면 지적도, 토지대장, 등기부, 공시지가 등 토지 내역을 확인하고 도로뷰, 항공뷰를 통해 현황까지 파악할 수 있다. 확인해보니 눈에 띄게 좋은 입지에 지목만 임야일 뿐이지 현황은 거의 국도변 밭이나 다름없다.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고, "문제없다! 값도 실하게 받을 수 있고 거래도 어렵지 않게 성사될거다. 부동산 몇 군데 찍어 전화해서 얼마 받아줄 수 있느냐 하고 물어보면 감이 온다. 그 뒤 얼마 받아달라 하면된다"고 했다. 헌데 이 아낙네, 토지 생각만 해도 두드러기가 날 판이고, 어떻게 전화하며, 상대가 뭐라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단다. (아~ 순박한 아낙네여)

원래 부동산, 특히 시골 토지 중개업계는 눈 부릅뜬 놈 눈치못채게 코 베어가는 곳인데 이건 날로 털려도 눈치못챌 지경이다. 어느어느 직종 퇴직자의 퇴직금은 먼저 보는게 임자라는데 이 땅 사정을 먼저 아는 사람이 임자가 될 판이다. 

가깝게 지내는, 부동산 거래에 산전수전공중전으로 이력을 쌓아올린 이웃분을 밤 늦게 초치해 모셨다.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자문에도 친구의 낯빛은 더 어두워진다. 이왕 나섰다가 중도에 주저앉을 순 없다. 다음날 함께 안면도로 가서 부딪쳐보기로 결정.

월요일. 차 두대로 나눠타고 홍천에서 안면도로 출발. 도중에 5명이 차 두 대를 끝까지 끌고다니며 기름 쓰고 톨비 낼 일 없으니 어디서 한 차로 갈 수 있을까로 집단지성 가동. 결론은 서해대교 중간에 있는 행담도휴게소에서 한 차로 가기로. 2년 전 모다아울렛이라는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고속도로 '양방향 회차'가 가능하단다.

쇼핑몰 이용이 불편할까봐 양방향 회차를 허용하고, 속도감지기는 사고위험이나 과속 위험 우려가 있는 곳에서는  눈에 잘 띄지않고 휴게소 직전에서는 눈에 잘 띈다. 자본주의의 권력은 자본임을 고속도로 상에서도 실감한다.

현지에 내려가 토지를 살펴보고 다시 한번 그 가치에 감탄하고 주변과 부동산중개사무실 한 곳을 들러 시세 확인, 일단 시세대로 팔아달라고 했다. 공시지가의 3~4배가 실거래가라고 한다. 그 시세가 2000년대 초반의 절반 정도라고 한다. 부동산 투기 광풍에 휩쓸려 가슴 아픈 사람들 많겠다.

말 그대로 자고났더니 부자가 되어있는 친구의 얼굴도 환하게 밝아졌고 함께 동행한 사람들도 훈훈한데 이왕 안면도에까지 와서 싱겁게 돌아갈 수는 없다. 가장 가까운 해변을 찾으니 밧개해변이 나온다. 꽃지해수욕장이 유명하다지만 그건 사람들 바글거릴 때 얘기고 요즘처럼 한적할 때엔 작은 해변이 제격이다.

차를 돌려 서산방조제 제방길을 타고 나오다가 간월도라는 지명만 섬인 곳으로 꺾었다. 그 친구가 요청해서다. 근방이 굴 주산지인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점심 메뉴도 영양굴밥이었다. 밥에도 굴, 국에도 굴, 생채에도 굴. 석단 위 굴 따는 세 아낙네의 조각상이 감흥을 자아낸다. 노동을 천하게 보는 시대가 되었지만 본래 노동은 아름답다. 소득만을 위한 노동은 그렇지가 못해 본질이 심하게 퇴색되어 어색하게 들리지만.

친구가 어리굴젓을 산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던 모양이다. 이럴 때는 고마움을 표시할 기회를 주는 것도 선행이다^^ 집에 오자마자 먹어본 어리굴젓은 맛이 있었다.

간월도 수산물가게 앞에서 초록손이가 홍천 이웃집 아저씨와 함께 한 컷. 아닌 밤중에 호출(?)되어 다음날은 안면도까지 도움을 주시기 위해 동행했다.

간월도 선착장? 뻘밭에서 물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배를 보고 가뭄에 비 기다리는 벼를 떠올린다. 저 멀리 아련한 서산방조제가 지평선처럼 보인다. 강원도 산골에 살아서인지 서해안 갯벌은 이색적이다.

서해고속도로 타고 서울로 올라오다 행담도휴게소에 들러 헤어졌다. 친구들은 서울로, 우리는 홍천으로. 오후 5시. 네비가 알려주는대로 서해고속도로 - 외곽순환고속도로 - 중부고속도로 - 서울춘천간고속도로 코스에 들어섰다간 서울시민 퇴근차량에 끼일게 틀림없다.

서평택제JC가 나타나고 국토횡단 고속도로가 나타나길래 일단 우로 꺾었다. 익숙한 경부고속도로를 만나기까지 세 개의 고속도로를 거쳤다. 집에 와서 전국지도로 복습하니 평택제천간, 평택화성간, 봉담동탄간 고속도로였다. 내 머릿속 공간에도 정보로 입력했다. 내가 시골로 내려간 뒤 고속도로도 참 많아졌다. 경부 기흥신갈 사이에서 잠깐 밀렸을 뿐 나머지는 과속탐지기가 문제였을 뿐이다. 네비만 믿고 머리속 지리공간 개념 퇴화시킬 일 아니다. 아직 네비는 인공지능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돌아온 집은 안락했고, 저녁은 맛있었고, 잘 도착했다는 카톡문자에는 따스함이 배어있었다. 

[비오빠]

요즘은 민간고속도로가 많아져서 도로비도 꽤나 나오더라구요~
전 시간만 괜찮으면 국도이용을 많이 하는 것이 좋더라구요~ 주변 구경도 하면서 쉬엄쉬엄~~^^
친구는 나이가 들어도 좋은 것 같아요~~^^ 행복한 시간들이셨겠어요~~

[원푸리]

맞아요~ 시속 100km 주행 중에는 도로바닥만 보게돼요^^;
시속 60km 이하로 떨어뜨려야 작은 푸른나무가 소나문지 주목인지 보여요.
음....
알면서도 바삐 다녔네 습관적으로... 백수가.... 고맙습니다. 상기시켜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