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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의 파문들
---장옥관, 백은선, 오산하, 동길산, 권혁재의 시
배옥주
1. 자기 앞의 생 한 가운데
비록 신빙성이 떨어지는 어원설이지만 사랑은 ‘살다(生)’의 ‘살’과 접미사 ‘엉/앙’이 결합되어 사랑으로 변화되었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이 어원을 통해 살아가는 일(生)은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볼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다”던 모모의 말을 수긍하게 된다.
1970년 파리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무슬림 고아 소년 모모가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자기 앞의 생(로맹가리:에밀 아자르, 1975)』. 이 소설에서 로자 아줌마에게 맡겨진 불쌍한 소년 ‘모모’는 사랑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며 고개 숙이던 하밀 할아버지의 말에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모모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모의 말처럼 우리는 ‘사랑’과 ‘삶’과 ‘죽음’을 한 덩이로 껴안고 살아간다.
시인은 삶과 죽음에서 비롯되는 정서의 촉이 예민하다. 결핍을 매개로 생의 깊이를 가늠해가는 숙명적인 존재다. 시인은 무한 반복되는 한 묶음의 낱말과 필연의 관계로 얽혀 사랑하고 죽어가는 생의 무수한 파문들을 건져 올린다. 지금도 우리는 자기 앞의 생 한 가운데에서 운명에 순리를 맡기거나 거스르기도 하며 시간을 메꾸고 채워간다. 갑자기 맞닥뜨리게 되는 생의 낭떠러지 앞에 선 인간의 뒷모습에서 한 치 앞도 재단하지 못 하는 무력함을 발견하면서.
2. 생, 찬란한 거짓말 한 채
활짝, 거짓말이 한 채 얹혀 있다
재개발지구에서 뽑아온 매화
구덩이 파고 기다렸더니 산앵(山櫻)이었다
어제 찔린 손가락에
통증이 남아있다 가시를 빼냈는데도
나무는 나무인데 내가 나를 속인 것이다
아무렴, 속는 줄 알면서 속아
무참한 생이었고
속일 수 있어서 또한 오늘이다
올해 중학생이 된 이웃집 아이가 고개를
숙일까 말까 살풋 지나친다
그래,
손바닥을 활짝, 내일을 펼쳐보인다
- 장옥관, 「봄꽃」(『애지』 2023년 여름)
활짝 핀 거짓말 한 채처럼 얹힌 생은 진정 찬란한가? 위 시 「봄꽃」은 속는 줄 알면서 속는 무참한 생을 활짝 핀 ‘봄꽃’을 빌어 형상화하고 있다. 이 생은 찬란한 ‘거짓말 한 채’로 얹혀 있는 봄꽃이다. 화자는 재개발지구에서 매화를 뽑아와 심었다. 그런데 구덩이에서 피어난 꽃은 매화가 아니라 “산앵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산앵을 ‘매화’라고 호명한 ‘나’는 “내가 나를 속인 것”임을 깨닫는다. “속고 속”이며 살아가는 것이 ‘오늘의 생’이라는 무심한 현실 앞에서 “속는 줄 알면서 속”는 건 더 “무참”해진다.
화자는 왜 하필 재개발지구에서 매화라고 착각한 산앵을 뽑아온 것인가. 도시계획으로 지정 고시된 재개발지구 저소득층 원주민들은 재개발되었을 때 혜택을 보는 일이 쉽지 않고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한다. 턱없이 낮은 감정 평가액으로는 재개발사업의 아파트를 분양받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21세기 난쏘공’이라는 말이 나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쟁이 일가족을 통해 그림의 떡인 분양권을 중심으로 무너져 내리는 빈민의 고통을 잘 보여주듯, 시인은 재개발지구의 매화를 뽑아오는 행위의 설정으로 속고 속는 생의 여운을 강조하고 있다.
올해 중학생이 된 아이의 사춘기는 ‘봄’의 인생 초입에 들어선 시기다. 생이 무르익기 전 풋내 나는 중학생은 “고개를 숙일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그냥 지나치고 만다. 이 중학생의 행동은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생의 한 부분을 집약해서 보여준다. 아직 숙성되지 않은 생의 초입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우리들은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슬쩍 넘겨버리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화자는 중학생을 향해 아니, 자신의 앞에 펼쳐진 생을 향해 “손바닥을 활짝 펼쳐 보인”다. 활짝 편 손바닥은 속을지라도 진정 믿고 싶은 희망찬 미래다.
3. 가장 아름다운 영혼
1.
엄마 나는 봐요. 세계가 비틀린 육각형으로 기우뚱 회전하는 것을, 그게 엄마 눈에도 보이는지 궁금해요.
사람은 언어로 생각을 한다는데 한 번도 말을 배운 적 없는 나는 그 전의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치만
사람은 언어로 생각한다는 말은 틀렸어요.
나는 냄새로 공기로 빛으로 생각을 했거든요.
결핍은 존재를 알아야 발생하는 거예요.
있는지도 모르는 것을 그리워할 수는 없으니까요.
*
엄마가 여니야 하고 부르는 순간
내 뺨을 만지고 등을 토닥이는 순간
세계는 천천히 돌기 시작했고
나는
절망을 배웠어요.
*
엄마
우리가 건넌 다리 아래로
파란 물이 넘실거리던 거
나무들 사이에 비죽 솟은 작은 버섯이
너무 깨끗해서 웃었던 거
참 이상해요, 그치?
*
분명하게 기억나는 건
차가운 피를 핥을 때 나던 피 맛
종이가 넘어가는 소리
아주 천천히 움직이던
한 조각 빛을 만지며 놀던 오후
밤이면 참을 수 없이 가려워서
팔을 긁고 깨물던 일
2
내가 자라 처음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날 엄마는 아침으로 소시지 야채 볶음, 감자 볶음, 미역국을 차려줬잖아. 난 미역국이 너무 싫었어. 미끌거리는 걸 입 속에 넣을 때마다 억지로 삼켰어. 매번 그랬잖아. 피가 맑아진다고. 피가, 맑아지는 게 뭔데?
학교는 너무 시끄러웠어. 나는 그때마다 마음속의 작은 문을 열고 하얀 방으로 걸어 들어가는 상상을 했어. 거기서 사각거리는 이불을 덮고 고요하게 침잠하는 상상. 그게 나를 구했어. 그런데 내 방은 너무 약해서 누가 툭 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와르르 무너져 버렸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 애들의 입을 다 찢어버리고 싶었어.
*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 있게 된 날부터 엄마는 점점 말이 없어졌잖아. 그게 나는 좋았어. 좋은데 엄마가 슬퍼 보여서 미안했어. 나를 미안하게 만드는 엄마가 미웠어.
불가능한 것이 너무 많아서
믿음이 생겨나듯
세상에는 처음부터 잘못된 자리에 놓인 것도 있어. 제자리가 없으니까. 그런데도 그냥 거기 있어야 되는 것도 있어. 그걸 엄마는 모르는 거 같았어. 나는 가만히 누워서 생각했어. 가만히 누워 있는 거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지
빈집의 정적 속에서 가만히 떠오르는 것들
비틀린 채 돌고 있는
기울어진 풍경
닫힌 유리병 속 순환하는 생태계
*
난 절대 엄마가 되지 않을 거야
- 백은선, 「가장 아름다운 혼」(『현대시』 2023년 6월)
현대인은 서로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타인의 말을 경청하려들지 않는 불균형의 과잉소통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은 희망적인 미래보다 절망을 먼저 알아가게 된다. 위 시 「가장 아름다운 혼」에서 “비틀린 육각형으”로 회전하는 세계는 학교폭력으로 기울어져 있다. 불통의 유리병에 갇힌 청소년의 심리를 ‘가장 아름ㅈ다운 혼’으로 비틀고 있다. 아직도 학교 폭력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가해자와 피해자는 한 공간에서 화인 같은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그악한 세계를 열어간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학교 폭력 피해자는 현실에선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통쾌한 복수극으로 대리만족을 안겨 주었다. 입시구렁텅이의 ‘학교’라는 제도권에 갇힌 아이들은 평균대 위에서 밀고 밀리며 외줄 세상에 안간힘으로 매달려 있다. 구해달라고 발버둥치는 처절한 몸짓을 외면하는 어른들 앞에서, 화자는 “비틀린 채 돌고 있는 기울어”진 생태계의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 할 것을 알고 있다. “가만히 누워 있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게 뭔지 몰라서 더 아픈 청소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생태계는 “닫힌 유리병” 속에서만 순환한다. 아이들의 상처는 유리병 속 폭력에 갇혀 언어로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화자는 아픈 상처를 품고 아파하는 자신을 보는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학교’라는 거대 규율을 벗어던질 수밖에 없다. “불가능한 것”이 많아서 되려 “믿음이 생겨나”는 세계. 불가능성이 장악한 이곳에서 화자는 가능성을 놓아버리게 된다. 그래서 “절대 엄마가 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가 사라지는 결핍 속에서 아이들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사랑이 사라진 세상에 살아남는다면 자신의 몫을 감당할 수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혼」은 백은선의 시를 ‘삶을 위한 거짓말에 대한 공격(야스퍼스:Karl Jaspers)’이라고 정의한 진술에 동의하게 만드는 시다.
4. 우리가 아니듯 우리인
우린 장지에 묻은 커다란 뼈를 생각하며 언성을 높이곤 했지 땅 아래 묻혀있을 어깨뼈 옆으로 몸을 나란히 맞춰보기도 하면서 얼굴 바깥으로 사라지려는 한낮을 붙잡아보려고도 했다 너와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모든 공룡들의 무덤이라면 나는 이름 모를 커다란 뼈 위에 독채를 지어 살고 있는 거겠지 우린 그 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우리로서의 집을 가진다 목적 없이 걷기도 하면서 가끔 우리는 삶에 너무 가까운 것 같다고 말했지 너는 영원히 이 집에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죽음까지 이곳에 묻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어 우리는 손을 잡고 임종 체험을 하러 간다 한 사람씩 영정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다 적당한 미소를 지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게 죽기 직전까지도 유효한 말이었구나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연습한다 인화된 사진에서 웃고 있는 우리는 마치 우리가 아니듯 우리이군 어색하게 사진을 쓰다듬으며 유서를 썼어 내가 죽으면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와 김만준의 ‘모모’를 틀어줘 너는 나의 유서를 읽으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수의는 빳빳하니 여름에 입기 좋겠어 우리는 곧 죽을 거니까 잠시 얼굴을 마주한다 관에 들어갈 차례 너와 나는 10분간 죽을 것이고 죽음 이후에 우리의 독채로 돌아가 다시 살아가겠지 변했을 수도 변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테니 나는 뭉툭한 뼈를 끌어안고 dinosaur은 끔찍한 파충류라는 뜻이래 그렇다면 우리는 끔찍한… 무엇일까 우리의 집 위로 애드벌룬 떠있다면 곧 터질 것이다 너와 내가 잠깐 죽었던 것처럼 어떤 하루를 위해
- 오산하, 「우리가 잠깐 죽었을 때」(『애지』 2023년 여름)
너무 커서 쓸모없는 백악기의 도마뱀처럼 덩치만 웃자란 현대인은 언제 터질지도 모를 위기의 생 앞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살아간다. 특히 ‘관계’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정수리 위에서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 위 시 「우리가 잠깐 죽었을 때」는 “모든 공룡들의 무덤” 위에 지은 “독채”에서 살고 있는 ‘너와 내’가 “너무 가까”워진 삶을 돌아보며 ‘우리’의 관계가 삐걱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 바깥으로 사라지는 한낮을 붙잡아보려고도 한다. 영원히 자신들의 독채에 살기 위해서는 죽음까지 묻을 줄 알아야 하므로 삐걱대는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되려면 개선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아니듯 우리”인 ‘너와내’가 관계 개선의 변화를 기대하며 임종 체험을 한다.
요즘은 ‘웰 다잉(Well-Dying)’으로 ‘맞이하는 죽음’에 관심이 많아서 미리 임종 체험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임종 체험은 죽음에 대한 간접 경험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잘 죽기 위해 미리 연습해보는 체험이다. 영정 사진을 찍고 서로의 유서를 읽고 수의를 입고 입관을 하면, ‘십분’ 죽음의 체험이 시작된다. 미리 준비해보는 죽음 실전 연습을 통해 화자는 “우리가 아니듯 우리”는 끔찍한 무엇일지 두렵다. 관속에 누워 죽어봤던 십분 동안의 어떤 하루 뒤에도 ‘우리’의 관계가 변화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 화자는 언제 터질 지도 모를 애드벌룬이나, 끔찍한 파충류 다이너소어(dinosaur)보다도 더 끔찍할지도 모를 ‘너와 나’의 미래에 대해 막막해지는 것이다.
5. 존재와 비존재
나무에서 멀어진 잎은 어디에 닿나
새에서 멀어진 소리는 어디에 닿나
보이는 데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데도 아닌 거기
젖었다가 마른 손의 물기는 어디로 가나
젖었다가 마른 마음의 물기는 어디로 가나
아예 모르지는 않지만
안다고도 할 수 없는 거기
가 본 곳보다 가보지 않은 곳은 늘 많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늘 많아도
누군들 가 본 곳만 갔으랴
바람 세차게 불다가 누그러진 둑길
둑 너머로 밀려간 바람은 어디에 닿나
어디에 닿아서
마음의 젖은 물기를 말리나
둑 너머로 밀려간 물은 어디에 닿나
어디에 닿아서
젖었다가 마른 마음을 다시 적시나
- 동길산, 「거기」(『작가와 사회』 2023년 여름)
위 시 「거기」에서 “보이는 데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데도 아닌 거기”는 어디인가. 파르메니데스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고 역설했다.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다. 그에 비해 ‘거기’에 대한 시적 주체의 사유는 있음에서 없음을 헤아리고 없음에서 있음을 헤아린다. 그렇다면 ‘거기’는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닌 곳, 죽는 순간(사유死有)부터 다음 생을 받기(생유生有)까지의 존재와 비존재의 중간적 상태인 중음中陰의 세계인가. 아니면 미혹한 생존의 세계 ‘차안此岸’과 번뇌를 넘어선 깨달음의 세계 ‘피안彼岸’의 중간 세계인가.
위 시 「거기」에서 시적 주체는 “나무에서 멀어”진 잎과 “새에서 멀어”진 소리가, “보이는 데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데도 아닌 거기”에 닿는다고 확신한다. “젖었다가 마른 손의 물기”와 “젖었다가 마른 마음의 물기” 그리고 “둑 너머로 밀려간 바람”과 “둑 너머로 밀려간 물”은 알지도 않고 모르지도 않는 ‘거기’로 간다고 단언한다. ‘거기’는 시작이고 끝이며 무한으로 반복되는 영속의 세계다. 성철 스님의 진언처럼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지만 궁극에 가서는 물이 산이고 산 또한 물이 진리라고 표명하고 있다. 이처럼 ‘물기’와 ‘소리’와 ‘바람’은 순수하게 있는 것과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지 않는 것과의 중간자에 위치한다.
6. 생의 빈 자리
한 차장이 면직되고 자리가 비었지만
계절이 바뀌어도 신입을 뽑지 않았다
그가 키우던 죽은 나무를 내다 버렸다
먼지에 덮인 의자가
눈치 보며 비꼈다
전화가 울려도 받지 못할 빈 자리
지나간 공문이 폐지 더미로 쌓여도
한 차장을 기억하는 직원은 없었다
문상을 마치고 나와
붙여대는 담뱃불처럼
한 사람의 청춘이 연기로 사라졌다
- 권혁재, 「자리가 비었다」(『애지』 2023년 여름)
어느 날 직장에서 잘린다면 해고당한 이는 어디로 가야 하나. 눈치 보며 밥벌이를 이어가는 직장인들의 하나뿐인 모가지가 뎅겅 잘리는 일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은 찾아올 수 있다. 노숙자는 늘어나고 퇴직을 종용 당하는 직장인도 늘어난다. “자리가 비”어도, “계절이 바뀌어”도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직장 내의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는 뜻이다.
해고당한 한 차장의 모가지가 잘리듯, 한 차장이 기르던 나무도 따라 죽었으니 내다버릴 밖에. 빈 자리에 먼지와 공문이 쌓여가도 모두 제 모가지 연명에 급급할 뿐 해직된 한 차장을 기억하거나 빈자리에 눈길을 주는 직원은 없다. 입사할 때 환호했을 한 청춘이 사라져도 누구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현실 상황은 우리가 사는 생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들춰낸다. 우리는 언제 그 빈 자리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를 직장에서 굴러다니는 밥그릇 챙기기도 바쁜 세상에 던져진다. “문상을 마치고 나와 붙여대는 담뱃불”의 공허한 연기는 이내 사라지고 말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 순간은 생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뿐.
7. 사랑이 지워진 결핍의 시간들
시인은 삶과 죽음의 길항을 견디며 내면 사유를 키워간다. 그 내면 사유는 생명을 지향하는 사랑과 관심을 배태하고 있을 때 깊어진다. 하지만 우리가 발 닿은 ‘이곳’과 ‘바로 지금’은 교섭에 실패한 생의 시간이 만연해 있다. 살아갈 의지를 상실한 무력한 사람들이 얽힌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고립된 일상을 지탱하고 있다.
거짓말 한 채로 얹혀 있는 봄꽃은 찬란한 생과 같다. 속는 줄 알면서도 속는 무참한 삶 앞에 내던져진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봄꽃」). 가장 아름다운 영혼에 대한 역설을 표명하는 「가장 아름다운 혼」에서는 학교폭력으로 참담해진 아이들의 미래가 유리병 속에 감금되어 있는 처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닫힌 유리병”의 ‘학교 폭력’에 갇힌 아이들은 절망을 먼저 체득하고 입을 닫아버린다. 세상과 어른들과 가해자와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은 자신은 절대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잠깐 죽었을 때」에서는 임종 체험을 통해 우리가 아니듯 우리 같은 우리의 결핍된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 하지만 관계의 변화가 현실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위기감을 드러낸다. 「거기」에서는 보이는 데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데도 아닌 ‘거기’가, 있음에서 없음을 헤아리고 없음에서 있음을 헤아리는 깨달음의 세계라고 믿는다. 「자리가 비었다」에서는 해고된 한 차장의 빈자리를 통해 현실에 적응하는 주변인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사랑의 부재로 흔들리는 결핍의 파문이 혹독하다. 일렁일렁 사랑의 파문이 제각각의 무늬를 만들어갈 때에야 비로소 환해질 봄꽃들. 아름답고 찬란하고 쓸쓸한 거짓말이 생의 한 가운데 얹혀 있다.
약력
배옥주
2008년 《서정시학》 시 등단
2022년 《애지》 평론 등단
<부경대학교> 문학박사
시집 『오후의 지퍼들』, 『The 빨강』
연구서 『이형기 시 이미지와 표상 공간』
평론집 『언어의 가면』
<요산창작지원금> 수혜, <김민부 문학상>, <두레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