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솔숲갈래길
느린 물길 따라 쉬엄쉬엄 너른 돌에 앉아 참방참방
솔숲갈래길과 바로 맞닿아 흐르는 석천계곡. 길을 걷다가 잠시 머물며 물에 발을 담그고 쉬어 가기에 좋다.
내성천 근처 봉화읍 체육공원 출발 석천계곡·솔숲·닭실마을로 이어져
잔잔한 물소리·솔들의 그림자 ‘시원’ 온통 논밭인 농촌마을엔 생기 넘쳐
경북 봉화 솔숲갈래길은 봉화읍 중심에서 출발해 숲속 너머 시골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하천과 계곡으로 이어지는 물길을 따라 고즈넉한 공기의 솔숲을 걷는다.
숲과 계곡이 몰고 오는 바람에 머물렀다가 농촌마을의 정취까지 누리고 온다. 초록 논밭이 자리한 시골 풍경은 여름에 만나
한층 진하다.
시냇물 따라, 계곡 따라 걷는 길
길의 시작점인 봉화읍 체육공원은 하천 바닥이 훤히 비치는 낮은 수심의 내성천 변에 자리했다.
쨍한 햇볕에 구름도 새하얀 날, 자갈과 모래 위로 잘잘 흐르는 시냇물 옆으로 첫걸음을 내딛는다.
머리 위로 내리쬐는 햇볕이 따갑다. 다만 발 아래 스치는 물길의 소리가 여름날 햇볕의 열기를 식힌다.
진한 물 내음과 함께 걷는다. 초록빛 가득한 수풀 사이로 구불구불 흐르는 징검다리를 건넌다.
내성천 상류로 올라가는 길. 큰 돌에 막혀 잠시 급했다가도 다시 느긋한 듯 흐르는 너른 하천을 따른다.
그렇게 가다보면 석천계곡에 닿는다. 이곳은 여느 계곡보다 폭이 넓어 유속이 온순하고 깊이도 얕다.
그러나 느린 하천을 보며 거슬러 왔다고, 바위들을 타고 넘어 흐르는 물소리가 자못 더 경쾌하게 귓가에 울린다.
양옆에 우거진 수풀 너머로 풀벌레 울음이 가까워진다. 햇볕이 들어도 덥지 않다. 적당히 너른 바위 하나를 골라 신발을 벗고
앉아 참방거린다.
솔들이 내린 그늘 덕분에 선선하게 걷기 좋은 숲길.
이어지는 구간에선 솔숲을 걷는다. 계곡을 따르는 바윗길을 지나 이내 흙길로 바뀌는 자리.
오솔길 왼편의 작은 언덕에 커다란 솔들이 높게 뻗었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소나무 가지에 발걸음 주변으로 그늘이 진다.
마른 솔잎이 얼마간 깔려 사박사박 소리 나는 숲속 오솔길. 한층 순해진 햇살과 함께 솔들의 그림자를 밟고 걷는다.
산들 불어오는 골짜기 바람에 그늘진 풍경이 하늘거린다.
계곡물 소리가 잦아들수록 숲속의 공기는 한산해진다. 새들의 지저귐과 매미 울음소리가 호젓한 공간의 배경을 채운다.
그저 휙 이곳을 지나치기 아쉬워 저벅저벅 걷다가도 잠시간 멈춰 선다. 중간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푸른색 하늘을 올려다본다.
높이 솟구친 솔들의 가지가 심녹색 잎들을 흩뿌려놓았다.
초록산이 둘러 자리한 한여름의 시골길
이윽고 그 길에 다시 물소리가 깔릴 때쯤 석천정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석천정사는 조선 중기 문신인 청암 권동보가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었다.
앞으론 너른 암반 위로 계곡물이 흐르고, 뒤로는 푸른 솔숲이 감싸 안고 있다.
내내 조붓했던 골짜기가 이곳에서 퍽 넓게 트인다. 풍류를 즐기기 좋은 자리다.
석천계곡을 앞에 두고 호젓이 자리한 석천정사
석천정사에 머무르다 걸음을 옮기면 낮은 구릉이 품은 시골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안동 권씨 가문의 집성촌인 닭실마을이다.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충재 권벌이 입향한 뒤 조성돼 이후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북 안동의 내앞·하회 마을,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로 이곳 닭실마을을 꼽았다.
동네를 둘러싼 산의 형상이 금빛 닭이 알을 품은 모양인 ‘금계포란형’ 명당이다. 마을 풍경이 아늑하고 또 포근하다.
길의 마지막 구간은 닭실마을에서 시작하는 유곡리 시골길이다.
걷는 도로는 포장돼 있어도 온통 논밭이 주변을 둘러쌌다. 그동안 지나온 숲길과 달리 이 구간에선 그늘이 없다.
그렇기에 더위를 피할 길은 없지만 덕분에 한여름의 생기를 마주한다.
산과 들이 온통 초록인 뜨거운 여름날. 한껏 내리쬐는 햇볕 덕분에 고추며 대파며 작물의 빛깔이 한층 진하고 더없이 싱그럽다.
하얀 조각구름 뜬 푸른 하늘도 쨍한 날씨에 유독 선명하다. 그렇게 걷다가 만나는 정자에 잠시 올라앉아 땀을 식힌다.
한줄기 불어오는 여름 바람 따라 키 작은 벼들이 일렁인다.***
봉화=이현진, 사진=김도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