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의 디스토피아 경고
올더스 헉슬리『멋진 신세계』
홍재숙
불편하다. 불편하고, 불편하고 또 불편한 소설이다. 물론 반어법으로 수식이 된 책 제목이지만 '멋진 신세계'는 개뿔, '처절한 지옥도' 가 유감없이 펼쳐져, 아직도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투에서 전쟁무기로 드론이 위력을 과시하고, 우크라이나는‘배드 원’이라는 이름의 로봇 개를 투입하여 로봇 전쟁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토록 AI 인공지능을 이용한 각종 기기가 활개 치는 시대에 사는 나도, 올더스 헉슬리의 혁신적인 발상에 적응이 안 된다.
올더스 헉슬리의『멋진 신세계』는 예전부터 내 마음의 서재에서 자꾸만 나에게 손짓을 했다. 20세기에 출판되어 지축을 뒤흔들었던 도서가 21세기인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독자를 사로잡고 있으니 역시 명작은 죽지 않고 살아 숨 쉰다는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90년 전에 출간되어 이 책에 반했던 인류도, 세계에서 첫 번째로 우주여행에 성공한 영국의 억만장자 버진 갤럭틱 회장 리처드 브랜든과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환희에 찬 영상 모습을 보는 현재의 우리 신인류도, 여전히 이 책에 홀리고 있다. 올더스 헉슬리는『멋진 신세계』를 통해서 우리에게 물음표를 던졌고 우리는 여전히 그가 던져준 함의에 소스라친다.
대관절 저자의 상상력은 얼마나 천재적인가. 물론 그가 뛰어난 과학 실력으로 생물학과 심리학 쪽 사색을 확장 시켜 집필했다지만, 그의 이런 상상력은 진화론으로 명성이 높았던 조부 토마스 헉슬리의 핏줄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특히 그의 형 줄리언 헉슬리도 생물학자이자 과학에 대한 글도 잘 썼다 하니 온통 과학자 집안인 헉슬리 가문에서 자라난 작가가 경천동지할『멋진 신세계』 를 엮어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자는 인간 문명의 발달을 생물학적 측면에서 확장하여 발달시켰다. 인간이 여성의 자궁에서 생식되는 것이 아닌 시험관에서 배양이 되어 실험실 유리병에서 인공부화 되어 태어날 수도 있다는 소설적인 착상을 했다. 감히 꿈도 꾸기 힘든 1930년 그 시대에 이런 상상을 했으니 얼마나 앞선 인간인가. 1930년대는 미국발 대공황이 전 세계로 퍼졌던 암울했던 세기였다. 이런 뒤숭숭한 세기에, 더군다나 9년 뒤에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을 앞둔 그런 환경에서, 21세기인 지금에도 거론되지 못하는‘실험실에서 대량생산하는 맞춤형 인간’을 구상했다니 가히 미래 가상소설을 선도하는 천재 작가이다.
현재 의학기술은 시험관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는 게 보편화된 시대이다. 불임인 부모나 아기를 원하는 미혼 여성이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런데 헉슬리는 1930년대에 이러한 사실을 예견했으니 얼마나 통찰력 깊은 작가인가. 그러면서 과학의 진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기계문명의 발달이 인간을 노예화 시키고 전체주의화 시킨다는 경고를 이 책 내내 빨간 깜박이를 켜며 경고를 한다.
그는 책머리부터 ‘포드주의’라는 복선을 깔아놓았다. 바로 미국의 포드 자동차 왕 헨리 포드(1863~1947)가 창조한 혁신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을 말하고자 주제와 연결시켰다.
헨리 포드는 소수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하여 원가를 낮춰 일반인도 구입할 수 있게 시장에 내놓았던 인물이다. 이런 획기적인 발명은 전 세계 노동자들을 공장제 노동에 종속하게 만들었고 급기야는‘현대’라는 시간 개념이 창조되었다. 그 결과로 사회는 변화하였고 포드주의라고 불리는 독특한 생산 시스템과 철학이 구축되었다.
헨리 포드는 값싸고 대중적인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했다. 이런 터무니없는 망상을 유일하게 이해해주었던 당대 인물은 천재과학자 에디슨이었다. 포드는 세계최초로 공장 배치를 효율적으로 만든 기업가이다.자동차 한 대를 제작하는데 들어가는 모든 도구와 기계를 만드는 순서대로 배치해서 대량 생산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12살 때 아버지가 선물한 시계와 마차를 타고 가다가 만난 자동차와의 조우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던 그는 시계 태엽장치를 공장 시스템에 적용하여 각각의 공정라인을 연결하는 수단을 창안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하여 쉴 새 없이 완성품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완성차 시간을 단축시켰다.
반면 공장제 노동자들은 주어진 시간대로 노동을 하고 정해진 노임을 받았지만 공장에 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시간에 대해 통제권을 갖지 못했다. 그들의 일상은 노동과 시간이라는 새 틀에 맞춰져서 잠시의 휴식도 없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에게 종속되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획기적인 성과주의 과정은 시간과 공간의 효율적인 결합체로 꼽히는 포드주의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헨리 포드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인‘현대’를 발명한 사람으로 일컫는다. 이에 올더스 헉슬리는 헨리 포드를 차용하여 미래사회의 암울한 일상을 그리면서 과학이 선도하는 물질문명의 폐해를 포드주의로 고발했다.
헉슬리는 작품의 시대를 포드 기원 632년(서기2496년)의 영국으로 설정하고 세계는 하나의 통일된 전체주의 국가의 통제하에 있는 가상국가로 정하였다. 국가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포드주의에 따라 자동 생산되는 시스템으로 인간을 실험실 시험관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의 전개로 소설은 시작된다.
정부는 물론 시민들 모두가 포드를 전지전능한 신으로 숭배한다. 포드 탄신일을 기점으로 포드 기원전과 포드 기원후로 부르고 심지어는‘포드님 맙소사’를 마치 ‘하느님 맙소사’ 처럼 부르면서 포드님을 향한 경배에 끝이 없다. 얼마나 섬뜩한 일인가.
실험실 공장에서 인공부화로 태어나면서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으로 나뉘어져 다섯 단계로 계급화된 인간을 보니 당혹하고 처참하다. 계급에 따라서 생김새가 구분되고, 똑같은 제복에 각자의 개성이나 생각도 없이, 같은 생각 같은 행동으로 체화된 계급형 인간들의 미래사회는 충격적이었다. 실험실에서 태어났기에 부모라는 개념도 모르고 나이에 따라 반복적인 세뇌까지 받으며 성장을 하니 가히 통조림 같은 획일형 인간 기르기이다.
인공수정부화기로 여성들의 모체생식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최상위 등급을 갖춘 여성에게 난자유도제를 주사해서 난자를 채취해 보카노프스키 처리를 하고, 하나의 수정란을 세포분열 시켜 최대 96 종류의 쌍둥이를 만들어 최고의 효율적인 노동자를 생산해낸다.
이렇게 부화기에서 태어난 인간들은 당연히 부모와 가족 같은 존재를 모른다. 오히려 자연생식으로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인간들을 미개하고 불결한 존재라고 여긴다. 이런 맥락으로 여성의 자궁에서 태어난 존을 야만인으로 여기며 원숭이처럼 구경거리로 삼는다.
"여기에도 쌍둥이들이 많습니까?"
존의 이 말은 미래사회를 날카롭게 관통하는 지점이다. 자칭 자신들을 문명인이라 여기는 획일형 인간들에게 야만인인 존이 자신의 생각을 툭 던진다.
“제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부화병에서 무엇이나 만들 수 있으면서 도대체 왜 그런 것들을 제조해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제조를 수행할 때 왜 모든 인간을 알파 더블 플러스 계급으로 제조하지 않는 겁니까?”
존이 목소리를 높여 인간을 부화기로 만드는 것도 죄악인데 어째서 계급을 나누어서 차별적인 인간을 만드냐고 반론을 제기한다.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신봉하네. 알파 계급으로만 이루어진 사회는 불안정하고 비참해지지 않을 수 없는 걸세.”
세계총통사무국 감독관 무스타파 몬드는 상층계급이 안락함을 누리려면 지저분한 것을 치우는 하층계급이 필요불가분한 요소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하층계급의 불만을 잠재우는 대안으로 즉각적으로 행복을 불러오는 소마(soma)를 개발했다. ‘만인은 만인의 것’이라는 학습으로 세뇌시켜 쾌락과 만족을 위해 아무나와 성관계를 맺게 만든다. 최하층계급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진 기계 부속품처럼 시간표대로 노동을 하고 그 외 시간에는 집단적으로 단순한 자극으로만 이루어진 오락을 하게 한다. 어쩌다가 자각이 들어서 우울한 기분이 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습관적으로 소마를 먹으면서 두뇌에 퍼지는 행복을 즐긴다.
감독관의 ‘안정’을 신봉한다는 말도 사실상 통제가 목적이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절대적인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로 총통의 계획 아래 태아 때부터‘사회기능 설정실’에서 성별을 주입받고 이미 결정되어진 습성을 훈련받게 한다.
상층 계급은 수준 높은 반복교육으로, 하층 계급은 태아 때부터 공포를 주입하여 자신의 계급에 만족하도록 세뇌 학습을 시켰다. 최면학습을 통하여 5계급 모두가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고 순응하도록 나이별로 세뇌를 했다. 결코 ‘아니요’라고 부정해서 사회 안정을 해치는 돌연변이가 태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야만인 존은 이런 사회에 약간의 의구심을 품은 버나드의 도움으로 엄마 린다와 함께 보호구역에서 빠져나왔다. 말로만 들었던 최첨단 과학 문명과 완벽하게 설계된 처음 보는 세계에 감탄했지만 권력자 외에 유일하게 셰익스피어 시집을 읽은 존은 생각의 폭이 넓어진 통찰력으로 이 세계가 조작된 행복도시라는 걸 간파했다.
존은 학습에 세뇌당하고 쾌락 약 소마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다. 결국 그는 과학이 지배하는 문명에 절망하고 좌절한 채 다시 원시인으로 살아가려고 마음먹는다. 인간이 짊어진 자연스러운 생로병사를 거부하고 늙지도 않고 병에 걸리지도 않고 죽을 때조차도 시스템에 의해 죽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부화 인간들을 보며 진저리를 친다. 존재의 가치를 모르는 그들은 자신이 죽어도 슬퍼할 사람이 없고 슬퍼하는 법도 모른다. 오히려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는 존을 구경거리로 신기하게 본다.
존의 눈에는 멋진 신세계의 빛과 그늘이 다 보였다. 겉으로는 첨단과학을 마음껏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국가가 조작한 행복놀음에 취해 아무 생각도 없는 마네킹 인간들의 군상들이 보일 뿐이었다.
읽는 내내 존은 내 손을 잡고 디스토피아 세계를 돌아다녔다. 책장을 덮으면서 북한사회가 떠오른 건 당연한 귀결이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 종교가 억압받고 오로지 김씨 왕조만을 열렬히 숭배해야만 살아남는 일당독재 국가가 바로 이것이다.
존엄한 죽음을 택할 권리를 주장하는 안락사 논쟁과 노인들의 병간호를 도와주는 간병로봇의 출현, 교통사고로 잃은 신체의 팔,다리 대신 사이보그 기계의 보편화. 하체마비로 앉아서 버튼으로만 조작해도 이동을 편하게 도와주는 전기휠체어, 빈 집을 지켜주는 센서감시카메라, 드론을 이용하여 농약 뿌리기, 손안의 백과사전이 된 스마트폰같이 인간을 도와주는 선한 기능의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들이 일상화가 된 지금이다.
최첨단 과학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과학과 윤리가 결합하여 윤리과학이 되면 얼마든지 우리 인간은 존엄성을 지키면서 공존할 수 있다. 결국 진보과학이란 헨리 포드가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었던 것처럼 인간의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만드는 것이다. 과학의 진보가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발전한다면 장차 인류가 꿈꾸는 미래사회는 멋진 신세계’가 될 것이다.
<약력>
홍재숙
수필집: 『꽃은 길을 불러모은다』, 『연필, 그 사각거리는』
공저:『독서가 힘이다』 1~7권, 사화집 『사랑방』 (가산문학회 제10주년)
수상: 강서문화원 강서문학상 대상, 송헌수필문학상, 書로多讀작가상 등
<강서구립 길꽃어린이도서관>에서 인문,철학 온라인독서반, 수요문예창작반 강사
(2020서울형 독서문화프로그램지원사업), ‘수필로 마음 다독이기’ (2022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수강회원 사화집 출간
인터넷신문 <강서뉴스>에서 ‘홍재숙의 동네 한바퀴’ 칼럼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