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152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 설법
(聲便是廣場舌)
소동파(蘇東坡) 선사
계성변시광장설
(溪聲便是廣場舌)
산색기비청정신
(山色豈非淸淨身)
야래팔만사천게
(夜來八萬四千偈)
타일여하거사인
(他日如何擧似人)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편안한 부처님 설법이니
춘하추동 산색(山色)이
어찌 부처님 법신이 아니랴
밤새 내린 비(雨)로 불어 난
물소리 팔만 사천 저 법문을
어떻게 좋은 날, 좋은 때에
남(他人)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
위(上記)에
올린 시(禪詩, 게송)는
소동파(蘇東坡)의
오도송(悟道頌)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시(禪詩, 게송)는
부처님 도(佛道)를 닦는(修養)
수많은
사람(명상, 참선, 수행자)들이
즐겁게 애송(愛頌)하는
시(詩文)이다.
당대(當代,
당면한 시대)의
이름 난 시인(詩人)이요
명석한 학자(學者)였던
동파 거사(蘇東坡 居士)가
만년(滿年)에
벼슬(관직)에서 물러나
동쪽 언덕에
초암(草庵)을 지어 놓고
기거(起居)하였다 하여
동파(東坡)라는
별호(別號)가 붙었다.
처음에는
불교(佛敎)를 얕잡아 보고
비웃으며 우습게 알았던
그(소동파)가
옥천사
승호(承浩) 선사(禪師)의
단 한마디 할(喝) ! 에 눌려
선(禪,
명상, 참선, 수행정진)을
시작(始作)하게 되었다는
일화(一話)가 있다.
그런 후
그(소동파)는
많은 고승(高僧大德)들을 찾아
스스로 방문(訪問)하면서
수많은 고승대덕들로 부터
법문(法聞 법의 말씀)을 듣고
선지(禪旨,
선(Zen)의 본래에 지닌
깊고 깊은 뜻과 가르침))를
익혔다.
한번은
상총(常聰) 선사를
스스로 찾아가서 법문(法問)을
청(간청)했더니
사람(人間,
중생, 고승대덕)이
설(說法)해 주는 말(言語)만이
법문(法問)이 아니라
온 우주(宇宙)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모두 법(諸法)을 설(說)하고
있으니
그 법(一切諸法說)을
보고, 들을 줄 알아야 된다는
말(설법)을 하는 것이었다.
이른바
무정설법(無情說法)을
들으라는 말이다.
마침
절(寺察, 승가람마)을 나와
되돌아오는데
골짜기
계곡(溪谷) 밑을
지나자
폭포(暴泡)에서
물 떨어지는(落水) 소리가
세차게 들렸다.
전날 밤에
비(夜雨)가 너무 많이 와서
시냇물이 불어나
폭포(暴泡水)의 물줄기가
더욱 세차게 흘렀던
것이다.
그 순간(瞬間)
소동파의 머리에
한 줄기
깨달음(대오각성)의
섬광(閃光)이 번쩍이는 것
이었다.
그 때
바로 이 송(偈頌, 禪詩)을
지었다고(作詩) 한다.
산(山)과 물(水)이
부처의 몸(法身, 化身)이요
바로 곧 부처(여래 佛)의
설법(說法 귀한 법문)이라는
이 말(문장, 偈頌)은
태초(太初)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우주(宇宙)의
근원(根源, 근본 뿌리 바탕))을
사무쳐 알고 난
깨달음(오도, 대오각성)의
경계(悟道境界, 경지)에서만이
나오는 말이다.
사람(人間, 중생)이나
사물의 현상(事物 物質現相)에
미혹(迷惑)해 속고 있을 때는
어림없는 이야기다.
"
두두(頭頭 온갖 생명)가
비로(毘盧, 비로자나불)요.
물물(物物 천지만물)이
화장(華藏 화엄 장엄)이다.
"
이 세상 모든 것
우주 천지만물(宇宙萬物)이
곧 부처(여래 佛世尊)요
존재의 세계(存在世界)는
모두 부처의 세계(諸法界)라는
이 말의 뜻(法旨)을 알 때
비로소
부처(석가모니 如來佛)와
가까이 할 수 있으며
친(親)해질 수 있을 것이다.
소동파(蘇東坡)
선사(禪師, 居士)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덧붙여보면
중국(中國)을 대표하는
문장가(文章家)를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반드시 열거되어 꼽히는
명문장가(名文章家)로
소동파(蘇東坡)는
북송시대(北宋時代)의
사람(人物)이다.
자(字)는 자첨(子瞻)
호(別號)는
동파거사(東坡居士)
라고 한다.
스스로를
《동파거사(東坡居士)》
라고 칭(自稱)했고
흔히
소동파(蘇東坡)
라고 부른다.
시(詩)
사(詞)
부(賦)
산문(散文)
등(etc)
모든 부분에서
뛰어나고 능(全能)해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손꼽혔다.
또한
소동파(蘇東坡)는
송시(宋詩,
송나라 시문학)의 성격을
확립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대시인(大詩人)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문장가였고
중국문학사상 처음으로
호방사(豪放詞)를 개척한
호방파(豪放派)의
대표 사인(詞人)이었다.
그(소동파)는
또한 북송사대가로 손꼽히는
유명 서예가이기도 했고
문호주죽파(文湖州竹派)의
가장 중요한 주 구성원으로서
중국 문인화풍을 확립한
뛰어난 화가(畵家)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소동파)는
타(他人 남)의 추종을 불허한
천재 예술가요
못 하는 것이 없었던
팔방미인(八方美人)으로서
그(소동파)가
세상을 떠난 지(別世 後)
천 년(一千年)이 다 돼 가는
지금(至今, 현세)까지도
그 유례를
감히 찾아볼 수 없는
중국문예사상 가장 걸출한
인물(人物)이었다.
"
ㅡ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하게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