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11-19 (다음세대를 품는 교회)
성경본문 : 예레미야애가 2: 11-19
11.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 12. 저희가 성읍 길거리에서 상한 자처럼 혼미하여 그 어미의 품에서 혼이 떠날 때에 어미에게 이르기를 곡식과 포도주가 어디 있느뇨 하도다
13. 처녀 예루살렘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증거하며 무엇으로 네게 비유할꼬 처녀 시온이여 내가 무엇으로 네게 비교하여 너를 위로할꼬 너의 파괴됨이 바다 같이 크니 누가 너를 고칠소냐
14.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
15. 무릇 지나가는 자는 다 너를 향하여 박장하며 처녀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소하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기를 온전한 영광이라, 천하의 희락이라 일컫던 성이 이 성이냐 하며
16. 너의 모든 원수는 너를 향하여 입을 벌리며 비소하고 이를 갈며 말하기를 우리가 저를 삼켰도다 우리가 바라던 날이 과연 이 날이라 우리가 얻기도 하고 보기도 하였다 하도다
17. 여호와께서 이미 정하신 일을 행하시고 옛날에 명하신 말씀을 다 이루셨음이여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고 훼파하사 원수로 너를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며 너의 대적의 뿔로 높이 들리게 하셨도다
18. 저희 마음이 주를 향하여 부르짖기를 처녀 시온의 성곽아 너는 밤낮으로 눈물을 강처럼 흘릴찌어다 스스로 쉬지 말고 네 눈동자로 쉬게 하지 말찌어다
19. 밤 초경에 일어나 부르짖을찌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찌어다 각 길머리에서 주려 혼미한 네 어린 자녀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찌어다 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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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오정호 목사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족은 사자를 사냥하는 용맹한 부족으로 소문이 나있지만 또한 그들의 집이 쇠똥을 재료로 삼아 만들어졌다는 것도 유명합니다. 그 이유는 마사이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자와 같은 맹수가 아니라 바로 흰개미이기 때문입니다. 목재의 속을 갉아먹는 흰개미의 공격에 목재로 지어진 집은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마사이족은 흰개미로부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쇠똥을 재료로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사단의 공격과 세속화의 물결로부터 어떻게 우리의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까?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기 위한 사단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하나님은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일주일 가운데 하루를 주일로 정해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의 신앙이 세속화되는 것을 막아주셨습니다. 십일조를 통해 물질사용에 있어 최소한의 질서를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는 복을 주셨습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예루살렘 성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선지자들을 보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안식일과 절기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의 외형적인 요소들이 무너지면 반드시 그 시대의 모든 영혼들도 함께 무너집니다.
예레미야애가는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의 타락과 멸망을 바라보면서 기도한 애가, 즉 ‘탄식의 노래’, ‘눈물의 노래’입니다. 예레미야의 예루살렘의 자녀들로 인한 탄식과 눈물, 그리고 다음세대의 회복을 바라보는 그의 믿음을 통하여 우리도 어떻게 다음세대를 품을 수 있는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1. 다음세대를 품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인 실상을 직시해야 합니다(14절).
다음세대를 품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적인 죄상과 본모습을 직시해야 합니다. 우리의 불신앙을, 다수를 따라 죄를 합리화하는 것을, 체면주의와 외식주의, 영적인 둔감성을 탄식해야될 줄 믿습니다. 예레미야 당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보여주신 말씀을 통해 정도를 걷는 것이 아니라 헛되고 어리석은 것을 보았습니다(14절). 백성들이 안식일을 범하고 말씀을 어기는 것을 보고도 평안하다는 거짓경고와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는 거짓예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영광입니다. 성도는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을 최고의 가치와 선과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나 신랑만을 사모하고 따르는 처녀처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정절을 지키던 처녀 예루살렘, 처녀 시온이 주변의 열강인 애굽, 앗시리아, 바벨론을 의지하고 도움을 구하려했습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의 영적인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영적생활의 본질은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황금돔이 석양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는 것을 보고 성지순례자들이 감격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성전안에서 행해지는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순장과 교사의 직분이 얼마나 중요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 직분을 통해 행해지는 내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흐름이 교회를 불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가운데 목회자와 영적 지도자들이 흠없고 깨끗한 주의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삶이 투명하여 사회와 불신자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다음세대를 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가 가르치는대로 사는것이 아니라 보여주는대로 삽니다. 이것이 힘든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가 가르친대로가 아니라 보여주는대로 따라오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보여줌으로 이끄는 교회로 쓰임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를 위해 목회자와 순장들을 위한 배전의 기도를 지원해주시기 바랍니다.
2. 다음세대의 영적인 실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11,12절).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영적인 혼돈과 기아상태를 보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어머니 품에 안겨 곡식과 포도주를 찾으며 숨을 거두는 아이들을 보며 애간장을 끊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은 외형적인 건강은 영양과잉이 되고 있지만 영적인 실상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작년 우리나라 1인당 술 소비량이 소주52병, 맥주 81병입니다. 대학생 중 57%가 일주일에 3일을 술을 마십니다. 문제는 여학생들의 음주가 늘어나고 그 연령층이 계속해서 낮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생 중 58%가 일주일에 두시간 이하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의 13%, 일본12%와 비교한다면 국제경쟁력에서 뒤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대학교육협의회 2000년 통계).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는 부모의 죄 때문에 자녀들이 굶주렸다면 지금 우리 자녀들은 부모의 죄 때문에 마음과 영혼이 주리고 있습니다.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공부에 대한 압력, 지나친 간섭들 때문에 자녀들이 가정에 마음을 붙일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가족 여러분, 우리 자녀들의 외형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통찰할 수 있는 분별력을 얻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의 문화, 언어, 영적인 방향을 알아야 우리는 다음세대를 품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다음세대를 회복시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3장 22,23절).
하나님은 바벨론을 채찍으로 사용하셔서 유다가 바벨론의 말발굽에 짓밟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기 위한 사랑때문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면서 고난과 역경의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한계가 없는 자비와 긍휼을 고백합니다(3:22,23).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시키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을 주시기 원하시며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5:21).
주님의 성전에서 마음껏 제사드리고 주님의 법을 따라 사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던 그때가 다시 회복되기를 마음에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소원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자녀와 교회와 나라의 회복을 위한 소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다음세대의 회복을 위해서
우리는 첫째, 자녀들을 기다려줘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의 문화와 행태와 습성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기다려줘야 합니다. 비판과 정죄는 쉽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에는 에너지와 시간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셨다면 우리도 자녀들이 믿음의 꽃을 피우고 가치관이 새로워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합니다.
둘째,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2:18,19).
우리는 막연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을 위해 주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대전과 중부권의 청소년들과 청년 대학생들을 여호수아와 다니엘의 세대로 변화시켜주실 것을 바라보며 기도합시다. 그리할 때 우리 교회가 다음세대를 품을 수 있는 복된 교회로 쓰임받을 줄 믿습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