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 처| 이성희목사
오늘은 우리 교회의 창립 111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 시대에 이런 기념일을 맞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시대에 우리 교회에 주신 책임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교회로서 세상에 유익을 주고 생명을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갇혀 있는 교회가 아니라 영문 밖에 나가는 교회가 되어 세상을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고, 하나님과 성도 간의 사귐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세상을 풍성하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교회는 세상에 있으므로 세상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킵니다. 존 웨슬리는 “사회의 거룩한 외에 거룩함이란 없다. 기독교를 개인의 종교로 만드는 것은 곧 기독교를 파괴하는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잘 기억하고 사회를 위한 거룩성을 갖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면 좋을까요? 앞으로 세 주간 동안 우리 교회가 세상의 소망이 되려면 구체적으로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목을 ‘베들레헴 교회’,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 교회의 유형을 통하여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 한번 모색하고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들레헴 교회란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이런 말은 못 들어봤지요? 베들레헴 교회를 의미적으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약 10킬로미터에 있는 도시입니다. 인구는 약 2만명 가량이며 대도시권을 포함하면 7만정도 됩니다. 해발고도가 약 800미터의 구릉지대에 위치한 고대도시입니다. 베들레헴이란 이름의 뜻이 ‘빵집’이란 이 지방의 토지가 비옥함을 의미합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왕의 고향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였습니다. 근래에 와서는 1949년 제 1 차 중동전쟁 뒤에 요르단에 속하였습니다. 그 유명한 1967년 제 3 차 중동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이 점령하여 지금은 이스라엘의 땅입니다.
베들레헴은 집이란 뜻의 ‘벧트’와 빵이란 뜻의 ‘레헴’이 합해져 ‘빵집’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이란 지명은 창세기 35장에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이 도시의 원래 이름은 에브랏입니다. 이 도시 이름의 뜻은 빵집 혹은 우리 식으로 말하면 떡집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국에서 2년을 살다가 미국에 가 있는 어느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몰몬교의 선교사였습니다. 이 사람은 한국에 와서 살면서 한국말도 제법 배웠고 한국인 부인을 얻어 딸도 하나 두었습니다. 이 분이 비행기 안에서 저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한국말이 굉장히 어렵다고 했습니다. 사실 한국말은 쉽고 과학적인 말입니다. 그러나 영어는 정말 어렵습니다. 예외가 많고 발음도 어려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말은 글자만 봐도 발음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한국말이 어렵다는 것은 글씨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쓰는 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무슨 집이라고 하면 그 집을 만든 소재를 말합니다. 벽돌집은 벽돌로 만든 집이고, 돌집은 돌로 만든 집입니다. 기와집은 기와로 만든 집이고, 초가는 풀로 만든 집입니다. 이 분이 저한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빵으로 만들지 않고도 빵집이라고 합니까?”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지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관습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가 빵집이 되기를 바랍니다. 잘 모르고 빵집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베들레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웃에게 빵이 되고, 세상에 생명의 떡이 되기 위하여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풍성하고, 기름지고, 비옥하고, 부요하고, 늘 건강한 모습을 제공하는 세상의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베들레헴은 빵집입니다.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입니다. 베들레헴은 빵을 만드는 곳이며, 빵을 공급하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빵집에서 태어나신 일은 선포적 의미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이지만 양 치는 목자들이 많이 살던 비옥한 목자들의 마을입니다. 예수님이 이곳에서 어린양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생명의 떡이다”라고 하십니다. 빵집에서 태어나시고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48에는 “내가 곧 생명의 떡이나라”고 하십니다. 6:51에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하십니다.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잡수실 때에 빵을 쪼개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은 빵이다, 떡이다” 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은 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고 하십니다. 떡을 떼어 주시며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받아먹어라”고 하십니다. 몸을 주시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만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 40년 동안 먹은 음식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은총의 음식입니다. 만나는 건조한 광야에 새벽에 쌓인 식물이었습니다. 처음 맛보고 ‘이게 뭐야?’(man hu?)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만나는 모아서 빵을 만드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린 떡’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빵을 내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적인 필요를 채우십니다.
여러 해 전에 북한에 빵 공장을 세워주러 갔습니다. 그들에게는 빵이 중요한 음식입니다. 특히 그 곳에서 만든 빵은 어린이들에게 제공되었습니다. 빵을 만들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다 보냈습니다. 반죽하는 기계도 보내고, 굽는 기계도 보내고, 배달하는 차도 보냈습니다. 빵을 만드는데 필요한 밀가루, 달걀, 설탕, 버터까지 다 보냈습니다. 반죽할 때 쓰는 물 빼놓고는 다 보냈습니다. 빵을 만들고 제공하는 것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존 수단입니다. 빵을 주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육신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그래서 가장 많이 염려한다는 말입니다.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4:15에는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다고요? 아무 것도 먹을 필요가 없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인데 그 곳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먹는 일은 있을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삼순이의 직업은 ‘파티쉐’라고 합니다.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빵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베이커’인데 ‘파티쉐’라고 하니 유식해 보이지요? 우리나라에서 파티쉐가 되기 위해서는 6개월정도 학원에서 공부하면 제빵사 자격증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파티쉐도 상당한 인기 직종입니다. 삼순이 때문에 더 인기가 높아진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제과와 제빵이 날개 돋치듯 인기가 올라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빵도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가 빵집의 파티쉐입니다. 베들레헴 교회의 파티쉐들입니다. 빵을 만들고 제공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빵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아세요? 모양에 따라, 용도에 따라, 재료에 따라, 빛깔에 따라 빵의 종류가 달라지는데 빵의 종류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빵이 나오고 있을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제공해주는 은혜가 이렇게 많습니다. 그 종류도 헤아리기 힘듭니다. 지금도 세상에 주어야 하는 우리의 빵은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빵은 생명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입니다. 생명을 공급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0:10에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생명을 주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빵을 주는 것은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을 지향하는 교회는 빵이 되어야 합니다.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해야 합니다.
둘째, 베들레헴 교회는 생명의 빵을 제공하는 교회입니다.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입니다. 생명의 빵을 제공하는 곳이 교회이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과 포도주를 가지시고 축사하셨습니다. 빵을 주시는 삶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의 목적은 빵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빵을 제공하는 삶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는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때 떡 가져가기를 잊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을 듣고 제자들은 빵을 잊은 것을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떡이 없으므로 서로 논의하느냐? 떡 다섯개로 5천명 먹이고 주운 것이 몇 바구니며, 떡 일곱개로 4천명을 먹이고 주운 것이 몇 광주리였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빵집인데, 예수님이 빵공장인데 무엇 때문에 걱정하느냐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성한 빵을 공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시고 오천명을 먹이실 때 예수님은 아무 것도 없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왜 주라고 하십니까?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주라고 하십니까? 비록 아무 것도 없지만, 비록 가난하지만 주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마음이 있으면 해결하게 하십니다. “너희가 줄 마음이 있으면 빵은 내가 주겠다”고 하십니다.
성 프랜시스가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빵을 달라고 하는 것은 자기의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7:9에는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고 하십니다. 떡을 달라고 하면 떡을 주십니다. 빵을 달라고 하면 빵을 주십니다.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교회도 빵을 달라고 하는 사회에 대하여 빵을 공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베르자예프는 말했습니다. “내가 먹는 빵은 하나의 물질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빵은 영적인 것이다”.
얼마 전에 신문에 보니 “남편을 남의 편 만들지 말고 내 편으로 만들어라”는 말이 있습디다. 남편이 잘못하면 남의 편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 편보다 더 좋은 것이 우리 편입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빵을 제공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선별하지 말고 빵을 주고,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
이사야 55:2에는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고 합니다. 특히 교회는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 이들에게 배부르게 해주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 8억5000만 명이 굶주려 있다고 합니다. 유럽 대륙의 미식(美食)으로 나빠진 위장의 치료비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에게 충분한 빵 값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소모되는 다이어트 비용을 다 쓰면 세계의 기근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이 다이어트에 돈을 얼마나 쓰는지 아십니까? 헬스클럽에 120억 달러, 개인용 운동기구에 60억 달러, 체중 감량 센터에 8억 달러, 건강 다이어트 서적에 4억 4400만 달러, 연간 약 200억 달러를 쓰고 있습니다. 인간이 시도한 다이어트 방법도 총 28,00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보세요. 부자는 나사로에게 빵 한 조각을 거절하였고, 그래서 부자는 물 한 방울을 거절당하였습니다. 빵을 주는 자는 물도 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동정도 사랑도 얻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교회가 베들레헴 교회입니다. 빵집 교회입니다. 베들레헴에 가시면 구유교회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기념하는 교회입니다. 생명의 빵이 태어나신 교회입니다. 생명의 빵을 제공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낌없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빵을 쪼개듯 자신을 쪼개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빵의 수가 늘어날 것입니다. 포도주를 따르듯 자신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자신도 잔치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결론
룻기의 이야기는 감동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의 가족입니다. 그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베들레헴에 기근이 들어 두 아들과 함께 모압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거기에서 오르바와 룻이라는 두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올 때에 룻만 따라왔습니다. 룻은 보아스를 만나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는 메시아적 로맨스입니다. 빵집에 빵이 없어서 모압으로 간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에 빵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술집이나, 나이트클럽이나, 심령술사나, 점쟁이를 찾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살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곳에 가서 위로를 얻고 살려고 바동거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빵을 제공해야 합니다. 빵을 제공하여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지난 총회 때에 제법 배가 나오고 거구인 후배 목사님들이 여럿이 둘러서서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지나가니까 어떤 목사님이 “목사님, 베들레헴회 모임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예?”하고 제가 의아해했습니다. “배 둘레가 햄인 똥배 모임입니다”라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풍성합니다. 빵이 풍성합니다. 베들레헴은 원래 배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빵의 도시”, “떡의 마을”이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까? 빵집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날마다 그 빵을 쪼개어 줍시다. 아무리 퍼주어도 마르지 않는 샘이 됩시다. 아무리 많이 떼 주어도 바닥나지 않는 빵집이 됩시다. 육으로도 영으로도 먹이는 교회가 됩시다. 세상에 생명을 주고 풍성히 줄 수 있는 교회가 됩시다.
111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교회가 생명이 풍성한 베들레헴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