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35-43
이유와 의미를 모르는 아합 왕 / 김영주 목사
1. 사명을 안다는 것!
사람이 최고 멋지고, 매력 있을 때는 자기 사명(역할)에 충실할 때입니다. 잘못된 직업이 아닌 한,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역할에 충실한 사람은 참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예) 우리 아파트 수위 아저씨
짐 들어주기, 택배 가져다주기, 자동차 번호판 알기, 주민들 도와주기, 리어카 협조 등 아주 적극적입니다. 은퇴 후, 아파트 경비를 하고 있지만 참 멋져 보입니다.
예) 성도들이, 목사님이 제일 멋져 보일 때가 새벽에 늦게까지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늦게까지 기도하느냐? 그것이 목사가 해야 할 사명이니까 합니다. 목회를 해보니 목사가 성도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분, 재정적으로 어려운 분, 깨어진 관계속에서 사는 분, 깊은 상처, 우울, 자녀들의 문제.... 등 때론 너무 힘들어 죽을 지경인 성도들을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고, 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기도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못하니까 기도로 하나님께 호소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길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벽마다 기도의 자리에 나가 아무개 성도님 도와주십시오. 이 문제 해결해주십시오. 그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십시오.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것 하라고 저를 담임 목사의 자리에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자리는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새벽에 늦으면 늦게라도 오고, 못하면 아침에라도 와서 기도합니다. 하여간 기도의 자리를 빼먹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이 저에게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 목자들이 잘 하든 못 하든 열심히 목장 섬기는 것 보면 참 멋져 보이고 대단해 보입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이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성실’ 이라는 것입니다. 성실이 되면 대개 성공은 따라옵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해도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에 성실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하나님 앞에 성공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성공이 아니라 성실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2. 아합의 어리석음
구약 성경 열왕기상이라는 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오므리 왕조에 대한 것이요, 그 중 아합 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합 왕 이야기가 16장부터 시작해서 22장 까지 무려 7장이나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그 와중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합은 자기 사명을 모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자기를 왕으로 세우셨는지, 왕으로써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사명이 주어졌지만 사명을 모르니까 엉뚱한 것에만 관심을 갖다가 귀한 세월 날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 깨닫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시청각 교육을 시키십니다. 시청각 교육은 깨닫지 못하는 자를 깨우치는데 아주 유용한 방법입니다. 그냥 말로 해도 되지만 말로 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체험학습을 통해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35절)“ 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친구에게 그대로 전하고 나를 치라 했습니다. 적어도 선지자라 했으면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을 때, 지체 없이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누가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데도 안 하겠다면 이 사람은 하나님이 뭐라 하시든지 나는 내 고집대로 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면서 그 친구에게 나를 치라했습니다. 그런데 안 했습니다.
36절)“ 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사자가 그 불순종한 선지자의 친구를 만나 죽였습니다. 정말 이럴 줄 알았다면 순종할 걸 그랬습니다. 죽는 것보다 순종하는 게 낫습니다.
왜 이 친구는 나를 치라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이런 말씀도 하신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내키지도 않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가 선지자가 나타나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나를 치라, 그것도 살짝 치는 것 아니라 상처날 만큼 세께 치라 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마 이런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치라고도 말씀하시나?’
‘내가 때려서 저 친구(선지자)가 다치면 어떻게 하나?’
‘왜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사람을 치라고 하나?’ 이해되지 않고 동의되지 않아 안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 했는데 그것 때문에 사장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가끔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그냥 뭘 하라는 때가 있습니다. 그 명령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닙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성과 논리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 있을 때는 무지하게 어렵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이해되고 동의되어야만 하나님께 순종하겠다 하면 평생 순종할 수 없습니다. 이해되어 순종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해를 통해 일하시는 게 아니라 순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이것이 귀한 것은 순종은 기본적으로 믿음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 어떤 목사님, 집회를 하는데 기도 받을 사람 나오십시오. 했더니 첫눈에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한 한 여자 분이 기도 받으러 나왔습니다. 몸을 보니 복수가 차서 배가 풍선처럼 부어 올라있었습니다. 그 환자분을 위해 기도하려고 하면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이런 환자는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그런데 이 환자의 배를 주먹으로 세게 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당황해서 ‘네?’ ‘주먹으로 배를 쳐요?라고 물었습니다. 계속 그래야한다는 것입니다. 당황스럽고 고민되었습니다. 이 배 때렸다가 죽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잘못되면 그 책임을 누가 질까? 잠깐 동안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납득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나님이 하라는대로 해보자 하고, 순종하여 배를 치는 순간 복수가 빠지면서 병이 낫기 시작해 깨끗이 나았다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예) ⌜하나님의 대사⌟에서 김하중 장로, 딸 결혼식 때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청첩장 돌리지 말고 조용히 하라고 말씀하셔서 그렇게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결혼식이 초라했습니다. 순종은 했지만 지금도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지 모르겠답니다. 그 뒤로 그 분의 아내가 앞으로 이런 일 할때는 하나님께 물어보지 말고 하자로 하더랍니다. 때로 신앙생활 할 때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상황들이 펼쳐질 때 있습니다. 상대방이 잘못했는데 나한테 먼저 가서 화해의 손을 내밀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도 순종을 선택하는 것이 믿음이요 복입니다.
예) 아브라함- ‘ 네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
모세-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가르키라!’
예수님-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가 동이 나자 ‘빈 항아리에 물을 부으라, 가져다주라.’
이런 말씀들은 다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말씀입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고, 최고의 결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순종은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라 행위가 중요합니다.
이런 말씀들이 다 어려운 말씀은 아닙니다. 고도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말씀도 아닙니다. 그냥 들으면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말씀 자체는 쉽지만 순종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해보면 항상 결과가 좋습니다. 그 순종이 우리를 살립니다. 불순종이 우리를 죽입니다.
요즘도 선지자의 친구처럼 사자에게 물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형만 다를 뿐이지 지금도 여럿 물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경제적 부분에서 말씀하셨는데 불순종 했더니 물질이라는 사자에 물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기도에 대한 말씀을 주셨는데 불순종 했더니 말로 상처받는 경우가 생기고, 헌신에 대한 말씀을 주셨는데 불순종 하더니 가는 곳마다 힘든 일, 귀찮은 일은 내가 다 해야 하는 경우, 봉사에 대해 말씀을 주셨는데 불순종하고 사람들이 나에게만 일을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시간 헌신의 요구 앞에 불순종에 대한 결과로 시간 뺏기는 일들이 더 자주 터진다든지 하는 경우입니다. 사자에게 물려 죽는 것 보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큰 유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선지자의 친구가 말씀에 순종하지 않자 이 선지자는 두 번째 사람을 찾아갑니다.
두 번째 사람을 만나 얘기했더니, 이미 이 소식을 들은 선지자가 힘껏 내리쳐서 상처를 입었습니다. 아마 눈이 다친 것 같습니다. 그 눈을 가리고 변장하고 길에서 기다렸다가 아합 왕이 지나갈 때, 얘기 합니다. 그냥 말씀하시면 되지 왜 이렇게까지 해 가면서 말씀해야 합니까? 그냥 말씀하면 못 알아들으니까 알아듣도록 시청각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39~40절)“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아합의 반응은 썰렁했습니다. 네가 잘못했으니 네가 당하라는 것입니다. 이때 선지자가 수건을 벗고 정체를 드러내고 한 말이 42절입니다.
42절)“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제 맘대로 행한 것에 대한 ‘값’을 네게서 찾겠다는 것입니다.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을 두 번이나 이긴 것이 우연이겠습니까? 아합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상하게 잘 되네?’ ‘질 뻔한 싸움이 이기네? 신기하네?’ 이상하게 잘 되면 거기에 뭔가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안 될 것이 된다든지, 닫혔던 문이 열린다든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너무 좋은 제안이 들어온다든지, 만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나든지 하면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을 찾아야 합니다.
반대로, 이상하게 안 풀리든지, 다 된 것 같은 일이 꼬인다든지 ,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든지, 꼭 은혜 좀 받으려 하면 어려움이 같이 생긴다든지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럴 때 그냥 지나치지 말고 진지하게 기도해 봐야 합니다. 이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뭔가를 말씀하시려고 할 때 주시는 sign들입니다.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하나님께서 쓰시는 인생이 됩니다.
아합은 일이 잘 풀리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았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이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놓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우리가 귀 담아 들어야 할 말들이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네, 운이 좋았네, 이상하게 잘되네, 하늘이 도왔네....이런 말들입니다.
하나님이 아합 통해 하시려는 일이 있어서 전쟁을 이기게 하신 것인데, 그걸 깨닫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평소 생각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밖에 모르니까 이 사건이 하나님의 뜻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평소 내 인생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마18장 보시면 우리 인생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묶으면 하늘에서도 묶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했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저 이 땅의 인생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늘과 땅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땅의 사건을 통해서 하늘의 뜻을 알 수 있어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합은 이렇게 연결할 줄 모릅니다. 땅의 사건들이 하나님이 나를 통해 뭔가 하실 일이 있어서 하신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이것하고 하나님하고 무슨 연관이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합이 왜 그랬을까요?
1) 자신이 하도 많은 죄를 지어서,
나 같은 사람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 발람도 쓰시고, 고레스 왕도 쓰십니다. 요셉시대 애굽 왕 바로도 쓰셨습니다.
2)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왜 이 시대에 살고 있는지 왜 왕이 되었는지, 왜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는지 이런 일 통해 하나님의 의도가 뭔지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듣고자 하는 자, 알고자 하는 자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예) 찬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도하면,
귀를 기울이시고 내 기도를 들어 주신다네
깊은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주시고,
나의 발을 반석위에 세우시사 나를 튼튼히 하셨네
새 노래로 부르자. 랄라라..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새 노래로 부르자 하나님 사랑을
내 생각,
내 지혜를 따라 살다보니 인생이 깊은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수렁에 빠졌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수렁에서 벗어나보려고 하는데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갑니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시고 우리 발을 반석위에 세워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랄랄라 찬송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왜 인생을 살면서 힘들다, 못살겠다. 죽겠다. 고민, 근심으로 사십니까? 랄랄라 하며 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우리 인생으로 노래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새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
3) 사건들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기도 중 조용히 속삭이시고, 그 다음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그 다음은 주변 사람을 통해 말씀하시고, 그 다음은 환경을 통해, 사건을 통해 말씀하시고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마지막에는 고통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은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확성기다’
4) 하나님이 다양하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아주 다양하게 말씀하시고 일 하십니다. 그 채널들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을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과 평소 교재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서만 말씀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채널을 통해 말씀하시니 알아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를 왜 이 시대에, 이 때에, 대한민국에 살게 하시는지, 왜 예수님 알게 하셨는지 내 주변에서 일어난 최근의 사건들은 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 들으려하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음성을 듣고 사명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