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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을 거치며 한국 경제는 고질적인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공로: 김재익 수석은 "물가를 잡지 못하면 경제는 파탄 난다"는 신념으로 강력한 통화 긴축과 재정 긴축을 주도했습니다. 통화증발을 막고 예금금리를 인상하여 저축을 유도한 결과, 1980년대 초반 두 자릿수이던 물가상승률을 1~2%대로 극적으로 안정시켰습니다. 이는 이후 한국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2. 관치 경제의 탈피 — 수입 자유화와 가격 자율화
배경: 당시 정부는 수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품목별 가격을 직접 정하는 등 관치 경제의 색채가 짙었습니다. 이는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했습니다.
공로: 그는 정부가 주도하던 경제를 민간 자율에 맡겨야 한다며 수입 자유화 조치를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외국과의 경쟁을 통해 국내 기업들의 체질을 강화시키려 한 것입니다. 또한 정부가 쥐고 있던 각종 가격 통제를 풀고 시장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도록 유도했습니다.
3. 금융 자율화와 경제 체질 개선
배경: 시중 은행들이 정부의 입김에 따라 특정 기업에 헐값으로 자금을 몰아주던(정책금융) 관행 때문에 부실 기업이 양산되고 있었습니다.
공로: 시중은행의 민영화와 금융 자율화를 추진하여, 정부가 금융을 통제하던 구조를 서서히 허물기 시작했습니다.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도록 시장 친화적인 금융 시스템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4. 실용주의적 경제 철학 ("대통령을 경제학자로 만든 사람")
일화: 전두환 대통령에게 경제 과외를 하듯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언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전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뭘 좀 아는구만"이라고 하자, "대통령은 경제를 모르셔도 됩니다. 저 같은 사람을 쓰시면 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는 일화는 대단히 유명합니다.
정치 논리나 정권의 인기 보다는 오직 '국민 경제의 실리'와 데이터에 기반해 정책을 밀어붙인 진정한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였습니다.
"김재익 수석이 생전에 뿌린 수입 자유화와 물가 안정의 씨앗이 없었다면, 한국 경제가 1980년대 중반 이후 '3저 호황(저금리, 저유가, 저달러)'의 과실을 극대화하여 비약적으로 도약하기 어려웠을 것" 이라는 것이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입니다.
첫댓글 통화긴축 통화증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