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 있는 수많은 주제가 있겠지만,
그중 '나'는 가장 어려운 주제 중에 하나입니다.
내가 나를 객관화시키기 어렵고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 쓰려고 하면
내가 나를 잘 모르기도 하고
내가 살아낸 인생이니까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또 내가 내 생이 어떤 건지 헷갈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한 번은 써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목적과 맞닿아 있는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왜 쓸까요?
우리가 첫 만남에서도 얘기 나눴지만,
여러분들은 왜 글을 쓰나요?
8번의 만남을 하고 나서 다시 한 번 또 생각해 봅니다.
저는 이해하려고 씁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이해하려고 글을 써요.
실제로 쓰면 이해가 되더라고요.
지난 수업에서 인규님이 질문해 주신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해 봤습니다.
표현하신 '착한 에세이'라는 것에 대해서요.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고 안 좋은 경험이나 일에 대해 쓰고
결국 결론은 '그래도 좋았다, 좋은 점이 있었다'로 쓰는 것에 대한 질문이었는데요.
그리고 그런 글 말고 다른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얘기해 주셨고요.
근데 저는 그걸 '착하다'라는 개념으로 볼 게 아니라
그것이 '에세이의 속성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에세이는 결국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쓰는 일인데,
쓴다는 행위는 그걸 중심에 두고 가장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고,
치우치지 않는 생각을 위해 고민하고, 소회를 밝히고, 정리하는 일이거든요.
그렇게 되면 안 좋은 경험도,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도 글로 정리하면서
마음이 정갈해지고, 정돈되고, 깨닫게 되고, 알게 되고 결국 이해하게 되는 거죠.
그게 인규님이 표현하신 '착한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냥 그 자체가 '에세이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순서가 다른 건데요.
에세이가 착한 결말을 쓰는 게 아니라
에세이를 쓰면 그러니까 글로 정리를 하게 되면 한 사건, 한 사람, 한 경험을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게 되고(그렇게 해서 글을 써야 하고요) 그러면 좋은 점도 발견하게 되는 거죠.
혹 좋은 점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그 일에 대해 글로 정리를 한 다는 것 자체가
그 일이 나에게 안 좋은 상태로만 남아있는 건 아닌 게 되는 거죠. 좋게 바라보거나 장점을 찾게 되지는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거니까요.
제가 수업 때 말씀드렸잖아요.
글에는 '질서'가 있다고요.
그래서 내가 글로 쓴 경험과 생각이 정갈해지는 일입니다. 그게 에세이를 쓰는 이유, 에세이의 속성인 것 같아요.
많이 고민해서 써 본 건데 이해가 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 솔직하게 써야 하나?' 하는 질문도 한 번 더 고민해 봤는데,
제가 내린 결론은
내가 솔직하게 쓴 문장이, 생각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만 아니면
최대한 솔직하게 쓰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내 마음이 허용하는 선에서)
아무튼,
첨삭한 파일 올려드립니다.
2차 퇴고를 해 보시면서 잘 완성시켜 보세요!
*8차시 수업 녹화본
https://sjcu-ac-kr.zoom.us/rec/share/vsdENx_JyBxn5KQAa1AFzlYYH0VMycRTXovzaPjqcIzAH5HxsN_S0_w3kf5VtL-q.M7dxZXhJLeCsrHtn?startTime=1725270740000
암호: 5Bmq@6S%
첫댓글 에세이를 통해 안좋은 상태라도 받아들인다는 말이 왠지 슬프지만 깊이 와 닿습니다.
잘 견뎌왔다고 다독거리지만 억울했던 기억들을 소환하기는 솔직히 두렵습니다.
그래도 써보겠습니다.
작가님! 에세이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하려고 글을 쓰신다는 작가님. 글을 쓰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고 마음이 정돈 된다는 말씀에 크게 공감이 갑니다. 글로 쓰다 보면, 정말 그랬습니다. 제가 불쑥 생각했던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있고요, 다른 사람은 그런 입장이었겠구나 라고, 타인이 되어 보기도 하고요. 저도 왜 글을 쓰는지 생각해 봅니다. 저는 정리와 정돈의 기능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정신도 넋도 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글로도 적지 못한다면 마음 속에 수풀이 엉킨 것처럼 뒤죽박죽이 돼버리곤 하더라구요. 내가 살고 있는 이유를 쓰다보면, 또 방향이 잡히기도 하고요. 세사대에 입학해서 에세이 쓰기를 배우고, 작가님과의 세작교 수업을 통해서 에세이가 점점 더 좋아집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애써 올려 주신 첨삭글도 너무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고 월요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생각을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에세이의 속성.
잘 이해가 됩니다.
이상한 질문을 한 것 아닌가 라고 생각했는데 깊이 고민해서 알려주시니 질문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