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지 않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입니다. 1998년도에 개봉되어 그 해에 흥행을 누렸던 영화입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저는 이 영화를 벤쿠버에 있을 때 저와 가족처럼 지냈던 부목사님이 CD로 구워와 ‘목사님 이 영화를 이번 성탄절에는 꼭 보세요.“라고 간청하셔서 보게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난 후에 저의 느낌은 아주 묘했습니다.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예수님 모습 한번 안나오고 그렇다고 성탄절 캐롤송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계절적으로 비교해도 크리스마스하면 겨울, 눈, 크리스마스 캐롤송 같은 것을 연상하게 되는데 1년 중 가장 무더운 8월에 크리스마스라 하니 제목자체가 서로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화자체가 저에게는 너무 난해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면서 골똘히 생각하다가 이 영화의 기독교적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이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가 성탄절의 의미를 잘 표현해주는 영화인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랑을 간직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서울의 변두리 작은 사진관에는 불치병에 걸려 인생을 정리하고 있던 사진사 정원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정원은 주차단속원인 다림을 알게 됩니다. 다림은 당돌하고 생기가 넘칩니다. 정원은 점점 다림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그것은 다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건강이 더 나빠진 정원은 그 사랑에 대해 성숙한 거리를 두게 되고 서서히 주변을 정리하게 됩니다. 어느 날 정원은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에 실려 가지만 사태를 모르는 채 문 닫힌 사진관 앞을 서성이던 다림은 편지를 써서 사진관의 닫힌 문틈에 집어넣습니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정원은 다림의 편지와 언젠가 찍어주었던 다림의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한편, 다림은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게 되어 한동안 사진관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정원은 자신의 영정사진을 자기가 직접 찍고 얼마 후에 숨을 거둡니다. 정원의 죽음과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다가오면서 다림이 사진관을 찾아오지만 사진관은 출장 중이라는 팻말과 함께 문이 닫혀있습니다. 사진관 안을 들여다보던 다림의 시선이 한 곳에 머무는 데 그것은 그녀의 예쁜 사진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원의 죽음을 모르는 듯 돌아서는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미소 띠며 떠나가는 그녀의 뒤로 보이는 사진관 진열장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흑백사진이 액자에 걸려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특징은 인간의 유한성을 일깨워주는 시간적인 이미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선 8월이라는 시간 개념, 크리스마스라는 계절과 절기 개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8월과 크리스마스는 시간성의 대조를 비유해주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또한 주인공 정원은 초원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는 사진사입니다.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과거의 소중한 추억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우리는 살아왔던 과거의 삶을 잊지 않으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저는 매순간 삶의 의미에 집착하여 사진을 좋아하는 데 제 아내는 사진 찍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아마도 제 아내가 저보다도 인생의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서 더 초탈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편린들을 우리에게 제공합니다. 따라서 정원이 사진사라고 하는 것은 이 영화가 형성되는 매우 중요한 설정입니다. 또한 영화 중간에 간간히 보여지는 시계는 주인공 정원의 죽음의 시간이 서서히 다가옴을 알려주는 매개체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영화의 주제는 인간은 영원히 시간의 공간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애초부터 정원과 다림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시간 때문이지요, 이 세상에는 정원과 다림처럼 시간의 유한성 때문에 이루지 못한 사랑이 참 많습니다.
다행인 것은 이 시간성을 초월하려는 정원의 모습이 영화 곳곳에 간간히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맨 마지막에 정원은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죽으면서 이런 편지를 씁니다.
“내 기억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정원은 사랑을 간직한 채 지상에서 영원으로 승화한 것입니다.
또한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 자체가 주인공 정원이 시간의 한계성을 초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제목은 한참 뜨거운 8월을 보내고 있는 정열적인 나이에 12월을 준비해야하는 정원의 마지막 사랑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제목의 의미는 그가 죽기 전 그해의 8월이 겨울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인 크리스마스만큼 즐거운 날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게 아닐까. 아니면 정원이 다림이라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8월에 미리 받은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일까?
마틴 하이데거에 의하면 미래라는 시간은 적당히 기다려야 할 사건이 아니라 선구적 결의로 앞당겨서 준비해야할 시간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궁극적 미래는 죽음입니다. 따라서 미래를 앞당겨 준비하는 것은 미래에 있을 죽음을 현재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삶인 것입니다. 8월을 살고 있는 정원은 몇 개월 후에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자기에게 진실한 사랑이 찾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정원은 죽음과 함게 완성되지 못할 사랑을 나름대로 지키고 싶었습니다. 8월 이후의 정원의 행동은 바로 그 미래를 진지하게 준비하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란 시간적 유한성 속에서 신음하며 탄식하는 인간을 영원으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표현입니다. 8월의 크리스마스란 죽음과 영원, 그리고 사랑이라는 미래를 앞당겨 준비하는 인간의 처절한 모습을 나타내주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즐거운 성탄절입니다. 이 성탄절에 전도사님 둘째 아들 찬율이와 함께 군산에 있는 초원 사진관을 다녀왔습니다. 여기서 바로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가 촬영된 곳입니다. 찬율이와 단둘이 갖다오느라고 엄청 힘들었는데 찬율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노래를 불러댔습니다. 그 노랫말 잊지도 못하겠습니다.
“내 마음의 한 자리
예수님 자리
내 마음의 한 자리
말구유의 자리“
첫댓글 우리를 구원하시려 오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성탄절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고 산타의 선물보다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선물을 드리는 귀한 성탄절이 되길 바랍니다.
내 마음의 한 자리ㅡ
예수님자리~~♡
Amen.
글 잘 읽고 갑니다. 목사님의 탁월한 혜안을 한편의 영화를 통해 볼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미래를 앞당겨 준비하는 신앙
임먀누엘
내 마음에도 주님을 맞이할 빈방을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