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지광향왕 / 요한복음 5:11
신약은 구약의 퇴보적 사상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자리를 가져가지 말라"고 했지만, 신약에서는 "가져가라"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안식일을 법적으로만 해석해서 계속해서 인위적인 규칙을 추가해 안식일 준수 규정을 더욱 엄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병을 고치는 것조차 금지되었습니다. 안식일 문제를 사랑의 관점이 아니라 법적 관점에서만 해석했기 때문에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의 재혼 문제도 비슷합니다. 여성들은 개인의 자유로 재혼 여부를 결정했는데, 어떤 이들은 자신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재혼하지 않고, 어떤 이들은 생활의 어려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재혼했습니다. 그런데 정절에 대한 관념을 법으로 강제하려 하니 오히려 사랑과 이해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못하고 많은 고통을 초래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율법 사상은 대부분 법적 강제에 중점을 두어 사회에 많은 폐해를 낳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38년 동안 고통받던 병자를 한 마디 말씀으로 치유해주시고 "일어나 네가 앉았던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라"고 자비로운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 병자는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겠습니까.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도 안식일(주일) 문제로 늘 논란이 있습니다. 안식일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쉬시면서 모든 이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에서는 안식일에 안식과 관련 없는 많은 일을 합니다. 농사짓거나 장사하라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고 심방하고 병자를 위문하고 설교하는 일을 합니다. 기도회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므로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분주해집니다. 따라서 안식일에는 안식과 관련된 일만 하고, 다른 날에는 세속적인 일에 부지런히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하신 일은 순수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일이며 안식일에 적합한 일이었지만, 사랑 없는 유대인들은 이를 비방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법과 관습이 많습니다. 부모에 대한 제사 풍습, 혼인법, 장례 관습 등을 모두 개선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장자의 관점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나라에 대한 충성이 좋다고 하지만, 그런 이름만 내세우고 드러내는 순간 오히려 불효와 불충이 생깁니다. 이름을 짓지 말고 법도 만들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너무 원시적이고 급진적이어서 복잡한 현대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유교에서는 이를 이단으로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분명 진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