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전망과 위안 / 히브리서 11:13
소망 없는 믿음과 사랑은 마치 허공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것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 아니며, 우리는 믿음으로 미래를 바라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을 겪고, 도둑과 적들과 싸우면서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압 평원에서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며, 그곳에 가면 더 이상의 싸움도, 배고픔도, 도둑도 없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그곳에 들어갈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우리 인류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모든 고통과 위험, 원망 속에서 괴로움과 죄만 가득한 이곳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호화로운 저택을 짓고 수백만 원을 저축한다 해도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허영을 좇던 히틀러도, 진시황도, 이완용도 모두 몰락하여 흔적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욕심과 허영에 있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보고 기뻐합니다. 이자성이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산해관에 와서 군사들에게 맹세했듯이, 이곳에 들어가 왜적을 물리치면 부귀영화와 명예가 따를 것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멀리 있는 복된 땅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곳에 들어가면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약속하셨기에 우리는 이 가운데서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봅니다. 북한은 남한을, 남한은 북한을 바라보며 서로 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는 우리의 의지로 될 일이 아니며, 홍해와 요단강이 갈라졌듯이 때가 되면 갈라질 것입니다. 지금은 어려움 속에 있지만 한국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카이로 회담과 포츠담 회담도 승인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두 회담이 순조롭게 통과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세가 모압 평원에서 가나안을 바라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의 선조들은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떠났지만, 그들 모두는 모세와 같은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비록 아직 완전한 천국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미래를 바라보며 오히려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동경하는 천국은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른 곳이 아닌 오직 예수님에게서만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보고 천국을 약속하시나요? 우리에게는 아무런 공로가 없으며, 단지 믿음뿐입니다. 마음과 성품과 뜻과 힘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고, 의지하고, 믿는 것이 전부입니다.
믿음과 사랑 안에 천국이 있습니다. 십 년을 공부해도 얻기 어려운 것을, 우리는 십 년의 고생도 필요 없이, 그저 믿기만 하면 됩니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 영화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얼마나 성장했나요? 시골에서 서울로 오느라 며칠을 고생하고 광주 너더리 고개를 넘어 삼각산을 바라보면 기쁨이 넘치듯이, 하물며 우리 주님이 계시고 아버지가 계신 곳, 진주로 된 문과 황금 길이 보이고 금거문고 소리가 들리는 곳은 우리 마음의 진정한 여정입니다.
이곳은 특별할 것 없이 우리 주님만 계시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됩니다. 높은 산이든, 거친 들판이든, 초라한 오두막이든, 호화로운 궁전이든, 어디든 주님만 계시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됩니다. 불필요한 노력을 더할 필요 없이, 주님만 모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