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나제충돌
이때 백제의 강토가 신라에 비하여 거의 3배나 더 크다. 그렇게 넓은 국토를 가지고는 탈해왕 7년 겨울에 무고히 땅을 개척 한다 칭하고 신라의 소유인 낭자곡(娘子谷)을 내침하고 신라왕과 연화를 청하거늘 탈해왕이 허락지 않았더니 그 이듬해에 또 군사를 보내어 낭자곡을 치고 또 구양성(狗壤城)을 범하거늘 나왕이 군사 2천을 보내어 쳐 물리치다. 조금 전 탈해왕 5년 8월에 마한장수 맹소(孟召)가 복암성(覆巖城)으로써 신라에 항복하고 붙인 일이 있다.
마한은 온조왕 초년에 임의 모략으로 백제가 점령하였으나 마한 백성들은 그 불의함을 미워하여 맹소가 이에 백제를 버리고 신라에 귀부함으로 백제왕의 시기하는바 되었다. 맹소는 강포한 백제의 신하 되기보다 관후 인자한 신라에 붙이는 것이 옳은 줄 알고 와서 항복하였다. 이때 백제는 이것을 몹시 시기하여 신라를 건드린 모양이다. 이것이 도리어 백제에게 크게 이롭지 못하였다.
백제 근초고(近肖古)로 때 독산성주가 3백여 인을 거느리고 또 신라에 붙이거늘 신라 내물(奈勿)왕이 받아 6부에 거하게 하였더니 제왕이 글을 보내어 책하되 두 나라이 서로 형제가 되었거늘 이제 대왕이 백제의 도망한 백성을 받으니 형제의 의에 어기었다. 청컨대 돌리소서. 나왕이 답하되 백성은 상성이 없으니 품으면 오고 막으면 가는지라. 대왕이 백성들의 불안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광인을 책하니 심히 불가하다 하니 이후로 두 나라의 교제가 평화롭지 못하고 따라서 두 나라의 정치가 서로 다른 것은 알 수 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나니 신라는 남의 토지를 엿본 일도 없고 빼앗은 일도 없고 항상 겸손하고 온유하여 나라가 점점 넓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