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실리 2Km> 귀신은 거시기를 무서워한다
맛깔나는 영화여행/2004 건방떨기
2011-06-26 14:18:00
<2004년 8월 13일 개봉작 / 15세 관람가 / 109분>
<감독: 신정원 / 출연 : 임창정, 권오중, 임은경, 변희봉>
1. 공포영화에 질리다. 나는 영화를 본다. 장르는 공포인데, 왠지 공포답지가 않다. 사람을 무섭게 하는 대신, 깜짝깜짝 놀라게만 하는 공포. 올여름에 등장한 공포영화는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대신, 심장을 놀래켜 딸꾹질만 일으키게 하는 영화가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그렇게 공포영화에 식상하던 어느날. 나는 시실리에 간다. 시실리에는 착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다이아를 강탈한 석태란 녀석은 착한 사람들 틈에 끼여 자신의 미래에 대해 찬란한 꿈을 꾸며 행복해한다. 그러나, 착한 사람들은 장난이 심하다. 화장실에서 기뻐하던 석태. 마을 사람들의 장난에, 굉장히 많이(!) 다쳐버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싸늘함. 그러나, 그들은 무섭지 않다. 오히려 그 상황을 즐기며 코 속에 숨어있는 다이아를 발견한다. 이후로, <시실리 2km>는 오리무중에 빠져, 장르를 모호하게 만든다. 묘한 매력이다.
2. 나는 무섭지 않다. 아무리 무서운 영화를 봐도, 나는 무섭지 않다. 그러나, 가끔 긴장되기는 한다. 대부분의 공포영화들이 그렇듯, 놀래기 전의 싸늘한 순간. 그 순간이 긴장되는 순간이요, 가장 시원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실리2km>에는 이런 싸늘한 순간이 없다. 대신, 그 싸늘한 순간을 웃음으로 대처해 버린다. 그렇고 그런 공포영화들과, 뻔하디 뻔한 코미디에 질려가는 순간, <시실리 2km>는 색다른 장르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한다. 나는 무섭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지만, 무섭지도 않고 웃기지도 않기에 더욱 웃긴다. 나는 말장난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은 말장난을 즐기고 싶다. 그것이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3. 엉뚱한 상상 나는 무섭지 않기에, 영화 속 주인공 양이는 귀신을 어느 순간부터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귀신과 노닥거리기까지 한다. 영화 속의 귀신은 귀신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다. 나는 귀신과의 사랑을 꿈꾼다. 귀신이 내게 와 밀어를 속삭이면 나는 대답한다. 널 사람으로 만들어 주께. 그러나, 귀신은 거절한다. 귀신은 양이를 살려보내고 싶다. 단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기에. 그 때문에 귀신은 양이를 위해 마을 사람들에게 복수한다. 귀신과의 사랑을 꿈꾸던 나는 귀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편히 잠드소서. 위로같지 않은 위로다. 그러나, 가장 해줘야 할 말이다.
4. 시실리 2km 시실리 -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친구 중 어떤 이의 예명이 시실리다. 그는 이 별명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는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욕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또한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어떤 친구는 내가 연구대상이라 말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그가 연구대상이다. 묘하게도 <시실리2km>는 그 친구를 보는 느낌이다. 그와 같이 술자리에 있으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는 술에 너무 취해 버리면 잠이 들어버린다. 한번 잠이 들면, 깨울 수도 없다. 그는 자주,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항상 시간을 잃어버리고 산다. 작년까지만 해도, 직업군인이었던 그가 사회로 복귀한지 이제 불과 몇 개월이다. <시실리 2km>는 그 친구 같다. 자주 만나는 건 아니지만, 언제 봐도 정신없고, 보면 늘 똑같은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르고, 그렇다고 다른 이와 똑같은 것을 무진장 싫어하는…
5. 마무리(?) 위와 같은 영화에서 마무리는 꼭 중요한 게 아니다, 라고 말하면 큰 착각이다. 위와 같은 영화일수록 마무리는 200% 중요하다. 그러나, 또 중요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새삼, 양이가 <깍두기>란 걸 확인시킬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시실리 2km>에서는 역할이 전이된다. 조폭과 서민의 역할. 아, 그러고 보니 우리가 정말 경계해야 될 대상은 눈에 보이는 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겉으로는 착한 듯 보이지만 위선의 탈을 쓴 그런 인간들을 조심해야 하는 거구나! 음..예를 들면, 안경을 쓴 꺼벙이 같은 인간? (이 모델은, 실은 필자다..ㅠㅠ) 아무튼, <시실리2km>는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임창정의 연기와 그에 어울리는 역할이 톡톡히 한 몫 해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영화에서 너무 많은 걸 기대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초반엔 <조용한 가족>을 너무 많이 모방한 듯하고, 후반엔 외국의 펑키호러 영화들을 짜깁기한 듯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수를 쳐줄 수 있는 것은 임창정의 역할이 극 중에 잘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음… 특히나 그 씬… 알만한 사람 다 아는 그 씬… 그 씬은 압권이다. (그러니까, 귀신이 거시기를 무서워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