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삼백예순두 번째
그때 우리는 억울하게 야단맞았다
어제 막내 손녀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갔다가 학원 앞 출입구에 학원생들이 얼마나 좋은 점수를 받았는지 자랑스럽게 붙인 벽보를 보았습니다. 90점 이상자만 공개되었고, 89점짜리는 발붙일 데가 없었습니다. 치열한 경쟁사회를 실감합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들의 지친 어깨가 선합니다. 전에 어느 여학생이 최고 성적을 내고는 유서를 남기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서 내용은 이랬습니다. “엄마, 이제 됐어?” 어미의 가슴을 할퀴고 떠난 학생이지만,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랬을까, 가슴이 먹먹했었습니다. 우리가 초등(국민)학교에 다닐 때는 “수우미양가”로 평가했었습니다. ‘수’나 ‘우’가 아니라 ‘미’만 받아도 야단맞거나 눈총을 받아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훗날 보니 그때의 ‘수우미양가’는 매우 훌륭한 평가제도였습니다. 수秀, ‘빼어나다’라는 말이니 정말 잘한 거지요. 그다음이 우優인데 ‘뛰어나다’라는 말이니 칭찬받을 만하지요. 다음이 미美였습니다. 여기서부터 야단맞습니다. 그런데 아름다울 미美이니 최소한 ‘좋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싶지만, 야단맞았습니다. 그다음이 양良, 어질 량良이니 ‘이만하면 괜찮다’라고 머리 한번 쓰다듬어줄 만도 한데 몹시 야단맞았습니다. 맨 끝이 가可였습니다. 옳을 가可이니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인데 회초리를 맞아야 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참으로 억울하게 야단맞은 겁니다. 그러나 그 평가 방식은 참으로 어질고 희망적이며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래야 오히려 낙오자가 없지 않게 되지 않을까요? 입학식에서 눈에 띄는 순서는 아이들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행사였습니다. 아마도 졸업 때까지 왕관을 쓴 신분으로 잘 지도하겠다는 학교 측의 뜻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수우미양가’가 더욱 어울리는 평가 방식인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