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중반 이후 유럽의 창작계에서는‘점묘적 음렬주의(Punktueller Serialismus)’가 주도권을 상실하고 음악 표현의 다원성이 등장한다.현대음악의 메카‘다름슈타트 하기강습회’에서 슈톡하우젠,불레즈,케이지 등은‘우연성’의 요소를 도입한 곡을 발표하거나 강연을 통해 ‘우연성 음악’을 소개하면서 음렬주의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계기를 만든다.이때 세계 유수의 작곡가들은 음악 표현의 다양성을 위해 이국적인,특히 (동)아시아의 음악을 소재로 눈을 돌리게 된다.올리비에 메시앙과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은 인도의 전통적 리듬과 형식에서 영향을 받으며,케이지는 유전(流轉)의 책인 중국의〈역경〉에 직접적 토대를 두는 음악적 처리방식을 선보였다.미국 출신의 아방가르드 작곡가,펠드만(M. Feldman, 1926~87)은 음악적 명상[禪]을 자신의 음악에 차용했다. 음렬음악이 이처럼 퇴조하게 된 이유는 체계적으로 배정된 음렬구조와 그에 어울리게 짜여진 음색구조를 적절히 배합함에서 있어서 그 한계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이러한 문제점은1960년대에 들어 헝가리 출신의 리게티(G. Ligeti, 1923~ )와 폴란드 출신의 펜데레츠키(K. Penderecki, 1933~ )가 이제까지 작곡의 부차적 영역으로 간주했던 음색을 비중있게 취급한,말하자면‘음색의 해방’이 이루어지는 소위 ‘음색 작곡(Klangfarbenkomposition)’또는‘음향면 작곡(Klangflä chen kom po si tion)’이라는 새로운 작곡방식을 개발해내면서 극복된다.바야흐로 음향색(Klangfarbe)이 음악의 주요 요소로 부각된 것이다.작곡가들은 음향재료의 확장 가능성을 두고 고민했으며,이때 비유럽권에서 유입된 악기,특히 타악기는 음악에 질적 변화를 가져다주었다.이와 더불어‘소음’이라는 현상이 관현악 음향에서 갖는 의미가 증폭되었다.리게티는 이러한 유의 작품으로〈환영(Apparitions)〉(1959)과〈분위기(Atmosphäres)〉(1961)를,그리고 펜데레츠키는<폴리모르피아(Polymorphia )>(1961)를 발표했다. <출처:서양음악사100장면(2),p.4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