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번째 광복절이다 그러나 이 나라 대통령인 윤석렬은 광복이란 말보다 건국이란 말을 더 좋아한다
1945년 일제에게서 광복을 찾은 것보다 1948년 이승만이 건국한 것을 더 의미있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일제에게서 나라를 되찾은 것보다 일제잔재를 유지시킨 친일파들을 앞세운 이승만 정부의 건국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전 그 어떤 보수 정권에서도 거론했던 일본의 책임과 과오의 내용이 빠진 친일만을 외치는 경축사로 시종일관 끝을 맺은 첫 대통령 경축사가 되었다 매일 개탄하는 나날이다
제천 의림지로 향했다
지난 번 방문엔 겨울이어서 여름 의림지를 찾고자 첫 여정지로 잡았다
입추가 지났어도 여전히 폭염이 계속되었지만 의림지 주변엔 오래된 나무 그늘이 많아서인지 바람이 시원해 폭염기운을 느끼지 못했다
더욱이 눈 앞의 싱그러운 풍광은 더욱 시원한 기분을 갖게 한다
의림지는 제천에 있는 유서가 깊은 고대 수리시설 중 하나이다 제천의 옛 이름인 내토(奈吐)·대제(大堤)·내제(奈堤)가 모두 큰 둑이나 제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이 제방의 역사가 서력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오르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신라시대 악성 우륵이 금(가야금)을 탔다는 우륵바위(제비바위, 연자암) 쪽에서 바라본 의림지의 모습이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오리배를 타는 등 하루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이 의림지는 조선시대 동복오씨 선조인 연초재 오상렴 공과 관련 깊은 곳이다
연초재는 이곳에서 스승이자 고모부인 김봉지, 허규 등 어른을 모시고 때론 또래인 김이만, 김덕유, 박성서, 홍서경, 허중강 등과 호수를 즐기며 놀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의림지가 어떤 존재로 조선시대 이어졌고 또 그들이 이 의림지를 어떻게 보존시키는데 한 역할을 했는지도 알 수 있다
湖上吟(호수 위에서 읊음) - 오상렴
높은 봉우리 하늘의 대궐처럼 벌려있고 危峰近天闕
창공의 푸른 빛은 사람 옷깃에 스며 있네 空翠濕人衣
바람 없이도 꽃은 스스로 지고 있으니 無風花自落
산새는 홀로 놀라서 날아가네 山鳥忽驚飛
바람 없이도 왜 꽃은 스스로 지고 있다 했을까?
남인이었던 그들의 그러한 자취는 남인이기에 전해지질 않고 서인들에 해당하는 인물들 것만 주로 전해진다
次 金兄舟中韻(김형의 주중시를 차운함) - 오상렴
늦게 찾아온 바람에 의해 물가에 봄빛이 피는데 晩來風色動春洲
한 조각 외로운 배 흰 물결 위에 떠있네 一片孤舟白浪頭
노는 꺽이고 돛은 부러져 내 어찌 할 수 없다지만 檣折帆傾無奈我
하늘이 비어있고 물은 넓게 펼쳐있으니 그 뜻은 유유하다네 天空水濶意悠悠
노는 꺾이고 돛이 부러진 신세, 남인이기에 공부가 무르익었어도 과거에 급제해 서인들이 주관하는 나라의 국정에 들어갈 수 없음을 한탄하는 푸념의 마음. 그러다가 연초재는 28세의 꽃다운 나이에 이 세상을 작별한다
湖亭曉望(의림지 호숫가 정자에서 새벽에 바라봄) - 오상렴
무수한 푸른 산이 홀연히 비어 지더니 無數靑山忽若空
새벽 되자 구름 기운 천 겹이나 쌓이네 曉來雲氣罩千重
날이 새 해가 오르자 가랑비 어두움 서서히 걷히고 平明日上冥濛際
비로소 동남쪽 서너 봉우리만 겨우 드러나 보이누나 露出東南三四峰
의림지란 석비 앞 오랜 고사목이 쓰러져 자신은 썩어가며 우리에게 의자처럼 쉴 곳을 아낌없이 마련해 준다
낮은 산줄기 사이를 흐르는 작은 계곡을 막은 제방은 길이가 530척(尺)이며, 수위는 제방 밖의 농경지보다 매우 높아서 관개면적이 400결(結)이나 되었다. 못의 둘레는 5,805척이나 되고 수심은 너무 깊어서 잴 수 없다고 하였다.
주변의 노송은 300년 전 그들이 보았을 법한데 이 집은 300년 전에도 있었을 그 주막의 자리이런가?
信筆(붓 가는대로 지음) - 오상렴
뜰의 풀은 봄이 오자 푸르르고 庭草春來綠
마을 연기는 해 저물자 가득하네 村煙日暮多
산 속의 하룻밤 비 山中一夜雨
시냇가 두어 가지 꽃 溪上數枝花
술은 익는데 누구와 함께 취하리 酒熟誰同醉
詩는 이루어지는데 혼자서만 자랑하네 詩成謾自誇
벗은 천리 밖에 있으니 故人在千里
서로 사모하는 마음만 어이하리 相憶意如何
敬次疎隱韻(공손히 疎隱 허규의 글을 차운함) - 오상렴
갈대꽃은 끊어진 언덕을 덮고 있는데 蓼花被斷隴
하늘은 깨끗하고 서늘한 이슬만 무거워라 天淸凉露重
옷 걷은 후 차가운 가을 시내 건너가니 褰衣涉秋水
먼 마을엔 연기불이 피어 오르네 遠村烟火動
溪上吟(시냇가에서 읊음) - 오상렴
두 개의 봉우리는 말의 귀와 같고 兩峰如馬耳
밝은 달은 그 사이로 떠오르는데 明月當其間
한쪽 벽이 튀어나와 있어 露出半箇璧
맑은 빛이 먼저 얼굴로 들어오네 淸光先照顔
閨怨(규방의 원망) - 오상렴
옛 사람 떠날 때를 회상해보니 憶昔君去日
창 앞에 처음 심은 나무가 생각나네 窓前初種樹
그 나무 지금은 누각처럼 커다란데 樹今如樓齋
아직도 그대는 交河에서 수자리(변방을 지키는 일) 살고 있누나 君在交河戌
觀瀑(폭포를 보다)- 오상렴
아침 되자 지팡이 끌고 紅流洞에 이르니 朝來杖策紅流洞
폭포가 힘차게 내리 쏟아 그 기세 대단하네 瀑水嗔人氣勢驕
바람과 비와 우뢰 소리에 양쪽 벽이 찢어지고 風雨雷霆雙壁裂
소나무와 삼나무 잣나무는 네 산에 흔들리네 松衫栝栢四山摇
푸른 하늘이 거꾸로 쏟아지니 蛟龍의 굴이요 靑天倒瀉蛟龍窟
흰 해가 비껴 밝으니 무지개 다리일세 白日斜明蝶蝀橋
자못 지난 날의 秦나라 楚나라 일 기억하리 頗憶徃時秦楚事
눈 속에 보이는 河朔(黃河의 북쪽)이 전혀 멀지만은 않네 眼中河朔未全遙
賦得綠衣使者(녹의사자-앵무새-를 읊음) - 오상렴
언덕 우편 영험스런 새 이름 녹의라 하는데 隴右靈禽號綠衣
너울너울 채색쭉지 帝城에서 날으네 翩翩彩翮帝城飛
어이해 그만 楊家(장안성에 楊崇義가 살았는데 그 아내 劉氏가 내연남과 함께 술 취한 양숭의를 죽여 우물에 묻었는데 그 광경을 앵무새만이 보고 있었다 관가에서 조사할 때 이것을 앵무새가 말해 밝혀지니 明皇이 녹의사자를 봉했다)의 일만 말하고 如何只說楊家事
오랑캐 아이가 貴妃를 더럽힌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인가? 不道胡兒汚貴妃
그나마 300여 년 전 그들의 자취 중 한 곳만 현재 전해지고 있구나
후선각터 : 전 밀양군수 김봉지가 세운 것이다 김봉지는 임진왜란 3대첩 김시민과 일가간이다 증조부 김시양은 김시민과 4촌이다 그런 연고로 증평의 독서왕 김득신 묘비를 9촌 조카 김봉지가 쓰게 된다 그러나 남인이었던 그의 후손은 아들 김덕유가 서인이 세운 정권 영조 때 이인좌의 난( 무신 난)과 연루되어 폐족절명하였으니 그들의 역사는 거의 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충청도지방에 대한 별칭인 ‘호서(湖西)’라는 말이 바로 이 저수지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방과 호수주변에는 노송과 수양버들이 늘어섰고 1807년(순조 7)에 세워진 영호정(映湖亭)과 1948년에 건립된 경호루(鏡湖樓)가 있으며, 이곳 특산물로는 빙어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