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麗左僕射兼晋州君府君, 高麗左尹府君神道碑銘幷序
고려좌복야겸진주군부군, 고려좌윤부군신도비명병서
高麗尙書省左僕射,晋州君 任公德生
高麗三司所屬左尹 任公乙馹
높은 德行과 쌓인 仁功이 마치 地球처럼 重厚하고 바다처럼 깊었는데도 世上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마음이 아프도다. 하늘은 묵묵히 우리 任氏가 처음 일어날 때를 도우하사 忠貞과 孝를 다하는 後孫들을 두었으니 萬世를 지나도 의심할 바 없다. 高麗의 歷史를 몸소 겪으면서 청렴함을 몸소 누리시며 눈부신 빛으로 子孫을 보살피고 있도다. 예향의 도시 全州 석산의 양지편에 後孫들의 熱과 誠을 다하여 祭壇을 세우도다. 公의 姓은 任이요 籍은 豐川이요 諱는 德生이다. 官爵은 榮祿大夫 尙書省 左僕射이니 司錄 諱溫字를 上祖로 삼다. 尙衣局奉御 諱備, 檢校大將軍 諱徒, 御史大夫 諱澍 西河府院君 諱子松은 그의 고조, 증조, 할아버지, 아버지시다.
高麗 忠烈王 복위 7年에 生하시어 忠肅王 16年에 司馬試에 及第하여 生員이 되었으며 尙衣奉御와 大司成을 거쳐 尙書六部를 통괄하던 尙書省 正2品 左僕射를 지내고 恭愍王때 정치개혁의 功勞로 國王으로부터 晋州君으로 奉받고 이후 豐川任氏에서 晋州任氏로 分貫하여 晋州任氏 鼻祖로다. 配는 翰林國史院 鄭言哲의 女인 貞夫人 延日鄭氏이며 忠肅王 복위 2年 1334年 生男하였으니 諱乙馹이로다.
諱乙馹은 국가왕실에 대한 有功者인 父親의 영향으로 鄕職인 佐尹을 지내고 高麗朝 司馬試에 及第하여 국가의 전곡 출납 및 회계를 담당하는 三司所屬의 從3品 左尹을 지내시다. 配는 進士 蔡元尙의 女인 淑夫人 平康蔡氏이며 諱乙馹은 全州에 起居하며 諱衡과 諱權을 生男하였으니 長子 諱衡은 高麗朝 1385年에 蔭敍로 官職에 나가시고 1389年 창왕1年 文科 科擧에 及第하여 吏曹正郞 獻納을 하시고 次子 諱權은 萬戶宣傳이라. 諱衡은 1392年 恭讓王3年 8월 5일 高麗 멸망 하고 조선이 건국되어 그 해 12월 1일 朝鮮 太祖가 人才 薦擧와 時務策을 定할 때 忠臣不事二君으로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인 全州로 落鄕했다. 國王은 諱衡과 절친한 翼成公 黃喜통해 幣帛을 보내시어 벼슬을 권유하자 단호히 거절하였으니 翼成公은 伯夷叔齊 이후 또 한사람이라 王에게 告하도다. 왕의 부르심에 慶尙道 首陽山에 隱居하며 忠節을 지킨 그가 晋州任氏 始祖가 되시도다.
자랑스럽다 鼻祖는 尙書省의 左僕射요 諱乙馹은 高麗國 左尹으로 淸廉의 所有者이며 始祖의 忠義는 伯夷叔齊와 같도다. 3代에 거쳐 忠孝禮知를 갖춘 조상님임을 극히 알고도 남음이라. 물이 멀리 흐르고 산이 높다 한들 先祖의 氣像과 비교할 수 없고 後孫으로 부끄러움이 없이 精誠을 다하여 禮로서 表하는 바이다.
西紀2021년 4월 5일에 鼻祖 諱德生의 21世孫 和永이 讚하노라.
碑文謹撰 : 晋州任氏歷史硏究院長 秀林 任和永
晋州任氏歷史硏究院 任和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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