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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엘리후의 두 번째 연설 : 욥에게 죄의 고백을 촉구함(욥기 34:1~37)
* 본문요약
엘리후는 욥이 물 마시듯 하나님을 훼방하고,
감히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정죄했다고 비난합니다.
엘리후는 극한 고통 속에서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외친 절규를
하나님을 향한 비방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다른 것은 몰라도 욥이 하나님을 비방하고 정죄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죄악이었다며 욥을 거세게 몰아붙입니다.
엘리후는 악한 자가 하나님 앞에서 숨을 곳은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를 심판하실 때에 그 어떤 준비도 하실 필요가 없으며,
어느 때든 하나님께서 원하실 때 즉시 심판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하나님께 불평할 권리는 없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욥이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이 합당하냐고 묻습니다.
욥이 이렇게 하나님께 적대행위를 하고 있으니 이제 하나님 편에서 하실 일은 없다면서,
그렇게 계속 하나님께 적대를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앞에 회개하며 나올지 결정하라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과 같이 무식하고 악한 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말하며,
욥이 그가 지은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까지
그가 당하고 있는 재앙이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찬 양 : 539장(새 488) 이 몸의 소망 무엔가
347장(새 212) 겸손히 주를 섬길 때
* 본문해설
1. 욥의 말을 인용함(1~9절)
1) 엘리후가 계속 이어 이르되
2) “지혜 있는 어르신들이여, 내 말을 들으십시오.
지식(학식)이 많은 분들이여(아는 것이 많다고 자부하시는 분들이여)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3) 혀가 맛을 분별하듯 귀는 말을 분별합니다.
4)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들은 말에 대하여) 이제 우리 모두가
무엇이 옳은지를 분별하고,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함께 알아봅시다.
5) 욥 어른은 “나는 옳게(의롭게) 살았는데도,
하나님께서 내 의를 부인하셨다 (나를 옳지 않게 여기신다)”하고 말하였습니다.
6) 또 욥 어른은 “나는 정직한데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았고,
죄가 없음에도 치유할 수 없는 심한 상처를 입었다”라고도 하였습니다.
7) 도대체 이 세상에 욥과 같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훼방하는(비방하는) 말을 물 마시듯 하고 있지 않습니까?
8) 그리고 그는 악을 행하는 자들과 친구로 지내고, 악인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9) 겨우 한다는 소리가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그는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물 마시듯 하고 있지 않습니까?(7절) :
욥은 다만 자기에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절규하였을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 원망도 하고 불평도 했지만
결코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극한 고통 속에서 욥이 외친 절규를
하나님을 향한 훼방과 비방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2. 욥의 완고한 태도를 공격함(10~17절)
10) 그러므로 총명이(분별력이) 있는 여러분은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악을 행하지 않으시며,
전능하신 이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으십니다.
11) 하나님은 사람이 그 행한 대로 갚으시고, 사람이 살아온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12)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고,
전능하신 이는 공의를 무너뜨리지 않으십니다.
13) 누가 땅을 그에게 맡겼습니까? 누가 온 세상을 그에게 맡겼습니까?
14)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만 생각하시고 그의 영과 그의 숨을 거두신다면
15) 이 땅에 육체를 가진 모든 자들이 일시에 죽어 모두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16) 그러니 만일 조금이라도 총명이(지각이) 있다면 이 말을 귀담아 들으시고,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17) 공의를 미워하는 이시라면 그가 어찌 다스리시겠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정죄하십니까?
-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정죄하십니까?(17절) :
엘리후는 욥의 절규의 외침을 하나님을 정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3.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편파성이 없으신 하나님(18~24절)
18) 하나님은 왕에게라도 “너는 비루하다(쓸모없는 인간이다)”하고 말씀하시고,
지도자들(귀인들)에게도 “너는 악하다”하고 말씀하시며
19) 하나님은 통치자라고 해서 편을 들지도 않으시고,
부자라고 하여 가난한 자들보다 더 낫다고 여기지도 않으십니다.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0) 그들은 한밤중에라도 순식간에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시면 백성들도 떨며 사라지고,
세력이 있는 자(힘센 장사)라도 손 하나 대지 않고 간단히 없애 버리실 수 있습니다.
21)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하는 모든 일들을 낱낱이 지켜보십니다.
22)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곳은 없습니다.
흑암 속에서도 숨을 수 없고,
죽음의 그림자(죽음의 그늘이 드리운 곳)에서도 숨을 곳은 없습니다.
23)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래 조사하거나, 오래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24) 또한 하나님은 세력 있는 자(집권자)를 바꾸실 때에도 미리 조사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4.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25~30절)
25) 이와 같이 하나님은 사람의 모든 행위를 다 아시니
그들을 밤사이에 뒤집어엎으시면 (그들이 누구라도)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26) 하나님이 그들을 악한 자로 여기셔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치시는 것은
27)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고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길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28) 그들이 이처럼 가난한 자들을 울려서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올라가게 되면,
그 빈궁한 자들이 울부짖음을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29) 그러나 주께서 사람에게 평강을 주신다고 해도(주께서 침묵하신다고 해도)
누가 감히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주께서 자기 얼굴을 가리우신다고 해도(주께서 숨으신다고 하여도)
누가 감히 그를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민족에게나 인류에게나 동일하시니
30) 이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 주께서 침묵하신다고 하여 누가 감히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29절) :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의 울부짖음에 대해
즉각적으로 응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향하여 비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불평했던 것에 대한 비난으로 엘리후가 한 말입니다.
5. 욥에게 죄의 고백을 촉구하는 엘리후(31~37절)
31) 욥 어른은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고서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32) 잘못이 무엇인지를 일러 달라고 하나님께 요구하면서,
내가 악을 행하였다면 다시는 그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적이 있습니까?
33) 하나님이 네 뜻대로 갚으셔야 하겠다고 네가 그것을 싫어하느냐?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너는 아는 대로 말하라.
[설명 : 하나님이 욥 어른이 원하는 대로 행하지 않으신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싫어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나님께 적대적으로 반항이나 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속량을 베풀어주시기를 바라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아니라
욥 어른이 스스로 선택할 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계속 반항할지 순종할지)
욥 어른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34) 총명이 있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면, 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35) 욥 어른은 알지도 못하면서 무식하게 말을 하니,
그의 말에는 지혜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36) 나는 욥이 자기의 죄를 깨달을 때까지(자신의 죄를 인정할 때까지)
이 시험이(이 재앙이) 계속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욥이 말하는 것이 악한 자와 같기 때문입니다.
37) 그는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죄를 짓고, 거기에다 반역까지 더하였습니다.
손뼉을 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내가 악을 행하였으면 다시는 그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습니까(32절) :
욥이 하나님께 억울하다고만 했지 회개를 하지도 않았고,
혹시 자기에게 악이 있다면 악을 행하지 않겠다는 고백도 하지 않았다면서
엘리후가 욥을 조롱하며 비난하는 것입니다.
- 그러면 스스로 선택할 일입니다.(33절) :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하지 않으신다고 하여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적대적으로 반항이나 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그렇게 욥이 회개하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께 적대적으로 반항만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욥의 그런 기도를 듣고 구원을 베풀어주시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니 회개를 할지, 계속 반항하며 적대할지는 욥이 결정할 문제이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 내가 할 것이 아니니(33절) :
엘리후는 ‘내가’로 1인칭으로 말하고 있으나,
하나님을 대리하여 엘리후가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니
‘그가 할 것이 아나니’, 혹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아니니’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말씀을 자신이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으니
엘리후가 감정이 격해져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교만을 범하는 모습입니다.
- 욥이 죄를 깨달을 때까지 이 시험이 계속 되기를 원합니다(36절) :
엘리후 역시 욥이 당하고 있는 재앙이 그의 죄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들처럼 재앙만 보고 하는 말이 아니라,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는 절규를 한 것을 듣고 그가 죄인이라 단정합니다.
그리고는 욥이 그 죄를 인정하고 회개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중단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악담을 합니다.
* 묵상 point
1. 엘리후의 설교 : 편파성이 없으신 하나님
엘리후는 첫 번째 연설에 이어 곧바로 두 번째 연설을 시작합니다.
엘리후의 두 번째 연설은 첫 번째보다 더 강력합니다.
욥의 세 친구가 그러했듯
엘리후 역시 욥이 발언 중 일부를 왜곡하거나 강조하여 욥을 죄인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그의 연설 중에서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부분은
우리가 귀담아들어야 할 부분이므로 그 부분을 정리합니다.
1) 진실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10~12절)
‘하나님의 공의’는 복 있는 자에게는 복을, 죄 있는 자에게는 벌을 주시는
그 복과 죄의 판결을 공정하고 확실하게 행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악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전능하신 이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않으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이 그 행한 대로 갚으시고,
사람이 살아온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2)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13~16절)
엘리후는 만일 하나님께서 자기만 생각하시고 사람의 영과 숨을 거두신다면
이 땅에 육체를 가진 모든 자들이 일시에 죽어
모두 흙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이 세상 최고의 능력자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욕심에 치우쳐서
사람들의 생명을 거두신다면 이 세상의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든
사람이 감히 그 앞에서 이런저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후의 말은 하나님이 두려우신 분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편파성이 없으신 하나님(18~20절)
하나님은 왕에게라도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다”하고 말씀하시고
지도자들(귀인들)에게도 “너는 악하다”하고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왕이라고 해서 편을 들지도 않으시고
부자라고 하여 가난한 자들보다 더 낫다고 여기지도 않으십니다.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손수 지으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치시면 백성들도 떨며 사라지고 한밤중에라도 순식간에 죽습니다.
세력이 있는 자(힘센 장사)라도 손 하나 대지 않고 간단히 없애 버리실 수 있습니다.
4)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21~25절)
엘리후는 악인이 하나님의 눈을 피하여 숨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심판하기 위해서 오래 조사하거나 오래 생각하실 필요가 없으며,
왕과 같이 세력 있는 자를 바꾸실 때에도
밤사이에 그들을 뒤집어엎어 멸망 당하게 하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모든 것을 낱낱이 아시는 하나님은
그 어떠한 은밀한 죄도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 묵상 :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잃어버린 현대인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랑이 많으시다 보니
하나님이 이렇게 두려우신 분이심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니
하나님께서 결국 세상 만민을 심판하시리라는 것도 잊고 살아갑니다.
일단 심판을 하시고 난 후에는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처럼 어느 날 느닷없이 그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기도 하시지만, 두려우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말씀에 두려움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2. 그러나 엘리후는 욥의 말을 과장하여 공격합니다.
1) 욥을 거칠게 몰아치며 공격하는 엘리후(1~9절)
엘리후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이렇게 좋은 정리를 해 주었지만,
엘리후는 욥이 한 말을 과장하여 공격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엘리후는 이 세상에 욥처럼 하나님을 훼방하는(비방하는) 말을
물 마시듯 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악을 행하는 자들과 친구로 지내고, 악인들과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겨우 한다는 소리가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 봐야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고 말하고 있다고 욥을 비난합니다.
2) 하나님을 향한 절규를 하나님을 적대하는 것으로 평가한 엘리후(6~7절)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재앙을 내리셨느냐”하고 부르짖은 것을
하나님을 훼방하며 적대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극한 고통에서 하나님께 절규한 것을 하나님을 향한 비난으로 몰아갑니다.
극한 고통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절규하는 자의 심정을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엘리후는 욥의 아픔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비난하려고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욥이 악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악한 말만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엘리후(8~9절)
욥이 언제 악한 사람들과 어울려 다녔습니까?
욥이 언제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을 했습니까?
그는 다만 그가 겪고 있는 고통 속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외쳤을 뿐입니다.
● 묵상 :
혹시 엘리후처럼 아파하는 소리를 불평과 원망의 소리로 알아듣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한 적이 없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불평하는 소리와 아픔 속에서 절규하는 소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도움이 필요한 자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3. 욥을 추악한 범죄인으로 몰아가는 엘리후
엘리후 역시 욥의 세 친구들처럼 욥을 흉악한 범죄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욥의 세 친구는 욥이 재앙을 당한 것을 보니
틀림없이 죄인일 것이라고 추정하다가 점차로 죄인으로 몰아갔던 것인데 반하여,
엘리후는 욥이 했던 말을 근거로 욥이 죄인이라고 규정합니다.
다음은 본문에서 엘리후가 욥을 공격했던 말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해서 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인가?(28~30절)
엘리후는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의 울부짖는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신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그 누가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비난할 수 있느냐며 욥을 비난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의 울부짖는 기도는 들으시지만
욥처럼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 백성을 옭아맨 자의 기도는
듣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엘리후는
고통 속에서의 절규와 하나님을 향한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욥의 절규를 하나님을 향한 비난으로 몰아가다가
아예 욥을 경건하지 못한 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인가(33절)
욥이 자신은 이런 재앙을 당할만한 죄를 범한 적이 없다면서,
그 까닭을 말해주지는 않고 재앙만 내리느냐고 하나님께 절규하며 호소한 것에 대하여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이냐고 따져 묻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싫어하고 있으면서
자기가 싫어하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싫어하면서
그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만 호소하고 회개하기를 거절하면,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실 것 같으냐고 비아냥거리며 욥을 비난합니다.
욥은 회개를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려주시면 춤이라도 추겠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욥이 가장 답답해했던 것은 자신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실체를 말씀해주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후는 억울한 심정에 회개를 거절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싫어하며 하나님께 적대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 그러다 엘리후는 자기가 하나님의 대리인인 것처럼 교만을 범합니다(33절)
“그러면 네가 스스로 택할 것이요 내가 할 것이 아니니”
위의 본문 해설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기에서 ‘내가’는 하나님을 뜻합니다.
엘리후는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도 된 것처럼
“내가 할 것이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욥같이 추악한 범죄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없으니
하나님께 회개할 것인지 지금처럼 계속 반항하며 적대할 것인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 된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3) 욥처럼 무식하고 지혜가 없는 자가 세상에 또 있는가(35~37절)
재앙을 당하기 이전의 욥의 상황을 잘 모르는 엘리후는,
극한 고통 속에서 절규하는 욥의 외침을 듣고는
욥처럼 무식하고 지혜가 없는 자가 세상에 또 어디에 있느냐며 욥을 조롱합니다.
욥에게 하나님을 향한 경건한 모습도 없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겸손한 태도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저 무식한 사람처럼 고래고래 하나님께 소리만 지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기의 억울함만 호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이런 방식의 기도는
백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투로 욥을 조롱하고 있습니다.
4) 욥은 죄에다 반역까지 더하고 있으니,
나는 욥이 자기의 죄를 깨달을 때까지 이 재앙이 계속 되기를 원한다(36절)
엘리후는 욥이 회개를 거절하는 죄에다가
하나님을 비난하는 반역까지 더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욥과 같이 악한 사람은 죄를 깨닫기까지
결단코 재앙이 끝나서는 안 된다는 악담까지 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근동 지방에서
아주 큰 사람으로 널리 이름을 떨치고 있던 자였음을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셨다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단지 극한 고통 속에서
욥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절규의 외침을 하나님을 향한 비난으로 몰아가며,
욥을 무식한 무지렁이라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말 몇 마디로 그의 인생 전체를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혹시 우리도 본문의 엘리후처럼
말 몇 마디 듣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일은 없었는지
우리들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기도제목
1.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경외감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2. 이웃의 아파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게 하옵소서.
3.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을 주옵소서.
4. 엘리후의 말처럼
억울하다고 답답하다고 하여
신앙까지 포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게 하옵소서.
5. 그러나 엘리후처럼
말 몇 마디로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는
교만의 죄도 범하지 말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