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군지현(慈君知賢)-어진 군주는 현명한 선비를 알아본다. 이상호(소소감리더십연구소 소장) http://www.asanfoc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825
1) 인재는 군주(통치자)의 얼굴 군주에게 신하는 군주의 얼굴이다. 군주가 얼굴이라면 신하는 그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군주의 곁에 어떤 신하가 있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정치는 달라진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변치 않는 진리다. 대통령제하에서의 참모들은 대통령의 얼굴이다. 대통령이 얼굴이라면 참모들은 대통령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참모들을 잘못 기용하면 그만큼 자기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으며 그것은 곧 자기의 인격과 정치철학과 정치적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과거의 정치에서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오늘날로 말하면 대통령과 각료 장관 등 참모들의 관계와 같다. 군주정치에서 신하를 등용하는 일은 군주의 몫이듯이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대통령이 각료인 참모를 기용하는 것은 순전히 대통령의 몫이다. 다만 군주정치에서는 국민이 군주를 선택할 수 없지만, 민주정치에서는 국민이 대통령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군주정치의 시대에는 특정 신분과 계층에서만 인재를 등용했지만, 민주정치 시대에는 신분과 계층을 초월한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우린 선거를 치를 때 그가 당선되고 나면 어떤 인물들을 기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진다. 선거 과정에서도 후보마다 그 주변에 어떤 인물들이 있으며 그 인물들은 어떤 인격과 전문성을 가졌는지에도 관심을 가진다. 누구든 당선되고 나면 그 주변 사람들이 참모로 기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선되고 나서 널리 고르게 인재를 등용하는 대통령이나 단체장이 있고 오로지 자기 주변 사람들만 기용하는 그야말로 코드인사로 재임 기간을 채우는 사람이 있다. 널리 인재를 기용하려고 애를 쓰는 대통령이나 단체장은 주변에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재가 포진될 수 있으나 코드인사에 몰입하는 대통령이나 단체장은 늘 그 사람들로 한정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정치와 정책의 사고와 행동에 유연성이 그만큼 덜해지고 정치적 행위가 특정 이념이나 정파에 치우질 가능성이 크다. 우린 그것을 과거에 수없이 보아 왔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회사 등 모든 조직에서 그 조직이 잘되려면 인재가 필요하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도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며 그 운용의 정점에 있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고 통치자(최고 경영자)의 주변에 어떤 인물이 있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제갈공명이라는 인재를 찾아 나섰다. 유비가 제갈공명에게 자기와 함께 대의를 도모할 것을 설득하기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였다고 하는데 그 삼고초려(三顧草廬)는 세 번 초막을 찾아갔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없이 찾아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유비가 얻은 제갈공명은 끝까지 유비를 주군으로 섬기며 지략을 펼쳤다. 세상사 모든 일에 인재가 중요하겠지만, 정치에서만큼은 인재가 특히 중요하다. 5세 신동으로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년〜1493년)은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자 세상을 한탄하며 모든 관직 생활을 버리고 방랑과 은둔의 길을 걸으며 저항했다. 그때 매월당은 인재 얻기가 심히 어려운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한탄하였다.
“인재(人才)는 국가의 주석(柱石)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는 인재를 얻는 것으로 근본을 삼으며 교화(敎化)를 일으키는 것에는 인재를 기르는 일을 먼저 하여야 한다. 옛날에 「성(盛)하고 많은 선비가 문왕(文王)을 편하게 하였다」하는 것은 문왕이 인재를 얻기 위해 애쓴 것을 찬미한 것이요 「용맹한 무부(武夫)들은 공후(公侯)의 간성이다」라고 한 것은 문왕이 교화에 힘쓴 것을 찬미한 것이다. 「솔개는 하늘을 날고 물고기는 못에서 뛴다. 인자한 군자여, 어찌 인재를 만들지 않으랴」고 한 것은 문왕이 인재를 육성한 것을 찬미한 것이다. 아아! 왕자(王者)가 인재를 얻음도 심히 어려우며, 인재가 성한 세상을 만나는 것도 심히 어렵구나(金時習, 每月堂集)” 모두가 알다시피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능한 인재가 도륙을 당했다. 그러자 뜻있는 많은 선비가 벼슬을 포기하고 초야에서 은둔하였다. 조정은 세조의 왕위찬탈에 공헌한 인물들로 가득 찼다. 정란(政亂) 속에서 권력에 야심가들은 들끓었지만, 정의를 추구하는 유능한 선비는 모습을 감추었던 것이다. 조선 건국 이후 공신이 가장 많았다. 부당한 권력에 동참한 이들은 부당한 방법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어쩌면 조선 역사의 질곡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혼란한 시대에는 올바른 인재는 늘 초야에 숨고 권력에 야심 찬 사람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선거판 주변에서 들끓는 인재라는 학자들 상당수는 정의보다는 권력적 야심에 의한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리고 당선되고 난 후에는 선거 공신들이라는 사람들 코드가 맞는 사람들만의 권력 세상이 된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한 것처럼 대통령이나 지방단체장이 인재를 구하기 위해 삼고초려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위에서 김시습이 중국 주나라의 문왕 시절에 태평성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문왕이 널리 인재를 구했으며 인재를 육성하고 그들이 제 능력을 발휘하도록 조장하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과거와 달리 인재가 넘친다. 다만 정의롭고 능력 있는 인재가 권력자의 주변에 부족할 뿐이다. 인재가 부족하다는 것은 그의 눈에 들어 있는 인재만 보고 널리 인재를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재에 한계가 있다. 그것은 대통령을 포함한 최고 통치자들이 현명한 인재를 알아보는 마음과 눈이 없기 때문이다. 인재를 구하고 알아보는 마음과 눈이 있는 통치자라면 제갈공명과 같은 초막의 인재도 찾아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최고 통치자의 마음이 인자(仁慈)하지 못하게 때문이다. 2. 자군지현(慈君知賢)의 군주, 문후 자군지현(慈君知賢)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어진 군주는 현명한 선비를 알아본다는 뜻인데 이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의 위세가(魏世家)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魏)나라 왕 문후(文侯)는 매우 어진 군주였다. 문후 6년에 소량 지방에 성곽을 구축했다. 그리고 문후 13년에는 그 아들 자격(子擊)을 시켜 변방을 포위하게 했다. 16년에는 진(秦)나라를 공격하고 임진(臨晉)과 원리(元里)지방에 성곽을 구축했다. 17년에는 중산국(中山國)을 멸망시키고 자격에게 지키게 한 후에 시종장으로 조창당(趙倉唐)을 보냈다. 문후는 그때마다 주민들의 피해를 염려하여 모두 사전에 대피하게 했다. 그러기에 백성들은 문후를 존경하고 따랐으며 주변에 현명한 선비들이 많았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문후의 아들 자격이 수레를 타고 조가(朝歌)의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 문후의 스승인 전자방(田子方)을 만났다. 그것은 우연이었다. 자격은 수레를 멈추고 내려와 매우 깍듯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러나 전자방은 자격에게 공자(公子)에 맞는 답례 인사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 했다. 자격은 화가 치밀어 전자방을 책망하려고 물었다. “부귀한 자와 빈천한 자 중에서 누구에게 무례함이 용서된다고 여깁니까?” 전자방이 자격에게 답했다. “당연히 가난하고 천한 자입니다. 부귀한 사람의 경우, 만일 그가 제후라면 그 제후가 예의를 잃는 것은 나라의 존망과 관련됩니다. 만일 그가 대부라면 가문을 잃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난하고 빈천한 사람은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과 행하는 것이 맞지 않으면, 행하는 것이 맞는 (楚)나라든 월(越)나라든 원하는 곳으로 떠나면 됩니다. 가난하고 빈천한 사람은 짚신을 고쳐 신는 것과 같아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귀한 자와 빈천한 자의 다른 점일 것입니다.” 전자방의 말을 듣자 자격은 화를 크게 내면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아버지인 문후는 달랐다. 공자의 제자인 자하(子夏)에게 육예(六藝)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자하의 제자인 단간목(段干木)을 빈객으로 초빙하여 접대했다. 문후는 그의 집 앞을 지날 때는 언제나 수레의 난간에서 엎드리며 예의를 표했다. 이런 문후의 인자함과 예의 바름은 주변의 제후와 백성들에게 알려졌다. 백성들은 그런 문후를 존경하였다. 진(秦)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려고 할 때였다. 진나라 내부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커 진왕은 신하들을 모아놓고 위나라를 공격할 것을 논의했다. 이때 현명한 신하들은 한결같이 위나라 정벌을 만류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위나라 문후는 현자를 알아보는 어진 군주입니다. 그래서 신하들과 백성들이 한마음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 위나라를 공격하면 모두가 벌떼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설령 공격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위나라를 공격할 때가 절대 아닙니다.” 신하들의 의견을 충분히 들은 진나라 왕은 위나라 공격을 취소하였다. 그 이후로 문후는 제후들 사이에서 어진 군주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문후는 현명한 신하인 서문표(西門豹)를 업현(鄴縣) 지방의 현령으로 임명했다. 그때 서문표는 그 지방의 미신과 어지러운 풍습을 바로 잡고 백성을 위한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다. 이 모든 것은 문후의 인자한 덕으로 칭송되었다. 이후 역사에서 문후는 바로 자군지현(慈君知賢) 즉 현명한 선비를 알아보는 어진 군주로 기록되었다. 그래서 주변에 현명한 선비(신하)가 넘쳐났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다. 3. 자군지현(慈君知賢)은 군주의 으뜸가는 직무 공자가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덕이 있으면 반드시 이웃이 있다)이라 하였다.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모여들듯, 덕이 있는 군주에게는 반드시 현명한 선비가 모이게 마련이다. 자군지현(慈君知賢)에서 자군(慈君)은 어진 군주를 일컫는다. 어진 군주란 인심이 바르고 풍부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로운 군주이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할 줄 알며, 현명한 선비(신하)를 알아보고 예의를 갖출 줄 아는 군주이며, 오만하지 않고 겸허한 군주를 의미한다. 생각과 행동이 편집되거나 치우치지 않으며 모두에게 공평한 군주이다. 문후가 성곽을 쌓는 대공사 때나 전쟁을 치를 때 백성을 미리 대피시키는 것은 백성의 목숨을 지극히 아끼는 어진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지현(知賢)에서 현(賢)은 현명한 선비를 일컫는 것으로 선비는 관료를 의미한다. 관료들은 신하들이며 오늘날로 말하면 각료인 참모들이다. 지(知)는 안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존중하고 기용하여 정사를 돌보게 하는데 활용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며 정사에 도움을 얻는다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君子-여기서는 어진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군주 君主)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듯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현명한 선비들이 넘칠 수밖에 없다. 나라가 안정되고 융성하며 백성의 삶이 윤택 하려면, 군주가 어진 선비를 가까이하여 아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묵자(墨子)도 강조했다. 묵자는 “군주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데 어진 선비를 아껴 주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곧 망하게 될 것이다. 어진 선비를 발견하고도 그를 즉시 기용하지 않는다면, 그 군주는 자기의 일을 태만하게 하는 것이다. 어진 선비가 아니면 급난(急難)을 해결할 수 없고, 어진 선비가 아니면 국정(國政)을 바르게 도모할 수 없다. 어진 이를 소흘히 하고 어진 선비를 잊어버리고도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던 군주는 일찍이 없었다.”고 하였다. <묵자 친사 제1편> 이 말은 무엇인가? 군주의 으뜸가는 직무는 바로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 진나라가 망하고 항우와 유비 현덕이 대결하여 유비 현덕이 승리하고 한나라를 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역사가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항우는 귀족 출신으로 기량도 뛰어나고 용맹하였으나 인재를 존중하지 않았고 인품이 어질지 못하여 백성들이 등을 돌렸으며 충직한 신하들이 떠나갔다. 유비 현덕은 한갓 촌부로 비록 기량은 모자랐으나 덕이 있었으며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였다. 나아가 현명한 선비들을 존중하여 기용할 줄 알았다. 뒷날 유비 현덕도 자신이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통일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현명한 인재를 존중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4. 자군지현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링컨 이처럼 어진 지도자에게는 현명한 인재가 모이며 어진 지도자는 가장 먼저 현명한 인재를 구하고 존중한다. 미국의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오늘의 미국 민주주의를 정립하는데 초석을 다진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그의 치열한 정적이었던 더글러스(Stephen. A. Douglas, 1813〜1861)의 능력을 인정하여 존중하였고 그의 도움을 엄청나게 받았다. 링컨에게는 젊은 변호사 시절부터 원수처럼 지냈던 최대의 정치적 적인 스탠턴(스탠턴, Edwin. M. Stanton 1814〜 1869)이 있었다. 그는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미국 최대의 국가적 재난’이라고 까지 하면서 비난했다. 그러나 링컨은 그를 찾아가 설득하여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육군 장관에 임명했다. 스탠턴은 육군 장관으로서 남북 전쟁 때 북군의 방대한 군사조직을 통괄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 일에 대하여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가혹한 정의보다는 자비가 더 큰 열매를 맺는다고 굳게 믿는다.” 링컨의 이러한 말과 인재 등용 역시 자군지현(慈君知賢)의 한 면모이다. 스스로 자비심을 크게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링컨의 가슴에는 늘 자비심과 그것을 실행할 용기가 있었다. 5. 현명한 인재가 갖추어야 할 덕목 앞에서 자신을 책망하는 문후의 아들 자격에게 전자방이 한 ‘제후와 대부가 예를 갖추지 못하며 나라와 가문의 존망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곱씹어 보자. 이는 그들에게는 그만큼 예의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국가를 경영하는 인재들에게는 예의와 책임이 필히 따르며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현명한 인재는 그 예의와 책임을 다할 줄 아는 인재이나 현명하지 못한 인재는 예의를 버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 현명한 선비 즉 현명한 인재란 어떤 사람들일까? 오랜 역사를 통하여 함축된 것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훌륭한 인격이다. 훌륭한 인격은 도덕성(道德性)에 기인한다. 도덕성은 도(道)와 덕(德)으로 이루어지는데 도(道)는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만물의 이치이다. 덕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연민이다. 도덕성이 있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알고 몸소 실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치에서 인재를 말할 때 도덕성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 둘째는 능력이다. 그것은 해당 분야의 전문성과 일을 추진하는 열정을 말한다. 중국의 삼황 시대에 순임금은 치수를 위하여 우임금에게 오랜 세월 맡겨보고 그 능력을 충분히 검증한 후에 왕위를 물려주었다, 우임금은 도덕성과 능력을 모두 인정받은 것이다. 셋째는 강한 책임감이다. 앞서 우임금이 맡겨진 임무를 수행하느라 과문불입(過門不入-집 앞을 지나도 들어가지 않았다)한 것도 책임감의 발로였다. 끝까지 책임을 질 줄 아는 자가 바로 현명한 인재이다. 오늘날 큰 사건이 일어나면 책임을 지는 관료나 장관이 없다는 것은 인재는 많으나 그만큼 현명한 인재가 드물다는 것을 말해준다. 6. 지도자들이여, 서둘러 덕을 닦고 현명한 인재를 구하라 얼마 전 이태원 참사를 두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분노하는 국민이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다. 물론 행정안전부 장관의 말대로 그 당시의 상황에서 그런 사고가 날 수밖에 없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 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다. 많은 인파가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큰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신고가 되었든, 안되었던, 주체가 있든 없든 국가는 대비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변명으로 일삼았다. 그것은 엄청난 책임회피이며 자기 정당화이다. 국민이 분노하는 것, 희생자 가족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이상민 장관에게는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사랑과 연민’과 ‘책임감’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리고 관련 행정기관의 장들 모두에게도 그런 것이 절대 부족했다. 어쩌면 그들은 그동안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그 자리에 올랐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알맹이 없는 능력일 수 있다. 능력의 가장 중심에는 인(仁)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인의 중심에는 인간적 연민과 책임감이 있으며, 그것은 국민에 대한 가장 중요한 예의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해당 장관을 감싸는 것을 본 국민은 대통령의 마음을 의심하게 된다. 중대한 사건 사고가 발생하면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를 입은 국민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어진 마음이다. 그것이 없는 지도자는 지도자의 모든 자격을 상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민주정치의 시대에도 자군지현(慈君知賢)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어진(慈) 대통령을 뽑아야 현재(賢才- 현명한 인재, 참모, 장관 이하 여러 각료)를 만날 수 있다. 어진 대통령과 현명한 인재에게는 무엇보다 도덕성과 능력과 책임감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져야 한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국민을 사랑하고 널리 인재를 구하는 마음이다. 오늘의 한국 지도자들이 김시습의 인재에 대한 고언, 문후의 어진 정치, 묵자와 링컨의 말을 꼭 기억하고 실천하였으면 좋겠다. 국가경영에 있어 자군지현(慈君知賢)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라 여겨진다. 대통령과 단체장들은 이 말을 가슴으로 새겼으면 참 좋겠다. 인재가 없다고 하지 말고 인재를 구하려 하지 않은 자신을 책망하여야 한다. 정말 뛰어난 인재는 제갈공명처럼 초막에 있을 수도 있다. 지도자들이여, 서둘러 스스로의 덕을 닦고 현명한 인재를 구하라. 끝으로 링컨의 말을 다시 새겨본다. “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가혹한 정의보다는 자비가 더 큰 열매를 맺는다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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