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0일 새벽
본문: 마 11:25-27
제목: 지혜자와 배운 자 vs. 어린 아이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하신 기도문이다. 이 기도문은 누가복음 10장 21-22절에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동일하게 등장한다. 누가는 이 기도문의 맥락을 알려주는데 도움을 준다. 어제 묵상한 고라신과 벳세다 그리고 가버나움에 대한 저주의 본문에 이어 누가복음 10장 17절부터 20절까지에서 칠십 인의 제자들이 파송받아 전도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예수님께 기뻐하면서 보고한 내용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일부인 예수님의 기도문은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기쁨으로 보고한 제자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하신 기도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25절에는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과 "어린 아이들"이 대조되며 "숨기시고"와 "나타내심"이 대조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을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라고 말씀하시고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눅 10:21) 오늘 본문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신 것이다. "지혜롭고 배운 자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며 믿는다고 하는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포함하여 갈릴리 지역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들었던 자들 중에서 복음을 배척한 자들을 의미한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구약성경의 많은 내용들을 암송할 정도로 성경에 능숙한 자들이었지만 정작 구약성경이 말하고자 했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믿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정작 기뻐해야 할 것은 그들이 마주하며 말씀을 듣고 있는 예수가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했고 제자들이 듣는 바를 듣고자 했지만 듣지 못했던 분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었다(눅 10:24 참조). 세례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고 기쁨이 충만했음을 신랑의 친구의 기쁨과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28-30). 따라서 "어린 아이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귀신들렸다고 비난했던 세례 요한을 포함하여 병든 자, 가난한 자, 귀신들린 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따랐던 자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에게는 기적들과 말씀들이 "계시된"(revealed) 것이었다. 반면에 고라신과 벳세다와 가버나움의 대다수의 사람들을 포함하여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이 자기가 갖고 있던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게는 "숨겨진"(hidden) 것이어서 기적들을 보아도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기도문에서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씀하셨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Yes, Father, for this is what you were pleased to do) (26절).
예수님과 그의 복음, 십자가 사건은 양면성이 있다. 세상의 지혜자들이나 학식있는 자들이 볼 때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 십자가 사건이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된 "지혜있고 배운 자들"과 "어린 아이들"의 모습에 대해서 바울이 잘 표현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 바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하나님의 뜻이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 즉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 1:18-25).
예수님이 믿어지는 것이 기적이다. 십자가 사건이 자신의 죄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것이 믿어지는 것이 은혜이다. "울어도 못하고 힘써도 못하고 참아도 못하는데" "믿으면 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힘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 영원 삶을 얻네...나를 구원하실 이 예수 밖에 없네"(찬송가 544장)라는 찬송가 가사는 진리를 담고 있다. 예수님 당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의 얼굴을 직접 보았지만 믿지 못했다. 어린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오늘 예수님의 기도 내용과도 연결되어 이해되어진다. 어린 아이들은 "예수 안에서"(in Christ)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이다. 반면에 "예수 밖에서"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미련하고 어리석다. 그래서 복음과 십자가는 역설적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양편에 함께 달린 두 강도는 모든 인류의 모습을 표상한다. 한 편 강도는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예수에게 "주여 나를 기억해주소서"라고 고백한다. 처음에는 다른 편 강도처럼 함께 욕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회심한 것이다. 그에게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은혜가 주어졌다. 그러나 다른 한 편의 강도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지혜와 생각을 의지하고 예수를 비웃다가 죽는 어리석은 자의 대표가 되었다.
오늘날도 동일하다. 이 땅에는 역설적으로 스스로 지혜있다고 생각하여 예수와 그의 십자가를 거부하며 배척하는 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반면에 어린 아이가 되어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전적으로 십자가를 붙드는 자들이 살고 있다.
이관직교수, 온라인상담실 이관직상담실 홈페이지주소 kleecounseling.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