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좀 먹으면 없는 입맛이 살아날까 싶어 그런 것도 아니다. 오로지 친구 따라 강남 갔다.
친구랑 가는데 강남이면 어떻고 강남 아니면 어때.
강남 대신에 후쿠오카로 갔다.
"뭔데 뭔데? 그게 뭔데?"가 십 팔번인 친구 앞에는 무슨 말을 못한다. 남의 일에 어떻게나 궁금한 게 많은지.
궁금하면 그냥 있지 못한다. 기어코 가서 알아봐야 한다.
아들이 혼사를 끝낸 두 달 뒤 쯤? 아뭏든 그쯤 됐지 싶다.
정부 예산 쓴 것도 아닌데 감사 받는 것 처럼 물고 늘어진다.
내 아들 혼사에 모든 것은 묻는다.
그때 마다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런데 다음 번에 만나면 똑 같은 걸 또 묻는다.
지치지도 않고 묻고 또 묻는다.
내가 좋다는 것은 무엇이지 꼭 보자하고, 보고 나면 반드시 사야 하는 게 친구 스타일이다.
딸이 나랑 지 시누이에게 구스이불을 사다 주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 했다.
나는 이불이라면 한 사치한다.
이불은 속옷처럼 몸에 닿는 부분이라 촉감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잠이 잘 온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할 때마다 내 몸을 포근히 감싸 받아줘야 한다. 그래야 잠자리가 편하고 잠도 잘 온다.
딸이 사다 준 구스이불이 딱 그렇다.
하룻 밤 사이에 수십 번을 뒤척이는 나는 그 이불 덕분에 숙면을 취한다.
여름날에 인기인 죽부인은 딱딱해서 싫다.
구스이불은 솜사탕처럼 포근하고 달콤하다.
낙타털 로 만든 카멜 속통과는 비교도 안된다.
완전 나를 월컴 투 마이 헐트 한다.
몇 년 전, 양모이불 전문점 메리퀸에서 한창 이불을 사다 날랐다.
내가 써 보고 좋으면 딸에게, 아들에게 사서 보낸다.
카멜솜과 양털침대 패드가 그렇다.
무슨 이불 속통 하나가 백 만원 돈이냐고 경을 칠까봐 남편에게는 말 못한다.
말 했다간 그 물건을 살 수가 없다.
정신 나간 된장녀 취급을 하며 일장 훈시를 연중무휴로 할 게 뻔하다.
뭐하러 내 손으로 긁어 부스럼 만들겠는가?
한동안 시간만 나면 선배가 하는 양모이불점에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말이 필요없다.
조용히 눈으로 스캔을 한다.
가게 곳곳을 내 눈으로 파노라마 촬영한다.
마음에 드는 이불이 있으면 슬그머니 일어나 그곳으로 간다.
손으로 만져보고 맨 살에 대어도 본다.
손바닥으로 가만히 쓸어내리고 팔에도 부비부비 문질러 본다.
사정없이 확 저지른다.
남편이 차를 두고 간 틈을 타서 하나씩 하나씩 집에 들고 온다.
이불사랑은 자식보다 내가 1순위다.
그때만큼은 내가 누구보다도 이기적유전자임을 확실히 보여 준다.
그다음엔 딸에게 사서 보내고, 아들 것도 사서 준다 .
이때만큼은 남편에게 물문율이 있다.
실제 가격을 말하면 절대 안 된다.
'쉿! 아빠에겐 비밀이야. 무는 뜻인지 다들 알고 있겠지?'
남편에게 굳이 말을 해서 생각 없는 된장녀 취급받을 일을 내가 왜 해?
구스이불은 카멜보다 몇 단계 위다.
뭉게구름처럼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촉감은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이불과 오랜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기상시간을 늦추게 만든다.
친구에게 그 느낌을 말했더니 우리 집에 쳐들어 와 당장 보자한다.
보고 만져보더니
"이거 나도 꼭 사야겠다. 샘이 언제 시간 난다고? 나는 기간제 3개월 다 끝났으니까 내일이라도 갈 수 있어. 엉가, 샘에게 빨리 연락 해 봐라."
바러 사러 가자한다.
그것도 후쿠오카로.
LA 장거리 비행 다녀오고 잠시 반나절 쉬고 곧 바로 후쿠오카로 갔다.
딸애는 인천공항에서, 우리는 김해공항에서 출발했다.
후쿠오카공항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한 딸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딸의 미션이 시작된다.
친구가 얼마나 서두르며 한꺼번에 서너 개의 주문을 딸에게 해대는지.
틀림없이 다시는 기선이모 모시고 안 오겠다고 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딸이 그런다.
텐진지하상가랑 캐널시티를 통째로 사 갈듯이 군다.
구스이불 킹사이즈를 두 개나 샀다. 이불과 베개커버도 다른 소재로 각각 하나씩 더 산다.
백화점 명품관에 가더니 로렉스, 까르띠에 시계도 본다.
큰 딸 시집 보낼 낼 때 혼수로 보낼거라고 한국서 점 찍어 둔 모델명을 보여주며 시장조사를 한다.
점심은 텐진에서 돈부리 종류로 먹고 저녁은 캐널시티에서 함바그를 먹었다.
완전 된장녀가 된 기분이다.
김해공항에 아들과 남편이 마중 나와 있다.
친구를 진주예 태워 줬더니 후쿠오카에서 산 물건들을 이고 지고 들고 아파트로 들어간다.
흐뭇한 표정이다.
남편이 안 돼 보였는지 나보고
"당신도 좀 사지 그랬어"
라고 한다.
나도 사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