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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들에게 있어 겨울철은 시즌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시기라고 합니다. 다음 시즌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후원할 스폰서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골프는 선수나 기업 모두를 만족시키는 스폰서십은 결코 쉽지 않다고 합니다. 작년 미국프로골프(PGA)선수권대회서 동양인 최초로 메이저 챔피언 양용은(38), 2008년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뒤 작년에 일본골프투어(JGTO)에 진출해 성공적인 루키시즌을 보낸 김형성(30) 그리고 왕년의 ‘골프 여왕’ 박세리(33) 등 이른바 내로라하는 선수들이 아직 타이틀 스폰서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소비용으로 최대 마케팅 효과를 얻으려는 기업의 생리와 가급적 좋은 조건으로 계약하려는 선수의 마인드가 상충돼 접점을 쉽게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속에서 작년 12월에 친정인 앙드레김골프와 재계약을 체결한 박상현(27)의 경우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상현은 작년에 SK텔레콤오픈과 에머슨퍼시픽그룹오픈 우승으로 KPGA투어 상금랭킹 5위로 시즌을 마쳤고 생애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생애 최고의 성적을 거둔 박상현의 몸값이 상한가를 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게다가 골프코스에 ‘꽃남 열풍’을 몰고 온 곱상한 외모까지 더해져 기업들의 러브콜이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박상현은 훨씬 좋은 조건을 내세운 기업들의 적극적 구애(?) 공세를 뿌리치고 ‘실리’보다는 ‘의리’를 택해 앙드레김골프와 2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박상현은 “다수의 기업들이 제시한 좋은 조건에 솔직히 갈등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고 말한 뒤 “하지만 성적을 떠나 군복무 시절 휴가 나왔을 때 내 이미지만 보고 선뜻 후원을 결정해 준 앙드레김골프에 대한 고마움을 잊을 수 없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박상현의 이번 계약이 관심을 끄는 대목은 또 있다. 무명의 후배 이대준(25)을 한솥밥 식구로 만든 것입니다. ‘한 선수를 더 계약하고 싶다’는 회사 측의 방침을 전해 들은 박상현은 평소 눈여겨보아 온 이대준을 적극 추천해 계약을 성사시켰다. 자신이 가져갈 파이의 크기를 줄이고 이른바 ‘1+1’를 택했다는 점에서 박상현의 후배 챙기기는 프로 골프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골프계의 반응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반짝 성적을 거둔 선수가 기존 후원기업에 무리한 조건을 내세웠다 재계약이 무산돼 무적 신세로 전락한 사례 또한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프로의 세계가 제아무리 돈과 직결된다고 하지만 지나친 욕심은 이렇듯 전체 골프계를 위축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상현의 이번 계약은 여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기에 처한 국내 남자골프의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활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골프관련 언론매체가 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뛰어난 사람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무명이었을 때 자신을 돌봐주었던 사람을 무시하고 헌신짝처럼 대접한다면 그의 인격에 큰 문제가 있다고 사람들은 평가를 합니다. 그런데 앞서말한 프로골프선수 박상현같은 이런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참 의리를 지킬 줄 아는 된 사람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야곱이 하나님과의 의리를 바탕으로 하나님께 약속을 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사실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의리... 약속.... 이런 단어가 존재할 수 있는 지 약간의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야곱의 의리를 볼 수 있고 의리를 바탕으로 한 하나님에 대한 약속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행하여준 많은 은혜를 경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은혜속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신이신 것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이제 그는 에서의 위협을 몸소 느끼며 부모가 가졌던 신앙을 이어받고 먼 곳으로 떠나 자기 스스로 신앙으로 모든 현실을 헤쳐나가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삶의 현실속에서 그는 이제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는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자신을 맡기며 하나님께 삶을 의탁할 때 내 걸었던 전제조건이 오늘 본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20절~21절을 보십시오. 제가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하나님께 약속을 하기 전에 그는 지금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모습을 돌아보고 여전히 그렇게 행하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지금 하나님께 요구사항을 전하는 듯한 느낌의 말씀을 접하지만 사실 이것은 야곱이 자신이 하나님께 먼저 자신이 받을 것을 요구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야곱은 이미 이런 하나님이신 것을 경험했기에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해오셨듯이 자신을 지켜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야곱이 지금까지 경험했던 하나님의 성품이 이 기도속에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첫째로, 삶속에서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둘째로 삶속에서 자신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셋째로는 먹을 것, 입을 것, 쓸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모든 인생에서 갈 길을 인도하시고 평안함으로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지금까지 경험했는데 여전히 앞으로도 그런 경험을 한다면 하나님.... 제가 하나님께 이런 약속을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서약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야곱의 서약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가운데 하나님과의 귀한 서약으로 살 수 있는 의리의 신앙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호의에 감사하며 야곱이 하나님께 하는 약속 첫 번째는 신앙의 대상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21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제가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하나님께서 여전히 야곱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셨을 때 야곱의 하나님을 이렇게 섬기겠다고 다짐한 첫 번째 약속은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너무나 당연한 약속이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신앙인이라면 이런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여호와가 언제 하나님이 아니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언제 유일신이 아닌 적이 있었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유일한 신이십니다. 시편 100편의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100편 3절말씀을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이 세상의 모든 인생의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야곱은 이 사실을 몰라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내가 하나님을 신으로 인정하겠다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한 그이기에 이미 하나님이 존재함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에서 약속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는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며 하나님만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남들은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나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유일신이 맞다라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저는 저에게 일어난 많은 일들을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알리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어떤 은혜를 주셨는 지를 간증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럼 믿지 않는 친구들이나 믿지 않는 가족들이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믿으려 들지도 않고 농담삼아 저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계신 지 잘 모르겠지만, 너에게만은 하나님이 계신 것 같기는 하네....’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자기들도 기도하고 자기들도 믿으면 그 하나님을 체험할텐데... 들으면서도 믿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신기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저에게만은 살아서 역사하시고 실제적인 경험을 하게 하신 하나님이 감사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저는 저의 삶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오, 저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저의 하나님으로 온전히 신뢰하며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고백을 하며 살아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기적적인 회복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형식적인 그리스도인, 종교적인 신앙인으로 살아가겠습니까?
아니면, 실제적인 체험속에서 온전히 하나님만 신뢰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며 살아가시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하나님만을 신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호의에 감사하며 야곱이 하나님께 하는 약속 두 번째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22절 전반절입니다.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야곱은 벧엘에 이르러 노숙을 하게 되었는데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자신의 앞의 삶을 보여주는 예언의 꿈인 것을 깨닫고 큰 감격을 얻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길거리에서 잠을 자게된 야곱의 현실속에서 이 잠자리를 위해 우연치 않게 사용된 베게모양의 돌 하나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놀라운 도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고백속에는 이 곳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놀라운 체험의 현장으로 삼고 이 체험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항상 기억하며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벧엘:Bethel(지명)이라는 지명은 lae tyBE, Bethel(신(EI)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꿈에서 이 곳에서 하나님을 만났기에 이 곳에 하나님의 집을 짓고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는 예배를 드리겠다는 다짐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절을 보면 이 곳의 원래 이름은 ‘루스’이었으나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이후 ‘ 벧엘'이라 부르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법궤가 벧엘으로 옮겨져서 보관되기도 하였고 벧엘은 사울왕이 희생의 제사를 드렸던 곳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하였을 때는 벧엘이 북쪽 이스라엘의 성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스라엘민족에게 있어 벧엘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은혜의 장소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지였습니다.
이 초석을 놓게 만든 것이 바로 야곱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앞쪽을 살펴보면 야곱이 밤에 하나님을 만나고 잠을 깨자마자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 첫 예배를 드린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야곱은 지금 당장 가진 것이 없어서 자신이 베고 잤던 돌을 가져다가 그 돌로 자신이 꿈을 꾸었던 자리에 표식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구약의 예배인 제사의식을 거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야곱은 이제 하나님의 집을 만들고 그 곳에서 자기가 살아있는 한, 아니 자신의 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기억하며 온전히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드리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 말씀을 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온 맘이 하나님께 집중되기를 원하십니다. 온 영혼이 집중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집중하며 하나님에게 온전히 초점이 맞추어진 예배를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을 통해 우리의 모든 삶이 예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로마서 12장 1절을 찾아서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온 몸이 하나님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고 우리의 모든 삶속에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예배가 되기를 하나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모든 삶과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고 하나님을 예배하기를 다짐하는 서약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고백을 하며 살아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고 기적적인 회복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형식적인 주일 예배만 드리시겠습니까? 예전엔 Sunday christian이 문제가 되어 교회마다 Sunday christian이 되지 말자고 외쳤는데 요즘은 Sunday christian을 뛰어넘어 Sunday morning christian이 대부분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일만 예배드려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 우리의 모든 생애를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으로 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호의에 감사하며 야곱이 하나님께 하는 약속 세 번째는 모든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22절 후반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야곱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자신의 신앙의 결단으로 십일조신앙을 내세웠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신이 하나님앞에 십일조생활을 반드시 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고민하면서 가장 힘이든 것중 하나를 꼽으라고 할 때 꼭 들어가는 것이 십일조신앙입니다.
100만원의 월급중에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리고 90만원으로 생활한다는 것이 참 힘이 듭니다. 300만원의 월급을 받아 그 중 십일조인 30만원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십일조를 세금이나 회비로 생각할 때 이것이 많이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인들중 어떤 사람은 의무감이나 책임의식속에서 그냥 정확하게 십분의 일을 헌금을 드리며 살아왔다면 나는 할 도리를 다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십일조를 형식적으로 드리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책망한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을 찾아보시겠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십일조를 정확하게 책정해서 헌금을 열심히 했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지만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으로부터 엄청난 책망을 들었습니다. 형식은 있으나 내용이 없고 헌금은 드렸지만 진정한 신앙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생활을 바로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앞에 헌금도 제대로 드리지만 마음도 하나님앞에 신실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신앙인의 의무인 것은 사실입니다.
신명기 14장 22절 말씀을 보십시오.
신명기 14:22 “너는 마땅히 매 년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십일조를 드리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라기 3장에 와서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께 드려야할 십일조중의 일부 혹은 전부를 자기 유익을 위해 쓰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책망하시며 돈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살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겠다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라기 3장 10절을 펼쳐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우리가 소유하고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의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통해 우리가 돈을 사랑하는 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지를 시험하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 록펠러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고의 부자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사업가 록펠러의 성공이유를 그의 신앙에서 해답을 찾는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중 이런 일화를 소개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록펠러에게 십일조를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물론입니다. 십일조를 하다마다요. 제가 어떻게 해서 십일조를 드리게 됐는지 소개하고 싶군요."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습니다."제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일을 해서 번 돈이 1달러 50센트였습니다. 저는 일 주 동안 일하고 받은 돈을 집으로 가져가서 어머니에게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제 기억으로는 어머니에게 돈을 드리면서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돈을 앞치마로 감싸면서 제 눈을 바라보셨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얘야, 네가 주님에게 십일조, 그러니까 15센트를 드린다면 아주 자랑스러울 게다."
록펠러는 말했습니다."저는 난생 처음으로 번 돈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렸고 여생 동안 빠짐없이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그 1달러 50센트의 십분의 일을 드리지 않았더라면 제가 처음으로 백만 달러를 벌었을 때 십일조를 드릴 수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록펠러는 가진 것없이 건초, 곡물, 육류, 기타의 상품들을 취급하는 조그마한 중개회사를 동업자와 함께 창업을 했습니다. 이 조그마했던 중개회사가 불과 4년후에는 정유회사를 세우게 되었고 그 후 2년만에 지역의 대표적인 정유회사가 되었고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뒤에는 미국 전체에서 가장 큰 정유회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이 조그마한 가게를 창업한 지 약 15년만에 석유기업의 제왕 록펠러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공을 이야기하면서 신앙이 없는 많은 학자들은 록펠러의 경영수완과 시대적 분위기를 잘 파악하는 능력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이 있는 많은 신학자, 목회자들과 정작 록펠러 본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결과물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앞서 록펠러의 예화에서도 보았듯이 록펠러는 처음 자기가 돈을 벌기 시작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신앙의 철칙을 정해놓고 그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십일조 생활은 그가 소중히 다루었던 덕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우리에게 돈이 필요한 줄 어느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왜 십일조를 하라고 하실까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훈련하시기 위해 그렇습니다.
우리가 돈을 더 사랑하는 지,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지 보고 싶으셔서 그런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3절을 펼쳐보십시오.
함께 읽겠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우리는 돈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합니다.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수단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십니다. 우리가 수단을 목적의 위치에 놓으면 우리의 인생이 뒤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수단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은 망하는 인생이고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은 성공하는 인생입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너무나 잘 알기에 하나님께 자신이 소유하게 된 것을 기꺼이 하나님께 돌려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야곱의 서약의 앞부분에서도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야곱은 분명히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함께 하시고 하나님은 지켜주시고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고 하나님께서는 평안히 갈 길을 인도해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지켜주시고 계심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우리를 평안히 인도하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다시 돌려드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앞에 위대한 결단을 합니다. 신앙을 다시 세우며 하나님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고 살고 싶다면 하나님앞에 우리의 신앙의 결단과 우리의 신앙의 고백을 해야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앞에 그 어려운 점을 들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어려운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약속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면 제가 하나님앞에 이렇게 살겠습니다.
그런 하나님과 여러분이 관계가 성립될 때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삶을 책임져주시고 결국은 위대한 하나님님의 은혜가운데 여러분을 세워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주간도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속에서 회복과 성장의 위대한 역사가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