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천과 나무 전봇대
천 수 정
어린시절 또랑이라고 부르던 대동천이 생태하천으로 거듭나면서 올 봄에 가보니 흰뺨검둥오리가 대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새끼를 세어보니 7마리 가족도 있었고 여름이 무르익을 무렵에는 12마리 가족도 등장하였다. 가제교 다리 위에 서서 대동천을 내려다보던 아저씨 한 분이 “저 오리들 좀 봐요. 볼 때마다 쑥쑥 자라는데 오리들 보는 재미로 삼성동서 매일 이곳으로 출근한다니까요”하신다.
오리들은 피라미인지 무엇인지 모를 물고기 떼를 쫓아 부지런히 헤엄을 치고 그러다가 지치면 모래톱에 새끼들과 나란히 앉아 햇빛을 쪼이기도 했다. 물속에서는 어디에서부터 이동해 왔는지 모를 우렁이도 느릿느릿 헤엄을 치고 있었다. 올 봄에는 대동천에 수달이 나타나 한바탕 즐거운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옛 소제호의 흔적을 재현하기 위함인지 몇 해 전부터 연꽃을 심어 대동천의 생명들이 한층 더 풍성해졌다. 연꽃이 하나하나 꽃송이를 밀어 올리던 날, 뚝방투어를 준비하던 나는 때맞춰 연꽃이 만개하겠구나 싶어 내심 반가웠다. 그런데 아뿔사! 장마철에 오라는 비는 안 오고 장마 끝 무렵 연꽃이 만개했을 때 엄청난 비가 연일 쏟아진 것이다. 비가 그치고 대동천을 찾았다. 대동천이 범람해 연꽃과 부들이 흔적도 없이 쓸려 버려서 그야말로 처참하였다. 결국 뚝방투어 당일 연꽃을 볼 수 없어 참여자들의 아쉬움을 샀다. 연꽃이 다시 꿋꿋하게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운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의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의 아쉬움을 달래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나무 전봇대이다. 소변금지, 올라가지 마시오 라는 문구가 쓰여 있던 전봇대는 본래 전기를 실어나르는게 주목적이지만 사람들은 다양한 쓰임새를 찾아내곤 했다. 광고전단이 붙어있기도 했고 술을 과하게 마신 사람들이 토하는 곳도 전봇대였다. 특히 소제동 관사촌 일대에는 나무 전봇대가 여러 개 남아 있는데 1952년부터 사용하던 철도청 마크가 붙어있는 나무 전봇대가 대창 이용원 옆에 서 있다. 이 마크는 언뜻 보면 우체국 마크처럼 생겨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옛 체신청 마크로 오해하고 있다. 그 전봇대 바로 옆에는 1963년부터 사용한 철도청 마크가 붙어 있는 전봇대가 있다. 기차 레일을 형상화한 이 마크는 비로소 철도청 마크로 느껴진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있다. 흔히 전봇대하면 한국전력공사에서 세우고 관리하는게 우리의 상식인데 어떻게 철도청 마크가 그려져 있을까. 당시에는 철도가 지나가는 곳의 전봇대 는 철도청에서 세우고 관리를 담당했다고 한다. 메타세쿼이아인지 삼나무인지 모를 나무에 타르를 입혀 썩는 것을 방지한 나무 전봇대는 지금도 전기를 실어나르는 본래의 역할을 당당히 수행하고 있다. 소제 관사촌을 돌며 나무 전봇대의 예스러움에 빠지면서 동시에 근대 철도청의 변화를 느껴보는 것도 즐거운 마을 탐방이 될 것이다.
나무 전봇대는 소제동에서도 주로 넓은 골목에 세워져 있는데 골목 안으로만 들어가도 커다란 전봇대를 세우기가 힘들어진다. 시울 마실길 쪽으로 들어가면 골목이 아주 좁아져 길고양이가 살짝만 뛰어도 이집 저집 지붕을 활보할 수 있다. 벽화를 보면서 걷다보면 아주 날씬한 나무 전봇대를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냥 누군가 세워놓은 나무인줄 알았다. 그런데 가느다란 나무 전봇대 위에 전봇대가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크기의 전등이 달려 있었다. 마침 나무 전봇대 맞은편에 사는 아주머니가 대문을 열고 나오길래 전봇대에 달린 전등에 불이 들어오는지를 물어보았다. 벌써 오래전부터 해만 지면 여지없이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고 대답하신다. 그리고 이게 그렇게 신기한 건가요하고 되묻는다. 작고 날씬한 나무 전봇대를 발견한 기념으로 빼빼로 전봇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늘 보는 것의 소중함을 느끼기 어렵다. 낯선 사람들이 마을을 방문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때 오래된 것들은 다시 한 번 생명력을 얻게 된다. 골목골목을 누비며 오래된 것에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 소제동을 찾는 사람들의 중요한 역할일 것이다.
첫댓글 여덟번째 감동..!!
천수정 칼럼은 항상 기다려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