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수까지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나의 一生을 통해서 가장 어려웠던 세 가지 결정에 대하여 소개를 합니다.
첫째는 1948년 말에 사리원농대 2년 재학 중에 자유대한민국으로 월남하기로 결정을 한 사실입니다. 대학기숙사생활에서 하숙집으로 같은 반의 김리균 (장군 승진)과 옮겨 주인의 아들이 남한에서 생활하고 있기에 남한 소식을 잘 알 수 있어서 자유가 없는 이북을 가족과 상의도 하지못하고
떠나기로 결심을 한 사실이다.
둘째는 70년 9월30일에 대령으로 예편을 하면서 한일합섬 회사에 이사로 취직을 하고 72년 재향군인회 총회 때 이사로 선임 되어 안보 활동 중에 10월 유신이 발표되고 12월 15일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할 때 김일환 회장님께서 나도 거주지인 용산구에서 출마를 하는데 李 이사도 거주지에서 출마를 해보라고 하기에 거절을 하지 못하고 예하고 대답을 한 것이 거주지인 동대문구 을 구에서 출마를 하여 천우신조(삭발의 모정부대장 이야기를 설명하고 호소하다) 로 앞도적인 득표로 당선이 된 사실이다.
셋째는 89년 마산에서 한일합섬(주) 전무이사로 재직하면서 마산지역공장장 협의회장을 맞고 있을 때 6.29선언을 앞두고 노사분규가 극심하여 많은 공장장들은 공권력을 투입하여 노사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할 때 나는 노사가 대화를 위해서는 교양을 심어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교양지를 발행하여 노와 사가 읽도록 하였는데 반응이 좋아서 경남 도내 공직자와 교직자, 군인들에게 까지 읽도록 하여 경남도민의 선진의식 함양에 크게 기여하였다는 당시 도지사로부터 회사를 퇴임하고 상경할 때 감사장을 받았습니다.
서울에 상경하여 마산에서 그 책자를 발행할 때 많은 도움을 받은 경남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윤태림 총장을 방문하여 인사를 드리니 윤 총장님께서 서울의 도덕성이 말이 아니니 그 책자를 서울에서 발행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 때나는 깊이 생각을 해 볼 시간도 없이 예 알겠습니다. 하고 나서 고민을 하다가 철학 대가로 알려진 김태길 서울대 명예교수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님, 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님을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였더니 한 결 같이 적극 도와준다고 하여 결심을 하고 화랑문화사를 설림해서 문화공보부에 등록을 하고 4월부터 발행을 하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대학총장이나 전직 총리를 지내면서 존경을 받는 분들로부터 귀한 글을 수주하여 발행을 하면서 정신문화 발전과 도덕성 향상에 기여하였다는 평가를 받은 것 부끄럽기도 하고 큰 보람을 느끼는 일이 엇기에 소개를 드립니다. 이인서배
첫댓글 선배님
좋은 글 감명깊에 읽었습니다.
권 세 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