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사는 사적기가 전해지지 않아 그간 창건연대에 대해 백제시대인 384년(침류왕 원년), 혹은 삼국이 통일된 후인 673년(문무왕 13)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백제 때 창건되었음을 <만일사비>에 의해 확인할 수 있었다. 1760년(영조 36)에 간행된 <옥천지(玉川誌)>에 의하면 만일사는 백제의 원찰이었다고 한다.
그 뒤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무학 자초(無學自超) 스님이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등극을 위하여 절을 중건하였다. 이에 대한 기록이 찾아지지 않았는데 이 또한 <만일사비>에서 확인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만일사(萬日寺)란 명칭 또한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기 위해 만일 동안 이 곳에서 기도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무학대사 이전에도 여러 가지 중건과정이 있었을 것이지만 기록이 없어 그 내력을 알 수 없다. 이 때의 만일사는 지금보다 북쪽으로 약 200m쯤 올라간 곳에 있었다. 이 자리에는 지금도 초석과 기와 등이 흩어져 있다.
무학대사가 중건한 이후 만일사는 임진왜란 때 다시 한번 소실과 중건과정을 거치게 된다. 조선 중기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왜구가 침입해 불에 타 소실되었으며, 이것을 지홍(智弘)과 원측(元測) 스님이 다시 중축되었던 것이다. <만일사비>는 이 때의 유래를 담아 사찰 중건 후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만일사비가 건립된 해가 1658년이니, 상당히 빠른 시기에 전후 중수작업이 완수되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만큼 만일사라는 사찰이 비중 있는 사찰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중건 이후 만일사 규모를 <옥천지>(1760년)를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는데, 당시 만일사에는 요사채가 2채, 암자가 동암(東庵), 칠성암(七聖庵), 선적암(禪寂庵) 등 3채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만일사가 자리한 산 꼭대기 천길 위에 돌샘이 있어서 가물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빌면 비가 내렸다고 이 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만일사 안내석
만일사 입구 바위를 움켜진 고목
만일사 전경
초발심경에 나오는 '삼일의 수행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을 모은 재물도 하루아침의 티끌이다
만일사 범종각
만일사 입구
만일사 비
만일사비는 1658년(효종9)에 건립된 것으로, 크게 개석, 비신, 그리고 대석으로 나뉘어져 있다. 개석의 높이는 약 52cm, 너비 약 91cm의 기본상 반원형으로 재질은 사암이다. 개석 정중앙 위쪽에 높이 약 13cm의 복발과 비슷한 모양이 조각되었으며, 좌측과 우측에는 원형으로 돌출되게 하였다. 개석의 앞뒷면에는 모두 음각선으로 조각된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반원 가장자리를 따라 약 1cm 정도 굵기로 음각선이 호형을 이루었고, 양쪽 끝 부분의 돌출된 부분 안쪽에서 소용돌이 문양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개석 하부의 양끝을 직선으로 연결하여 개석의 외곽선을 따라 형성된 전체적인 모습을 활모양과 비슷하다. 이 안쪽 중앙 부분에 다시 개석의 상부에 새겨진 변곽석 모양을 축소한 듯한 형태가 음각되어 있고, 그 아래쪽에 타원형 2개가 서로 길게 맞물려 있어 전체적인 형상이 마치 부도를 연상하게 한다. 특히 아래쪽 타원 안에는 꽃잎이 여섯 장인 연꽃의 형상이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이 부도형 양 옆쪽으로는 대칭을 이루며 음각된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형태가 보이고 있다. 이러한 선 조각은 개석의 뒷면에도 거의 같은 형태로 나타나고 있어 개석의 제작에 불교적 상징물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만일사 전경
순창 고추장과 만일사 이야기
만일사에는 예전부터 고추장과 관련해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무학대사를 찾아 만일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때 민가에 들러 먹던 밥에 고추장 맛이 어찌나 좋던지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왕이 된 후에도 순창 고추장을 진상토록 하였으며, 이때부터 순창의 고추장이 유명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즉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에 무학대사와 만일사에서 기도할 때 하루는 산 안마을 김좌수댁 초대를 받은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그 집에 가서 점심대접을 받게 되는데 산해진미가 다 올라와 있는 훌륭한 밥상이었으나 그중에서도 고추장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고 나서 수인사를 하면서 고추장 맛이 독특하였는데 거기에 무슨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김좌수가 대답하기를 “우리 고장은 산과 물이 많고 토양이 비옥하며 풍향이 완만하여 사람이 나면 명인달사가 나고 산과 들에는 약초와 채마가 특이하여 보통으로 담가도 그 맛이 담백하고 감칠 맛이 난답니다 하였다.
그로부터 이성계의 밥상에는 반드시 순창 고추장이 올랐으며, 개국후 아들 방원과의 불화로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궁궐을 떠나 외유할 때 무학대사와 함께 또 한번 만일사를 찾아와 며칠 쉬어간 일이 있었다. 그때 전에 천일향을 시주한 일이 마음에 걸려 구천일향을 더하여 만일향을 채우고 그 만일향을 시주한 기념하기 위해 그 절 이름을 만일사로 고쳐 부르도록 해놓고 함흥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만일사 요사채
만일사 수조
만일사 대웅전
대웅전내 석가모니불
대웅전내 벽화
만일사 외부벽화 십우도
만일사 삼성각
바위에 불상
만일사 요사채
만일사 찾아가는 길
88고속도로 순창톨게이트로 나와서 순창IC삼거리에서 순창 ․ 전주방면으로 우회전하여 경천교를 건너 2km정도 주행하면 관서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관서삼거리에서 강진 ․ 전주방면으로 좌회전하면 바로 순창고등학교사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서 27번국도 전주 ․ 임실방면으로 우회전하여 12km정도 주행하면 임실 덕치면 일중리 중원마을삼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중원마을삼거리에 회문산 자연휴양림과 만일사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이정표 길을 따라 3km정도 주행하면 순창 구림면 안정리에 도착하게 된다. 안정리 마을에서 회문산 자연휴양림방면으로 우회전하여 700m정도 올라가면 회문산 자연휴양림 못가서 좌측으로 만일사이정표가 설치되어있다. 이정표 길을 따라 좌회전하여 1.3km정도 주행하면 만일사 일주문을 지나 만일사에 도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