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평리 마을과 주변 지역, 장소 명칭
* 큰마 - 큰 마을이란 뜻
해평마을은 과거 해평면에서 자연부락으로는 가장 큰 마을이었기에 '큰마' 또는 '해평큰마'라고 불림 조선시대 중기에는 '하리'로 불리었다가 일제시대 행정구역 개편 때 '해평동'으로 바뀜
* 보전 - 보천(寶泉)의 연음화
해평마을 서남쪽 강정나루(오늘날 숭선대교)로 가다가 오른쪽 지역 즉 보천사(寶泉寺) 절 입구쪽 지역을 말함.
과거 낙동강변의 나루터인 보천탄(寶泉灘)은 강변교역장소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오늘날엔 해평 들판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양수장인 해평양수장이 있다.
* 솔미 - 솔뫼가 변한 말 한문으론 송산(松山)으로 표기
해평마을 주민들은 '동산'으로 불리는 얕으막한 산의 북동쪽 마을을 말하며
'솝실댁' 또는 '멍지댁'으로 택호가 불리는 최맹호씨의 생가 뒷편 언덕위에는 과거 전주최씨 선조인 형조참판 최응룡(崔應龍)과 강원도관찰사 최현(崔晛)을 배향하였던 송산사(松山祠)가 있었으나 훗날 송산서원으로 바뀌어 창림동으로 이전하고 오늘날엔 그 자리에 인재(訒齋) 최현선생 유허비(遺墟碑)가 남아 있다.
* 뒷마 - 뒷마을이란 뜻
해평마을의 뒷편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이며 마을의 서남쪽 동산의 북쪽 언덕진 마을을 말함
* 남촌 - 해평마을의 남동쪽 지역이라 남촌(南村)이라 불림
해평마을 앞 동쪽을 흘러 마을 남쪽을 휘감아 돌아 낙동강으로 흘렀던 걸강(오늘날엔 습문천이라 함)이 과거엔 남촌앞을 흘렀는데 당시에는 '남촌걸강'이라고 불렀다.
* 골안 - 골짜기 안이란 뜻
마을 중심길을 따라가다가 북애고택을 지나 오른쪽 골짜기 일대를 말함. 옛날에는 골짜기 안 전체에 전주최씨 종가 집터였기에 전주최씨 문중에선 '안골'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앞뜸 - 해평마을 앞쪽(동쪽)지역
오늘날 마을회관이 있는 곳에서 남촌까지 지역을 말하며 해평마을의 지세가 배산임수(背山臨水)형으로 마을 서쪽의 주산을 뒤로 하고 앞쪽으로는 걸강이 흐르는 지형인 바 마을은 동향이고 앞쪽이 동쪽인 바 마을 앞쪽을 '앞뜸'이라고 함
* 산성마 - 산성(山城) 마을이란 뜻
과거 신라 때 해평마을 북쪽지역에 토성(土城)으로 쌓은 산성이 있었다고 전해 지며 그 성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산성마을' 즉 '산성마'라고 불리워 짐. 1960년대까지 전주최씨 선조인 영사공신 완해군(完海君) 최산휘(崔山輝)의 부조묘(不祧廟)가 위치해 있었으나 70년대에 들어 부조묘가 철거됨.
* 군벌 - 군대 벌판이란 뜻
과거 해평마을 북쪽에 산성이 있었을 때 그곳에 주둔하던 군인들의 훈련장이었기에 그렇게 불리워 짐
* 주산 - 주산(主山)이란 뜻
풍수지리에서 터의 기운이 서린 즉 해평마을의 기운이 서린 산을 의미
* 도춘골 - 도춘곡(陶春谷)
마을 뒷(서)쪽 주산과 뒷산 사이 골짜기 안쪽을 말하며 옛날에 옹기를 굽던 도요(陶窯,옹기굴) 있었던 곳으로 추측이 되며 임진왜란 당시 해평지역에서 의병활동을 하였던 최현의 아들 최산휘가 왜병을 피하여 숨었던 장소로 알려짐
*뒷개
마을 뒤(서남)쪽 낙동강변 들.
*아랫개
마을 아래(동남)쪽 낙동강변 들을 말하며 과거 땅콩농사가 잘 되었던 곳이다.
*번답
마을 동남쪽 모래밭이었던 곳을 논으로 만든 농경지를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