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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아동기가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올려봅니다^^
1. 가족에 대한 신뢰 부재 : 수많은 정신적, 육체적인 부모로부터의 학대는 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가져왔고, 그 결과 가족과의 관계 뿐 만 아니라 정상적인 학교 및 사회생활과의 단절을 가져왔다. 그는 학교 다닐 나이에도 공사장과 일용직 노동으로 자급자족하고 잇는 생활을 한다. 하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예로 스카일라에게 자신은 12명의 형제가 있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가족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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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헌팅(Will Hunting: 매트 데이몬 분)은 20년을 살아오면서 누구의 간섭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한 그도 결코 우습게 상대하지 못할 인생의 스승을 만나게 된다. 보스톤 남쪽의 빈민 거주지역에서 살고 있는 노동자계층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윌은 비천한 일을 살며 산다. 윌은 MIT 공대에서 교실 바닥 청소 일을 할 때 말곤 대학교 정문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노벨상을 수상한 교수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어려운 문제들을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게 풀어버린다. 그러나 그토록 머리가 비상한 윌도 어쩌지 못 하는 게 한 가지 있다. 폭행죄로 재판을 받게된 윌은 수감될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윌의 유일한 희망은 심리한 교수인 숀 맥과이어(Sean McGuire: 로빈 윌리암스)이다. 숀은 윌이 가진 내면의 아픔에 깊은 애정을 갖고 관찰하면서 윌에게 인생과 투쟁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를 가르쳐 준다. |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우한 성장 환경 탓에 마음의 문을 닫은 한 청년이, 자신을 이해해주는 참다운 스승을 통해 삶이 변모하는 과정을 훈훈하게 그린 드라마. 매트 데이몬이 92년 하버드대 재학 중에, 문예 창작 과목의 과제로 썼던 50페이지 분량의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같은 고향 출신의 단짝 친구 벤 에플렉과 함께 완성한 시나리오를 영화로 만들었다. 결국 두 사람은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했다. 시나리오 작업을 끝냈을 무렵 벤 에플렉은 독립 영화인 <글로리 데이즈>에서 주연을 맡아 촬영에 들어간 상태였는데, 촬영기간 중 자신들의 각본을 <글로리 데이즈>의 제작자인 크리스 무어에게 보여주어 그를 통해 캐슬록 엔터테인먼트가 판권을 사들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묶여있다가 1995년 봄, <체이싱 에이미>에 출연하게 된 에플렉이 <체이싱 에이미>의 감독인 케빈 스미스와 제작자인 스콧 모시어에게 의뢰하게 되자 미라맥스의 부회장인 하비 와인스타인에 의해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 픽션>으로 미라맥스와 인연을 맺어온 로렌스 벤더를 제작자로 영입하는데 성공했다. 감독엔 벤 에플렉의 동생이자 <투 다이 포>에 출연했던 케이시 에플렉을 통해 구스 반 산트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천재 청년 윌 헌팅은 보스턴 빈민가에 살며 명문 MIT에서 청소부로 일한다. 윌은 교수들도 쩔쩔매는 수학 문제를 싱겁게 풀어버린다. 램보 교수는 이 반항적인 천재를 세상으로 끌어내려 하지만, 윌은 방황한다. 램보 친구인 심리학 교수 숀이 상담을 맡으면서 윌과 숀 사이엔 마음을 여미고 열려는 승강이가 시작된다. 맷 데이먼은 복잡한 대사를 거침없이 토해내며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에 올르면서 스타덤에 올랐다. 벤 애플렉도 이 영화 이후 헐리웃 박스 오피스 <아마게돈>에 출연하는 행운도 얻는다. 로빈 윌리엄스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처럼 젊은 가슴에 걸린 빗장을 푸는 교수로 출연했다. 투정하는 윌과 포용하는 숀은 부자관계처럼 묘사돼 있다. 윌과 연인도 마치 모자 같다. 종반, 윌에게 빈민가 친구는 '떠나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시네마 천국>에서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이른 것과 흡사하다. 기성 체제에 대한 비아냥과 밑바닥 삶을 보는 따스한 시선만큼은 구스 반 산트답다는 평이다. |
▒ 심리학 이야기 (심리상담 : 라포)
이 영화에서 주인공 윌헌팅은 천재지만, 과거에 얽매여 새로운 사회에 나가기를 겁내고, 사랑에 서투른 사람입니다. 그는 여러 심리전문가들을 먼저 분석하고, 타인을 심하게 비난하고, 사랑하면서 버림받을 까봐 두려워서 먼저 떠나는 사람입니다.
즉 과거에 의붓아버지한테 받은 학대 때문에 어른이 되어도 부적응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인생을 좌우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윌을 심리학자 숀은 이해해줍니다. 대사 중에 숀은 윌에게 "그건 네 잘못이 아냐 (it`s not your fault)"말하며, 힘들어하는 그를 감싸주고 어린아이 같은 그를 상담자가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애정과 충고를 해줍니다. 이 영화에서 숀이 사용한 상담 접근 방식은 딱히 없고, 현 상담과는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하지만 윌이 숀에게 만큼은 마음을 연 이유는 추측컨대 숀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자신의 아픈 경험을 이야기했고, 이게 윌에겐 상당한 자극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론 상담자의 자기 개방이 좋은 치료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둘 사이에는 라포가 생기게 됩니다.
여기서 라포란 상담장면에서 관계 형성으로 서로간의 신뢰/믿음으로 형성 된 관계를 말합니다. 이런 라포 형성이 윌을 진정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향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출처 : http://cafe.naver.com/jjtve.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50
http://zizz.x-y.net/psycho/movie_sangdam_1.htm
자기애성 성격소유자의 불행 - "굿 윌 헌팅" | ||||
불안을 방어하려는 무의식적 과정 보스턴 빈민가에 사는 윌 헌팅은 낮에는 MIT 공대 청소부로, 밤에는 동네 건달로 살아간다. 그는 대학에는 다니지 않았지만,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다. 입심이 좋은 윌은 대학생들과 자주 논쟁을 벌이며, 자신의 비위를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주먹질을 하였다. 자신은 특별하다고 믿는 자기애성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느 날 MIT공대의 램보 교수가 학생들에게 낸 수학문제를 윌이 몰래 풀어놓고 사라진 일이 있었다. 램보 교수는 어려운 문제를 정확하게 풀어낸 학생을 수소문하던 중 법정에서 그를 발견한다. 폭행 전과가 많은 윌은 다시 폭행죄로 붙잡혀 이번에는 교도소에 수감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램보 교수는 윌을 석방시켜주는 대신 두 가지 조건을 내세운다. 하나는 자신과 함께 수학 연구를 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다. 천재를 발견한 램보 교수는 윌의 능력을 내심 부러워하면서도, 재능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싶었다. 오만하고 건방지기 짝이 없는 윌은 램보 교수의 진정한 바람을 무시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지만 비협조적이었다. 감정이 차갑고 남에 대한 관심이 결여된 윌은 의사와 관계 맺기를 거부하였고, 여러 의사들이 치료를 포기하였다. 마침내 숀이라는 정신과 의사를 만난 윌은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윌은 어린 시절 친부모에게 버림받고 입양되었다. 그러나 양부의 모진 학대로 여러 번 다른 집으로 옮겨야했던 윌은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과 증오심을 갖게 된다. 윌은 버림받고 학대당하는 무력하고 열등한 자기(self)를 방어하기 위해, 과대적인 자기를 만들어낸다. 병적으로 과대한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남을 깔보고 오만하게 굴어야 한다. 누가 조금이라도 열등감을 자극하는 말을 하면 화를 참지 못한다. 이것이 자기애적 성격이 생기는 기전이다. 이것은 개인 뿐 아니라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열등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국가가 안간힘을 써서 과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어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일삼고, 비판하는 집단에게 강한 폭력을 휘둘러대는 현상도 병적인 나르시시즘의 한 단면이다. 자신의 열등한 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웠던 윌은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것을 꺼렸다. 윌은 스칼라라는 여자를 만나지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스칼라가 윌의 부모 형제나 친구를 만나보고 싶다고 제안하자, 윌은 두려워하며 관계를 끝내버리고 만다. 그 후 공허감과 우울감에 고통스러워한다. 윌은 자신을 비난하거나 공격할지도 모를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몰래 혼자서 책을 독파하며 지식으로 무장한다. 직접적인 경험 대신에 이론들로 무장하여, 용납하지 못할 감정과 충동에서 기인한 불안을 방어하려는 무의식적 과정을 지식화(intellectualization)라고 한다. 자기애성 성격장애자는 천재성이 있더라도 좌절과 비난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직장이나 학교생활을 성공적으로 하지 못한다. 윌은 천재성을 가졌지만 유용하고 자기만족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천재가 방향을 잘못 잡을 경우, 윌처럼 개인적인 불행도 안타깝지만, 런던 테러의 배후로 알려진 화학자 엘-나사르처럼 헛되이 그 명석한 두뇌를 사용하게 될 때는 그 폐해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천재 과학자들이 군사 관련 연구나 핵개발에 투입되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현실처럼 말이다.
김성미 대구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
윌 헌팅은 MIT 공대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보스톤 빈민가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그저 싸움과 술로 하루하루를 소일하는 청년 입 니다. 비록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두뇌는 매우 비상합니 다. 어떤 분야의 책을 읽더라도 전문가를 능가하는 지식을 습득 할 수 있어 순식간에 지적 우위를 선점해 권위에 대한 격렬한 저 항을 합니다. 판사에겐 판례로 대항하여 자신을 변호하고, 자신 을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를 분석하여 치료를 포기하게 만들 며, 잘난 척 하며 친구를 무시하는 하버드대 생에겐 압도적 지식 으로 망신을 주는 행동들……. 그러다가도 자신을 통제 하지 못 하는 날에는 경찰에게까지 폭행을 가할 정도로 충동적이고 반항 적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의 시작은 윌이 대학 강의실을 청소하는 도중 수학과 램보 교수 가 학생들에게 숙제로 내주었으나 아무도 풀어내지 못한 수학문제를 완벽하게 풀고 도망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 장면을 목격하게 된 램보 교수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후계자로 키우기로 결심하고 경찰을 폭행하여 구속 위기에 처한 윌을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를 받 는다는 조건하에 보석으로 석방시켜 줍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점차 우리의 마음에 서서히 의문이 싹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렇게 영특 한 젊은이가 왜 세상(보통사람들이 인지하는)에 편입되기를 거부하 고 자학적이기 까지 한 생활에 그토록 매달리려 하는지….
그럼 여기서 주인공 윌이 갖고 있는 자기애성 인격장애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봅니다.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무감각형(the oblivious narcissist) 과 과민형(tne hypervigilant narcissist) 2가지 유형 이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무감각형의 임상양상으로는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 는 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항상 대중에게 연설하듯 이야기를 하는 데, 주로 자신의 업적을 반복하여 이야기 하고, 듣는 사람들이 이내 지루해 하며 자리를 피하기도 하지만 이에 전혀 개의치 않고 항상 자 신만이 이야기를 해야 하며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이들은 타인의 욕구에는 관심이 없고, 심지어 타인이 대화에 끼어 드는 것조차 허용치 않습니다. 말하려고만 할 뿐 들으려 하지 않아 오 직 송신기만 있을 뿐 수신기는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인 과민형인 경우 이와 정반대로 자신에 대한 타인의 반 응에 지나치게 민감합니다. 무감각형의 환자들이 언제나 자기몰두 (self-absorption)에 빠져있는 반면, 이들의 관심은 늘 타인에게로 향해있고 편집성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타인이 자신을 비판하 지 않나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며, 조그마한 비판의 힌트라도 있으면 쉽게 상처를 받습니다. 이들은 부끄러움이 많고 억제되어 있으며 자 신을 숨기려 합니다. 거절이나 모욕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 자신을 드 러내지 않으려 하는데 그 내적 세계의 핵심에는 강한 수치감과 자신 을 과시하고 싶은 비밀스러운 소망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애성 인격장애 환자가 갖고 있는 부끄러움(shame)의 중심에는 타고난 결함이 있다는 스스로의 느낌이 존재 합니다. 따라 서 자신의 능력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였을 경우 창피를 당 했거나 폭로되고 말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병적인 자기애를 가진 환자들의 주된 정신병리입니다.
주인공 윌은 어린 시절 여러 차례 다른 양부모에게 입양되며 학대 를 받았던 고통스러운 기억을 간직한 청년입니다. 그래서 윌 내면에 는 늘‘나는 결함이 있기 때문에’‘나는 나쁜 존재이기에’부모에게 버림받고 학대당했다는 무력하고 열등한 자기가 웅크리고 있습니다.
윌은 이런 고통스러운 자기 인식을 피하기 위해 과대한 자기를 발 달시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오만하며 다른 사람을 깔보고 과 대한 자기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다른 사람의 갈채가 필요하며 열등 감을 자극하는 사소한 일에도 통제되지 않는 분노반응을 일으킵니다.
내면에는 세상에 대한 깊은 불신과 증오가 자리하며 혹 자신을 버릴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비상한 지적 능력을 사용해 한치의 근접 도 허용할 수 없도록 미리 방어막을 쳐버립니다. 가족 같은 친구들의 찬탄과 인정을 받으며 생활하지만 막노동과 청소부로 안주 한 채 세 상 속으로 나오기를 거부합니다. 처음으로 의대생 스칼라를 만나 사 랑이라는 실제적 관계를 시도해 보려 하지만 자신의 결함이 발각되 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결국 먼저 떠나버리는 극단적 행동을 취하기도 합니다.(영화 말미에는 치료 후 용기를 갖고 비로소 스칼라를 찾아 여행을 시작합니다)
윌은 숀과의 치료를 통하여 고아로 태어나 모진 학대를 받았던 악몽 같던 어릴 적 기억들이 자신의 결함이나 악함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내면 깊숙이 자리잡아 그를 조정해왔던 죄책 감이라는 마음의 실체를 대면하게 되면서 평생 괴롭혀오던 고통의 찌꺼기들을 힘들게 토해내게 됩니다.“ 그래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니었 어”,“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고”…….
반항과 조소, 분노와 공격성으로 무장된 윌, 그는 실제세상을 어 떤 눈으로 바라보며 또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을까요? 영화 속에서 윌은 자신을 맡았던 모든 정신과 의사를 공격하여 치료를 포기하게 만들고 램보 교수는 결국 학창시절 라이벌 관계였던 숀을 찾아가 도 움을 청합니다. 처음 숀을 방문한 윌은 숀이 직접그린 그림을 보자마 자 예의 분석적 공격을 가합니다.“ 거대한 폭풍이 몰아치는 속에서 배는 위험을 피해 부두를 찾고 있군요”“당신은 두려움을 이기려고 정신과 의사가 된 거죠?”과연 숀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 정말 윌은 숀을 정확하게 분석한 걸까요? (영화에서 숀은 보통의 치료자와는 달리 격렬하게 화를 냅니다) ‘ 집채만한 파도가 당장이라도 덮칠 것 같은 절박함 속에서 폭풍우를 헤쳐나갈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오로지 안전한 부둣가를 찾아 헤매는 나약하고 조그마한 배’ 아마도 이 배는 숀이 아닌 윌 자신이었을 겁니다.
윌은 그림에서 성난 폭풍(윌이 바라보는 세상) 속의 조그마한 배, 한없이 미약한 존재인 자신을 보았(투사)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엔 여러 유형의 성격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아니 나의 마음엔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 세상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투영되고 있는지 한층 궁금해지지 않습니까?
도움말 ·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과 강이헌 교수
Good Will Hunting (굿윌헌팅)
`상담은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 -숀-
상담을 종결하면서 실제 상담자는 내담자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 성찰하게 되고 다양한 각도로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른 어쩌면 삶의 체험 면에서 고통을 극복한 사람으로서는 더 큰 스승인 내담자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감사함을 느낀다.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숀의 고마운 건 오히려 나라는 말을 실감할 것이다. 숀도 윌과의 상담을 통해 한층 더 성숙을 경험했을 것이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어떤 패를 쥐고 있는지 탁자에 늘어놓고 돌아볼 셈이다`라는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연구실을 떠난다. 언제쯤이면 숀과 같은 상담자가 될 수 있을까 짧은 한숨과 동경을 갖게 하는 최고의 영화다.
첫댓글 쌩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