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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동굴 *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것처럼 정교한 많은 기암괴석들이 늘어서 있어서 웅장한 지하궁전을 방불케 한다 "한양을 떠나 피난길에 오른 밀양 박씨 형제 가운데 아우는 청주에 정착을 하고 형은 안식처를 찾아 계속 산간벽지를 배회하던 중 말의 발병으로 인해 이곳에 머무른 것이 오늘날의 고수리의 기원이며, 이 마을에는 밀양 박씨들이 거주하고 있다." 고수동굴은 1973년 10월 한국동굴학회 조사단에 의하여 발견되었으며 수원에 있는 유 신고등학교, 창현고등학교를 설립한 학교법인 유신학원에서 학생들의 자연학습장으로 1976년에 개발하여 현재 국내에서 제일가는 동굴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동굴속의 생물로서는 노래기, 톡톡이, 거미류, 물에는 장님엽새우, 염주다슬기, 물고 기 등 약 25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사자바위, 문어바위, 독수리바위, 마리아상 등 120여개의 종유석과 석순이 웅장하게 들어서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 단양관광안내소 043-422-1146 * 고수동굴 문화재 관리소 043-422-3072, 423-3071 단양군 단양읍 일원 문화관광과 043-420-3544 다리안계곡
다리안계곡은 다리안국민관광지(423 - 1243)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양에서 고수대교를 건너 계속 직진하면 6km 지점 천동동굴 경유 1km 더 올라가면 된다. 울창한 수목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이끼 하나 없는 바위를 휘감으며 청량한 소리를 내 고 흐르는 곳. 폭염속에서 피서지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소망해 보는 곳이다. 소백산 자락 내밀한 곳을 흐르며 발만 담가도 더위가 싹 달아나는 다리안계곡 다리안 관광 지 바로 옆에 계곡이 위치하고 있어 국민관광지 편익시설인 원두막26동, 야영장, 주차장, 매점 등이 있어 가족 피서계획을 한다면 한번쯤 염두에 두어 볼만한 장소로서 주변 가까운 곳에 단양의 명소인 3대동굴, 도담삼봉, 수상관광인 구담봉, 옥순봉, 소백산관광목장 등이 산재해 있어 한곳에 머무는 단조로움도 피하고 더위탈출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단양군 단양읍 천동리 380번지 일대 * 단양관광 안내소 (043-422-1146) 남천계곡
남천계곡은 단양에서 고수대교를 건너 595번 지방도 - 가곡면 - 군간교 건너서 우회전 - 영춘방면 522 지방도 - 영춘교 건너 우회전 - 영춘면 하2리 - 왼쪽으로 남천계곡 접어들어 소백산 국립공원 지역내에 위치하고 있으며(단양에서 25km), 물이 맑으며 아직까지는 인적이 드물어 천연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과 계곡의 은옥같은 물이, 가을에는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계곡안의 물은 전혀 오염이 되지 않아 보기드문 물고기들이 많이 서식하며 소백산 국립공원에서 조성한 야영장 2개소(2,240평)가 있다.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 , 남천리 043-422-1146 온달동굴
온달산성이 있는 성산 기슭 지하에서 약 4억 5,000만년 전부터 생성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온달동굴은 주굴과 지굴의 길이가 760m인 석회암 천연동굴이다. 그 존재 는 신증동국여지승람 제 14권 충청도 영춘현 고적조에 기록되어 있으며 1966년부터 학술조사가 시행되어 1975년 잠시 공개하였으나, 지리적 여건으로 폐쇄되었다가 대 대적인 개발을 통해 1997년부터 다시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아직 전혀 훼손되지 않은 태고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동굴의 특징으로 동굴의 높이는 5-10m, 폭 5m 가량으로 계단형 구조에 아기자기하 고 여성적인 모양의 석순과 종유석이 잘 발달돼 있으며, 내부 평균온도가 여름철에 는 섭씨14도, 겨울철에는 섭씨16도를 유지해 사계절 관광지로 적합하다. 단양군 영춘면 하리 산 62 온달관광지 관리사무소 043-423-8820 선암계곡(하선암)
선암계곡은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에서 대잠리에 이르는 약 10km의 청정계곡으로 유명한 단양팔경 중 3경(상,중,하선암) 특선암, 소선암이 자리하고 있다. 계곡 어디에서나 야영 및 물놀이가 가능한 여름철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 산 71-1, 대잠리 284일대 043-422-1146 제비봉
제비봉은 충북 단양군 단양읍에서 서쪽인 충주호 방면의 단성면 장회리에 위치한 산이다. 단양팔경 중 수상관광지로 유명한 구담봉과 옥순봉에서 동남쪽 머리 위로 올려다 보이는 바위산이 바로 제비봉이다. 산 이름이 제비봉이라 불리우는 것은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구담봉 방면에서 이 산을 바라보면 충주호쪽으로 부챗살처럼 드리워진 바위 능선이 마치 제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나는 모습처럼 올려다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제비봉 서쪽 골짜기가 바로 비경지대인 설마동 계곡이어서 산과 계곡, 호수 모두가 수려하기 그지 없으며 가을 단풍철에는 그 경관이 극치를 이루고 산행 길목에 "오성암" 이라는 산사가 자리 잡고 있어 산행인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단양군 단성면 장회리 문화체육과 043-420-3114 구인사
▲ 충북 단양군 구인사(救仁寺) 입구
걸어서 여행을 하는 일은 욕심을 버리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차로 움직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길들이 여행자를 유혹하기 때문이지요.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도 사이사이로 이어진 소로나 촌락에 맘을 뺏겨 여정이 길어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 고수동굴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고수리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동굴로 약 5억년전 고생대 전기 해저에서 퇴적된 석회암이 모암으로 발달한 석회암 동굴이다. 천연기념물 제 256호로 지정되었으며, 총 길이 1,700m의 종유동굴이다. 고수동굴이라는 이름은 고수동명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마을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임 진왜란과 관련된 전설이 있다.
단양군 단양읍 고수리
단양 팔경
단양팔경은 예부터 중국의 소상팔경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굽이쳐 흐르는 남한강 상류에 도담삼봉, 석문이 있으며 충주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구담봉 옥순봉이 있어 선상관광의 백미를 맛볼 수가 있으며 선암계곡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과 운선구곡에 있는 사인암을 단경팔경이라 부른다.
단양 팔경은 조선왕조 개국공신 정도전을 비롯하여 퇴계 이황 선생, 토정 이지함 선생 등 수많은 학자와 진경산수화를 추구한 단원 김홍도, 정선 등 많은 화가들이 아름다움을 한폭에 담았던 곳으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유서깊은 명승고적들이 산재해 있다. 이퇴계 선생이 군수재직시, 극찬을 했을 정도로 빼어난 절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는 소백산과 금수산, 도락산의 계곡마다 기암괴석이 웅장하고, 맑은 물이 수많은 신비경을 이루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단양 팔경은 1코스 - 도담삼봉, 석문, 2코스 - 구담봉, 옥순봉, 3코스 - 사인암,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근에는 충주호의 유람선과 단양 제 2팔경, 대명콘도개장 등을 중심으로 하여 종합관광지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천동관광지 소백산계곡 수를 이용한 물놀이장이 조성되어 여름 피서철 관광객이 많으며, 단양시내 고수대교 건너편에 단양 종합관광안내소가 위치해 있어 관광객의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다.
계곡 중간쯤에 용담이라는 작은 소가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용이 승천했다고하며 큰바위에 용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 단양군청 문화관광과 (043-420-3544, 3541)
* 다리안관광지 관리사무소 (043-423-1243)
특히 지하 수가 풍부해 동굴 밑바닥에는 깊이 0.8m-1m 정도의 물이 흐르고, 소규모 연못도 40 여 개나 있으며 산천어등 물고기와 곤충 등 10여종의 생물도 서식하고 있다. 동굴 밖으로 나오면 동굴 왼쪽 산꼭대기에 온달산성이 있다. 고구려의 휼륭한 축조 기술을 엿볼 수 있는 반월형의 이 산성은, 1,400여년의 세월에도 원형이 거의 그대 로 보존되어 있으며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연연히 이어오는 까닭에 매년 10월 국화향기가 그윽할 즈음 '온달문화축제'가 성대히 열린다. 온달관광지 내의 테마공원과 장승공원은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 하선암
삼선구곡을 이루는 심산유곡의 첫 경승지로 3층으로 된 흰바위는 넓이가 백여척이나 되어 마당을 이루고 그 위에 둥글고 커다란 바위가 덩그렇게 얹혀있는데, 그 형상이 미륵 같아 <불암>이라고도 불리운다. 그 바위는 조선 성종조 임재광 선생이 신선이 노닐던 바위라 하여 <선암>이라 명명하였는데 거울같이 맑은 명경지수가 주야장천 흐르고 있고 물속에 비친 바위가 마치 무지개 같이 영롱하여 <홍암>이라고도 한다. 봄철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가을에는 단풍이 어우러진 장관은 가히 별천지라 이를 만하다. 특히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 중선암
조선 효종조 문신인 곡운 김수증이 명명한 곳으로 삼선구곡의 중심지이다. 순백색의 바위가 층층대를 이루고 맑은 물이 그 위를 흐르고 있어 여름철의 가족 단위 휴양지로 적합하다. 암계류에서 쌍룡이 승천하였다 하여 <쌍룡폭>이라고도 칭하며 백색의 웅장한 2개의 바위는 각각 <옥염대>와 <명경대>라 불리어 온다. 옥염대 암벽에는 <사군강산 삼선수석>이라 대서특필한 각자가 있는데 이는 조선 숙종 43 년 관찰사 윤헌주가 특서한 것으로 사군이라는 것은 당시의 단양, 영춘, 제천, 청풍을 이른다.
* 상선암
크고 널찍한 바위는 없으나, 작고 올말종망한 바위들이 서로 모여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정겹다. 맑은 벽계수가 용출하여 반석 사이를 평평히 흐르다가 좁은 골에 이르러 폭포가 되어 구름다리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 소리는 우레 같고 튀는 물방울은 보는 이의 옷깃을 적신다. 조선 명종조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 수암 권상하가 명명하였으며, 그는 이곳에 소박한 초가정자를 짓고 "신선과 놀던 학은 간 곳이 없고 학같이 맑고 깨끗한 영혼이 와 닿는 그 런곳이 바로 상선암일세"라며 욕심없는 인생을 즐겼다 한다.
날짜를 기약하진 않았으나 마음처럼 내내 떠돌 형편도 안 되니 요령껏 둘러보자 하면서도 강원도에서만 보름을 걸었습니다. 그러고도 마치 맛난 음식을 입에 대다 만 것처럼 영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풀코스의 맛깔스러운 음식이 이제 시작임을 생각하며 태백산 등정을 끝으로 강원도를 지나 충북 단양으로 넘어왔습니다.
태백시에서 제천 오는 버스를 타고 그곳에서 예전부터 가고자 했던 단양 구인사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사람을 구한다 해서 '구인사(救人寺)'?
구인사를 처음 알게 된 건 친언니를 통해서였습니다. 제 언니는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5년간의 열애 끝에 15살 연상의 형부와 결혼했습니다. 영화감독인 형부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정말이지 영화 같은 사투를 벌인 결과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이자 자상하기 그지없는 제 형부의 아내가 되었습니다(물론 부모님은 손녀 재롱에 자지러지는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고요). 언니가 구인사를 찾은 건 부모님과 극렬한 갈등을 빚으며 사랑마저 포기하고 싶은 때였다고 했습니다.
이쯤에서 구인사에서 만난 '그'를 소개합니다. 그는 바로 제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와 저는 지난겨울에 처음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본 순간 주위의 사물들이 모두 멈춘 듯했답니다. 남자가 여자를 꾀려는 뻔한 미사여구라고 매번 코웃음을 쳐도 정색을 하며 진심이라 합니다. 처음엔 '바람둥이인가 아니면 정신이상자인가' 싶을 정도로 저돌적인 그에게 결국 저 역시 급속도로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틀이 멀다 하고 전쟁을 벌이지만 금세 서로를 찾아 헤매는 이란성 쌍둥이처럼 닮은 연인 사이이지요.
그가 제게 해준 무용담입니다. 캐나다에서 스노보드를 타다가 무리에서 혼자 이탈해 낯선 숲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답니다. 그러다 깊은 새벽에 잠을 깨고 보니 자기 몸채만한 늑대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노려보고 있더랍니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오랜 눈싸움 끝에 늑대가 스스로 도망쳤다는군요. (여러분도 저처럼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그리고 7개월간의 인도여행 당시 자신이 좋아하는 나이키 운동화 한 켤레만 믿고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려고 했다나요. 19살도 아닌 25살에요. 그는 혼자 여행하며 글을 쓰는 저를 지나치리만큼 걱정하지만 짐작하다시피 저는 그가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그런 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을 잃은 건 우리가 만난 지 한달이 안 됐을 때입니다. 그 사연은 그를 위해 여기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때 우리는 마치 폭풍우 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처럼 둘이 함께 울고 함께 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니가 구인사 얘기를 다시 꺼낸 건 그즈음이었습니다. 비록 사랑과 이별이라는 상극을 위한 과정이었지만 사람으로 아픈 마음이 다르지 않기에 진심으로 제 연인을 걱정하는 마음에서였겠지요. 5천원에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며 가볍게 가서 마음의 짐을 좀 덜어놓고 와 보라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슬픔이 커서 발길조차 떨어지지 않았었고 그 후로 넉 달이 흘러 그와 저는 예기치 않게 구인사에서 재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 현대식 공법으로 지어진 웅장한 구인사 건물들
'그'와의 재회
얼마 후 아파하는 그를 남겨두고 저 역시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있었기에 길을 떠났습니다. 모진 마음으로 모든 연락수단을 끊고 홀로 떠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가는 길마다 그가 밟히고 마음은 낯선 길 위와 그가 있는 곳을 오갔습니다. 강원도에서의 여정을 정리하며 제 자신의 의지로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제 목소리를 확인한 순간 서럽게 터진 울음을 감추는 그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인사(救仁寺)'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슬픔 속에서 그 사람을 구하고 싶은 마음에 절의 이름이 더욱 와 닿았습니다. 알고 보니 구인사의 '인'은 한자로 '어질 인(仁)'이지만 꼭 사람을 구한다 하여 '구인사(救人寺)’인가 싶었습니다. 태백시에서부터 세 시간여가 걸려 구인사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소년 같은 모습으로 저를 기다리고 있는 그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수줍게 웃으며 한동안 바라보고만 있다가 이내 손을 잡고 구인사로 들어섰습니다.
▲ 구인사 대법당에서 내려다본 풍경
소림사 같은 구인사(救仁寺)
구인사는 우리나라 불교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전국 140여 개의 사찰을 관장하는 최고 큰절입니다. 천태종이란 명칭은 이 종파의 창시자인 중국 지자대사가 천태산에서 수양한 데서 유래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1945년 상월원각 스님에 의해 개창되었습니다. 평소 보아온 절의 모습과는 그 모양은 물론 규모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 무척이나 낯설었습니다.
소백산 연화봉 아래에 자리 잡은 구인사는 입구에서부터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50여 동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마치 영화에서 본 중국의 소림사 같다 하였습니다. 저 역시 절 마당 한켠에서 소림의 무예들이 질서정연하게 무술을 연마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흙으로 만든 낮고 안온한 느낌의 사찰과는 달리 고개를 한껏 젖혀야 그 끝이 보일 만큼 거대한 구인사의 건물들은 현대식 공법을 적용한 콘크리트 건물입니다. 구인사의 대법당은 5층 높이에 900평 넓이의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최대 규모의 법당으로 유명합니다. 대법당에서 절 마당을 내려보니 수백 개는 될 듯한 장독대가 절의 규모만큼이나 장관이었습니다.
▲ 구인사에서 만난 나의 연인
원래 집안 대대로 천주교를 믿었던 그는 물론 불교가 익숙한 제게도 그런 구인사의 풍경은 이색적이었습니다. 보통의 조계종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단아한 석탑과는 달리 맨 아랫단을 코끼리가 받치고 있고 형형색색의 화려한 조각들이 가미된 탑부터 삭발을 하지 않은 여승, 그리고 스님의 염불 소리에 맞춰 어우러지는 목탁 소리가 예의 그것보다 훨씬 소란스러웠습니다. 한판의 굿이 연상될 정도였습니다.
절의 내부를 둘러보고 대법당의 불상 앞에서 예를 갖춘 뒤 저녁 공양을 하러 갔습니다. 공양도 여느 사찰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풍성하여 배를 불리고도 나눠준 떡을 싸서 나왔습니다. 원래는 하루를 묵을 계획으로 총무원에 5천원씩을 내고 들어왔지만 공양을 마치고는 의논 끝에 구인사를 나왔습니다. 사찰의 웅장함과 화려함이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했던 기대와는 다소 맞지 않은 듯해서였습니다.
당신은 나의 운명
구인사에서 나와 마침 근처에 꽃배달을 왔다는 아저씨의 차를 얻어 타고 단양역까지 갔습니다. 호의에 조그마한 답례를 할까 했지만 아저씨의 단호한 거절에 감사하단 인사만 여러 번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란히 서울로 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후 저는 곧 다시 길 위에 섰지만 그와의 짧은 재회는 제게 많은 용기를 주었고 길지 않은 우리의 사랑에 확신 하나를 더해주었습니다.
그와 저는 자주 싸웁니다. 보통의 연인들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주 그리고 치열하게 싸웁니다. 아마 지금껏 싸운 횟수를 손가락으로 세면 백 번을 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도 나도 압니다. 어느새 '헤어져버려'란 말이 '너 없으면 안돼'라는 말임을. 오늘도 우리는 떨어져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운명이 허락되는 한 서로 떨어져 있어도 하나임을 느낍니다. 구인사에서의 재회가 행여 우리의 사랑을 단단히 맺어준 것일까요?
▲ 떨어져있어도 우리가 하나임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