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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철학책, 이렇게 고르고 읽자
안광복_중동고 철학교사 timas@joongdong.org
“너 마약하지?”
아이들에게 책을 권하는 일은 늘 부담스럽다. 철학책은 더 그렇다. 내용 튼실한 책을, 그것도 학생 수준에 맞추어 고르는 일은 품이 많이 든다. 그럼에도 결과는 노력의 본전도 못 챙기는 경우가 많다. 책을 건넨 후에, 아이의 마뜩찮은 표정이나 부모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부딪히게 될 때가 많다는 뜻이다.
철학책은 대개 어렵다. 그러니 아이 눈에는 당연히 버겁게 느껴질 터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모의 반응이다. 어렵지 않을까하는 근심은 차라리 낫다. “이런 책을 아이에게 읽혀도 괜찮을까요?”라는 물음에는 가슴이 턱 막혀온다.
철학소설 소피의 세계에서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눈앞에 보이는 것이 다 진짜일까요?”라고 묻는 소피에게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눈길로 묻는다. “너 마약하는구나? 아니면 남자친구를 사귀는구나?”
하긴, 이런 ‘철학적 물음’은 삶이 뭔가 꼬이고 뒤틀릴 때 생기는 법이다. 인생이 온통 장밋빛인 사람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의문에 빠지는 일은 좀처럼 없다. 철학책을 접할 때 부모가 걱정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혹시 우리 아이가 철학을 접하고 남들은 좀처럼 고민하지 않을 법한 문제를 고민하는 ‘사이코’가 되어버리지는 않을지, 혹여 병들고 고생에 찌든 사람들처럼 인생을 바라보게 되지는 않는지 등등. 부모의 근심에는 이유가 있다.
“철학백신, 인생을 키우는 최고의 보약”
하지만 철학은 어느 시대에나 ‘엘리트들의 필수 교양’이었음을 기억하자.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내 헌신과 희생이 사회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과학기술이 과연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가?” 등등의 물음은 삶이 망가지고 힘겨울 때 찾아온다. 하지만 이 질문들은 동시에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근본 물음’이기도 하다.
심하게 아파본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튼튼하게 몸을 가꾸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철학은 인생의 백신이자 영양제다. 인생이 진짜 아프지 않더라도, 심각할 때 찾아오는 물음을 미리 던지고, 이를 충분히 고민하게 하여 영혼을 튼실하게 만든다. 세상과 인생에 대해 뿌리까지 깊게 파고들어 고민해 보라.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사람은 인생의 훨씬 깊은 맛을 느낀단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철학 백신’을 맞은 아이는 절대 아무 생각 없이 삶의 순간순간을 흘려보내지 않을 터, 그러니 아이에게 철학에 접하게 하는 일을 겁낼 이유는 없다.
“무엇이 철학책인가?”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아이에게 맞는 철학책을 어떻게 고를까? 먼저 철학책이 무엇인지부터 정리해야 한다. 철학책은 철학전공자가 쓴 책일까? 표지에 ‘철학’이라는 말이 들어가면 철학책인가? 사실, ‘철학책’이라는 범주는 무시해도 좋다. 어떤 책이건 철학적인 의문을 담고 있으면 다 철학책이다. 예컨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윤리학), “신은 존재하는가?”(형이상학), “눈에 보이는 데로 믿어도 되는가?(인식론)”, “죽으면 인생은 끝나는가?(실존철학)”, “과학은 미신과 어떻게 다른가?(과학철학)”, “남자는 남자를 사랑해도 되는가?” 등등. 삶을 꿰뚫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해답을 찾는 책들은 더 ‘철학책’의 범주에 넣어도 좋겠다.
예를 들어보자.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철학책인가? 물론 그렇다. 동시에 이 책은 수사학에 고갱이를 담은 문학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걸리버 여행기는 문학책인가? 그렇다 풍자문학의 진수다. 동시에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의문을 던지는 철학책이기도 하다. 이문열은 소설가인가? 그렇다. 동시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같은 소설은 권력의 유혹과 선과 악의 현실을 진단하는 철학책이기도 하다.
책을 고르면서 내용에 담긴 문제의식을 한 문장의 물음으로 정리해보라. “그냥 재미있었다.”를 넘어 깊은 생각거리가 여운으로 남는다면 그 책을 철학책으로 삼아도 좋다.
정제된 당분과 탈곡된 곡식은 되레 몸에 해롭다. 철학문제는 철학자들이 탐구하기 쉽게 정돈된 형태가 아니라, 일상의 껍데기와 함께 다가올 때 더 생생하며 정신에도 이롭다. 아이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먼저 눈높이를 가늠해 보자. 친구관계?, 부모와의 갈등?, 진로문제? 등등. 그 쪽에 물음을 담은 책을 골라서 아이에게 건네주자. 몸에 부족한 양분이 든 음식에는 입맛이 당기는 법이다. 책도 마찬가지다. 자기 고민의 해결책을 던져주는 책에는 저절로 흥미가 끌리기 마련이다.
“건너뛰고 버리면서 읽기 -철학 책을 읽는 법 1”
그러면 책을 골랐으면 어떻게 읽어야 할까? 수학과 자연과학에서 천재들은 대개 이십대 초반에 탄생한다. 하지만 인문학에서는 나이 지긋해서야 비로소 대가(大家)라는 소리를 듣는다. 한마디로, 인문학에서는 천재란 있을 수가 없다. 인생의 폭과 깊이가 없이는 도저히 삶의 심오한 진리에 공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인생의 차고 뜨거움을 다 겪은 이에게,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가슴 절절한 깨달음으로 다가선다. 그러나 꿈과 희망에 가득 차 세상에 뛰어들 순간만을 기다리는 젊은이에게 석가모니의 말은 ‘성현(聖賢)의 가르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뭔가 소중하고 의미 있겠지만 나하고는 별 상관없는 그런 말로 흘려듣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깊은 의미를 담은 철학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유홍준 교수의 명언을 그대로 따르면 되겠다. 철학의 진리는 알면 삶의 보석이 되지만, 모른다 해서 인생이 망가지지는 않는다. 자기 가슴에 절실한 그만큼만 보라. 필요 없어 보이는 부분은 건너뛰고 버리면서 읽어라.
밑줄 그으며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똑같은 책인데도 밑줄 치는 부분이 몇 년 사이에도 여러 번 바뀐다는 사실을.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이해하며 다 읽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 때 그 때 쪽들을 훑을 뿐인데도, 나에게 정말 필요한 구절들은 쏙쏙 눈에 들어와 박힌다. 전체 문맥이 없더라도, 그 자체로 무척 소중한 내용들이다.
철학책도 그렇다. 꼭 알아야 한다는 강박증을 버리고 가슴이 느끼는 필요만큼만 읽고 느껴보자.
“독서의 실미도 캠프 -철학책 읽는 법 2”
하지만 지적 지구력을 기르고 위해서 철학책을 정독(精讀)하는 때도 있다. 두뇌근육을 기르는 데는 철학만한 게 없다. 철학책은 정교한 논증(argument)로 되어 있다. 한 스텝(step)을 놓치고 나면 절대 다음 단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철학책을 읽을 때는 항상 요약과 정리가 필수다. 서양에서 나온 철학책들에는 책날개에 단락 마다 핵심내용을 깨알만한 글씨로 정리한 책들이 많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논의의 전개를 따라가기 벅차기 때문이다.
철학책에 작정하고 파고들 때는 그렇게 읽어야 한다. 단락마다 중심 내용을 추리고 전체 논의의 얼개를 곱씹으며 읽어야 한다. 철학책을 읽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루에 철학책 30여 페이지를 읽었다면, 이미 지적 지구력과 이해력이 대단한 경지에 다다랐다고 보아도 좋다.
철학책을 한 권 독파하고 나면, 책 읽는 속도와 독서량이 눈에 띄게 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철학책은 ‘독서를 위한 실미도 특수 훈련 캠프’와 같다. 힘들더라도 그 성과는 뚜렷하다.
더욱이, 철학책은 강한 중독성이 있으며 다른 분야에 까지 흥미를 넓히는 ‘독서 전파력’도 크다. 중독성 높은 컴퓨터 게임들은 대개 ‘진입장벽’이 높다. 처음 접하는 사람은 게임 방법을 익히는 과정에서 나가떨어지곤 한다. 그렇지만 한번 맛들이고 나면 좀처럼 헤어나지 어렵다. 전문 철학책도 그렇다. 처음 읽었을 때는 복잡한 용어와 논리 구조에 식은땀을 흘리지만, 익숙해지면 그 묘미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섬세한 논증과 압축된 진리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깊은 쓴 맛과도 같다.
더욱이 철학책은 추상적인 만큼, 다양한 변두리 책들에 대한 폭넓은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추상적인 내용은 결국 구체적인 사례나 설명을 통해서만 이해가 된다. 철학책을 많이 읽는 학생들은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뿐 아니라, 소설, 영화, 만화까지도 닥치는 대로 읽게 된다. 의사 자격을 얻으면 간호사의 의학지식 정도는 쉽게 간파하게 되듯, 철학책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면 어지간한 전공분야의 책들도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모든 독서는 철학으로 통한다.”
문․사․철(文史哲)은 인문학의 뿌리다. 사실 이 세 학문은 하나다. 문학은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역사는 사람들이 살아왔던 과정의 의미에 파고들며, 철학 역시 다르지 않다. 독서 흥미는 대개 구체적인 내용에서 추상적인 논의로, 짧은 글에서 긴 호흡의 글로 옮겨간다. 문사철의 순서는 독서의 발달 순서이기도 하다.
예컨대, “과학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라는 철학물음은 멋진 신세계를 읽을 때 찾아들 수 있다. 하지만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의 무기 발전사를 보면서도 똑같은 의문을 품기도 한다. 오래된 미래같은 인류학의 책을 통해서도, 국가론의 8,9권을 보면서도 비슷한 의문을 품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책을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문제를 느끼고 고민하여 자기만의 건강한 세계관을 만들어내는가이다. 모든 독서는 결국 철학으로 통한다. 철학은 삶과 세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물음들이기 때문이다. 시중에는 ‘청소년 철학책’으로 분류된 책들이 꽤 많다. 마지막으로 책을 고르는 데 도움을 주고자 몇 권의 책을 추천한다. 물론, 꼭 ‘철학책’이 아니더라도 철학 물음을 담고 있다면 어느 책이건 아이들에게는 다 유익하다. 꼬마철학자들은 자신의 삶을 한 뼘 높게 키운다. 방학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신의 키를 한껏 키울 책은 어떤 책인지 고민해 보자.
청소년들이 읽을만한 철학책
1. 1013 철학 시리즈
철학 맛보기 시리즈 (소금창고)
철학동화1~7(배틀북)
어린이철학연구소 지음, 노마의 발견 1,2,3-철학하는 내가 좋아.(해냄주니어)
폴 클레그혼 , 스테파니 보데이, 철학 수업의 이론과 실제(닥터 필로스)
2. 스릴만점 이야기 철학
가아더, 소피의 세계
김은미 외, 퇴계, 달중이를 만나다.(디딤돌 청소년 철학소설) (디딤돌)
3. 원전독파 철학 훈련
맹자
장자
한비자
4. 학문의 결을 따라 철학하기
김용규,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웅진지식하우스)
안광복, 철학 역사를 만나다.(웅진지식하우스)
5. 논술배경지식, 철학사 탐색
윌 듀란트, 철학 이야기 (흥신문화사)
6. 꼬마 철학자, 깊이 사색하는 아이
스티븐 로, 철학학교 1,2,(창비)
조성오, 철학에세이 (동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