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의 연설, 한 번의 광고였지만, 이들이 대선에 끼친 영향력은 컸다. 이들은 두 대통령 후보가 서민적이고 친근한 이미지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선의 열기가 잊힌 지금, 이들이 지지했던 두 대통령은 곤경에 빠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자살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년6개월도 되지 않아, 20%대의 낮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씨와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씨는 자신이 지지했던 대통령의 곤경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서울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부근에는 때 이른 더위를 식히는 봄비가 내렸다. 강남구청역 4번 출구를 나와 남광토건 건물(舊 모토로라 사옥) 오른쪽 모퉁이를 돌자, 맞은편 건물에 있는 ‘욕쟁이 할머니 포장마차’ 간판이 눈에 띄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계단을 내려가 지하 1층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씨 가게를 찾았다.
강씨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TV 광고에 출연했다. 당시 강씨는 TV 광고에서 이 후보에게 “더 먹어. 이눔아. 밥 처먹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라고 말해 관심이 쏠렸다.
포장마차에는 주인인 강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강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집에 있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집에 손님이 오는 바람에 인터뷰 약속을 깜빡했어. 아, 근데 우리 애들이 인터뷰 같은 거 하지 말라던데. 기사가 인터넷에 뜨면 내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대.”
“피겨 요정 김연아 선수 기사에도 악성 댓글이 달린다”고 말하자, 강씨는 “그지? 나한테 댓글로 욕하는 사람은 나만도 못한 사람이여. 나 지금 왕십리여. 전철을 타고 가면 한 40분 걸리는데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했다.
“가게가 연예인 대기실 같았다”
마시던 캔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미안, 미안, 많이 기다렸지? 허허허”라며 강씨가 나타났다. 검은 머리 한 가닥 찾을 수 없는 백발의 모습이었지만, 목소리가 쩌렁쩌렁했다.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왔어. 버스 타는 게 더 편하긴 한데 노인들한테는 지하철이 무료잖아. 버스는 돈 내야 하니까 힘들어도 지하철로 다녀. 한푼이라도 아껴야지.”
강종순씨는 “1984년 2월 15일에 가게 문을 열었다”며 장사 시작한 때를 떠올렸다.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이 고향인 강종순씨는 결혼 직후인 1970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남편이 일찍 직장을 잃는 바람에 강씨가 네 식구의 家長(가장) 노릇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대구 따로국밥’이라는 국밥집을 했어. 단골도 생겼지만, 수지타산이 안 맞더라고. 그래서 조금씩 물건 떼서 장사하는 포장마차로 바꿨지.”
―장사는 잘됐나요.
“여기서 밥 먹으려면 한 시간 이상씩 기다리던 시절도 있었어. 다른 데 가라고 해도 기다리더라고. 2004년부터 손님이 줄더니 계속 줄고 있어. 지금은 이렇게 파리만 날리지. 여담인데 1992년부터 한 10년간 연예인이 많이 왔었어. 가수 박진영이 무명 시절 연습 끝나고 매일 우리 집 와서 밥 먹었지. 작곡가 김형석, 가수 신승훈, 김건모도 왔었고. 손님 95% 이상이 연예인일 정도로 가게가 연예인 대기실 같았어.”
―요즘은 장사가 어떠세요.
“손님 왕창 줄었어. 어쩌다 오는 손님마다 ‘많이 힘들어요’ 이래. 월급 밀리는 사람도 있고, 2부제로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네. 나도 장사가 안되니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손님 많을 때는 눈붙일 틈도 없이 바쁘고 피곤했는데 차라리 그때가 그리워. 마음은 편하거든.”
―‘욕쟁이 할머니 포장마차’란 가게 이름은 누가 지었나요.
“손님들이 우리 가게를 ‘욕쟁이 할머니 포장마차’라 부르기에 간판도 그렇게 한 거여. 내가 사람도 안 두고 혼자 일하니까 정신 없더라고. 안주 만드는데 술도 갖다 줘야 하니까 나중에는 ‘니들이 갖다 처먹어’라고 말했지. 그때는 한 사람 앞에 술 한 병만 팔았어. 먹을 때는 떠들면 안돼, 조용히 처먹어야 하고. 술 많이 먹으면 내쫓고 그랬지. 지금은 손님이 줄어서 욕할 일도 줄고 힘도 부쳐.”
광고 나간 후 기자들에게 시달려
강종순씨는 저녁 8시쯤 출근해 다음날 오전 4시쯤 퇴근한다. 주 메뉴는 닭내장볶음, 해물 떡볶이 그리고 계란말이다. 30년 넘게 ‘욕쟁이 할머니 포장마차’에서 살아온 강씨가 전 국민 앞에 서게 된 것은 2007년 대통령 선거 때였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TV 광고에 출연했는데 장사에 도움이 됐나요.
“우리 가게가 아니라 강북 어느 돼지국밥집에서 광고를 찍었거든. 광고 나가고 나서 그 국밥집 장사가 그렇게 잘됐대. 우리 집은 별 도움이 안됐어.”
―포장마차에서 광고를 안 찍은 이유가 있나요.
“경제 살린다는 주제로 광고를 찍는데, 밥 먹는 모습이 나와야지 술 마시는 모습이 나오면 안되잖아. 그래서 다른 집에서 광고를 찍은 건데, 그 광고 나간 뒤로 얼마나 말이 많았는지 몰라. ‘출연한 할머니가 국밥집 가게 주인이 아니다, 강남에서 포장마차 하는 할머니다’라고 기자들이 얼마나 뭐라 하는지… 아이고, 내가 ‘포장마차 하는 할머니는 강북 식당 가서 광고 찍으면 안되느냐?’고 했어. ‘돈 준다기에 나 먹고살려고 했다’고 말하기까지 했지. 정말 속상해서 한동안 TV 틀어 놓지도 않았어.”
―광고 출연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어느 날 광고회사에서 나를 찾아왔더라고. 내가 광고회사 직원에게 ‘니들 나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물어봤어. 자기들이 할머니 모델을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다른 인물들은 별로지만 내가 제일 괜찮더래. 그래서 하게 됐지. 하하하.”
―그때 이명박 대통령을 처음 봤겠네요.
“그렇지. 광고 찍는 날 처음 봤어. 뭔가 해낼 것 같았고, 다부진 면이 있더라고. 그래서 믿고 출연했어. 나는 먹고사는 데 쫓겨서 정치는 신경을 안 쓰지만, 광고를 함께했던 인연이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잘되길 바랄 뿐이야. 요새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힘든 거 같아. 한나라당도 두나라당인 것 같고.”
“이명박 대통령을 왜 그렇게 갈구는겨?”
―이 대통령이 안쓰러운가봐요.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 살리려고 세계 곳곳 뛰어다니는데 왜 갈구는겨. 열심히 해 보려는데. 당을 떠나서 대통령이 뽑혔으면 일 잘하게 밀어 줘야지. 노무현 전 대통령 문제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라는데 대통령이 사과를 왜 혀. 지금은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안됐어. 밑에서 밀어 줘도 시원치 않은 판에 물어뜯고 끌어내리려 하잖여. 북한은 북한대로 난리고. 북한 주민들 도우라고 북한에 돈 그렇게 퍼줬는데, 미사일 쏘고, 핵 개발하고, 우리나라 불안하게 하잖아.”
노무현 대통령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강씨는 잠시 머뭇거렸다. 강씨는 “깨끗함을 강조하던 대통령이었는데 일이 그렇게 되니 고통스러웠을 것”이라며 “가족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돈을 더 받은 역대 대통령들도 다 꿋꿋하게 살던데…” 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6시부터 시작한 인터뷰가 1시간을 훌쩍 넘겼다. 인터뷰하는 동안 가게에는 필자와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씨 그리고 가게를 돕는 아주머니 셋만 있었다. 강씨는 시계를 슬쩍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이제 눈 한숨 붙이고 장사 시작하려고. 장사가 안되지만, 요새 나 혼자 어려운 게 아니잖아? 열심히 살다 보면 이뤄지는 게 있다고 봐. 고생 끝에 낙이 오겠지? 그런데 그런 날이 언제쯤 올까. 하하하.”
손님들의 낙서로 꾸며진 가게 벽에,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와 강종순씨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강씨는 사진을 아끼는 듯, 액자 유리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욕쟁이 할머니’ 강종순씨를 만난 후 이튿날 밤 11시, 필자는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씨를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향했다. 이씨는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 때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TV 연설로 유명해졌다.
2002년 대선 당시 ‘자갈치 아지매’의 TV 연설은 ‘노무현의 눈물’이라는 TV 광고와 함께,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난 5월 말 노무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이씨는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 노무현을 만든 1등 공신 가운데 하나인 그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부산 자갈치 시장에 도착한 건 새벽 5시. 검푸른 새벽 하늘이 자갈치 시장을 감싸고 있었다. 대롱대롱 매달린 백열전구 아래서 경매를 하는 상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쌀쌀한 바닷바람을 헤치며 자갈치 시장 한쪽에 위치한 ‘합동상회’를 찾았다.
아직 이씨는 출근 전이었다. 30분 정도 기다리자, 이일순씨가 고무장갑과 수건을 들고 가게에 나왔다. 이씨는 “서울에서 온기가? 고생 많았네”라며 필자를 맞았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였다.
“젊어 보인다고? 바닷바람 맞아 가며 시장에서 수십 년을 아귀만 팔았어.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잠잠해질 날이 없었지.”
불교 신자인 이일순씨는 절에서 나눠준 달력을 들추며 노무현 전 대통령 얘기부터 꺼냈다.
“이제 곧 49재라 정토사 가봐야 하는데. 근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디 밖에 나갔다가 오면 기운이 빠지더라고.”
―조문 다녀왔나요.
“그럼. 봉하마을 가서 조문하고 왔는데, 우리 민족의 저력이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어쩜 그렇게 사람이 많은지. 그만큼 노무현 대통령을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은가 봐.”
―‘자갈치 아지매’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나요.
“기자 몇 명은 알아보던데 대부분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더라고.”
열정이 넘치고 사람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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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치 아지매’ 이일순씨. |
2002년 12월 4일에 방송됐던 이일순씨의 찬조 연설 반응은 뜨거웠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아귀를 파는 ‘자갈치 아지매’의 서민적 이미지와 털털한 말투는 대중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어떻게 찬조연설을 하게 되었나요.
“대통령 선거 때 찬조연설자 찾기 위해 직원들이 보름 동안 자갈치 시장을 뒤졌다네. 나이도 그렇고, 직업도 그렇고 내가 제일 적합하다고 하던데 망설였지. 가족들이 다 노무현 후보 지지자라 출연을 했지. 내가 그때 57세였어.”
―출연료를 받았나요.
“찬조연설이니까 그런 거 없다.”
―방송 출연 후 주위 반응은 어땠어요.
“영남에서 민주당 지지했다고 항의 전화 많이 받았어. 그냥 혼자 민주당 찍으면 될 것이지 방송까지 나갈 필요 뭐 있느냐고. 다 지나간 이야기가 됐지. 호남하고 영남은 서로 화합하면 좋겠어.”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 만났나요.
“찬조연설할 때는 만나지 못했지. 나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자갈치 시장 왔을 때 뵀어. 열정이 넘치고 사람이 참 좋아 보였어. 작년에 봉하마을 초청돼서 갔었는데, 노 대통령 형님이 수사받는 중이라 뒤숭숭해 보였어. 그때가 노무현 대통령을 본 마지막이었지.”
이일순씨는 고무장화와 장갑을 끼고 아귀를 다듬으면서 인터뷰를 이어갔다. 노란색 바구니마다 아귀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오전 7시경에 물건 사러 사람들이 온다”며 “미리 아귀를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 이씨는 능숙한 솜씨로 아귀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이일순씨는 1945년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광복 후 경북 영천이 고향인 부모님을 따라 생후 2개월 때 부산에 온 이후 계속 부산에서 살았다. ‘합동상회’는 이일순씨의 어머니와 이모가 운영하던 가게다. 주요 취급 품목은 아귀와 미더덕.
자갈치 시장 상인들은 아귀를 ‘물꽁’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일순씨의 어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이씨가 어머니 자리를 물려받았다.
전두환 때가 장사 제일 잘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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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를 바라보는 이일순씨. 장사가 잘돼 아귀 다듬을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
―요즘 정치 문제에 관심 많겠네요.
“사실 생계 때문에 정치에 크게 신경 쓰지 못했어.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저런 일에 연루되면서 마음 아팠지. 평소 청렴결백 주장하던 분인데 얼마나 상처가 크셨겠어. 자식에게 아파트 사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만약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면 되셨을 텐데 안타깝다. 나처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치권에 대해 섭섭함이 크겠어요.
“나라가 조용해져야 발전해. 싸움 그만하고 경제에 신경 쓰면 좋겠어. 강압수사가 있었다면 정부나 대통령이 사과해야 해. 반성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면 좋지.”
―장사는 잘되나요.
“요새 너무 안돼. 장사가 잘되면 오후 2~3시까지 가게 문을 여는데, 손님이 없으니까 12시 이전에 퇴근하는 일도 있어. 해 뜨면 자갈치 시장이 바글바글해야는데 지금 둘러봐. 조용하잖아. 물건 살 사람은 한정돼 있는데 대형마트 같은 가게가 늘어나니까 시장이 잘 안돼.”
―언제부터 경제가 안 좋아진 것 같나요.
“김영삼 대통령 때 IMF 터지고 나서 경제가 많이 나빠졌어. 잠깐 경기가 회복하려는 것 같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계속 안 좋아지네. 장사는 전두환 대통령 때가 제일 잘됐어. 박정희 대통령 때 잘 채워 놓은 그릇을 물려받았으니까.”
경제 문제가 나오자 이일순씨는 자녀의 취업 이야기를 꺼냈다. 큰딸이 서울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벌써 한 번 낙방해 걱정이라고 했다.
“공무원 경쟁률이 엄청나더라고. 요새 사람들 직장 얻으려는 모습 보면 맘이 쓰려. 자네도 취업 때문에 고민 많겠네?”
이씨는 딸과 나이가 비슷한 필자가 걱정되는 듯했다. 이일순씨는 손수 커피를 타 주며 덕담을 건넸다.
“내가 훈수할 처지는 아니지만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열심히 해. 하다 보면 운도 따를 거야. 젊은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 세대 때보다 꼭 나아져야 해. 알았지? 꼭 그렇게 우리나라 좋게 만들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