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까?(1)
주지하는 대로 하나님이 주는 영감으로 쓴(딤후 3:16) 성경의 원본은 소실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비록 원본이 없다고 해도 영감으로 쓴 원본에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건 당위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이 사본(구약 사본 약 1,000여 개, 신약 사본 약 5,000여 개)을 번역한 것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전해진 사본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본이 원본과 같다고 말하며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고 말하는 건,
그렇게 말하는 선한 뜻은 이해할 수 있으나 억지며 거짓이다. 직설하면 하나님을 믿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나,
엄청난 양을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단지 필사자의 기억에 의존해 필사했기 때문에 지엽적인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히브리어와 헬라어 사본을 번역해 우리말로 편찬할 때는 관련 내용의 전후 문맥과 연관되는 다른 성경 구절을 숙고해
어떻게 번역하는 게 하나님의 원뜻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해 편찬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앞으로 그 실례를 몇 차례에 걸쳐 제시하려고 한다.
1) 창세기 2:2 “하나님이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고…”(가족, 개역 개정, 맛싸, 우리말 비전, 킹 제임스, 회복역, 히브리어 직역)
“하나님이 하시던 일을 엿샛날에 마치시고…”(공동번역, 새 번역, 조선어, 현대어 성경)
위 창세기 2:2의 경우는, 출애굽기 20:11, 30:17, 신명기 5:13~14에서 ‘엿새 동안 모든 것을 만드시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다’를 근
거로 제시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고 이레째 되는 날 쉬셨다는 건 크리스천이 아니라고 해도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따라서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고’로 쓴 사본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오류다.
굳이 일곱째 날이라는 말을 쓰려면, ‘일곱째 날이 되는 날에 마치시고’로 써야 한다.
오류를 범한 히브리어 사본을 직역해 ‘일곱째 날에 마치시고’로 쓴 다음, 주석에 ‘사마리아 오경, 시리아역, 칠십인 역은
엿샛날에 마치시고’로 썼다고 설명할 필요가 없다.
2) 창세기 3:16
* 임신의 고통(가족, 개역 개정)
* 출산의 고통(공동번역, 조선어)
* 임산의 고통(맛싸, 새 번역, 우리말 비전, 회복역, ERV, NLT) 아는 대로 임신의 고통은 수태했을 때의 고통이고 출산의 고통은
아기를 낳을 때의 고통이며, 임산의 고통은 임신의 고통과 출산의 고통을 아우르는 말이기 때문에 임산의 고통이 원뜻을 살리는 번역이라 하겠다.
3) 창세기 10:15
*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가족, 개역 개정, 맛싸, 우리말 비전, 킹 제임스, 현대어, 회복역, 히브리어직여)
* 가나안은 맏아들 시돈을 낳고 그 아래로…. (공동번역, 새 번역, 조선어 성경).
* 영어 성경은 모두 "Cannan's oldest son was Sidon" 또는 "Cannan was the father of Sidon his first born"으로 씀.
윗글 “시돈과 헷을 낳고”에서 “과”는 둘 이상의 사물이나 사람을 같은 자격으로 이어 주는 접속 조사다.
따라서 시돈도 맏아들 헷도 맏아들, 즉 쌍둥이도 순서가 있는 법인데 동시에 맏아들 둘을 낳았다는 말이 되어 모순이다.
따라서 원뜻을 살려서 쓴 성경처럼 고쳐서 써야 한다.
히브리어 사본을 직역한 성경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우스꽝스럽게 번역했다.
4) 킹 제임스 성경 창세게 22:7~8
* 이삭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버지, 번제에 쓸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이렇게 대답했다.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 양으로 마련하실 것이다.”(Abraham said, my son, God will provide himself a lamb for burnt offering.)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는 오류다. 제대로 번역했다면 마땅히 “아들아,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친히 마련해주실
것이다.” 처럼 번역해야 한다. 얼마나 성의 없이 번역했으면 이런 코미디 같은 번역이 나왔을까?
하나님이 당신 자신을 번제물로 태운다는 말인가? 그러고도 가장 정통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모르긴 해도 초등학생이라도 이렇게 번역하지는 않았을 거 같다.
조사(助詞)만 이렇게 바꾸었어도 좋았을 텐데. “자신을 자신이, 어린 양으로 어린 양을”
5) 창세기 27:27
내 아들의 향내는 여호와께서 축복하신 들의 향기로구나. (맛싸, 우리말 비전, 히브리어 직역 성경)
다른 우리말 성경 여덟 개 버전(가족, 개역 개정, 공동번역, 새 번역, 조선어, 킹 제임스, 현대어, 회복역)은 “여호와께서 복 주신
들의 향기”로 옳게 번역했으나, 위 세 개 버전은 “여호와께서 복 빌어주신(축복하신)”으로 번역해 하나님의 정체성을 훼손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기에 복을 주시는 분이지 복을 빌어주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땅히 “여호와께서 복 주신 들의 향기로구나”로 바로잡아야 한다.
위 세 버전 다 히브리어 사본을 직역해 출판한 성경이고, 작금에 목회자들을 포함해 대부분 크리스천이 “하나님 축복해 달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진노하시지 않을까?
6) 창세기 27:39 이삭이 에서게 말하기를 “보라, 네 처소는 땅의 기름진 곳과 위로부터 이슬이 내리는 기름진 곳이 되리라.”
(Behold, thy dwelling shall be the fatness of the earth, and of the dew of heaven from above. (King James, YLT)
창세기 27:27~28절은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는 내용이고, 39절은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자기에게도 축복해 달라고 조를 때
이삭이 에서에게 말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27~28절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복을 내려주어 야곱이 사는 땅에는 하늘에서
이슬이 내려 땅이 기름지게 되는 반면, 39절은 에서가 사는 땅에는 이슬이 내리지 않아 땅이 척박하게 된다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
“네 처소는 하늘에서 이슬이 내리지 않아 척박한 땅이 될 것이다.” 처럼
필자는 이런 말이 안 되는 오류가 생기는 까닭은, 성경책은 일단 출판하면 홍보가 필요 없이 많은 양이 팔리기 때문에,
내용을 심사숙고하지 않고 출판에 비중을 두고 편찬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성경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위에서 본 대로 한 단어의 일점일획이 아니라 내용 전체가 진리와 어긋나는 성경이 범람하고 있다.
서두(書頭)에 밝힌 대로 성경 사본은 그 양이 엄청나 심혈을 기울인다고 해도 필사한 사본에는 지엽적인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본을 번역할 때 내용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그저 히브리어와 헬라어 지식만으로 번역하면 태생적인 오류를 면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