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홍수환 선수 타이틀 매치 라디오 중계방송 일화
라디오 생방송 중의 일화 하나...^^
그날은 내가 낮에 근무하는 날이었다. 정오 뉴스를 방송하고 나서
이어지는 가요 프로그램 '노래의 꽃다발'을 진행할 K 피디가 나타
났다. LP 음반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며 나에게 제작 진행표(일명
Q 시트)를 건넸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제 곧 홍수환 선수가 저 멀리 남미에서
싸우는 프로복싱 세계 타이틀 매치 중계방송이 있어서 좀 들어
보려고 하니, 구 형께서 신경 좀 많이 써 주세요."하는 것이었다.
대전방송국의 로컬 뉴스가 끝나며 경쾌한 시그널(signal) 음악과
함께 이날의 '노래의 꽃다발' 방송이 시작되었다.
한 곡 두 곡 선정한 음반을 통해 청취자들께 친근한 가요들이 순서에
따라 차례차례 방송되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내 등 뒤에서 복싱 중계방송을 듣던 K 형이 탄식하는
것이었다. "이런 일이 있나? 홍 선수가 상대편의 강펀치를 맞고 다운
(down) 되었다" 는 것이었다.
나도 덩달아 실망하고는 방송에 집중하고 있는데, K형도 "다 끝났다"
면서 듣고 있던 라디오를 끄고, 내 옆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방송이 진행되면서 거의 마치기 직전인데, 무심코 라디오를
다시 켜고 듣던 K형이 껑충껑충 뛰며, 홍수환 선수가 오히려 상대 선수를
제압하고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K형이 농담하는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다.
홍수환 선수가 고국의 어머니께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그 유명한
자축 인사에 나와 K형은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이날의 라디오방송 제작
현장에서 느낀 그 통쾌하고도 후련했던 기분이, 이미 오랜 세월이 흘렀
어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