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금 다녀간 아사녀 1>
눈 깜박이는 새, 천 년을 오가는 기쁨이 여기에 있어 석가탑
은, 해마다 *그니 닮은 수수한 조팝꽃 어깨 너머로 솟아올랐다
영지에 비친 그림자도 있는 듯 없는 듯이 제 몸 맘껏 도사리
니 천 년을 오가는 슬픔도 여기에 있어 방금 다리 위 눈물 어
린 조팝꽃 같은 비, 쏟아 부었다
눈 깜박이는 새,
그녀가 다녀갔는지 발자국에 고인 문수는
14문 반
천 년의 해후가 홀딱 홀딱 담겨서는
부리나케 자라지도 않은 조팝꽃 같은 그 신발만이
여기 덩그라니,
여기 덩그라니,
토함산 딱따구리 집 짓는 소리가 구슬피 퍼져나간다
*그이의 방언. 그이를 조금 높여 부르는 3인칭대명사
시집 《빗방울에 맞아도 우는 때가 있다》 해설 중 일부/ 박철영
시가 지시하는 시대적 연원은 “눈 깜박이는 새 천 년을 오가는 기쁨이 여기에 있어 석가탑은, 해마다 *그니 닮은 수수한 조팝꽃 어깨너머로 솟아올랐다”며 역사 속 구전된 설화를 실재한 현실처럼 각색하고 있다. 그곳은 석가탑이 있는 경주 불국사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경내 바깥 영지影池 주변을 걷다 보면 돌을 쪼는 ‘정’ 소리가 들린 듯하다. 백제 최고 석공인 아사달의 돌 깨는 ‘정’ 소리를 먼발치서 들었을 아사녀다. 신라 왕국의 융성을 위해 아사녀의 정인 아사달이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무영탑) 불사에 동원된 것이다. 왕명에 따라 기한 내 무영탑을 완성하라는 지엄함에 담장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가슴속 사랑은 매번 경내에서 좌절하고 만다. 뛰쳐나가면 죽이라는 왕명을 거역할 수 없어 창검을 든 군사들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어 더 슬퍼지는 아사녀다. 간절하면 통한다고 마침 불국사 앞에 조성된 ‘영지影池’라는 연못이 있었다. 그리움에 사무친 아사녀에게 무영탑(석가탑)이 완성되면 탑의 그림자가 영지影池에 비칠 것이라는 말을 믿고 그 자리를 지켰지만, 몇 달(月)이 훌쩍 지나버렸는 데 탑두의 그림자는 비치지 않았고 기다림에 지친 아사녀는 연못에 투신하고 만다. 아사달이 무영탑의 불사를 마치고 아사녀가 기다린다는 장소(영지影池)를 찾지만, 끝내 사랑하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그녀를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아사달도 비통한 나날을 보낸다. 아사녀가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그곳에 아사달은 석불 좌상을 만들어 그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는 설화를 시적인 세계로 소환한 것이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서도 서럽도록 슬픈 사랑을 아는가 내린 비에 하얀 조팝꽃 우수수 떨어져 더 처연해지고 “눈 깜박이는 새/ 그녀가 다녀갔는지 발자국에 고인 문수는/ 14문 반,”을 해진 손뼘으로 가늠해 본 아사달이다. 이승에서 못다 이룬 아사녀에 대한 슬픈 사랑이 천년의 해후를 안타까워한다. 빗방울 추적추적 내리는 연못가에서 못다 이룬 사랑 이루느라 떠나지 못한 ‘그니’를 기다리며 오늘도 “여기 덩그러니,/ 여기 덩그러니,”라며 곁을 맴도는 아사달을 상상하며 박수원 시인은 천년의 서정을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도 이력이 나서일까?
시집 《빗방울에 맞아도 우는 때가 있다》 해설 중 일부/ 박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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