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저는 오늘 예스러운 몸가짐을 가진 오월의 황홀한 여인을 만나러 새벽길을 나섭니다.
그곳 푸른 호반엔 연분홍 고운 치마저고리로 단장한 미모의 절세가인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풍편으로 들었습니다. 별보다 고운 숨결을 가진 풍념한 절세가인 어어서 두 해 전부터 걸음하리라 하였으나, 하던 일손 밀쳐두고 선뜻 길을 나선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날 잡은 오늘 강물처럼 밀려오는 오월의 싱그러움에 실려서 미지의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러 길을 나서는 것입니다. 모처럼 가슴이 설레입니다. 기실 세월은 잿불처럼 사위어가도, 아직도 이 가슴 한 켠은 이글거리는 숯불처럼 살아 있음을 이참에 고백하는 바입니다.
세상은 눈길 가는 곳마다 푸르릅니다.
산에도 들에도 언덕에도 밭에도 논에도 온통 푸르디푸르릅니다. 그 푸르름에 가슴마져 푸른물이 들 것 같습니다. 오늘처럼 홀연히 강을 건너 미명의 산모퉁이를 흔들흔들 돌아가는 길 위의 시간들은 제겐 언제나 꿀같은 시간들입니다. 아마 삶이란 본질적인 속박의 굴레로부터 잠시나마 풀려난 탓이 겠지요.
이 꿀처럼 단 시간에 듣고 싶은 음악을 듣습니다. 지금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대중가요 <봄날은 간다>입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투박하게 쓰는 머리가 희끗한 장년의 대중가수 최백호가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 그가 가슴 밑바닥을 피멍이 돌도록 긁어대며 폐부를 거칠게 뽑아내고 있습니다. 삶의 질곡들이 인생의 밑바닦을 굽이치며 그 애환을 절절히 토해내고 있습니다. 이 지고至高한 아름다운 가사와 곡에 취하니,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저는 볼륨을 한껏 더 높입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이 한 곡의 대중가요 속엔 저 긴 세월을 모질게 견디며 살아온 삶의 애환들이 굽굽이 녹아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대중가요는 목마른 대지를 적시는 빗물처럼 서민들 가슴가슴을 적시며 그 위안과 힘이 되었고, 고달프고 실의에 찼던 우리 삶의 고비마다에 그 삶을 삭히는 뒷심이 되었으며, 때론 상처 받은 가슴을 보듬어 생살을 돋우고 그 싹을 틔우곤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달프고 힘겨웠던 세상살이마저도 저 가락에 실려 한결 수월하게 넘어왔으리라 짐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중가요의 힘이요. 궁극적 예술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같이 유장히 흘러온 강물 같은 정서를 두고, 예술성과 심미성의 결여를 볼가내어 천박성으로 호도하여 내몰아버리는 일각의 행위는 얄팍하기 이를 데 없을 터일 것입니다. 이것이 대중가요를 바라보는 저의 일관된 시각입니다.
행려의 차는 천안과 청주를 바람처럼 스쳐 갑니다.
이윽고 충청의 대전, 비단결처럼 흐르는 금강 제1교를 건너, 동대전 판암 나들목으로 부드럽게 흘러듭니다. 이 충청도는 충절忠節의 뜨거운 피가 깊고 곧게 흐르는 땅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거슬러 백제의 마지막 운명을 부둥켜안고 장렬하게 목숨을 저버린 계백장군이 그러했고, 고려 말 사직의 최후 보루였던 최영장군의 충절이 그러하였으며, 근세사 일제 강점기에 격렬한 항일투쟁을 벌이며 산화한 김좌진 장군과, 윤봉길 열사, 그리고 독립운동가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숱한 의인들이 나라의 명운이 백척간두에 내몰릴 때마다 그들은 서슬 퍼런 목숨 하나 장렬하게 던졌던 충절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 본향本鄕이기도 한 곳입니다.
이윽고 대청호로 통하는 옥천로에 들어섭니다.
넓은 도로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길이 이토록 한갓지니 호반의 도시란 생각과 함께 문득 살만한 곳이란 생각이 스칩니다. 그곳에서 좌측 길을 따라 탯줄처럼 접어드니 좌우 산비탈에 묻힌 나지막한 집들이 서로의 이마와 머리를 맞댄 채 다정하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모처럼 인간적인 모습들을 마주하니 편안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랬습니다. 오늘도 휘황한 자본의 속성에 물든 비정한 도시는 끝없는 이기와 탐욕에 절어 잿빗 하늘을 찌르고 있을 터. 저 푸른 산비탈에 나즈막히 묻혀 따뜻한 정을 내며 사는 포근한 모숩들이야말로 어쩌면 우리의 메마르고 뒤틀린 비정한 삶을 질타하는 진정한 가치를 품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K형, 그래서 저는 저무는 길 위 시간에 마지막 꿈을 하나 꿉니다. 다름 아닌, 황혼이 드리우는 서녘 길, 그 어느 곳에 쓸쓸할지도 외로울지도 모를 시간의 길 위에 나만의 유토피아 세상을 여는 것입니다. 그간 휘황한 자본의 속성에 물들어 불빛에 부딪혀 사지를 떨며 가는 허망한 불나방처럼, 물신숭배를 맹신하며 살아왔더랬습니다. 그 휘황한 자본의 광채에 홀려 때론 속물처럼 속절없이 살아왔다는 게 좀더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랬기에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 지 않는 목마른 탐욕의 응어리진 이 가슴을 풀고, 이 숨 막히는 도시의 속박성을 풀어, 미련 없이 제행(諸行)의 길을 떠나고 싶은 것입니다. 그곳이 곡히 어딘지는 몰라도, 그곳에서 마지막 나의 유토피아 세상을 열어, 소리없이 지는 한 잎 꽃잎처럼 지는 꿈을 말입니다. 기실 이 하나의 꿈은, 꿈이 아닌 제행으로 영글 것이리라. 믿는 바입니다.
이윽고 방축골의 좁은 길을 벗어나니 저만치 숲속 사이로 대청호의 물길이 아침햇살에 반짝 비취더니, 눈앞에 그림 같은 펜션 하나가 섬처럼 평화롭게 떠있습니다. 바로 오늘의 목적지 대청호반의 팡시온(펜션,fension의 프랑스어)의 작약꽃밭 입니다.
K형, 길을 떠난 지 약 두 시간만에 차문을 밀고 발을 딛습니다.
농염한 자태의 여인들이 막 화장을 마친 듯 곱고 예스러운 몸가짐으로 한껏 재색의 멋을 내고 있습니다. 밤에만 활짝 웃는 수줍은 여인처럼, 마음까지 송두리 째 뽑고 있습니다. 참으로 황홀합니다. 저 아름다운 재색의 여인이 바로 꽃의 재상宰相으로 불리는 절세가인, 작약芍藥(Paeonia lactiflora Pall)꽃 입니다. 별보다 더 고운 숨결을 가진 지고한 아름다운 여인의 품에 안긴 지금 세상은 황홀한 별천지가 따로없는 듯합니다.
푸른 호수엔 잔잔한 물결이 입니다. 그 바람결에 스쳐오는 여인의 몸에선 알싸하게 쓴 듯한 달달한 향기가 비등하여 허술히 살아온 한 사내의 허름한 품을 파고들며 매혹적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꽃향기 중에선 라일락과 찔레꽃 향기가 일품으로 치지만, 오늘 보니 이 절세가인의 향기 역시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기품이 서려 있는 것 같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마주하니 뜨거운 입술과 뜨거운 숨결이 참으로 고혹적 이어서 넋이 나갈 지경입니다. 문득 세계적인 미모의 마릴린 먼로 (Marilyn Monroe)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신이 그토록 공들여 빚었다는 그녀가 바람결에 들추어지는 치맛자락을 감추듯, 깊숙히 감추어둔 그 비밀스런 곳에선 빛나는 황금가루의 알싸한 향기가 숨 막힐 듯 폐부를 찌르며 환각처럼 파고듭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연애를 하려면 몸가짐이 예스러운 꽃과 같은 여인이 제격이 아닐까 싶은 생각 말입니다. 삶의 동반자인 배필 역시 그러하겠지요. 며칠씩 잔소리를 퍼부어대는, 사발그릇 깨지는 꺽진 여자 보다야, 한 생이 저 고혹한 꽃처럼 빛날 예스러운 자태의 깊은 향을 품은 여인과의 연은 평생을 두고두고 감사히 섬겨야 그 무엇이 아닐는지요.
이 작약의 작(芍)자는 얼굴이나 몸가짐이 조신하게 아름답다는 뜻을 품고 있어서 화왕花王이라 불리는 모란과 함께 재상의 반열에 올라선 꽃 중의 꽃이라지요.
저마다 제 빛을 밝히며 한 시대를 먼저 살다간 개나리나, 목련, 벚꽃, 등이 이울고 난 뒤, 세상을 환하게 밝히며 화려하고 탐스러운 자태의 꽃을 피워 올려 꽃의 재상으로 불리는 모양입니다. 이 작약은 오월 신부의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함박처럼 큰 꽃이 펴서 ‘함박꽃’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오늘 보니 청신하고 눈부신 신부에게 참 잘 어울리는 꽃 같습니다.
작약이 우리의 고전 문헌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려 의종 때로 그 기록이 보입니다. 군신 황보탁(皇甫倬) 의 "지는 작약" 시가 군신들 사이에서 장원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충렬왕의 비(妃) 제국공주가 어원에서 만개한 작약을 보고 시녀에게 한 송이를 꺾어라 명해 손에 들고 완상하다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눈, 고려사의 기록으로 전합니다. 한방에서는 이 작약 뿌리를 진통, 진정, 소염, 부인병에 쓴다하며, 쌍화탕 주재료가 작약 뿌리라고 합니다.
K형, 두 시간 여 쉼 없이 셔터를 누른 뒤 카메라를 내립니다.
이곳 팡시온 입구의 미루나무 아래 삐걱거리는 나무 벤치에 앉습니다. 눈앞에 더 넓게 펼쳐진 고요한 호수가 참 고즈넉합니다. 계절의 여왕 오월의 감미로운 숨결은 행려의 목덜미에 부드럽게 감기고 있는 지금 발아래 물을 품고 있으니 한량없는 마음입니다. 삐걱거리는 나무그늘 벤치가 놓인 길 위의 이 시간에 저는 인생마저 내려놓은 듯합니다. 자연이 베푸는 무심의 미학美學이란 이런 것이던가요. 아마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자리를 일어설 시간입니다.
K형, 외람되나 이 자리를 떠기 전, 억장 무너지는 이 세상을 저 강심에 토하겠습니다. 작금의 세상은 7, 80년대 골수까지 좌파 이념과 사상의 페러독스에 절은 시대의 이단아들이 40년 만에 등장하여 판을 벌리는 세상이 돼버렸습니다.
보세요. 얄팍한 이념과 사상의 쌍나발을 하늘로 불어 올리던 저런 삿된 것들이 세상 구석구석 꿀을 발라 이 세상을 현혹하는 역행의 추태를 보노라니, 가슴에 불을 지른듯 뜨거운 분노의 불덩어리가 치밀어 오르는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 그늘진 음지에서 맹독을 품고 치밀하게 그 싹을 틔우던 사악한 자들의 한풀이 판으로 변질돼 버렸으며, 배짱이처럼 한가롭게 가락을 뽑던 자들이 벌떼처럼 윙윙거리며 세상을 거덜 낼 듯 어지럽게 퍼 나르고 있어, 이 나라는 축이 무너질 듯 기우뚱거리고 있습니다. 사사건건 추행되는 저 비열하고 추악한 추태들이 대체 어디까지 경악의 빙점을 칠지 모르겠으되, 참으로 돼먹지 못한 자들의 돼먹지 못한 세상에서 본의本意 아닌 한심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실정입니다.
아마,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할 지 몰라도, 때가 되면 이 호수 위로 봄꽃이 눈발처럼 날리겠지요.
여름날의 그 풍성하게 쏟아지던 햇살과 가을날의 그 쓸쓸한 바람 속으로 호수엔 둥근 달이 차오르고, 겨울의 소복한 눈은 축복처럼 위안처럼 내리겠지요. 어쩌면 그 시간의 세월이 좀체 더디에 온다치더라도 저 자연이란 시간의 힘이 분노와 실의에 찬 인간을 한없이 보듬어 달래고 위로해 주리라 믿는 바입니다. 그러고 보면 천년의 순수를 간직한 채 말이 없는 저 유려한 자연은 애초 인간의 문제 밖에서 무심의 미학을 저토록 넉넉히 베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다시 시대정신에 목이 말라도, 저기 저 강길과 들길과 산길엔 붉고 흰, 연분홍 꽃들은 무심의 미학처럼, 시간의 언약처럼, 그 숙명처럼 다시 피어나리라 봅니다.
K형, 자리를 떠는 발길에 찔레꽃이 하얗게 피어 강가에 어립니다. 눈부시게 핀 저 하얀 찔레꽃 처녀가 수줍은 듯 허름한 내 옷소매를 당기고 있습니다. 이럴 땐 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오랫만에 푸른 호반의 꽃밭에서 황홀한 절세가인의 여인과 함께하며 세상과 나를 생각한 시간이었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늘 건안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봄날도 가더이다. 대청호 팡시온 작약꽃밭에서. _정용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