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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0. 13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한다. 프로야구의 역사가 증명해온 명제다. 포스트시즌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더 그렇다. 확실한 원투 펀치와 든든한 마무리 투수만 있어도 단기전에서 두려울 게 없다.
2016년 KBO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다. 한국 프로야구가 지난해까지 34번의 가을을 맞이하는 동안, 수많은 투수들이 마운드를 오르내리며 숱한 역사를 쌓았다. 1984년의 롯데 최동원처럼 한국시리즈에서 팀의 4승을 홀로 따낸 전설적 영웅도 존재했다. 팀의 우승과 승리를 이끈 주인공들은 마운드에서 힘차게 포효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명장면들을 매년 쏟아냈다. 그 가운데 기억할 만한 투수들의 명장면 일부를 모아봤다.
# 손민한이 가을에 태운 마지막 불꽃
▲ 손민한 / MK스포츠
롯데에서 전성기를 보낸 투수 손민한은 NC에서 선수 생활의 황혼을 보냈다. 그러나 허무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누구보다 강인한 결말을 맞았다. 지난해 10월 2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 손민한은 NC 선발 투수로 나서 5이닝 3피안타 3볼넷 2실점(1자책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40세 9개월 19일. 역대 포스트시즌 최고령 선발 출장이자 최고령 선발승이었다. 롯데 시절이던 1999년 이후 무려 16년 만에 따낸 가을의 승리이기도 했다. 그는 플레이오프 3차전 MVP에 올랐고, 포스트시즌이 모두 끝난 뒤 은퇴를 선언했다. 그 경기는 선수 손민한의 마지막 등판으로 남았다.
사실 손민한은 그날 더 던지고 싶어 했다. 5-2로 앞선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그러나 첫 타자를 상대로 볼 2개를 던진 뒤 벤치에 교체 사인을 보냈다. 너무 집중해서 던지다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에 물집이 잡힌 탓이다. 마운드를 내려오는 손민한을 향해 NC 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손민한은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명투수의 마지막 불꽃을 모두가 생생하게 목격했다.
# 정민태의 포스트시즌 10승과 115⅓이닝
▲ 현대 유니콘스 투수 정민태 / KBS
‘10승’은 모든 선발 투수의 목표다. 20세기 마지막 20승 투수인 현대 정민태는 역대 유일하게 포스트시즌에서도 10승을 올린 투수다. 준플레이오프 1승, 플레이오프 3승, 한국시리즈 6승을 모두 합쳐 10승이다. 해태 왕조의 주역이던 선동열과 조계현조차 포스트시즌 통산 8승을 올리고 은퇴했다. 정민태는 포스트시즌에서 이들보다 더 많이 이겼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에이스라 해도, 팀이 가을 잔치에 초대받지 못하면 포스트시즌 승리는 챙길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정민태는 행운의 투수다. 그의 10승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현대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하다.
정민태는 1998년 한국시리즈 1차전부터 2003년 한국시리즈 7차전까지 포스트시즌 8연승을 달려 역대 최다 연승 기록도 갖고 있다. 당분간 깨지기 힘들 대기록이다. 이뿐만 아니다. 포스트시즌에서 무려 115⅓이닝을 던졌다. 준플레이오프에서 6⅔이닝, 플레이오프에서 35이닝, 한국시리즈에서 73⅔이닝을 소화했다. 그 가운데서도 최고의 무대인 한국시리즈 기록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가 전성기를 보내는 동안, 팀 현대도 얼마나 최강팀으로 군림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 김명제가 남기고 떠난 기억
▲ 두산 베어스 투수 김명제 / 이투데이
2005년 10월 10일 두산과 한화의 플레이오프 3차전. 두산의 젊은 투수, 아니 ‘어린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 이날 두산이 내세운 깜짝 선발 카드는 이제 고작 18세 9개월 5일이 된 고졸 신인. 한눈에도 앳된 얼굴의 유망주가 최강의 외국인 원투 펀치였던 다니엘 리오스와 맷 랜들에 이어 3선발의 중책을 맡았다. 당시 두산 사령탑이던 김경문 감독은 이 선수를 낙점해 놓고도 쉽사리 긴장을 풀지 못했다. 경기 전엔 “1회라도 흔들리면 바로 교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게 기대를 뛰어 넘었다. 1회부터 과감한 몸쪽 승부를 펼쳤고, 위기는 삼진으로 벗어났다. 주자가 나가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투수는 계약금 6억 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던 김명제였다.
김명제는 결국 역사를 하나 썼다. 5이닝 4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역대 포스트시즌 최연소 승리 투수가 됐다. 마운드에서는 위풍당당해 보였지만, 경기가 끝난 후에야 “긴장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표정 관리를 했다”며 배시시 웃었다. 두산은 이 승리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다.
안타깝게도 김명제는 그 후 선수 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다. 2009년 비시즌에 술을 먹고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를 크게 당했다. 지금은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가을의 승리는 ‘야구선수’ 김명제가 짧은 프로 생활에서 남긴 가장 귀한 추억 가운데 하나다.
▲ 휠체어 테니스 선수로 활약 중인 전 두산 베어스 투수 김명제 / 스포츠조선
# 한국시리즈에서 나온 노히트노런
1996년 10월 20일. 김재박 감독이 지휘하던 현대는 준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 플레이오프에서 한화를 각각 꺾고 기세 좋게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그러나 해태에 1승 2패로 수세에 몰리자 4차전에서 파격적인 선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모두를 놀라게 한 그 이름. 마무리 투수 정명원이었다. 해태전에 유독 강했던 정명원을 소방수가 아닌 선봉장으로 내세운 것이다.
갑작스럽게 선발 투수 보직을 맡게 됐으니, 초반은 불안했다. 1회 이종범과 동봉철을 각각 볼넷과 몸에 맞는 볼로 내보냈다. 다행히 희생번트로 이어진 1사 2·3루서 다음 타자들을 삼진과 파울플라이로 처리했다. 고비를 넘겼다. 그때부터 정명원 특유의 강심장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안타를 하나도 맞지 않고 9탈삼진 무실점으로 승승장구했다. 현대 역시 해태 선발 이대진의 호투에 밀려 7회까지 0-0으로 고전했지만, 8회 결국 4점을 뽑아 승리를 가져갔다. 하루 전까지 마무리였던 투수 정명원이 역대 최초로 한국시리즈 노히트노런이라는 명장면을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이후 그 어느 투수도 같은 위업을 이루지 못했다. 아쉽게 문턱까지 갔던 투수도 단 한 명뿐. 삼성 배영수가 2004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10이닝 동안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지만, 경기가 연장 12회 무승부로 끝나 끝내 기록을 인정받지 못했다.
# 20번의 완봉승과 니퍼트
▲ 두산 베어스의 더스틴 니퍼트 / 연합뉴스
완봉승은 선발 투수에게 퍼펙트게임과 노히트노런 다음으로 영광스러운 기록이다. 투수 분업화가 철저한 현대 야구에서 갈수록 보기 어려워지는 데다, 모든 팀이 총력전을 펼치는 포스트시즌에서는 더욱 더 찾아보기 힘들다. 34번의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완봉승이 딱 20번 나온 이유다.
그 가운데 가장 집중도가 높아지는 한국시리즈에서 완봉승을 거둔 투수는 총 9명뿐. 롯데 최동원이 198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삼성을 상대로 9이닝 138구 7피안타 6탈삼진 무실점 완봉승을 거둔 게 시작이었다. 1998년 해태 문희수, 1993년 삼성 김태한, 1994년 LG 정삼흠이 그 뒤를 이었다.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3차전에서 해태 이강철, 4차전에서 현대 정명원(노히트노런)이 차례로 완봉승 펀치를 주고받는 명승부도 연출됐다. 이후 2003년 현대 정민태, 2007년 두산 다니엘 리오스, 2009년 KIA 아퀼리노 로페즈가 차례로 한국시리즈 완봉승을 기록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포스트시즌 완봉승은 두산 더스틴 니퍼트가 해냈다. 지난해 NC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9이닝 3피안타 6탈삼진 2볼넷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외국인 투수로는 앞서 언급한 리오스, 로페즈에 이어 역대 3번째 포스트시즌 완봉승이었다. 이 승리에는 ‘1승’이라는 숫자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 준플레이오프부터 치르고 올라온 두산 마운드는 니퍼트가 한 경기를 통째로 책임진 덕분에 천금 같은 휴식을 취했다. 적지에서 열린 1차전에서 기선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정규시즌 3위 두산이 2위 NC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간 비결이었다. 결국 두산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니퍼트의 호투를 밑바탕 삼아 우승했다.
# 투수가 너무 많이 나와서 ‘투수전’
지난해 두산과 삼성의 한국시리즈는 싱거웠다. 두산이 4승 1패로 손쉽게 왕관을 가져갔다. 그러나 수년 전만 해도 안 그랬다. 삼성과 두산이 가을에 맞붙기만 하면 피가 튀었다. 한 경기에서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투수 대부분의 얼굴을 볼 수 있었을 정도다. 말하자면, 조금 다른 의미의 ‘투수전’이다.
2008년 플레이오프 2차전은 잠실구장에서 연장 14회 승부가 펼쳐졌다. 이 경기에 투입된 두산과 삼성 투수의 숫자는 총 17명. 두산에서 9명, 삼성에서 8명이 나왔다. 역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출장 기록이다. 이날 양 팀 투수들이 맞닥뜨린 타자의 수도 117명에 이른다. 삼성 투수들이 52명, 두산 투수들이 65명을 각각 상대했다. 경기는 14회초에 3점을 뽑은 삼성이 7-4로 이겼다.
2010년에는 더 놀라웠다. 플레이오프 5경기가 모두 1점 차로 끝나는 사상 초유의 기록을 남겼다. 특히 잠실구장에서 열린 3차전과 4차전은 ‘혈투’ 그 자체였다. 3차전은 연장 11회 승부였다. 두산이 9명, 삼성이 7명의 투수를 냈다. 5시간에 육박한 경기 시간 가운데 투수 교체 시간의 비중이 상당했다. 두산이 9-8로 끝내기 승리를 거뒀다. 다음날인 4차전도 양 팀이 낸 투수 숫자가 전날과 같았다. 두산이 9명, 삼성이 7명. 결과는 반대로 8-7 삼성의 승리였다. 이틀 연속 양 팀 합쳐 16명씩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고, 결과는 1승 1패. 야구팬들은 명승부에 신이 났지만, 양 팀 감독과 투수 코치는 극심한 피로를 호소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자료출처 : 일요신문 [제1275호]
NC 명운 걸린 순간 ‘투수 나성범 팬서비스’ 갸웃
포스트시즌의 호투는 더 오래오래 기억된다. 안타깝게도 그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리그를 호령하던 에이스가 속절없이 무너지기도 하고, 갑자기 던지는 공마다 스트라이크존을 확연히 빗겨가기도 한다. 가을 야구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장면들. 넘치는 의욕과 긴장이 불러오는 해프닝이다.
롯데 문동환은 1999년 정규시즌 승률 1위에 올랐다. 시즌 내내 홈런을 12개밖에 내주지 않았다.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당당히 선발 등판했다. 그런데 이 한 경기에서만 무려 홈런 네 방을 맞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삼성 이승엽에게 내준 비거리 125m짜리 장외 홈런이었다. 그 후 아직까지 포스트시즌 한 경기에서 문동환보다 더 많은 홈런을 맞은 투수는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그만큼 홈런을 내주기 전에 투수가 교체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다. 문동환은 사흘을 쉬고 4차전에 다시 선발로 나섰다가 또 홈런 3개를 허용했다. 2경기에서만 7개의 피홈런. 결국 역대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가장 많은 홈런(총 14개)을 내준 투수로 남게 됐다.
해태의 주축 투수였던 차동철은 1988년 빙그레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융단 폭격을 당했다. 신동수와 방수원에 이은 세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가 무려 12개의 안타를 내주면서 10점을 잃었다. 역대 포스트시즌 한 경기 최다 피안타와 최다 실점. 1987년 한국시리즈에서 4승 무패로 우승했던 해태는 그해에도 1~3차전을 내리 이겨 2년 연속 무패 우승을 목전에 둔 상태였다. 그러나 해태 벤치는 박빙 상황에서 난타당하는 차동철을 마운드에 내버려뒀다. 당시를 기억하는 야구인들은 “해태 선수들의 플레이가 우승을 앞둔 팀답지 않게 전체적으로 느슨했다. 투수 운용도 석연치 않아 (외압에 대한) 의혹을 샀다”고 지적했다. 사령탑이던 김응용 감독은 경기 후 “이런 식의 게임을 하기가 가장 힘들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갑작스러운 제구 난조로 진땀을 흘린 투수들도 있다. 두산의 모범 외국인 투수였던 맷 랜들은 2008년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2차전, SK 에이스 김광현은 지난해 넥센과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각각 한 이닝에 볼넷 4개를 내주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특히 김광현은 1회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볼넷 퍼레이드를 펼쳐 잠시나마 벤치의 눈앞을 캄캄하게 했다.
그래도 이 분야에선 아직까지 두산 홍상삼을 따라잡을 투수가 없다. 홍상삼은 2013년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8회 한 이닝에만 폭투 3개를 범했다. 한 경기에서 폭투 3개를 기록한 투수는 이전에도 존재했지만, 한 이닝에 3개를 모두 던진 투수는 홍상삼이 유일무이하다. 두산이 8회초 0-0 균형을 깨고 어렵게 1-0 리드를 잡은 직후였기에 더 뼈아팠다. 8회 1사 2루서 등판한 홍상삼은 2구 연속 폭투로 2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여 허무하게 동점을 만들어줬다. 게다가 박병호가 볼넷으로 출루한 뒤에도 다시 폭투를 범해 주자를 2루로 무혈 입성시켰다. 공식 기록은 폭투 3개. 그러나 사실 박병호에게 던진 마지막 공도 포수 뒤로 빠졌다. 한 이닝에만 포수가 잡지 못할 공을 4개나 던진 셈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장면 하나. 지난해 NC가 가을 잔치 최종전에 내보낸 마지막 투수의 이름은 나성범이었다. NC의 간판타자이자 주전 외야수인 바로 그 나성범이다. 나성범은 대학 시절까지 투수로 활약했지만, NC 입단 직후 타자로 전향했다. 김경문 NC 감독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나성범이 팬서비스 차원에서 마지막 경기에 투수로 나올 수 있다”고 예고했다. 그리고 나성범은 정말로 나왔다. 4-6으로 뒤진 두산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 9회 2사 후 마운드에 올랐다. 첫 타자 데이빈슨 로메로에게 안타를 맞았지만, 다음 타자 오재원을 3루수 땅볼로 솎아냈다. 최고 구속이 시속 147㎞까지 나와 팬들이 환호했다. 다만 나성범이 등판한 순간이 ‘팬서비스’를 하기에는 고개를 갸웃할 만한 상황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팀의 명운이 걸린 마지막 5차전, 그리고 점수 차는 고작 2점이었기 때문이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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