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1. 28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그의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그 이전 대통령의 신경질적인 표정과 대비되면서 새 정부는 이전과는 달리 권위적이거나 일방적으로 통치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대감도 가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20개월을 보내면서 한국 대통령제의 문제는 인물이 아니라 제도와 구조의 문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제도를 고치지 않는 한 '제왕적(帝王的) 대통령'이라는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개헌을 통해 권력 구조를 바꾸는 일이 필요하지만, 우선은 청와대 비서실을 개혁해야 한다.
청와대는 언제나 개혁의 주체였지 대상이 된 적은 없었다. 어느 대통령도 자신을 보필하는 청와대 조직을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적이 없었을 것이다. 과거 여러 대통령의 재임 시절에도 별문제가 없었던 조직을 왜 바꾸라고 하는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이전 조직을 그대로 계승해 온 것 같지만 사실 청와대 권력은 민주화 후에도 계속 강화돼 왔다. 오늘의 청와대는 오래전부터 누적되어 온 강력한 권력의 기반 위에서 출발했다. 청와대 권력 강화를 두고 직원 수가 늘어났다거나 예산이 증가해 왔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인사(人事)와 사정(司正) 기능을 청와대가 직접 맡기 시작하면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때까지는 청와대에 인사수석 직책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 초에 인사보좌관직이 생겼고 곧 인사수석비서관으로 바뀌었다. 장관 등 고위직 인사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예기치 못한 문제로 잇달아 낙마하면서, 인사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차원에서 아예 청와대가 그 기능을 맡은 것이다. 모든 조직이 그러하듯 일단 조직이 생기고 나면 조직의 권한과 관할 영역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장관 등 고위직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제는 각 행정 부처의 인사까지 사실상 청와대가 직접 챙기게 됐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는 장관, 차관은 물론 국장, 과장 인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고, 공기업과 각 부처 산하기관 인사에도 간여하게 됐다. 더욱이 선거 때마다 수많은 사람이 유력 후보 주위에 몰리기 때문에 당선 후에는 그들에게 '전리품'을 챙겨줘야 하는 것도 청와대 인사 개입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무원 인사에 '정치적 줄'이 중요해지고, 육군 참모총장이 행정관과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점은 청와대가 직접 사정 조직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행정관의 폭로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특별감찰반이 그것이다. 청와대의 감찰 조직도 원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졌다. 그 이전까지의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검찰, 경찰, 감사원, 국정원, 기무사 등의 사정 업무 조정 역할을 했으나 직접 감찰을 수행하지는 않았다. 감찰 기능은 '사직동 팀'으로 알려졌던 경찰이 수행하고 있었는데, '옷 로비 의혹 사건' 논란 이후 폐지되고 2002년 1월 청와대 특별감찰반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대통령 친인척 관리와 대통령에 대한 여론 전달의 업무가 주어졌지만 이들의 활동은 곧 그 범위를 넘어섰다. 어느 조직에서나 감찰의 기능은 원래 막강한데 거기에 청와대가 더해졌으니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친인척뿐만 아니라, '대통령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자'까지 감찰의 대상이기 때문에, '털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사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무총리실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무원의 부정과 비리를 조사하라고 만든 조직이었지만, 2008년 당시 실세였던 대통령 형의 권력에 기대어 정두언, 남경필, 정태근 등 정치인들과 민간인까지 불법 사찰을 했다. 정치 권력과 사찰 기능이 만나면 언제라도 이런 불법과 권력 남용이 생겨날 수 있다. 이번 청와대 특감반과 관련된 '사고(事故)' 역시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원천적으로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인사와 사찰이라는 권한을 청와대가 직접 담당하는 한 '제왕적 대통령'으로부터 우리 사회는 벗어날 수 없다. 이 기능을 관련 부서에 돌려줘야 '청와대 정부'에서 벗어나 국정 운영이 정상화될 수 있다. 축적되어 온 폐단은 사법부 등 외부 기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침 비서실장도 교체된 만큼, 남의 눈 속의 티끌만 탓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제 눈 속의 들보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살펴볼 시점이다.
강원택 /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