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의 씨앗을 퍼트려 萬物(만물)을 움트게 하라(24)
兼愛思想(겸애사상)으로 인류를 사랑하라.
묵자는 공자와 맹자 사이에 생존했던 2천5백여 년 전의 인물이다(기원전 568~459년). 그는 겸애를 강조했다.‘겸애’란 서로가 혈육과 계층을 따지지 않고, 어떤 사람이든지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남을 자신처럼 여기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박애 사상이며, 아가페적인 사랑을 말함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不二(불이)와 같은 맥락이다.
즉 나와 남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것이다. 혹자는 가족에게 만 잘하면 되지 남에게 신경 쓸 필요가 어디 있느냐? 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고,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모욕하며, 귀한 자가 천한 자를 무시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현상임을 지적하였다. 아울러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은 만민에게 이로운 일을 발전시키고 해가 되는 일을 제거해야 된다고 설파하였다.
또한 묵자가 주장한 교육의 목적은 사회와 중생을 구하는 데 있었다. 이는 예수님⋅부처님의 사상과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비록 2,500여 년 전의 인물이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는 善과 義를 향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국민의 행복과 이익 나라의 안위를 늘 걱정하고 고민하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성현이었던 것이다. 요즘 물질 만능 시대에 살며, 돈을 모든 것의 척도로 삼을지언정, 정신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 적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인가?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하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 이것이 자기를 사랑하듯이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나라를 먼저 사랑할 수 있어야 하고, 세상을 차별 없이 사랑할 수 있는 큰 마음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 인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큰 마음을 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만 잘살고 우리만 잘 살면 그만인 세상이 아니다. 인류는 더불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상이다. 힘의 대립이 아닌 타협과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문화를 조성해 나아가야 한다.
또한 포용과 존중의 문화가 형성되면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온 인류가 善과 義를 향해 나아갈 때에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류는 지구라는 위성 속에 모든 만물과 함께 이미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는 공동의 운명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인류의 보존과 평화를 위하고, 후손들을 위해 모두 노력해야 할 의무인 것이다.
이런 문제는 각국의 지도자들의 뜻을 모아, 전 인류가 나아가야 할 공동의 목표를 善과 義를 향하도록 하면 된다. 즉 善은 인류의 행복과 이익이고, 義는 인류의 안위이다. 또 善는 인류의 안위이고, 義는 국민의 행복과 이익이다, 善과 義는 어느 것이 먼저이고 나중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밀접한 관계에 있다.
공동의 목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북극성과 같은 것이고 求心點(구심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실천하겠다는 마음가짐과 의지가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핵심은 그 마음을 어디에 향하느냐? 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류 공동의 목표가 이루어진다면, 인류는 전쟁이 감소하게 되고, 국가 간의 상호 신뢰와 이익을 추구하면서 자연스럽게 평화로운 세상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국가 간의 갈등이 줄어들고,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며, 다양한 분쟁을 방지하고 인류는 보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혁신적인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래 세대를 위한 깨끗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인류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국가 간의 상호 신뢰⋅포용⋅타협과 양보 등 끊임없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며, 미래의 지구를 보전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판단된다.
세상은 당연히 삶이 질이 높아지고 안정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제위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경제적인 면에서도 서로 협력하고 공동 번영을 추구한다면, 빈곤과 불평등이 감소할 것이고, 자원도 보다 공정하게 분배될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6.25 전쟁당시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가 6.25 전쟁당시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 작전과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의 참전과 지원이 없었다면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웠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아이젠하워 중위도 1952년 미 제3단의 중대장으로 참전하여 전사했다. 또 미군의 장군의 아들 142명이 참전하여 그중 35명이 전사했다는 사실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던 벤 플리트 장군은 제8군 사령관으로 한국전에 참전하였다. 그의 아들 지미 벤 플리트 2세도 한국전에 지원하여 B-52 폭력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지미 대위는 1952년 4월 4일 새벽 전투기를 몰고 평남 순천 지역에서 야간출격 공중 전투 중 적의 대공포를 맞고 실종되었다. 지미 대위가 처음 참전을 결심했을 때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는 우리의 마음을 몹시 부끄럽게 하는 의미 심장한 내용이 담겨있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선에서 싸우고 계십니다. 이제 저도 힘을 보탤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어머니!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함께 싸우는 전우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내를 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라고 보냈다. 그 편지가 마지막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의 한국이라는 남의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평화를 사랑하는 큰 마음을 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부터는 마음을 크고 넓게 가질 필요가 있다.“나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함께 싸우는 전우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문구는 예수님의 마음, 부처님의 마음의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구절이다.
우리는 이런 사례들을 정면교사로 삼아, 남에게 잘하는 것이 자신에게 잘하는 것이고, 남을 사랑하는 것이 모두를 사랑하는 것임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전쟁에 뛰어들어 목숨을 걸 수 있었던 것은 세계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한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기 때문일 것이다.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아낌없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용기에 그저 머리 숙여 감사할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늘 감사함을 지녀야 한다. 더 나아가 모든 면에서 선진국 수준을 뛰어넘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다 함께 합심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뜻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참된 길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兼愛(겸애) 사상은 개인에게는 물론 사회 전반을 위해서나 인류를 위해 필요한 덕목이라 하겠다. 우리는 제(6)에서 성인이신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의 예를 들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비록 국가와 인종⋅종교는 다를지라도 개인의 이익과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인류의 행복과 이익, 인류의 안위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수 천년이 지났음에도 쇠태함이 없이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존경하며 공양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성인들의 말씀과 행적을 통하여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 읽히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런 겸애사상을 가진 국민이 많을수록 당연히 사회는 행복해지고 인류의 삶의 질도 한 층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지은 業(행위)은 언제 받아야 할지 정해진 기한은 없지만, 반드시 인과응보가 따르게 마련이니, 내가 되돌려 받는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삿된 행동이나 惡한 행위는 하지 말고, 善을 증장시키고 功德을 쌓는 행위를 즐겨 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善과 義을 행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고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善과 義을 행하면 사회가 정화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인류가 정화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善을 퍼트려 만물을 움트게 함이다. 이것을 일러 세상을 구제하는 이상(理想)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인과응보의 원리를 굳게 믿고 받아들여 실천할 수 있어야 죄악에서 멀어지고, 善을 증장시키는 계기가 된다. 또한 우리는 늘 반성하는 자세로 살얼음이 낀 긴 강을 건너가듯이 조심조심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되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음덕을 많이 지어 자손들이 번창하길 간절히 기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