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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은혜의 사람으로 살라
Text Jrm 17,1-13
(1)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 (2)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3)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4)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 (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7)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11)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12)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13)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
1. 골2,6-7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 말씀에 의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는 것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것은 별개라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어서 사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는 사람으로 발달하여야 하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 위헤 굳건히 서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권고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주제의 말씀을 성경 렘17장을 통해 들으려고 합니다. 이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지며 또한 내 것을 삼아지는 은헤가 있으시기를 기도합니다.
2. 이스라엘 나라는 솔로몬 왕 이후에 북이스라엘왕국과 남유다왕국으로 분열되었습니다. 그리고 B.C 721경 북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되었고 남 유다 왕국은 B.C 580 경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합니다. 예레미야는 남 유다 왕국이 멸망할 즈음에 활동하던 예언자로서 하나님을 떠난 위정자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을 경고하고, 나중에 경고한 대로 나라가 망하게 되었을 때 망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나라를 다시 일으키실 수 있으니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선포한 예언자입니다. 오늘 읽은 렘17장 말씀도 그 내용 중 하나입니다. 17,1-6에서 예레미야는 남 유다왕국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하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매우 특별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특별히 선택된 민족입니다. 그들은 나면서부터 하나님께 선택된 선민으로서의 특권을 부여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성하셨고 하나님께서 가르치셨으며 하나님께서 보호를 하시는 아주 특별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선민으로서의 자부심 또한 대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점차 이 선민으로서 누리는 특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선택된 민족으로서 금하고 있는 이방인의 풍속을 따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선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받아 멸망당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결말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징계를 무서워하기보다 자기들을 침탈한 나라의 종교와 문물들에 현혹되었습니다. 이들의 탈선에 대하여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17,1절에서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이런 죄악은 자신들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져 자손들까지 망하게 하였습니다. 2절입니다.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죄로 오염된 이 나라를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징계할 것을 선포합니다. 3-4절입니다. “(3)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4)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
이들의 행위는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행위였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믿고 육신을 힘으로 삼으며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나면 저주를 받으니(5절), 그런 사람은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받을 복을 받아 누리며 사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다 다른 차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를 사함 받은 것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성령의 감동과 감화로 인격과 사상이 변화되고 생활 습관이 달라지게 합니다. 알 수 없던 인생 비극의 원인과 결말, 곧 불행과 사망과 심판에 대하여 알게 되고 그것들이 주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성령의 감동과 감화를 통한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사람도 있고 유대인들처럼 처음에는 잘하다가 중간에 변질된 경우도 있습니다. 신분은 왕자인데 거지처럼 사는 사람이 있고 신분도 거지고 사는 것도 거지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지인데 왕자처럼 흉내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지만 인격과 사상과 생활 습관의 변화를 거절하고 사는 사람에 대하여 사도 바울께서는 고전3,15에서 구원을 받되 불가운데서 건져낸 것과 같은 구원, 곧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남 유다왕국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였다고 남 유대왕국을 하나님께서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민입니다. 특별한 선민이 된 것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며 그것은 전적으로 은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은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으로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이 은혜는 세상의 어떤 것과 견줄 수 없는 귀하디 귀한 것입니다. 이 은총으로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
3.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총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 중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준비된 복을 받습니다. 마치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하는 것 같은 복입니다. 본문 7-8절에 나와 있는 복입니다.
이것을 자칫 잘못 생각하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되지만 그 다음에는 우리 인간이 바르게 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였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사는 것도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힘입어야 합니다. 인간의 의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고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오해하여 ‘구원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복은 인간의 노력으로’라는 결론을 내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오해입니다. 노력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도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이 부분을 오해하고 있어서 혼란을 겪습니다. 인간은 은혜를 받으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받은 만큼 더욱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열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의지하던 사람이 열 가지 중에 열 가지 모두를 하나님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 은혜 받은 사람의 표징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모든 결정에 하나님을 순종하며 모든 결과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 의뢰하는 것만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창조자로서 피조물인 인간의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이 끊기면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영적 존재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다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영혼의 생명의 양식으로 알지 못하는 자도 이미 죽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영혼이 살아가게 하는 단 하나의 생명의 양식입니다(요6,63) 지속적으로 햇빛을 쬐어야 모든 생물이 제대로 자라 열매를 맺을 수 있듯이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도 생명의 은총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산 자로서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하나님에게서 분리하여 죽게 했던 사탄은 죽었던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생명을 회복하여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이번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해 공작을 합니다. 때론 미혹하고 때론 협박하며 때론 혼란스럽게 합니다. 무엇을 혼란하게 합니까? ‘이젠 네 힘으로 해라.’가 한 가지이고, ‘그것도 못하면서 무슨 하나님의 자녀냐?’가 또 한 가지이며, ‘영 안 되지? 원래 그런 거야. 적당히 하며 사는 거야.’가 다른 한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금식하신 후에 사탄이 했던 시험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한 성경을 거론하며 시험한 사탄에게 예수님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해석한 성경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신 예수님은 또한 죄를 이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때로 징계하실 때도 있습니다만, 징계는 하나님의 사람을 잘 되게 하기 위한 징계이지 망하게 하기 위한 정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여전히 약한 인간일 뿐인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한 걸음 한 걸음을 주님 손을 붙잡고 가야 합니다. 매일 매 순간 주님과의 대화를 끊지 않으면서 주님과 동행하고 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풍성한 삶을 사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 우리가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치를 알고 있더라도 여전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치명적 약점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이라는 9절 말씀이 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아담과 하와 이래 부패해도 너무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라도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또 그 더러운 쓴 뿌리가 올라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만일 누구든 불의로 치부한다면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중요한 시기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맙니다. 그것은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하게 되어 있고 하나님을 떠나는 자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본문 7-13절 말씀입니다.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시험, 사람마다 경우도 다르고 수준도 다르지만 어쨌든 내 믿음의 한계치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 만큼의 시험에 부딪칠 때, 그 때도 의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옥토에 씨가 떨어졌지만 동일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는 30배, 누구에게는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은혜에도 급이 있습니다. 은혜의 급수(級數)가 있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47장에는 성전 문지방에서 물이 흘러나옵니다. 처음에는 물이 발목에 오르고 무릎에 오르고… 허리에 오르고… 나중에는 헤엄을 치는 물이 되었습니다. 은혜의 단계입니다. 은혜의 물결이 어디까지 가야 합니까? 아예 은혜의 강물에 깊이 빠져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과 나는 보이지 않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게 됩니다. 은혜의 눈으로 보니 모든 것이 다 은혜요, 다 순종할 수 있고 감사가 됩니다. 이 정도는 돼야 제대로 된 예수쟁이로 살아갑니다.
은혜는 계속 채워야 합니다. 춘천 소양강댐은 7년을 채웠고, 안동댐은 3년을 채웠다고 합니다. 사역만 하고 은혜를 채우지 않으면 로뎀나무 아래로 가서 누워야 하고 레히의 한 우묵한 곳에 가서 엔학고레의 샘물이 터지길 기다려야 합니다. 항상 은혜를 채워가야 합니다. 열심히 섬기고 사역하는 분일수록 더 부지런히 은혜를 채워야 합니다. 은혜가 새는 부분이 어느 쪽인가, 늘 살펴야 합니다. 은혜만이 살길입니다. 은혜의 강가에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