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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영향을 미친 고대의 종교
메소포타미아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는 그 풍요한 지역적 조건으로 인해 외부의 침입에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항상 변동이 일어났고, 모든 것이 일시적이었다. 도시들의 지속적 전쟁을 통해 신들도 싸우고 사랑하며 만신전을 형성했다.
수메르 - 아카드의 만신전
수메르-아카드의 만신전에서는 6개의 주요 신성이 대두했다. 각 신성은 커다란 도시의 신이었다. 안(아누)은 하늘의 신으로 우룩의 우두머리 신이었다. 명목상으로는 신들의 왕, 통치자였다. 엔릴(벨 Bel)은 공기의 신으로 후에 안을 밀어내고 지하의 신이 되었다. 왕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니푸르의 우두머리 신이며, 위대한 전사신이다. 난나(신 Sin)는 달의 신으로 우르를 통치했다. 우투(Utu)는 라르사의 태양신으로 라르사 멸망 후 시파르에서 태양신이 되었다. 후에는 샤마쉬라는 셈족의 이름으로 불리웠다. 엔키(에아 Ea)는 물의 신으로 에리두가 고향인 지혜의 신이었다. 닌후르삭(아루루 Aruru)은 닌투, 닌마아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母神이며 키쉬에서 우세하게 숭배된 신이다. 여러 남성신들이 닌후르삭의 사원에 별도로 세워진 지성소에서 예배되기되 했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닌후르삭은 결혼을 안했고 안의 아내는 중시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딸이며 사랑의 여신이자 하늘의 여주인인 처녀 이난나(셈족에서는 이쉬타르라고 부름)가 그 위치를 차지했다. 이러한 신들끼리의 관계는 서로 상냥, 친절한 것이었기 때문에 도시의 신들은 자기 도시의 사람이 다른 신을 숭배하더라도 허용하는 관용을 보였다. 그래서 Sin이 하란에서 숭배받고, 우룩에서는 샤마쉬(Shamash)도 숭배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3개조의 神家系
Anu / Enril / Ea는 천상,지하계,땅 위와 땅 밑의 물을 지배하며 물리적 우주를 분할했다. Shamash(태양신) / Sin(달의 신) / Ishtar(풍요의 여신)는: 농업과 관련해서 중시되었다. Anunaki는 지하세계의 신들이다. 이들의 우두머리는 Nergal인데 그는 원래 태양신이었다가 전염병의 신이 되어 지하세계의 주인이 되었다. 그의 그의 배우자는 이쉬타르의 동생이자 죽음과 불모의 여신인 에레쉬키갈(Ereshkigal)이다.
가장 널리 숭배받은 신은 이쉬타르였다. 이쉬타르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고, 봄 햇볕의 신이며 식물을 움트게 하고 가축을 풍성하게 하는 신 Tamuz에 대한 사랑 때문에 천부적인 위대한 연인으로서 사람들 마음 가운데 자라잡았다. 한편 이쉬타르는 풍요의 여신으로, 아이를 낳게 하며, 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신이었다.그러나 아카드인들 사이에서는 잔인한 전쟁의 여신으로 여겨졌다. 이쉬타르는 팔레스타인과 이집트까지 전파되고, 조로아스터교도들도 이쉬타르를 Anahita(흠없는 분)이라고 불렀다.
바빌론의 마르둑
처음에는 두드러지지 못했던 마르둑은 에리두의 에아를 아버지로 삼아 자기와 연결시키고(에아의 장남이자 생장과 전쟁의 신인 니누르타도 흡수) 바르시파의 신이며 불의 신인 Nabu를 자기 아들이자 신들의 서기로 만들었으며, 그들의 기능 중 일부(에아의 지혜, 나부의 운명에 대한 지배력)을 흡수했다. Nippur 시의 엔릴의 속성도 그에게 옮겨졌으며, 결국 하늘의 주인으로 인정받았다.
바빌로니아의 신화와 서사시
A. 창조
이 세상에 처음 존재하였던 것은 원초적인 바다(여신 남무와 관련)였다. 바다로부터 하늘 An과 땅 Ki 가 나타났고, 안과 키는 산처럼 뭉쳐있었고 그 속에 공기인 엔릴을 만들어냈다. 공기가 움직여 하늘과 땅이 분리된다. 그 다음 엔릴은 달의 신 Nanna를 낳았고 난나는 해의 신 Utu를 낳았다. 이때 세계가 나타났다. 공기의 팽창으로 하늘은 높은 꼭대기에 다다르게 되었고, 땅은 단단한 바닥을 밑으로 하게 되었고 해와 달은 빛을 비추었다. 공기와 물의 도움으로 식물, 동물이 나타났고, 인간은 원초적 바다 남무, 어머니 대지 닌마아, 물의 신 엔키의 공동노력으로 창조되었다. 다른 전설도 있지만 바빌론 사제들은 물려받은 어떤 자료든지 고쳐서 마루둑을 혼돈에 대항해 싸운 영웅으로 묘사하고 인간과 세계의 창조자로 만들었다.
물의 신 Apsu와 끝없는 소금물의 용(혼돈)인 Tiamat이 결합함으로 많은 신을 생산했으나, 젊은 신들의 활기로 인해 고요함을 원하는 압수는 그들을 없애기로 작정했다. 티아맛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추진하자 에아가 압수를 처치하자, 티아맛이 복수를 시작하고 에아는 도망간다. 티아맛의 복수는 마루둑이 나타나서 티아맛을 죽임으로 끝이 난다. 마루둑은 티아맛의 시체의 조개와 같이 벌어진 곳을 두 조각으로 잘라 하나로는 하늘 위의 물을 받치고 있는 天蓋를 만들고, 하나로는 땅 밑의 물 위에 놓여 있는 덮개를 만들었다. 에아의 도움을 받아 그는 티아맛의 두 번째 남편이자 동료인 Kingsu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
B. 홍수
원래 홍수 이야기는 수메르인이들에게서 나왔다. 이 이야기는 실제 두 강의 범람으로 인한 경험에서 연유한 것이다. 여러 이야기중 길가메쉬 서사시의 흥미로운 삽화를 주목할 수 있다. 신들은 인간의 죄악에 분노하여 홍수로 처벌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선신인 에어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을 측은히 여겨 그에게 결정을 알려주었고, 그는 곧 방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는 구약의 내용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C. 죽음의 나라로 내려간 이쉬타르
이쉬타르는 남편 탐무즈가 죽자 그를 되살리기 위해 지하세계로 내려가고, 일곱 대문을 지날때마다 보석과 옷가지들을 빼앗겨 결국 홀랑 벗은 몸으로 도착한다. 그곳에서 수많은 고통을 당하면서 지낸다. 흑사병의 신 남타르가 육십가지의 질병으로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동안 땅 위의 인간과 동물들은 멍청하고 게을러졌으며 사랑과 풍요가 사라졌다. 신들은 실의에 잠겼다. 에어는 전령을 지하계 Hades로 보내기로 했다. 저승의 여신은 마지못해 남타르에게 명해 생명수를 이쉬타르에게 뿌리게 하고, 건강을 되찾은 이쉬타르는 땅위로 돌아온다. 돌아오면서 각 대문에서 옷과 보석을 되찾는다. 이 이야기는 생장의 여신이 겨울이 다가와 사라졌다가 봄이 되자 다시 돌아온다고 하는 시적 감각의 이야기이다.
D. 길가메쉬의 여행
원래는 수메르인으로부터 비롯된 길가메쉬의 이야기는 우룩(에레크)의 지배자인 길가메쉬와 야생인인 Enkidu의 우정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엔키뒤는 이쉬타르를 격노케 하여 죽게 된다. 길가메쉬는 불사불멸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그는 고생 끝에 서쪽 죽음의 바다 너머 저승에 이른다. 그곳은 신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은 우트나피쉬팀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길가메쉬는 고난 끝에 찾은 영원한 생명의 약초도 뱀에게 빼앗기고 쓸쓸히 우룩으로 돌아온다. 이 이야기는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좌절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을 다루고 있다. 바빌로니아인들은 모든 즐거움은 이 세상에서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생제의, 주술, 점성술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확인하기 위해 바빌로니아인들은 사제의 도움을 받아 희생제의를 행하고, 주문을 외며, 제의중에 기도를 드리고 별의 움직임을 읽었다. 사제들은 환자 몸속에 있는 악령을 쫓아내는 주문을 외었다. 사제들은 잘 조직된 과업을 지니고 바쁘게 지내며 고객들에게 봉사했고, B.C 3200년경에 이미 사원기구라 할 수 있는 법인체를 공영했으며, 점토판에 수입과 비용을 표시했다. 사원 구조는 인공의 산(지구라트)으로 그 정상에는 사당이 세워져 있었다. 이 사원의 구내에서 사제들은 긴 제의를 행하는데, 특히 신년축제의 열 이틀 동안 두 번째 날부터 다섯 번째 날까지 그런 제의를 행했다. 여기서 그들은 학교를 경영하며 읽기, 쓰기, 셈본등을 가르치기도 했다.
또 시간의 징후를 읽고 미래를 예견하려는 야심으로 점을 치기도 했다. 점은 꿈의 해몽, 자연의 징후 해석등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었고, 특히 양의 간에 나타나는 징조 해석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가장 중요한 점치는 방법은 점성술로 후대 천문학의 출현을 예비했다. 점성술을 인간사에 미치는 천체의 영향력에 관한 정교한 이론으로 발전시킨 것은 헬레니즘 시대의 후기 그리스도인들이었다.
19세기에 그리이스 종교에 관한 기존 견해가 바뀌었다. 호머가 묘사한 신의 아름답고 균형된 모습은 사실상 잡다한 요소를 통합, 승화시키려는 노력에서 빚어진 결실로 재해석되었으며, 농민의 혼잡스럽고 거친 여러 가지 미신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다.
초기 그리이스의 신
초기 그리이스 종교 형성의 중요한 계기는 B.C 1200년경 북부인의 침입이었다. 그들은 인도-유럽어를 쓰는 아리아족 기마전사들로, 헬라딕 문명 사람들을 정복했다.
침입과 정복의 변동과정을 거치며 그리이스 도시국가가 형성되자, 그리이스 종교 형태가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종교는 많은 요소를 조합해서 이루어졌다.
하늘의 父神이며 비를 내리게 하는 우두머리 신 Zeus(인도-아리아 족은 디아우스 피타르, 로마인은 주피터라 부름), 땅의 모신인 Demeter, 제우스의 누이이자 난로의 처녀신인 Hestia가 그것이다. 다른 신들은 그리 연륜이 깊지 않았다. Rhea는 미노스 문명을 반영하며, Athena는 미케네 문명을, 헤르메스와 헤라는 에게 또는 헬라딕 문명을 반영한다. 아폴로는 이오니아에서 나타났으며, 아프로디테는 사이프러스나 사이테라에서, 그리고 디오니소스와 Ares는 테라스 출신이었다.
고전시대 그리이스인들과 그들 신과의 상호관계
고전 시대 그리이스인들은 자기들 주위에 많은 신이 존재하며, 인간의 여러 가지 목적을 성취하려면 신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다신론의 입장은 땅 속, 땅 밑에 살고 있는 여러 가지 정령 chthon 과 하늘이나 바다 밑에 살고 있는 여러 초자연적 존재들을 알고 있었고, 그런 존재의 수가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신들을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인간의 생활과 인격으로부터 유추된 개념과 상징을 가지고 신을 묘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이스인들이 많이 지지한 신들은 세상을 초월하며 멀리 떨어져 있는 신이 아니었다. 신들은 인간과 매우 가까이 존재하고 있는데, 예컨대 난로(헤스티아), 길가의 경계석이나 헤르마(헤르메스), 도로의 아폴로에게 바쳐진 집앞의 사원, 제우스 크테시오스를 모신 창고 속의 항아리 등 생활에 매우 밀접한 것과 관계되어 있었다. 모든 공식적 행사에서는 신에게 기도하고 원조를 바라는 절차가 있었다. 신의 승인없이는 농사도, 여행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의 신에 대한 태도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이 긴밀하게 협동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신들도 인정하지만 그들에게 기도와 희생제물을 바치지는 않았다.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에게 예배를 올리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러나 제우스에게는 종종 기도하는데, 그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또한 가까이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아폴로도 마찬가지이다.
신들의 복합적인 기능
지리적으로 조그만 골짜기와 평야로 분할된 그리이스는 사람들을 분리시켜 지역별로 여러 가지 정령을 숭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북부에서 침입한 북방인들은 그리이스인들에게 새로운 언어와 낙천성, 신 명칭의 통일을 촉진했다. 각 지역의 정령과 초자연적 존재들은 북방인의 주요한 신이나 여신에 흡수되어 기존의 역할과 의례, 경력등을 넘겨주는 반면 그 고유한 성격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그 이후 종교의 발전은 주로 도시에서 이루어졌다. 위대한 신들은 시내에 실제로 살고 있다고 여겨졌고, 여러 신 및 초자연적 존재들과 뒤섞이게 되어 각 지방의 전통 안에서 외래의 신들과 고유한 신이 서로 융합하게 되었다. 제우스 신의 경우도 침입자의 신이 지방신의 의무를 양도받는 과정을 잘 드러낸다. 헤라는 토착신으로, 제우스와 헤라의 결합은 Jane Harrison에 따르면 "제우스와 헤라의 결혼은 북방인의 침입으로 원주민이 정복된 사건을 반영하고 있다.
... 제우스와 헤라의 갈등은 종족간의 갈등에서 찾아야 한다."
다른 해석은 헤라는 원 그리이스인의 모계출계전통을 유지하고 있던 산악 오지 주민의 여왕이고, 제우스는 부계출계 북방인의우두머리로, 제우스가 피정복민들 사이에서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헤라와 결혼하였다는 것이다.
아폴로는 원래 헬레네에서 탄생한 신이 아니다. 적어도 [일리아드]에서는 트로이 편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신화의 내용으로 볼 때 아폴로는 델로스 섬이나 소아시아 평원 출신으로 짐작된다. 처음에 그는 목축과 농사의 신이지, 처음부터 태양신은 아니었다. 후에 아폴로는 그리이스 파르나수스 산 언덕에서 피톤 Python을 살해하여 델피에서 피톤이 차지했던 자리를 차지했다. 이는 그리이스 종교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사건이다. 이로써 아폴로는 계시를 내리는 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많은 지방신과 정령이 다른 신에게 흡수, 승화되었다. 오직 디오니소스만이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 채 동화되지 않았다.
호머가 소개한 여러 신
호머가 이야기한 신들은 모두 올림푸스산의 높은 곳 아크로폴리스를 고향으로 한다. 호머의 신의 족보에 나오는 신들은 매우 귀족적인 성격을 가진다. 그들은 자연의 여러 가지 힘을 책임지고 있으나, 올림푸스에 오기 이전에 비하면 자연의 힘을 다루는 능력이 많이 쇠퇴했다. 즉 원시적 기능을 벗어버리고 보다 고상하면서도 단순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미노스문명의 분위기를 담은 주물, 동물형태의 신, 모신등은 사라지고, 펠라스기아인이 동물과 인간의 풍요, 성장, 죽음, 지하세계에 대해 갖고 있던 관념을 그리이스인들에 의해 다시 정교하게 다듬어져서 받아들여졌다. 그리이스인들은 신을 애매모호하고 신비스러운 힘이나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존재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신들은 대낮의 밝은 곳으로 나와 그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며 서로 명백히 구별되었다. 신들은 지상의 남녀와 같은 모습으로 생각되어 사고와 욕망, 분위기, 열정이 모두 인간적이었다. 죽지 않는 존재이기는 했지만 알수 없고 예측불가능하며 무서운 존재는 아니었다.
미적으로 볼 때 신은 인간보다 매력적이었으며, 균형잡혔으며, 세련되고 아름다웠다. 이런 완전한 모습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비로운 전율의 감정을 일으키게 했다. 신들은 인간의 생활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그리이스 신들은 근대적 의미의 정의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그들이 원한 것은 우선 자신의 권력, 힘 arete, 권위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의 권한은 엄격히 제한되어 있다. 신보다도 강력한 것이 존재하는데, 제우스조차 그것을 어찌할 수 없다. 그것은 각 인간에게 자기 몫으로 할당된 것,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 예정되고 약속된 부분, 즉 moira이다. 이 모이라와 함께 여러 가지 모호한 힘 - 맹목적 어리석음, 테러, 소동, 폭동, 루머, 죽음 -이 같이 움직인다.
따라서 신도 인간처럼 자연과 역사의 전체 틀 안에서 움직인다. 신이 초인간적이지만 그 힘이 무한정한 것은 아니다.
호머의 서사시는 그리이스인들은 문화적, 종교적으로 묶어 통일된 감정을 갖게 하는데 기여했다. 호머가 환영받은 이유는 종교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가 더 컸던 것이다. 그러나 호머의 시에서 묘사된 신들이 과연 실제로 각 지방의 종교생활에까지 침투해서 실질적 신앙심을 이끌어냈는지는 의심스럽다.
헤시오드의 神統記
헤시오드(B.C 8세기)는 신의 기원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신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고 질서를 잡아보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태초에는 혼돈 Chaos 만이 있었으나, 우주가 점차 진화하면서 대지(Gaea 또는 Ge)와 Tartarus(지옥), 그리고 Eros(사랑)로 바뀌었다고 했다. 카오스는 밤과 어둠으로 남고, 밤과 어둠은 다시 에로스의 힘을 통해 낮과 공기를 낳았다. 밤은 배우자없는 고독한 침실, 꿈, 죽음, 노년, 비참, 우정 그리고 불화를 만들었다. 불화의 여신도 남편없이 혼자 힘으로 기아, 노역, 살인, 전투 등 고통스럽고 투쟁적인 일들을 낳았다. 반면 땅은 우라노스(별로 뒤덮인 하늘)를 낳고 산과 바다도 낳고, 땅과 바다가 짝을 지어 각종 생물, 무생물을 만들었다. 그 다음 최초의 위대한 신들이 우라노스를 남편삼아 임신했지만 우라노스가 방해해서 아이가 탄생하지 못했다. 그러나 Kronos는 가에아의 도움으로 밖으로 나와 어머니가 준 낫으로 아버지를 거세한다. 우라노스에게서 흘러나온 피가 대지를 임신시켜 대지는 Erinyes(세 자매의 목수 여신), 타이탄 족(거인족), 그리고 님프(요정)을 낳았다. 한편 상처난 부위 주변에서 일어난 바다의 거품으로부터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나타났고, 승리한 크로노스는 뒤이어 태어난 Rhea와 결혼했으나, 자기 자식이 자기 자리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하여 아기가 태어나는대로 입속에 삼켰다. 그러자 레아는 할머니 대지의 여신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에 태어난 제우스를 돌로 바꾸어놓아 크로노스가 그것을 모르고 삼키게 하였다. 제우스는 크레타의 동굴에 숨어 할머니 손에 자라, 마침내 아버지를 굴복시켰다. 그리고 크로노스가 삼킨 신과 여신들을 모두 토해내게 하여 신들의 왕이 되어 통치하였다. 헤시오드의 시도는 신학의 면에서는 그리이스인들을 만족시켰지만, 질서를 거부하는 일상의 종교생활에는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다.
가정의 일상적인 종교생활
일반 그리이스인들의 종교생활은 대개 공식적 의례가 있을 때 가족이 참가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지방에 있는 사람들은 목동인 Pan, 지모신 데메테르, 헤르메스, Daimon(마나로 가득찬 것), 케르(복수), 복수의 여신, 모이라, 에린예스, 귀신, 반인반수, 영웅, 지하의 신들을 섬겼다. 이 외에도 그리이스인들은 타부, 주술, 점복등에 관심을 기울였다. 한편 도시인들은 가정의 종교와 주술외에도 그 도시의 신을 찬양하는 축제에 참가했다.
아테네의 축제
아테네인은 신을 계절과 연관시켜 성대한 제의를 수행했다. 이 축제에는 종교와 예술의 결합이 있었으며, 주술적 요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신비종교
그리이스인들은 이미 자기 자신안에서 신을 느끼고 신이 지닌 불멸의 본성을 자기도 공유하려는 욕구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것을 충족하기 위한 열광적 방법을 창조해냈다. 즉 대중이 공식적으로 치르는 희생제의만으로는 만족시키지 못할 개인적인 차원의 종교적 욕구를 갖게되었는데, 그것이 신비종교이다.
가장 오래된 신비종교는 엘레우시니아 의식이다.이 종교의 신자는 보다 나은 운명을 얻기 바랬으며 내세에서도 영원히 죽지 않는 영광을 염원했다. 그러나 스스로 덕을 쌓아 응분의 보상으로 영광을 얻기 보다는 데메테르, 코레, 그리고 디오니소스가 발휘하는 재생의 힘에 의지하려고 했다. 디오니소스 신비종교는 격렬하고 난폭했다. 이 종교는 타르고-피리기아에서 시작했으며,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를 마심으로써 신에 잡혀서 도취상태에 빠진다. 오모파기아 의례는 호아소와 새끼염소를 실제로 갈기갈기 찢어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오르페우스 숭배는 보다 온건한 성향으로, 육식 금지, 성생활 금기 등을 지키는 금욕생활로 자신으로부터 악을 없애 죽은 후에 지옥에 가는 것을 피하려고 했다.
그리이스 철학은 이러한 관념에 힘입어 학파를 형성하기도 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오르페우스 신비종교의 색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 인간 생활의 주요임무라고 해서, 오르페우스(또는 아폴로)를 따름으로서 영혼의 평정과 이해를 도모하고 나아가 신과 같은 균형의 상태에 이르기를 바랬다. 그들이 의학, 천문학, 음악, 수학, 순수철학을 연구한 것은 자기 영혼속에 신과 같은 자질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윤회의 고통을 겪지 않고 통찰력을 갖춘 정결한 정신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리이스 종교와 비극 작가들
그리이스 비극의 주제는 인간의 재앙은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아에스퀼로스는 제우스를 우주적 정의의 집행자로 보아 도덕적으로도 고결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소포클레스는 제우스에게 자비라는 요소를 부여해 엄격한 인상을 완화했다. 유리피데스는 신에게 회의의 목소리를 드높였다. 하지만 유리피데스가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는 진정한 신의 개념을 바탕으로 신화와 전통의 잘못된 것을 제거하고자 노력했다.
철학자와 신
그리이스 철학은 일원론에서 시작했다. 우주의 모든 것은 어떤 하나의 근원적 실체가 이런 저런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다. 탈레스는 그것을 물이라고 했고,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아낙시만드로스는 정할 수 없이 무한한 어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창조의 힘을 지닌 신적 존재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크세노파네스는 창조의 힘을 가진 그 존재는 "신 가운데에 가장 위대한 신이며 형태와 정신 양면 모두에서 인간과는 다르다. 그는 모든 것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두루 듣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존재를 신인동형관의 오류로 이해했다고 비판한다. 플라톤은 호머의 신들과는 달리 신은 보다 높은 어떤 힘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힘의 뜻에 따라 충실하게 움직이는 존재라고 보았다. 즉 신들 위에, 모든 존재와 사물의 배후에는 하나의 창조자 혹은 조물주가 있으며, 그 창조자는 모든 가치 가운데 최상의 가치인 선과 일치하는 존재였다.
로마
로마도 정치적 격변에 따라 토착종교와 외국의 제의 예배가 혼합되었다. 이러한 융합의 과정을 추적해본다.
초기 로마의 종교
주요한 성소는 처음에는 로마 영역 밖에 있었다. Diana 여신은 네미 호수가 아리시아의 작은 숲속에서 숭배되었으며, 그녀의 사원은 라틴 연맹 전체가 공유했다. 동쪽 알반 언덕 위에서는 주피터 라티아리스(Jupiter Latiaris)를 찬양하는 축제가 벌어지곤 했는데, 모든 라틴 세계가 참여했다. 후대에 로마인은 자기들의 초기 종교를 Numa의 종교라고 불렀는데, 법을 전해준 자가 종교도 규정해주었다고 믿었다. 그것은 주술과 가까웠으며, 엄격한 성직제도를 갖고 있었고, 주로 징조 해독, 부적, 타부에 주의를 기울였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numia(단수는 numen)라고 하는 초자연적 힘, 또는 효능에 관심을 두는 것이었다. 이는 마나와 비슷하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누멘은 일상적인 것을 넘어서는 일정의 효력을 의미한다. 신은 누멘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며 신의 힘과 위대함도 누멘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누멘은 많든 적든 어느 사물, 어느 장소에나 있다. 인간도 누멘을 소유하며, 가족단위나 집단의 누멘을 중시했다. 이 누멘은 이전이 가능하며, 증대시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초기 로마인들은 신과 정령의 성격에 대해서는 그리 분명한 관념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로마인들에게는 인격신, 신화, 영웅숭배, 지하세계, 우주창생설도 존재하지 않았다. 로마인들이 신을 인격화하지 않은 이유는 numen의 여러 가지 다양한 기능을 분석하는 일에 더 관심을 쏟았기 때문이다. 신개념의 확대와 정교화는 사제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A. 가정과 농장의 종교
농사일을 위해 로마인들은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온 적당한 numen의 소유자에게 호소했다. 가사와 양육에 있어서도 numen이 있어야 할 장소에 신을 배정했다. 이런 모든 numen의 소유자들은 매우 다양한 의식과 축제를 통해 찬양하고 위무하곤 했다. 이 의식과 축제의 핵심은 말보다는 행위였다. 그 까닭은 종교가 주술이나 타부와 불가분의 관계였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애매모호한 감상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므로, 제의의 특징은 매우 형식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인격대 인격의 친밀한 관계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형식적 엄격성은 사제를 필요로 했다. 사제들만이 전해내려온 의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실수없이 실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B. 로마의 국가 종교
초기 로마의 국가종교는 가내 제례가 국가의 차원까지 확산된 것이다. 로마 국가종교 조직은 매우 잘 다듬어져 있었다. 종교적인 일은 대개 사제장의 소관이었다. 새해 시작후 104일째 되는 날은 공식적 제의의 날인데, 이 날에는 여러 신의 사제들이 긴 의식과 희생제의를 꼼꼼하게 수행했다. 그런데 국가 의식에는 특별한 신이 전혀 거론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제의를 받는 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거론하는 경우도 많았다. 여러 신들이 언급되다가 사라졌는데, 도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은 오래도록 이름을 날렸다. 주피터는 인도-유러피안언족의 디아우스 피타르 또는 제우스 파터와 같은 신이다. 주피터는 이탈리아에 와서도 각 지방의 신의 역할을 흡수했다. 그에게 부여된 가장 고귀한 명칭은 옵티무스 막시무스 Optimus Maximus였다. 주피터는 천둥, 번개, 비, 빛의 신이었고, 인간사의 경로를 미리 정해놓고 다가올 사건을 하늘과 새를 전조로 얼핏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사람들은 점복관으로 하여 그 징조를 해독했다. 마르스와 퀴리누스는 전쟁의 신이었다. 마르스는 원래 가축과 밭을 지키는 보호신이었다가 로마의 팽창에 따라 전쟁신으로 바뀌었다. 퀴리누스는 같은 전쟁신이어도, 수비적 성향을 나타냈다. 야누스와 베스타는 의식의 맨 처음과 마지막에 모셔지는 신이었다.
에트루리아인의 영향에 따른 변화
B.C 6세기 에트루리아인의 로마 지배를 통해 새로운 신들이 로마에 들어왔다. 주피터는 주노와 결혼하여 부부사이로 발전했고, 이를 통해 주노는 성별을 비롯 훨씬 더 분명한 인격성을 갖게 되었다. 미네르바는 에트루리아인의 신으로 지혜의 여신, 예술과 무역의 후원자였다가 후에는 전쟁터에 나타나기도 하면서 인간의 모습으로 시각화되었고, 신의 상을 만들게 되었다.
그리이스인으로부터의 영향
B.C 6세기에 걸쳐서 그리이스의 제의와 신들이 로마에 들어와 로마식으로 변했고, 특히 완전히 인격화된 신들로 인해 새로운 차원으로 로마 종교가 발전했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의 점성술이 그리이스를 거쳐 로마로 들어왔고, 이러한 종교적 자극에 의해 로마인 자신이 만든 새로운 신(옛 전통으로부터 소생시킨)도 등장했다. 한편 그리이스 신화와 서사시에 대한 관심에 따라 이탈리아에 맞게 각색된 신화가 등장했다.
동방으로부터의 영향
로마제국의 팽창과 정복에 따른 경제적 삶의 풍요로부터 파생한 회의주의와 무기력함은 이방 종교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동방으로부터 전래된 신비주의는 풍성한 정서적 만족감을 불어넣었다. Magna Mater 즉, Cybele 퀴벨레를 숭배하는 종교가 들어왔고, 박쿠스(Bacchus, 디오니소스)의 신비종교가 도입되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상류층은 신비종교들을 싫어했고, B.C 186년경에는 원로원에서 박쿠스 신비종교를 금지하는 법을 공포했다. 이외에도 카파도시아의 Ma, 시리아의 Adonis, 이집트의 이시스와 이스리스 세라피스, 페르시아의 Mithra 등의 신이 모두 들어왔다. 이러한 확산은 당시 로마국가종교가 불가지론자인 정치가 및 신앙심없는 사제들의 수중에 놓여 경직화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로마 멸망기의 종교
공화정 마지막 백년(B.C 150-49)동안 로마의 종교는 원심성의 성격을 띠며 나아갔고, 국가종교는 형식주의로 타락해 공허해졌다. 그리이스 철학에 영향받은 지식인들은 에피쿠로스학파의 무신론이나 스토아 학파의 범신론을 따랐다. 아우구스투스 케사르는 국가의 복원을 위해 과거 로마 종교를 부활시키려고 했지만 미미한 반응을 일으켰을 따름이다. 한편 제국의 통합을 위한 정치적 이유로 황제들이 신격화되었다. 그러나 황제 숭배에는 사람들을 변화시킬 생동력 있는 힘이 존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신을 한곳에 모아놓은 로마 국가종교는 역동성을 잃고 말았다. 그것을 대체한 것이 기독교였다.
<참고문헌> J.B Noss, 윤이흠 역, [세계종교사]